45.
루차 킹즈와 ‘신-셀’의 대결은 좋은 반응 속에서 막을 내렸다.
그다음 날 이어진 여론 또한 우리 두 사람을 크게 칭찬했다.
처음에는 신인 둘이서 팀을 맺어도 될까 걱정하던 전문가들은 우리가 멋진 경기를 보이자 언제 그랬냐는 듯 극찬을 해댔다.
특히나 뉴스레터의 전문가들은 마지막에 우리가 쓴 기술에 대해서 거의 ‘완벽하다’고 평가했다.
[삼촌의 그림자를 넘어서기 위해 러셀이 장착한 신기술 슈팅스타 프레스. 아직 동작이 어설픈 점을 커버하기 위해 신이 돕는다라.]
[스토리적으로 의미가 있는 기술이야. 관객들에게 러셀이 변화했음을 확실히 알려주었지.]
[신도 변했고. 캐릭터의 서사가 발전하는 걸 이렇게 기술로서 보여주다니, 정말 세련됐는데.]
[맞아, 멋진 연출이야.]
[그 외에 다른 기술들도 정말 멋졌어. 두 사람이 서로의 스타일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협조한다는 느낌이 팍팍 들더군.]
[그걸 다른 의미로 보자면, 협력한다는 느낌이 좀 떨어진다는 거기도 하지만. 예를 들자면 더즐리 보이즈의 4-D 같은 느낌을 가진 합체기는 절대 아니야.]
[그건 어쩔 수 없지. 두 사람이 전문 태그 팀도 아니고.]
[맞아. 성장하면 금방 떼어놓겠지. 둘 다 슈퍼스타로서의 자질이 충분히 있어. 지난 주 링 세그먼트만 봐도 확실하지.]
[아, 그거 확실히. 신이 반쯤 혼자서 한 거긴 하지만……. 오, 맨. 진짜 그 자리에서 그렉 하트에게 시비를 걸 수 있는 남자가 누가 있겠어? ‘신’ 이외에 말이야!]
[그래, 맞아. 그는 ‘신’이지.]
라디오는 낯이 간지러울 정도로 찬양 일색이었다. 슬슬 호흡이 돌아온 걸 느낀 나는 적당히 이쯤 듣자고 생각하며 일어섰다.
라디오를 끄고 주변에 앉아 있던 세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다시 시작하자고.”
“그럴까?”
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러셀과 그 옆에 있던 에디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둠에 휩싸인 훈련장.
얼마 후 지금 모여 있는 네 사람의 시합이 있을 예정이었다.
바로 다음 페이퍼뷰에서 태그팀 챔피언과 붙을 도전자 팀을 뽑는 토너먼트의 4강이었다.
시나가 직접 도움을 요청해 나와 러셀은 두 사람이 피니시 무브를 만드는 걸 돕고 있었다.
시나 역시도 우리를 도와주었으므로 당연한 수순이었다.
‘문제는 성과가 없다는 거지만.’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만이 계속 나오다가 머리라도 식힐 겸 라디오를 들은 것이었다.
나는 시나와 에디를 돌아보았다.
“어때, 혹시 생각난 거 있어?”
“최대한 상대가 아프지 않으면서도 완전 멋져 보이는 거.”
“…….”
에디는 말이 없었고, 시나는 지나치게 천진난만했다.
‘총체적 난국이군.’
나는 쓰게 웃었다.
하지만 느긋하게 갈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나나 러셀과 달리 정말로 쌩 신인이었고, 제대로 된 몫을 해내는 법을 가르쳐야만 했다.
그래야만 링 위에서 나에게도 이득이 돌아오는 것이었다.
“천천히 생각해보자.”
나는 프로듀싱을 했을 때의 기억을 되살려 말을 꺼냈다.
“두 사람의 스타일을 먼저 생각해보자고. 본인들 생각은 어때?”
“……코치한테 물어봤더니 난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던데.”
“음.”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에디.
왠지 모르게 슬퍼졌다.
“아, 그럼. 가볍게 경기 형식으로 합을 맞추면서 너희 기술 좀 보여줘. 그걸 보고 러셀이랑 나랑 우리 생각을 말해볼 테니까.”
일단 그렇게 가기로 했다.
사실 시나는 ‘파워 하우스’, 에디는 ‘자이언트’였지만, 직접 깨닫도록 하는 게 낫겠지.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미래에서 가져온 정보였으니 말이다.
‘이런 것을 그냥 말해준다고 해서 그냥 ‘그렇구나.’ 하고 두 사람이 납득할 리도 없으니까.’
거기다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도 않은 두 사람의 경기 스타일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다.
순서대로 가자.
먼저 에디와 러셀이 링 위로 올라가 맞붙었다.
기술은 살살 썼지만 두 사람은 진짜 경기를 하는 것처럼 쉬지 않고 공방을 주고받았다.
에디는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며 러셀을 상대했다. 2미터가 넘는 거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것 또한 오히려 잘 배웠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테크닉이었다.
실제로 큰 사람은 느리지 않았다. 말하자면 에디는 프로레슬러로서의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에 맞춰서.
‘골리앗이 된 거지.’
그것이 자이언트.
힘과 덩치로 경기를 주도하며 상대를 압도적으로 찍어 누르길 좋아하는 계통의 프로레슬러.
서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거대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스타일.
파워 하우스와 비슷하지만, 자이언트 레슬러에게 중요한 미덕은 압도적인 덩치와 맷집이었다.
그처럼 러셀이 아무리 해머링을 갈겨도 에디는 셀링을 하지 않았다. 단지 조금 비틀거릴 뿐.
달라붙어 반격하려고 해도 힘으로 넘겨버리는 상황이 나왔다.
하지만 그런 자이언트 레슬러에게도 물론 약점은 존재했다.
바로 ‘무릎’이다.
실제로도 큰 사람들은 무릎이 하중을 견디지 못해 다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자이언트의 약점이 무릎이라는 것은 설득력이 있는 이이야기였다.
러셀은 에디의 무릎을 걷어차고 공격하며 주도권을 잡았다.
그러다가 반격이 이어지고, 흘려보내거나 하며 두 사람은 즉석에서 경기를 이어나갔다.
‘역시 힘인가.’
아직 젊기 때문인지 에디는 계속 경기가 이어져도 지치는 기색 없이 역할을 수행했다.
기술은 부족했지만 그걸 힘으로 커버했다. 100kg이 넘는 러셀을 번쩍번쩍 들어서 내던졌다.
그다음은 시나.
이쯤 해서 나는 두 사람의 태그 팀이 어떤 식으로 싸울지 대강의 그림을 잡아둔 상태였다.
파워 하우스와 자이언트.
힘으로 승부하는 두 사람은 적을 압도하고 괴물처럼 싸우는 게 분명 바람직한 방향일 터였다.
그걸 알게 해주자.
“시나, 네가 주도하는 거야.”
“알겠어!”
활기차게 대답한 시나는 그대로 내 몸을 힘차게 옆구리 쪽으로 들어 올려 바닥에 내리쳤다.
바디슬램. 정확히 말하자면 상대를 옆으로 들어서 내리찍는 사이드 워크 슬램이었다.
시나는 간단하지만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기술들을 장착했다.
녀석은 90kg이 넘는 내 몸을 번쩍번쩍 들었다.
에디처럼 키와 체중을 타고난 것이 아님에도 오히려 시나는 그보다 힘이 훨씬 좋았다.
왜냐고?
‘타고 났으니까.’
신神은 시나에게서 유연성이라는 장점을 가져간 대신, 압도적인 힘을 무기로 준 것이다.
시나의 키는 프로레슬러로서는 지극히 평범한 185cm였다.
근육질의 몸을 가졌지만, 적정 체중을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보다 무거운 레슬러들을 가볍게 들어 내쳤다.
사람들은 그런 시나의 모습에 열광했다. 마치 신화 속의 헤라클레스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정말 이건 하늘에서 내려준 재능이라고밖에 볼 수 없겠어.’
나는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힘을 쓰는 시나를 보며 생각했다.
거기다 나와는 달리 요령 없이 계속해서 전력으로 싸우는데도 전혀 지치지를 않았다.
‘큰 개 같군.’
힘 좋고 지치지 않는 것이.
‘네 주인은 힘들겠구나.’
나는 다소 무례한 생각을 하며 마지막으로 시나의 파워 슬램까지도 접수를 해주었다.
쿵! 하고 바닥에 떨어진 직후, 시나는 벌떡 일어섰다.
“어때?!”
“……잘했어.”
“죽어라고 연습했지. 낙법도, 기술도, 마이크워크도.”
“마이크워크는 한 번도 해본 일이 없지만 말이야.”
“…….”
시무룩해하는 시나.
방금 깨달았는데, 이 녀석이 큰 개라면 주인은 나인 것 같았다.
그렇게 시나와 함께 링 아래로 내려온 나는 러셀로부터 이온음료를 받아 수분을 보충했다.
우리 넷은 링 아래에 모여 앉아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쨌든, 이걸로 확실해졌다.
이 두 사람은 단지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아주 확실하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추고 있었다.
‘감출 필요도 없겠군.’
그렇게 생각한 나는 순진무구한 표정의 두 사람을 향해 생각하고 있던 바를 쏟아냈다.
“시나는 파워 하우스에 에디는 자이언트니까 둘 다 힘 있는 기술 위주로 가면 좋을 것 같은데.”
“그, 그럴까?”
“응. 기믹 상 문제될 것도 없을 테고. 오히려 더 멋있을걸?”
두 사람은 괴물 같은 힘을 가지고 브로큰 와이엇을 따르는 충실한 부하 기믹에 딱 맞았다.
고민하던 시나가 입을 열었다.
“파워 밤은 어떨까?”
“파워 밤……?”
러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둘이서 각자 한 사람씩 잡고 동시에 파워 밤을 날리는 거야. 꽤 멋있을 것 같은데.”
“멋지긴 할 것 같은데 태그 팀 무브라고 보기에는 좀…….”
“신, 너는 어떻게 생각해?”
“……어어?”
“동시에 파워 밤 쓰는 거.”
“흠, 글쎄.”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순간 당황했다.
시나가 말한 기술은 지금부터 10년 정도 뒤의 미래에 한 태그팀이 사용하는 기술이었다.
AOK.
디 어서스 오브 킬링.
해석하자면 살인의 저자들. 두 명의 빅 맨으로 구성된 태그 팀은 압도적인 힘으로 WWF를 평정하며 명 태그 팀으로 성장했다.
그들이 쓰던 기술이 바로 시나가 말한 것과 같은 더블 파워 밤.
‘하지만 다른 부분이 있다면.’
파워밤을 꽂기 직전, 어깨 위로 들어 올린 두 선수의 등을 서로 부딪치게 한다는 점.
마치 건배를 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건배 밤.
‘시나가 이걸?’
발상 자체는 괜찮았다. 간단하게 말해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멋진 기술이기 때문이었다.
보통 사람은 더 창의적인 기술이 좋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사실은 이 정도가 딱 좋았다.
그래야만 보는 쪽에서도 이해하기 쉽다. 어떻게 아픈 건지. 어디가 멋진 것인지.
좀 도와줄까.
“시나, 둘이서 파워밤 포지션으로 들어 올린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글, 쎄……. 서로 등을 부딪치게 한 다음에 던지는 건 어때?”
“멋진데.”
의도한 대로의 대답이었다.
사실, 그 이외에 뭔가 할 수 있는 동작이 없는 것도 사실이고.
“아니면 한 번 파워밤을 치고 다시 들어서 꽂는 것은?”
이런 게 안 된다는 거다.
“……허리 다 나갈 거다.”
“그럼 역시 등을 부딪치고 던지는 걸로…….”
“잠깐만.”
바로 그때, 러셀이 끼어들었다.
“피니시 무브라면 경기 종반부에 사용할 텐데 마지막에 이런 큰 기술을 쓸 힘이 남아 있을까?”
“뭐?”
“들어서 바로 꽂는 거면 몰라도 든 상태로 둘이 움직이면서 등을 부딪혀야 할 거 아냐. 성공하기가 무척 힘들 것 같은데.”
“즉, 힘이 필요하단 거지.”
“……그래.”
“그거라면 문제없어.”
“왜, 왜?”
“아무 문제없다니까.”
나는 확신에 차 이야기했다.
러셀은 다소 의아해했지만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 기술은 확실하게 두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 * *
링 아래의 와이엇이 낄낄거리며 기괴한 웃음을 보였다.
와이엇 패밀리 대 급조 태그 팀의 경기. 그 결과는 명확했다.
내내 급조 태그 팀을 몰아붙인 시나와 에디는 이제 마무리를 짓기 위해 바닥에 쓰러진 두 상대 선수를 일으켜 세웠다.
[아~ 뭔가요! 와이엇 패밀리의 두 사람이 수상쩍은 행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조롱을 하는 걸까요? 각각 반대편 포스트로 끌고 가는 데요!]
두 사람은 사각형 링의 반대편 모서리로 선수들을 끌고 가 파워밤 자세로 번쩍 들어올렸다.
순간 탄성을 터뜨리는 관객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그 상태에서 일직선으로 뚜벅뚜벅 걸어와 링 중간쯤에서 쿵 하고 들어 올린 선수들의 등을 부딪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나는 왼쪽.
에디는 오른쪽.
돌아섬과 동시에 파워밤.
투쾅!
호쾌한 타격음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뒤이어 커버와 함께 승리가 선언되었다.
[와, 정말이지 엄청난 기술로 경기가 끝이 났습니다! GCW 내에서 저 두 사람을 막을 태그 팀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둘의 다음 상대는 신-셀 태그 팀입니다! 정말이지 엄청난 경기가 될 것 같군요!]
태그 팀 토너먼트의 결승전을 홍보하는 해설과 함께 와이엇 패밀리가 승리를 자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