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47화 (47/634)

47.

시나와 함께 링 위에 쓰러져 있던 러셀이 이쪽을 향해 천천히 기어오기 시작했다.

“러셀! 태그! 태그!”

나는 야단법석을 떨며 팔을 뻗었다. 그러다 아예 반대 팔로 관객들을 크게 선동하기 시작했다.

팔을 아래에서 위로 들며 응원을 유도했다. 관객들의 환호에 맞춰 러셀이 조금씩 움직였다.

하지만 시나 역시도 자신의 팀원과 태그하기 위해 반대편으로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먼저 태그를 한 것은 시나였다.

러셀을 잡기 위해 에디가 나오자 여성 관객들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에디가 발을 잡기 직전, 러셀이 앞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짜악!

손바닥이 부딪치며 태그가 이루어졌다. 이 순간을 기다리던 나는 곧바로 턴버클 위로 올라갔다.

관객들의 환호 속에서 나는 순간 몸이 굳어져 있던 에디를 향해 미사일 드롭킥을 날렸다.

태그를 마친 뒤 쉬고 있던 시나가 깜짝 놀라 내게로 달려왔다.

반칙이었다. ……그것을 말릴 심판은 애석하게도 러셀을 살피느라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말이다.

물론 호락호락하게 당해줄 내가 아니었다. 달려드는 시나를 그대로 암 드래그로 넘긴 나는 다시 다가오는 에디의 무릎을 걷어찼다.

“……!”

에디의 무릎이 순간 휘청거렸다.

그 표정이 고통에 물들었다.

‘뭐지?’

확인을 해봐야겠군.

그렇게 생각한 나는 일어선 시나를 코너 쪽으로 몰아붙였다. 그리고는 쏟아지는 환성을 틈타 얼굴을 대고 말을 속삭였다.

“에디가 좀 이상해. 확인하고 올 테니까 상황 보고 들어와.”

눈빛으로 대답하는 시나.

나는 시나의 뒷목을 쥐고 2단 로프를 통해 링 밖으로 넘겼다.

그러고는 관객의 큰 호응을 유도하며 에디를 향해서 다가갔다.

“좋아! 끝을 내자고!”

녀석은 무릎을 부여잡고 로프에 기댄 채 서있었다. 나는 기술을 거는 척 얼굴을 가까이 대고서는 에디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부상이야?”

내 질문에 에디는 고개를 내저었다. 단지 좀 미끄러졌을 뿐 심각한 부상까지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 내가 누구를 부상 입힐 만한 킥을 찰리가 절대 없지.’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조금 걱정이 들기는 했다.

거인의 무릎은 생각보다 연약하다. 계속된 운동에 열이 올라와 슬슬 식힐 필요가 있을 듯했다.

“그래도 좀 생략하고 가자. 바리게이트 범프를 지금 할 테니까 쓰러진 척하면서 좀 쉬고 나와.”

에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에디를 링 중앙으로 끌고 나와 공격했다. 그러고는 우리 쪽 코너로 끌고 가 자리에서 일어서있던 러셀과 태그를 했다.

예정과는 다른 내 행동에 의아해하는 러셀.

“바리게이트 범프. 지금.”

하지만 그 말에 정해진 수순을 바꾸어 경기를 이어나갔다.

두 사람이 한 사람을 넘기는 더블 수플렉스로 에디의 힘을 빼놓은 우리는 녀석을 링 아래로 끌고 내려가 바리게이트에 던졌다.

미리 나사를 빼둔 터라 에디의 충돌에 바리게이트가 부서졌다.

이 경기는 어디에서나 핀 폴이 가능한 경기였다.

그 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원래대로라면 우리는 경기장의 각종 기물을 이용하며 경기를 점차 키워나갈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원래 에디가 소화해야 할 부분이 빠지며 경기가 붕 떴다.

‘여기는 시나와 나의 애드립으로 채워나가는 수밖에 없겠군.’

상황을 파악한 심판이 러셀을 자기 코너로 돌려보냈다. 나는 시나를 데리고 경기를 이끌었다.

어떻게?

코미디다.

너무 쓰면 위상에 좋지 않지만 코미디는 적절하게 경기의 템포를 늦추면서도 관객 호응을 잡고 갈 수 있는 테크닉이었다.

다행히 시나는 즉석에서 이어진 내 코미디 리드를 곧잘 따라왔다.

“~~~?!”

“자자, 돼지 코 되고 싶지 않으면 빨리 따라오라고!”

나는 시나의 양 콧구멍에 손가락을 쑤셔 넣고 링 위를 걸었다.

녀석이 화가 나 달려들면 아래로 쓱 숙여서 피했다. 시나는 바보처럼 링 반대편에 부딪혔다.

내 의도를 대충 알아챈 러셀이 코너에서 핀잔을 주었다.

“뭐하는 거야~?!”

“괜찮아! 괜찮아! 우리가 리드 잡고 있으니까!”

나는 여유롭게 대답하며 얄미운 생쥐 캐릭터처럼 시나를 가지고 놀았다. 내 캐릭터가 비겁한 행동도 서슴지 않아서 가능했다.

‘하나 문제인 건 시나의 위상에 해가 간다는 거지만.’

오히려 내 위상은 크게 상승하고, 관객들도 즐겁게 웃으니까 뭐, 결과적으로는 괜찮나?

아니, 생각해봤자 별수 없다.

모든 건 지켜보는 사람들이 정할 것이다. 나는 일단 지금의 상황에 집중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힘든 상황이 올 것 같으면 태그를 하고, 그랬더니 러셀도 내게 물들어서 시나에게 장난을 치고.

우리는 그렇게 경기장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심판이 신호를 보냈다.

‘난입’이 들어올 거라는 이야기였다. 마침 러셀이 시나를 상대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좋았다.

러셀은 시나에게 샤프슈터를 걸었고, 관객들은 탭을 치기를 기대하며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그리고 불이 꺼졌다.

철컥!

거대한 소리와 함께 경기장에 암흑이 찾아왔다. 링이 덜컹거리며 누군가 아래에서 올라왔다.

그리고 불이 들어왔을 때.

러셀의 눈앞에는 브로큰 와이엇이 서있었다.

심판은 공격을 받아서(물론 연기다) 쓰러진 상태.

실격패를 선언할 사람이 사라진 상황.

씨익 웃은 와이엇은 그대로 러셀을 공격했다. 비겁한 난입에 사람들이 크게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러셀과 나를 차례차례 쓰러뜨렸다.

[Booooooooooooo!]

상황은 반전되었다.

와이엇이 무어라 말을 걸자 쓰러져 있던 시나와 에디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이어진 건배 밤.

쿵! 하고 러셀과 등이 부딪칠 때가 생각보다 아팠다. 낙법으로 충격을 흡수하지 못해서인가?

어쨌든 그 뒤로 이어진 파워 밤에 사람들이 크게 압도되었다.

하지만 커버는 이어지지 않고, 와이엇 패밀리의 세 사람은 나와 러셀을 그대로 박살 내려고 했다.

바로 그때, 검은 사자와도 같은 사내가 입장로를 달려 나왔다.

바비 애슐리였다.

레슬링복을 입은 그를 본 사람들이 환호를 보냈다. 경기를 원래대로 돌려줄 영웅의 등장이었다.

그 말대로 바비는 링 위를 휘저으며 순식간에 정리를 시작했다.

그렇게 혼란 속에서 경기는 계속 이어져 나갔다.

나와 러셀도 바비에게 합류해 와이엇 패밀리를 공격했다.

링 밖으로 번진 싸움은 이내 관객석으로까지 이어졌다.

“신! 힘내요!”

시나와 주먹을 주고받자니 관객들의 환호에 귀가 떨어질 것 같았다. 모두들 내 등을 두드리고 몸을 만지며 말을 걸어왔다.

그럼에도 기술을 쓸 때만큼은 매너 좋게 물러나주었다. 거기다 안전요원들의 보호까지도 있어 나와 시나는 계속해서 싸워나갔다.

경기는 길었지만 이런 식으로 크게 벌려놓았기에 사람들의 환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반대편 관객석으로 간 러셀과 에디도 맹렬하게 싸우고 있겠지.

와이엇과 바비는 적당한 타이밍에 맞춰 빠졌다. 경기장은 다시 우리 네 사람의 소유가 되었다.

우리가 만들어낸 이야기와 싸움에 모두가 열광하고 있었다.

카메라가 계속해서 우리의 모습을 촬영했다. 계획대로 경기장 중간에서 만난 우리 넷은 주먹을 휘두르며 계속해서 싸워댔다.

하지만 먼저 피니시 무브를 맞은 러셀은 에디라는 거인의 공격을 당해내지 못했다.

러셀이 관객 출입구 쪽으로 나가떨어졌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에디가 다가와 날 공격했다.

나는 시나와 에디의 협공에 버티지 못하고 당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관객들이 놀라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계단을 올라간 러셀이 2층 난간에 서서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처맞는 도중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시나와 에디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고, 나는 앞으로 빠졌다.

하늘 높이 뛰어오른 러셀의 몸이 초승달을 그렸다.

아찔한 무브였다.

삼촌이 남기고 간 시청률을 갱신하고 싶다는 러셀의 마음이 담긴 크레센트.

관객들은 러셀의 모습을 보고 차마 무어라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치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삼아 높이 뛰어오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래에서 확실히 받아준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뛴 것이다.

팔을 뻗은 에디와 시나가 떨어지는 러셀의 몸을 받아냈다.

콰앙!

추돌과 함께 지면에 세 사람의 몸이 뒤엉켜 쓰러졌다. 한 발 떨어져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이내 러셀의 몸을 들었다.

“하아, 하아…….”

시나를 눕히고 그 위에 러셀의 몸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가까이 다가온 심판이 카운트를 셌다.

관객들이 다 함께 외쳤다.

쩌렁쩌렁한 소리에 귀가 아팠지만 나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1!]

[2!]

[3!]

땡땡땡!

우리의 승리를 알리는 러셀의 테마 음악이 울려 퍼졌다.

힘이 빠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나는 가까운 곳에서 관객들이 격려해주는 소리를 들었다.

“멋졌어요! 신!”

“러셀! 최고다!”

“멋진 시합 보여줘서 고마워!”

이건 또 묘한 기분이로군.

* * *

문제는 쇼가 끝난 뒤였다.

나와 시나는 괜찮은 상태였지만 마지막에 위험한 범프를 한 러셀, 그리고 에디의 무릎이 문제였다.

걸어서 들어온 나와 시나와는 달리 부축을 받았던 두 사람은 라커룸에서 검사를 받고 있었다.

나와 함께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던 바쿠가 입을 열었다.

“고생 많았다.”

“광고한 만큼의 효과는 확실히 있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야 물론이지.”

미소를 지은 바쿠는 내 등을 툭 두드렸다.

“네 사람 다 확실히 멋졌어. 하지만 중간에 네 애드립 덕에 무사히 경기가 끝날 수 있었다.”

“그런가요.”

“그래, 그게 아니었다면 에디의 무릎이 박살 났을 거다.”

“고작 그 잠깐 쉬었다고 괜찮아진 것 같지는 않은데…….”

“아니, 맞아.”

고개를 내젓는 바쿠.

“에디의 무릎은 좀 상태를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오늘 경기는 범프가 너무 강했어. 앞으로 소중히 아끼고 다뤄줘야 해.”

“확실히 그러긴 하죠.”

에디 본인도 동의(아마 했을 것이다)했지만 말이다.

“커리어 내내 무릎 때문에 고생시키기는 싫다. 거기다 여기는 산하 단체고 메인에 올라간 다음을 생각해야지.”

“……저는 여기가 가장 멋진 프로레슬링 단체라고 생각하는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를 바라보며 바쿠는 이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마 너 때문일 거야.”

“예?”

“뭘 되묻고 그러냐.”

씨익 웃은 영감이 내 머리를 툭툭 쓰다듬었다. 애 취급 하는 것 같은데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렇게 일련의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뒤이어 러셀과 에디의 상태를 확인한 닥터가 다가왔다.

“바쿠. 끝났습니다.”

“어, 그래. 좀 어때?”

“러셀은 괜찮습니다. 순간 충격이 커서 정신을 못 차린 것뿐이에요. 문제는 에디인데…….”

심각한 표정이 되는 의사.

“아무래도, ‘점프’는 좀 삼가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

“보호대도 착용하고요. 아무래도 농구를 했다 보니 무릎 상태가 그렇게 좋지만은 않아 보이네요.”

“알겠어. 할리에게 이야기하지.”

“예, 그럼.”

“……들었지. 신?”

“앞으로 에디하고 붙을 때는 조심하도록 할게요.”

“아니, 그 반대다.”

“에디의 무릎을 최대한 빨리 박살 내서 세계 최초로 기어 다니는 레슬러로 만들겠습니다.”

“……너희는 당분간 대립 없다.”

“예?”

“오늘 경기를 보면서 생각한 거다. 넌…… 아니, 신-셀은 확실히 멋진 팀이야. 하지만 그만큼 경기가 너무 격렬해.”

맞는 말이었다.

격렬하고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우리의 레슬링은, 말하자면 요즘 세대의 프로레슬링이었다.

하지만 고전적인 자이언트 계열 레슬러는 그 스피드를 따라올 수 없었다.

“이제 월말의 페이퍼뷰에서 스트리트 타임즈와 붙을 거다. 그 뒤로 챔피언으로서 방어전을 치루며 베테랑들을 붙여줄 테니까…… 거기에서 실력을 보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확실히 지금이 맞는 방향이었다.

“예, 바…….”

“바쿠! 나왔습니다!”

내가 대답하려던 순간 누군가 라커룸의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인터컴을 착용한 FD였다. 손에는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오, 그래. 어떻지?”

설마 시청률인가?

놀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직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렉이 출연했던 에피소드의 최고 시청률은 3.5퍼센트.

과연 우리의 시합은 그걸 이겨낼 정도로 강렬했을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