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50화 (50/634)

50.

신-셀과 스트리트 타임즈의 대립은 전문가와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큰 호평을 받았다.

그전까지의 대립이 전부 진지한 것이었기에 사람들은 우리의 이런 모습을 새롭다고 생각했다.

캐릭터는 확장되었고, 러셀과 나는 보다 입체적인 면을 가진 선역으로서 사람들에게 어필 됐다.

좋은 선역은 친근한 면을 포함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걸 드러낼 수 있는 최적의 상대를 만난 셈이었다.

스트리트 타임즈.

대결의 끝에는 벨트가 걸렸고, 그것을 원하는 것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상황은 더없이 우스꽝스럽게 돌아갔다.

명목상으로는 스트리트 타임즈가 페이퍼뷰에서의 대결에 앞서 먼저 심리전을 거는 것이었다.

하지만 러셀과 나는 거기에 지지 않고 맞서 싸웠다. 한 번 당했다고 넘어갈 우리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바로 그다음 주에 이어진 러셀과 몬테즈의 대결은……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두 사람은 스포츠 테이프를 양 발목에 칭칭 휘감은 채였다. 따라서 링 위를 콩콩 뛰어다녔다.

“크윽!”

“이런 제기랄!”

관객들이 기절할 정도로 웃어댔다. 나는 링 아래에서 링 바닥을 두들기며 진지하게 소리쳤다.

“러셀! 뛰어!!”

반대편에는 안젤로가 서있었다. 그 역시도 당황하고 있는 몬테즈에게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먼저 시작한 것은 저쪽.

‘상대 선수의 몸에 스포츠 테이핑을 해서는 안 된다.’는 룰이 없기에 심판은 당황한 눈치였다.

콩콩 뛰어다니며 서로를 공격하고, 어떻게든 테이핑을 풀기 위해서 노력하는 두 사람.

바로 그때, 몬테즈의 강력한 숄더 어택이 러셀을 쓰러뜨렸다.

커버가 이어졌고, 당황한 나는 카운트를 세려는 심판의 다리를 잡아당겨 그것을 막았다.

“신! 그건 반칙……!”

“에이이……!”

될 대로 되라.

나는 들고 있던 스포츠 테이프를 심판의 발목에도 칭칭 감았다. 그 모습을 본 관객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 왁자지껄 웃었다.

심판이 저항했지만, 옆에서 다가온 안젤로가 그것을 도왔다.

“뭐, 뭐야?!”

“그냥 해!”

내가 놀라 돌아보자 엄청난 속도로 테이프를 감는 안젤로.

……세 사람이 링 위를 콩콩 거리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시합으로서 성립되지 않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재미가 있는 것이기도 했다.

“오, 오지 마요!”

당황한 심판이 소리쳤고, 이내 세 사람이 뒤엉키며 넘어졌다.

다리 여섯…… 아니, 세 개가 이리저리 섞인 가운데 러셀이 벌떡 일어나 관절기를 걸었다.

“끄아아아아아악!!”

하지만 그건 심판이었다!

“야야, 러셀! 심판! 심판!”

“어?!”

당황한 러셀이 돌아보고 그 위로 몬테즈의 공격이 이어졌다. 눈썹을 찡그린 나는 링 위로 올라가 몬테즈를 공격하려고 들었다.

하지만 안젤로에게 붙잡혀 나도 묶이고 말았다. 기절한 심판을 사이에 두고 우리 셋은 콩콩 뛰어다니며 상대를 붙잡으려고 했다.

위로 올라와 우리를 조롱하던 안젤로 역시도 얼마 가지 못해 스포츠 테이핑에 발이 묶였다.

콩! 콩! 콩! 콩!

평균 키 185cm가 넘는 우락부락한 남자 넷이 링 위를 마구 뛰어다녔다. 사람들은 거의 웃다 죽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분위기가 적당히 무르익을 즈음, 링 아래로 굴러서 내려간 나는 대기하고 있던 구급 요원에게서 가위를 받아들었다.

“야, 그거 내놔!”

“시, 신! 나부터 해줘!”

추격전이 벌어졌다.

평균 체중 95kg의 남자 넷이 이제는 링 아래를 콩콩 뛰어다녔다. 사람들은 가위를 손에 들고 있는 날 보고는 크게 환호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결국 먼저 스포츠 테이핑을 자른 나는 발이 묶인 몬테즈와 안젤로를 쉽게 제압했다.

경기는 가위를 건네받아 테이핑을 자른 러셀이 몬테즈에게 샤프 슈터를 걸었다.

테이핑으로 인해 빠져나가지도 못하게 된 몬테즈는 버티지 못하고 신나게 탭을 쳐댔다.

먼저 링 위에서 빠져나간 스트리트 타임즈가 콩콩 뛰어서 도망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였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아이디어 회의를 마치고 잠시 쉬고 있던 중 바쿠가 찾아왔다.

“이런 게 왔다.”

“팬레터네요?”

평소에는 다발로 묶어서 줬는데 오늘은 하나였다. 내가 의아한 기분을 느끼고 있자니 바쿠가 편지 봉투 다발을 따로 또 주었다.

“먼저 준 편지는 내용물이 좀 특별해서 말이다. 읽어봐라.”

“……굳이 그렇게 말씀 안 하셔도 전부 읽고 있는데 말이죠.”

나는 쓰게 웃었다.

위험한 물건이 들어있을 수도 있어 이런 편지는 항상 체크가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바쿠가 내용을 아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평소에는 이처럼 편지를 따로 빼서 주지는 않았는데.’

나는 의아한 기분을 느끼며 먼저 받은 편지를 꺼냈다.

두 장이었다.

그중 하나는 그림이었다. 크레파스로 링 위를 뛰어다니는 네 남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편지.

[신 선수에게.

먼저, 동봉된 그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아들인 윌리가 요새 GCW를 시청하는 것에 푹 빠져 있어요. 힘든 투병 중에 아이가 그렇게 밝게 웃는 모습을 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림을 그린 소년의 어머니였다. 나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먹먹한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좀 신경이 쓰여서 알아봤는데, 소아암 환자라더군. 다섯 살인데 글을 못 써서 어머니가 대신 편지의 내용을 적은 것이고. 러셀에게도 한 장 왔다. 전해줘야지.”

“……그렇군요.”

“사실, 너희의 코미디 대립을 두고 처음에는 좀 의심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바쿠는 벽에 기대어 섰다.

라커룸의 공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편지를 왔던 그대로 접어 다시 봉투에 넣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망가지는 게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그럴 수 있습니다.”

내가 봐도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웃기기는 했다.

“하지만 역시 넌 너야. 아주 멋진 일을 해줬어.”

“러셀과 스트리트 타임즈 선배들이 많이 도와줬죠.”

“어쨌든, 그래서 말인데.”

바쿠가 고개를 돌렸다.

“챔피언이 되고 나면 이 꼬마를 한번 만나러 가는 게 어떠냐.”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죠?”

“본사에서 하고 싶어 하는 대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보여주는 기업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거지.”

“신문사에서 나와서 사진 촬영하고 인터뷰도 하고요?”

“비즈니스니까.”

“좋아요.”

“그럼 준비해두마.”

싱긋 웃은 바쿠가 돌아섰다.

라커룸이 고요해졌고, 나는 편지를 다시 꺼내 그림을 확인했다.

멋진 일이다.

내 직업이,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고통을 겪고 있는 소년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니.

그렇기에 만나서 용기를 줄 수 있다면 나도 그러고 싶었다.

거기에…… 비즈니스적으로 봤을 때도 바쿠의 제안은 괜찮았다.

비즈니스.

소아암 환자인 소년과 프로레슬러의 만남은 돈이 될 수 있다.

‘내가 참 싫어지는군.’

하지만 업계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프로레슬러는 어쨌든 수익을 올리기 위해 대중의 관심을 끌어야 하니까.

대체 무엇을 이유로 소년과의 만남이 돈이 되느냐.

멀지 않은 미래, 숀 시나의 시대에 그것이 WWF의 이미지를 세탁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이전과 전혀 다른 시청자들이 유입되었다.

바로 가족 단위 시청자들이었다.

이전의 ‘태도 불량 시대’가 노린 시청자들은 블루 컬러나 자극적인 요소를 좋아하는 청년들이었다.

하지만 시나의 시대는 달랐다.

그리고 그것이 유례가 없을 정도의 대박을 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일명 ‘전체 이용가 시대’였다.

마치 과거 캡틴 로건의 ‘황금 시대’를 새로이 재현한 듯했다.

그때의 만화적인 과장은 없었지만, 시나는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전했다.

바로 그것이 ‘Never Give Up’이었다. 삶에 찌들어 현실에 안주한 이들에게 전하는 시나의 말.

이전까지 과도기를 겪었던 회사는 활로를 되찾았고, 크게 성장해 엄청난 흑자를 기록했다.

그 중심에서 팬들을 만나고 아픈 아이들에게 희망을 준 숀 시나라는 아이콘의 존재 덕이었다.

‘그러고 보니 시나가 그랬지.’

인터뷰에서였다.

WWF가 이런 자선 활동을 비즈니스로 사용한다는 건 알음알음 있는 비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나는 한 인터뷰에서 직접 비판의 말을 들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내 유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도 절 만난 아이들이 암과 싸울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전 계속 비즈니스를 하겠습니다.]

멋진 대답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 뒤로 그 신문기자는 어마어마한 욕을 먹었지.’

난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시나의 말을 생각하자 이 일에 대한 긍지가 다시 샘솟았다.

내가 만들어낸 쇼와 스토리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었다.

‘마무리를 지어보자고.’

이 대립이 끝난 뒤에는 모두의 상황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도록.

* * *

패배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 위상이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대립은, 끝났을 때 상대방과 자신의 위상을 함께 끌어올린 상태에서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번 대립이 그 좋은 예시였다.

3월 말 벌어진 페이퍼뷰.

GCW 테이크다운.

러셀의 크레센트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안젤로에게 꽂혔다.

콰앙!

이어진 커버.

열광적으로 두 팀 모두를 응원한 관객들이 함께 카운트를 셌다.

[1! 2! 3!]

땡땡땡!

날카롭게 공이 울렸다.

나는 눈물이 나려는 것을 꾹 참아내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내 생애 첫 챔피언 벨트였다.

감격을 참지 못하고 달려든 러셀이 날 껴안았다. 우리는 러셀의 음악 아래에서 벨트를 건네받고 세레모니를 진행했다.

열화와 같은 환호 속.

내가 링 포스트 위로 올라가자 관객들이 힘차게 박수를 쳤다.

우리는 챔피언이 되었다.

서로 대립하던 때부터, 와이엇 패밀리라는 공공의 적을 상대로 협력하며 팀워크를 키워왔다.

그리고 그렉 하트라는 거물에게 당하고 호적수들과 맞서며 이곳까지 올라와 결국에는 태그 팀 챔피언을 따냈다.

스트리트 타임즈와의 대립은 내내 관객들의 배꼽을 빼며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끝에 코미디와 진지함이 적절하게 뒤섞인 완벽한 경기를 펼치며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었다.

우리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원래부터 사랑을 받고 있던 스트리트 타임즈를 누르고 챔피언으로서 인정을 받았다.

거기다, 이번 대립은 그들에게도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기존 기믹을 확장해 ‘승리를 훔친다’는 신선한 캐릭터를 만들었고, 멋진 경기를 보인 것에 대한 관객들의 존경심도 얻었다.

세레모니를 마친 나와 러셀이 링 아래로 내려오자 정신을 차린 스트리트 타임즈가 서있었다.

한순간 감도는 긴장감.

두 사람이 손을 내밀었다.

서로를 인정하며 끝나는 대립. 관객들이 엄청난 챈트를 보냈다.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놀란 얼굴로 주변을 살피는 러셀과 나.

하지만 이내 그 성원에 응하듯 스트리트 타임즈와 악수를 했다.

태그 팀 챔피언의 인계는 아주 멋지게 이루어졌다.

우리는 먼저 퇴장한 두 사람을 뒤로한 채 좀 더 세레모니를 즐긴 후 백스테이지로 돌아왔다.

잠깐의 광고 타임.

고릴라 포지션에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우리의 챔피언 등극을 축하해주었다.

“축하한다. 애송이들.”

“멋진 경기였어.”

할리와 바쿠.

“신, 여기 수건이요.”

“러셀도 물 좀 드세요.”

직원들.

“나중에 한 판 더 하자고.”

“잘 어울리는데.”

스트리트 타임즈 선배들.

축하해준 모든 이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러셀과 나는 다음 시합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었다.

라커룸까지 돌아오는 내내 우리는 딱히 말이 없었다.

경기로 인해 체력이 방전된 탓도 있었지만, 이 감정을 아껴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라커룸 안.

기다리고 있던 다른 선수들의 축하를 거쳐 샤워실로 들어온 나는 러셀과 잠시 눈이 마주쳤다.

피식 웃은 그가 입을 열었다.

“벨트 안 두고 와?”

“그러는 너는.”

아직 경기복을 벗기 전.

러셀은 허리에 벨트를 찼고, 나는 어깨에 들쳐 멘 채였다.

묵직한 감각에 잠시 몸이 떨렸다. 나는 김이 서린 거울을 손으로 슥슥 닦고 내 모습을 확인했다.

엉망진창이 된 남자.

상의는 벗어던졌고, 주먹에 감은 테이핑은 너덜너덜했다.

하지만 어깨에 빛나고 있는 황금색의 벨트는 정말로 멋졌다.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디는 법을 배우라고 했던가.’

그처럼 나는 이제 도전자가 아닌 챔피언으로서 다른 선수들을 이끌어주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하지만 걱정은 없었다.

나, 그리고 러셀도 더해서.

우리 두 사람은 GCW 역사상 최고의 팬-페이보릿Fan Favorite 태그 팀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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