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51화 (51/634)

51.

하얀 배경 앞에 선 나와 러셀이 각자의 챔피언 벨트를 들었다.

아까부터 꼬치꼬치 상황을 지시하던 사진사가 그제야 만족했다.

“좋습니다! 찍을게요!”

찰칵, 찰칵.

플래시가 연달아 터졌고 나는 턱을 들고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지금 우리는 태그 팀 챔피언으로서 프로필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렇게 찍힌 사진은 먼저 기록 보관용으로 쓰일 예정이었다.

역사를 기록하는 건 비즈니스에 있어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수십 대에 걸쳐 내려온 벨트가 가지는 상징성은 어마어마했다.

현재 가장 오래된 WWF 월드 챔피언십 같은 경우에는 1960년대에 개설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이 GCW 태그팀 챔피언 역시도 10년 이상의 역사를 가졌다.

물론, 단순히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만 이렇게 거창한 프로필 사진을 찍는 건 아니었다.

프로레슬링에 대해 호의적인 신문 기자, 코너가 러셀과 나의 특집 기사를 써주기로 약속했다.

‘참 좋은 인맥을 얻었어.’

그가 팀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지역 신문은 조지아 시민의 90퍼센트 이상이 구독하고 있었다.

말인즉슨, 거기에 기사가 실리면 홍보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최대한 내 캐릭터를 드러내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벨트가 마치 원래부터 자신의 소유였다는 듯 껄렁하게 쥐었다.

옆에 있는 러셀과 자연히 대비가 되어 팀의 개성이 드러났다.

‘이게 맞는 거지.’

물론, 생애 처음 손에 넣은 벨트였기에 감회가 남다르기는 했다.

하지만 이 태그팀 벨트는 어디까지나 과정의 일부에 불과하다.

나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처럼 벨트를 가볍게 여기는 것도 모순되지 않았다.

옆에 선 파트너와 달리 말이다.

사진을 한참동안 찍었지만 러셀의 포즈는 그다지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좋냐?”

“너도 좋으면서 뭘 그래.”

“뭐, 이쯤이야.”

가벼운 농담을 건네자 녀석은 눈을 반짝이며 웃어 보였다.

“나는 너 같은 녀석과 함께 챔피언이 될 수 있어서 좋은데.”

“…….”

와, 순간 주먹이 나갈 뻔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낀 나는 러셀을 잠시 째려보았다.

본디 사내놈들끼리는 이런 오그라드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서로 죽이고 싶어지니까.

……나도 약간은 러셀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긴 했지만.

그 감정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서로가 싫어지는 복잡한 무언가가 남자들 사이에는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러셀은 그걸 입 밖으로 낼 정도로 솔직한 녀석이었다.

그렇기에 나도 조금은 거기에 맞춰줘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네 솜씨는 믿어.”

“앞선 선배들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을 정도의 챔피언이 되자고.”

“아니지. 반대로 먹칠을 해드리는 게 좋은 거지. 안 그래?”

“……?”

“기존의 것들을 부수고 그 위에 우리의 궁전을 짓는 거야.”

“재미있는 발언인데.”

“그게 나아, 러셀. 우리 대에서 새로운 기준을 잡아두는 거지.”

“그걸 누가 증명해주는데?”

“돈.”

“…….”

“아니, 정말로.”

나는 싱긋 웃어 보였다.

뭐가 어찌되었든 이 비즈니스의 본질은 쇼이며,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다.

그러므로 돈이 가장 중요한 지표일 수밖에 없잖은가.

그리고 그에 대한 아이디어라면 내게는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오전.

병원 안으로 들어서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를 돌아보았다.

눈에 띄는 조합이기는 했다.

나와 러셀, 기사를 쓰기 위해 함께 온 코너와 카메라맨까지.

특히나 러셀과 나는 태그 팀 챔피언 벨트를 어깨에 멘 채였다.

그러니 사람들의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인종에 관계없이 모두가 우리를 주목하는 상황.

용기를 낸 흑인 소년 하나가 조심스럽게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저, 저기 혹시…….”

러셀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허리를 숙여 눈을 마주쳤다.

순박한 눈동자가 이내 확신으로 물들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소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신이라고 한다.”

“아, 저, 저는 티모시…….”

“반가워. 러셀이야.”

“와! 경기 정말로 멋졌어요!”

그것을 기점으로 우리에 대해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숫자에 조금 놀라고 말았다.

인기를 실감한다고 했던가.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해 시청률을 올리려 했던 노력 덕분에, 적어도 조지아 주 내의 사람들은 꽉 사로잡은 것 같았다.

각기 이유는 다르겠지만 모두들 우리를 좋아해주는 게 느껴졌다.

“신 선수!”

“러셀!”

“사, 사인 좀!”

“잘생겼어요!”

“둘이 결혼해주세요!”

마지막은 뭐야.

의아해 돌아보자 동그란 안경을 쓴 여자애가 우리를 보며 얼굴을 붉히고 있는 게 보였다.

‘그래도 일단 팬인 것 같군.’

쓰게 웃은 나는 사람들이 내미는 종이와 펜을 받아 사인을 해주었다. 러셀도 마찬가지였다.

뒤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코너는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이었다.

“정말 엄청난 인기인데요.”

“사람 일이란 게 신기하네요. 솔직히 저도 깜짝 놀랐어요.”

이번 생에서 나는 대부분을 회사 안에서 지냈으니 말이다.

때문에 사람들의 반응이 이 정도일 줄은 정말 예상 못했다.

러셀과 나는 그렇게 눈이 돌아갈 정도의 인파에 휩쓸렸다.

사인에 악수와 사진까지. 가능한 최고의 팬 서비스를 해주었다.

그러자니 시선이 느껴졌다.

“크흠…….”

나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병원 간호사들이었다.

갑작스레 병원 로비가 시끄러워져 나온 간호사들은 우리를 보고는 불편한 듯 눈썹을 찡그렸다.

그럴 만했다. 이곳은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이니까. 로비가 소란스러워야 불편하겠지.

더 큰 문제는, 지금 이게 우리가 자초한 상황이라는 점이었다.

우리는 소아암 환자인 윌리와 그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 왔다.

병원 측에서는 따로 샛길로 들어오시라 제안했지만, 누가 우리를 알아볼까 싶어서 그냥 넘겼는데.

‘하긴, 벨트를 든 덩치 큰 남자 두 명이 들어오는데 못 알아볼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반응이 머릿속에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이쪽은 흑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였다. 그런 만큼 우리 앞에 모여 있는 사람 대부분은 흑인이었다.

하지만 다들 러셀이나 내 피부색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왠지 탑에 오른다는 목표를 이뤄가는 듯해 마음이 뿌듯했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간호사들이 보내는 사나운 시선은 무서웠지만.

“저도 사인해주세요!”

“저, 사진 한 장만 같이……!”

상황은 전혀 나아지질 않았다.

결국 우리 모습을 보다 못한 간호사 하나가 뚜벅뚜벅 다가왔다.

갈색 피부의 여성이었다.

커다랗고 맑은 눈망울에 뚜렷한 이목구비.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은 하나로 묶어서 고정해두었다.

‘혼혈인가?’

순간 좀 실례되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그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들 좀 비켜주세요!”

그 말에 마치 홍해처럼 갈라지는 사람들. 한숨을 내쉰 간호사가 이내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에보니 수라고 합니다.”

“……신입니다.”

“일단 소란스러우니 자리를 좀 피해서 이야기를 나누시죠.”

곤란해하던 차, 멋지게 등장한 간호사에게 구출(?)되었다.

우리는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소아암 병동으로 이어진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때까지도 에보니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나는 쓰게 웃으며 일단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오기로 하셨던 프로레슬러 두 분 맞으시죠?”

“예, 여기 두 분은 오늘 촬영을 도와주실 코너 씨하고…….”

“이야기는 들었으니 설명 안 해주셔도 괜찮습니다.”

에보니가 차갑게 대꾸했다.

“그보다 유의사항부터 말씀드릴게요. 아이들 면역력이 약해서 들어가시기 전에 소독을 진행할 거고요. 아이들한테 뭔가 전해주시려고 가져오셨다고 들었는데요.”

“아, 뭐. 과자랑 저희 티셔츠 같은 거 몇 벌 가져왔죠.”

“……아이들에게 아주 좋은 선물이 되겠네요. 안전하다면요.”

에보니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거 완전히 경계하고 있군.’

이해는 갔다.

이렇게 기자들까지 대동하고 온 우리의 모습이 에보니에게는 선거철의 정치인들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그건 엄밀히 말해서 틀린 생각이었다. 우리는 그런 기회주의자들과는 다르게 아이들의 요청으로 이곳에 온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직후 증명되었다.

“……?”

눈이 휘둥그레지는 에보니.

외부와 격리된 소아암 병동.

공간을 구분 짓는 유리 칸막이 너머에 다닥다닥 달라붙어있는 소년소녀들의 모습이 보였다.

똘망똘망한 눈망울들.

“모두 저희 팬들이네요.”

“예에…….”

“선수라면 성원에 응답해야죠.”

그렇게 이야기한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일부러 팔을 쫙 펼치며 과장스럽게 행동했다.

아이들은 마치 만화 속의 슈퍼히어로를 만난 것처럼 유리를 손으로 마구 두들기며 좋아했다.

러셀 역시도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아이들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우리를 기다리던 간호사들도 순간 황당해할 만큼 병동의 아이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내주었다.

러셀이 뿌듯하다는 듯 웃었다.

“나쁘지 않은데.”

아이들은 모두가 평범했다.

단지 모두가 털실로 만든 모자를 하나씩 쓰고 있을 뿐이었다.

‘소아암이라고 했지.’

항암 치료를 받으면 약의 독기에 머리카락이 빠진다. 나 역시도 어머니 때 겪어본 일이었다.

그러지 않고 싶어도 순간 심장이 저릿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마음껏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병마와 싸우고 있다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래도 미력하게나마 이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행은 간호사들의 안내를 받아 일단 몸을 깨끗이 소독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놀이방 같은 곳에 모여 있는 아이들의 숫자는 대략 열 명 정도.

“지, 진짜로 왔어…….”

“정말 신이랑 러셀이야?”

“키 크다아.”

열 살도 먹지 않은 듯한 어린아이들이 우리를 보며 숙덕거렸다.

유리 칸막이를 사이에 뒀을 때는 잔뜩 신났더니, 직접 대면하자 또 부끄러워진 모양이었다.

자칫 어색해질 수 있는 상황을 먼저 풀어낸 것은 바로 러셀이었다.

“……한번 만져볼래?”

앞으로 나선 그가 챔피언 벨트를 내밀었다. 머뭇거리던 아이들이 다가와 그 위로 손을 올렸다.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풀어졌다.

“이거 진짜 금이에요?”

“신이랑 이제 안 싸워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커져요?”

아이들의 순수한 질문에 웃으며 대답해주는 러셀. 사진사가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그 뒤에 얌전히 서있던 나는 뒤따라 안으로 들어온 간호사, 에보니를 돌아보았다.

“윌리가 누구죠?”

“저쪽에 있는 아이에요.”

에보니는 러셀과 막 악수를 하고 있는 흑인 꼬마를 가리켰다.

볼이 빨개져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가까이 다가갔다. 날 올려다본 윌리가 조금 놀랐다.

“시, 신 선수!”

좀 무서워하는 건가?

그럴 만도 했다. 아이들이 보기에 내 캐릭터는 조금 거칠겠지.

그렇기에 나는 윌리와 친구들을 안심시키고자 러셀 옆에 앉아 가볍게 어깨에 팔을 둘렀다.

“네 편지를 받고 이 녀석이 얼마나 감동했는지 말해줄까?”

“와! 정말요?!”

“그럼, 울기까지 했는걸.”

“……야, 신.”

러셀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반대편의 윌리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 * *

알고 봤더니, 나와 러셀의 듀오는 어린아이들에게서 특히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모양이었다.

알기 쉬운 우정 각본이 아이들의 마음에 불을 붙인 것이다.

거기다 와이엇 패밀리 같은 공포스러운 악역에 맞서 싸우는 이미지까지 구축해뒀으니 말이다.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어! 너희들은 빌어먹을 애들의 빌어먹을 코 묻은 돈을 뺏어먹고 있다고! 천재적이야! 크하하하!”

……바쿠는 나쁜 말을 했다.

하지만 비즈니스란 그런 법.

GCW에서는 우리의 태그 팀 티셔츠를 새로 발매함으로써 시청자들이 보이는 반응에 대응했다.

러셀과 나는 만인의 사랑을 받는 선역 태그 팀 챔피언으로 당분간 순항이 예정되어 있었다.

GCW에서도 우리의 팀이 인기를 끈다는 것을 알고 장기간의 챔피언 집권을 보장할 것이다.

물론, 전생에 수많은 경험을 해온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알고 있었다.

GCW 주간 쇼 당일.

태그 팀 챔피언 등극을 축하하기 위해 링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은 나는 벨트를 들고 소리쳤다.

“내가 조지아의 챔피언이야! 그 말인즉슨 세계에서 최고라는 거지!”

간단히 말해,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것이다. 성원에 보답하는 간단하면서도 최고의 방법이었다.

사람들이 조지아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두 사람은 조지아를 대표하는 챔피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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