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관객석에서 조지아의 주州기를 든 사람들이 환호를 보내왔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조지아 사람들…… 다시 말해 이 경기장 안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환호를 보냈다.
지역뽕(?) 작전은 잘 먹혔다.
나는 챔피언 벨트에 새겨진 조지아 주의 지도를 가지고 멋들어진 링 세그먼트를 선보였다.
국가와 소속된 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미국인들의 습성을 이용한 것이다.
일명, ‘지역구 챔피언’ 전략.
80년대에 자주 쓰였던 방법이었다. 그게 돌고 돌아 우리 시대에 양념으로서 활용되고 있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환상적이었다.
[Georgia! Georgia! Georgia! Georgia! Georgia! Georgia!]
온갖 마초들이 모여 조지아 주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소위 말하는 ‘레드넥’ 계층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날 그렇게 욕해대던 놈들이 말이야.’
GCW의 시청자 중 극히 소수라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 레드넥들의 인종 차별은 보통이 아니었다.
갑자기 찾아온 외부인, 거기다 동양인인 나를 모두가 탐탁찮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190에 육박하는 덩치인 내게 덤벼들 용기는 없는지 야유를 보내는 정도에 그쳤지만.
그런 놈들이 이제는 캐나다 놈과 아시아 놈(나는 미국인이지만)에게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뭐, 나름대로 ‘명예 조지아인’ 정도로 받아들여진 모양이군.’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링 위에 올라가 마이크를 쥐고 소리쳤다.
“조지아! 준비됐나!”
사람들이 환호성을 보냈다.
좀 유치하지만 뭐 어때.
사람들이 좋아하면 됐지.
“여자도 멋져. 차도 멋져. 거기 형씨들, 세상에서 가장 멋진 트럭을 몰고 있다는 게 사실인가?”
깃발을 든 레드넥이 환호했다.
맥주를 마시고, 털이 난 배를 까며 놈들이 내 이름을 연호했다.
나는 플레이트에 새겨진 지도를 가리키며 그들과 서로 교감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우리의 뒤를 이어 나올 태그 팀의 음악이 경기장 내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것은 뒤이은 관객들의 반응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Boooooooooooooooooo!!!]
빰~빠밤빰~!!
우습게도 그 뒤를 이어 나온 것은 얼마 전 GCW의 로스터에 합류한 ‘애덤’의 태그 팀이었다.
그 애덤 맞다.
전생에 나를 속였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속았던 애덤 말이다.
녀석이 같은 기수로 합격한 자신의 팀원과 함께 나와서 캐나다 깃발을 흔들었다. 이름이 크리…… 뭐라고 했는데. 크리링이었던가.
조지아의 깃발을 손에 쥔 사람들이 온힘을 다해 야유를 보냈다.
애덤은 캐나다인이다. 옆의 크리링도 캐나다인이라고 하고.
그러므로 미국인들이 맹렬히 무시하는 대상이라는 말이다.
……사실 러셀도 캐나다 사람이기는 한데. 이들이 느끼기에는 조지아 사람이니, 뭐 괜찮나.
링 위로 올라온 애덤이 개인적인 증오를 담아 날 노려보았다.
나는 피식 웃었다.
경기는 1분 만에 끝났다.
* * *
그렇게 경기가 끝난 뒤.
“야! 준, 이 새끼야!!”
애덤이 자신의 화려한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내게 다가왔다.
락커룸에서 ‘잠시’ 혼자 옷을 갈아입고 있던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애덤을 올려다보았다.
어, 녀석이 여기에 합류한 계기가 좀 웃긴데. 스카우터가 우연히 발견해서 영입했다는 듯했다.
하지만 바깥에서는 나폴레옹마냥 날뛰던 녀석도 이곳에서는 한낯 신입, 자버에 불과했다.
“왔어, 애덤?”
“너 이 새끼야! 내가 한 번만 주도권 달라니까 그걸 무시하냐!”
“만약 줬으면 관객 반응 완전히 죽었을걸. 그리고 내가 너 따위한테 주도권 주는 게 말이나 되냐.”
나는 아직도 전생에 내게 설사약이 든 샌드위치를 먹였던 놈의 횡포를 잊지 못했다.
그건 내 실력이 두려워서였을 것이고, 나는 이제 그것을 완벽하게 돌려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녀석은 아직 신입, 자버고.
지금의 나는 단체의 흥행을 주도하는 귀염둥이다. 비교가 안 된다.
하지만 애덤은 아직도 9개월 전의 자신과 나의 처지를 생각하는지 화를 내고 있었다.
“야, 진짜 이럴 거야!!”
녀석이 내 멱살을 붙잡았다.
얼결에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깜짝 놀라 애덤을 바라보았다.
“네가 ‘운 좋게’ 먼저 왔으면 나 좀 띄워주고 하는 게 이치지!”
“어, 애덤?”
“왜, 내가 화내니 이제 상황이 느껴지냐? 네가 진짜로 하면 나한테 뭐 될 것 같아?”
“아니, 음.”
“야. 죽기 싫으면 말해. 윗선에 잘 말해서 나를 띄우라고 하란 말이야. 알겠어?”
이게 프로레슬링계의 정치 싸움이라면 되게 편협한 건데.
잠시 그렇게 생각한 나는 애덤의 뒤쪽을 쿡쿡 가리켰다.
뒤를 돌아본 녀석이 굳어졌다.
아까 ‘잠시’ 혼자라고 말했다.
락커룸에 함께 있던 선배들은 모두 내가 엉겁결에 말했던 ‘다리가 좀 아픈데.’라는 말을 듣고 다 같이 파스를 가지러 갔다.
그리고 돌아왔다.
막 문을 열고 들어온 선배들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우리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셰무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화가 났다는 표시였다.
와이엇은 침묵했지만 금방이라도 자기 손에 들고 있는 랜턴을 집어던질 기세였다.
그리고 바비는 근육을 불끈거렸고, 시나, 너는 왜 같이 근육 배틀을 벌이고 있는지 모르겠군.
마지막으로 바쿠.
“……바비.”
그가 바비의 어깨를 툭 잡았다.
“락커룸을 비워주겠다. 5분. 누가 이 락커룸의 제왕인지 확실하게 저놈에게 가르쳐줘.”
설마 그 제왕이 저는 아니겠죠.
“예, 바쿠.”
고개를 끄덕인 바비와 선배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설마 폭력을 쓸까 싶었던 나는…….
“쿠허억!!”
와지끈! 쾅!
얻어터지기 시작하는 애덤의 명복을 빌며 옆으로 슥 빠졌다.
“이 새끼! 어디 우리 보물을!”
“죽어! 죽어!! 어?! 안 죽어?!”
“야! 야! 막아?! 막으면 손목 부러져! 안 막으면 갈비 부러져!”
“꺄아아아아악!!”
애덤의 비명이 이어졌다.
잠시 명복을 빌어주자.
* * *
애덤이 죽고(?) 며칠 뒤.
사무실에 불려간 나와 러셀을 앞에 둔 바쿠가 상황을 전했다.
“모두가 같은 결론이 나왔다.”
“모두라면…….”
“할리나 나나. 팀장들.”
“무슨 결론이죠?”
“너희 태그 팀은 최대한 길게 뽑아갈 생각이다. 챔피언으로.”
“그거 잘 됐네요.”
러셀이 미소를 지었다.
까지 않은 호두 ‘하나’를 손가락에 쥔 바쿠가 그것을 우두득 깼다.
……저걸 저렇게 하는 인간은 바쿠 이외에 없을 거다.
“왜인 것 같으냐? 신.”
“……어, 아무래도 괴물 같은 손가락 힘을 타고 난 게.”
“뭐?”
“아, 아니. 아닙니다.”
엄청난 힘이다.
며칠 전에 바쿠마저 흥분했으면 애덤의 호두 또한 저렇게 됐겠지.
잠시 어안이 벙벙해져 있던 나는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
“티셔츠 판매량이 좋아서요.”
“바로 그거야!!”
바쿠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너희는 돈이 되고 있어! GCW를 돈방석에 앉게 해주고 있다고! 그야말로 역사상 최고의……!”
“그게 왜일까요?”
“어?”
“왜인 것 같으십니까.”
역으로 던진 내 질문에 바쿠가 잠시 침묵했다.
“……사람들이 많이 사서?”
“‘왜’ 많이 살까요.”
“그거야…….”
“팬이 늘어났다는 건가?”
“바로 그거지.”
질문에 가까운 러셀의 대답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한 이유였다.
나와 러셀의 듀오가 점점 새로운 팬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즉, 내 조지아 지역 뽕 세그먼트가 통했다는 말이고.
지금이 2003년이라 통계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레드넥들이 많이 사줬을 게 분명했다.
“농사지으면서 입겠죠.”
“호오, 확실히 요새 너희 환호하는 사람들 중에 목소리 굵은 사람들이 꽤 많아지긴 했다만.”
“동양인이랑 캐나다인이 이렇게 인기가 좋은 경우는 드물죠?”
“그럴 거다.”
고개를 끄덕이는 바쿠.
어쨌든, 회사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대충 이해했다.
“그럼 이번에 대립하는 건 애덤하고 크리링인가 하는 그 친굽니까?”
“……크리스다.”
“그쪽 신경 안 쓰고 대립 진행해도 되면 좀 더 팬을 끌어들일 아이디어가 있긴 한데요.”
“오오, 뭐냐!”
“뭔데, 신?”
내가 그동안 해온 일을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 나를 재촉했다.
하지만 나는 쉽사리 말하지 못하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사실, 지난번 병원에서 ‘둘이 결혼해주세요!’라는 소녀 팬의 외침을 듣고 생각한 건데.
……아무리 돈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런 짓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그럼에 프로레슬러로서 이런 쪽으로 상품성을 증명하는 건 또 나름 영광스러운 일이라.
“뭔데, 신.”
아니 근데 그 상대가 러셀이니 뭔가 더 기분이 나쁠 것 같기도.
“……러셀.”
“응?”
“너 호모 아니지?”
“호모 맞지. 너도 그렇잖아.”
“……?”
“우리는 모두 호모 사피엔스야.”
이 호모 같은 놈이…….
* * *
어쨌든, 그래서 내가 낸 아이디어는 또 빌어먹게도 통과가 됐다.
특히나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여성 작가들이 내 아이디어를 듣자마자 이해하고 각본을 짜주었다.
그 하루의 각본을 위해 그녀들은 삼일 밤낮을 토론했고 결론을 내서 우리에게 가지고 왔다.
그래서 그 각본이 뭐냐.
브로맨스다.
“러셀!”
……아니, 진짜로.
브라더 로맨스의 준말인지 뭔지.
어쨌든 그런 장르에 대한 수요가 우리 업계에도 있기는 했다.
실제로 미래에도 잘생긴 선수 두 사람을 ‘Ambrollins’라는 태그로 묶어 전문적으로 소비하는 여성 팬층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다행히, 러셀과 나는 둘 다 준수하게 생긴 편이었다.
여성들이 거부감을 가질 정도로 비대한 근육질이 아니라 적절하게 크고, 프로레슬러로서는 가는 체형이 오히려 그쪽 여성들이 원하는 남성상과 닮았다.
나는 쓰러진 러셀을 품에 안고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우리를 본 여성 관객들이 꺄아아아악! 하고 비명을 질러댔다.
저들을 기쁘게 해 돈을 벌 수 있다면 난 뭐든 할 수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거부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야기는 대충 이러했다.
1. 경기 전 백스테이지 프로모로 러셀과 내가 서로를 위해 공격을 맞아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2. 그날 붙게 된 와이엇 패밀리의 두 사람이 비겁한 방법으로 우리에게서 승리를 가져간다.
3. 나를 대신해 체어샷에 맞은 러셀을 부여안고 내가 러셀과 미묘하게 질척한 우정을 과시한다.
‘……정말로 이런 뻔히 보이는 각본으로 괜찮은 것인가?’
들어오기 전에 ‘너 없으면 나 죽어.’ 아니면 ‘나 미치는 꼴 보고 싶어?’ 같은 뉘앙스의 말을 하기는 했는데.
정말로 이걸로 괜찮은 건가!
……싶었는데, 잘됐다.
나는 관객들의 반응을 느꼈다.
마치 링 위의 햄릿처럼 러셀의 긴 머리를 넘겨주었다. 여자 관객들이 완전 미쳐 발광했다.
아, 참고로 말하자면 남자 관객들은 다들 ‘저게 뭔 짓거리래.’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 하나.
우리의 각본을 짜준 여성 작가, ‘조안나 A. 허드슨’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포인트를 짚어주었다.
[남자 관객들이 게이 포르노 같다고 느끼기 시작하는 부분에서 정확하게 빠져나오셔야 합니다.]
대충 이해했다.
러셀의 가슴은 만져도 찌찌에 손가락을 대고 빙글 돌리진 말라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러셀을 품에 안고 링을 빠져나왔다.
여자 관객들의 환호는 엄청났다.
하지만 나와 러셀은 서로에 대한 역겨움을 참느라 고역이었다.
* * *
그리고 며칠 뒤.
우리의 영상은 편집되어 인터넷에 올라갔으며 음지에서 활동하던 분들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티셔츠 매상이 네 배로 뛰었다.
그것을 알자마자 바쿠는 방금까지 뒤적거리고 있던 전화번호부를 가로로 쫙 찢으며 다음과 같이 외쳤다.
“제기랄! 믿고 있었다고! 신셀! 너희는 킹 오브 자본주의야! 지금 빛나고 있다고! 이런 제기랄!!”
“…….”
“…….”
하지만 러셀과 나 사이에는 참을 수 없는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서로 선을 넘으면 되게 어색해질 것 같은 불편한 무언가가.
그럼에도 그건 돈이 되었다.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예를 들자면.
“한 달 치 각본을 짜왔습니다.”
“당장 윗선에 보고하지!”
우리를 흐뭇한 눈으로 지켜보기 시작한 여성 작가들이라던가.
제기랄.
하지만 이건 비즈니스다.
상품으로써 무언가를 잃을 각오는 당연히 해야 하는 법이다.
예를 들자면…….
자기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