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윌리는 이제 갓 여섯 살이 된 꼬마였으나, 그렇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고 말랐다.
그럼에도 에너지가 넘쳤다.
털모자를 쓴 윌리는 락커룸 안에 들어서서 거구의 선수들을 놀란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와……!”
“응?”
근육을 뽐낼 수 있는 러닝셔츠 차림의 바비가 윌리를 발견하고는 씨익 웃으며 손을 뻗었다.
“바비 애슐리다.”
“위, 윌리에요.”
바비의 손가락이 윌리의 손에 쏙 들어갔다. 바비는 미소를 지으며 그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저도 그렇게 클 수 있을까요?”
“그럼, 당연하지. 나보다도 훨씬 더 커질 수 있을 거야.”
그러자니 옆에서 다가온 셰무스를 비롯한 다른 선수들도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
다들 윌리를 살갑게 대해주었다. 거친 프로레슬링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어린아이에게는 친절하게.’라는 신념은 갖추었다.
적어도 이 GCW에 있는 선수들은 그랬다. 이런 동료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와이엇이 캐릭터에 몰입해서 윌리를 좀 겁먹게 만들긴 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러셀의 중재로 적당히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윌리와 함께 GCW 내를 둘러보는 동안, 시나가 다가왔다.
정비공 차림의 그는 무척 고민에 빠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기, 신.”
“응?”
“윌리한테 프로레슬링이 ‘가짜’라고 말해줘도 괜찮은 거야?”
“……어, 음.”
생각도 못했다.
윌리는 아마 프로레슬링이 ‘진짜’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 상황에서 악역인 와이엇이 케이페이브를 깨고 인사를 나누다니.
의표를 찔렸다.
역시 미래의 아이콘답군.
“어, 모두 싸움이 끝나면 친구라는 설정은 어떨까……?”
“글쎄, 그런 안일한 설정으로 6세 소년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시나는 차갑게 말했다.
나쁜 시나.
“……한번 확인해볼게.”
나는 러셀과 링 위에서 뛰어놀고 있는 윌리를 향해 다가갔다.
“윌리.”
말을 걸자 해맑게 웃으며 다가온 윌리가 내 손을 붙잡았다. 나는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아까 전에 브로큰 와이엇이 무섭게 굴진 않았어?”
“응! 의외로 좋은 사람이었어!”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런데 링 위에서는 왜 나쁜 사람이 되는 거야? 러셀?”
“그, 글쎄?”
러셀이 진짜 당황했다.
잠시 생각하던 나는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기고 싶으니까.”
“이기고 싶어?”
“그래, 경기에서 이기고 싶으니까 그러는 거야. 대신 경기가 끝나면 다들 다시 친구가 되는 거지.”
러셀이 그런 급조된 설정으로 괜찮겠냐는 표정을 지었다.
허나 윌리는 활짝 웃었다.
마음속에 생겨났던 의문이 풀린 사람 마냥 말이다.
“그렇구나! 그거 좋아!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는 거 좋아!”
“그래, 러셀하고 나도 처음에는 안 그랬지만 지금은 사이좋지?”
“응! 둘이 친구야!”
……다행히 그렇게 넘어갔다.
그 뒤로도 나와 러셀은 일정에 맞춰 윌리를 데리고 다니며 최대한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TV를 통해서 보던 경기장에 우리의 음악에 맞춰 들어갔다.
링 주변에 모여 있던 선수들이 윌리를 향해 환호를 보내주었다.
“윌리!”
“링 위로 올라가!”
그 말대로 윌리가 링 위에 올라가자 와이엇이 시비를 걸었다.
두 사람의 즉석 경기.
작은 소년, 윌리가 내지르는 주먹을 한 대 맞은 와이엇이 벌러덩 대자로 뻗어 KO를 당했다.
커버가 이어졌다.
1, 2, 3!
“윌리, 네가 이겼어!”
“정말로 굉장한데!!”
“다 크면 나랑 팀이 되는 거야!”
윌리는 박수를 치며 축하해주는 선수들 사이에서 환하게 웃었다.
그 사이에 껴서 박수를 치던 나는 문득 아까부터 계속 우리 뒤를 쫓아다니고 있던 윌리의 부모님이 신경 쓰여 뒤를 돌아보았다.
윌리의 어머님이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모습이 보였다. 아버님은 그런 어머님을 감싸고 위로하고 있었다.
“왜 울어. 좋은 날이잖아.”
“흑…….”
“감사합니다. 신 선수. 윌리가 저렇게 행복하게 웃는 건 정말 오랜만에 보네요.”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윌리에게 좋은 기억을 선사해줄 수 있어서 좋은걸요.”
머쓱해져 대답한 나는 옆에 서있는 에보니를 돌아보았다.
잠시 침묵하던 그녀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멋지네요.”
“제가요?”
“프로레슬러들이요.”
눈을 가늘게 뜨는 그녀.
농담을 주고받은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든, 문제될 게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윌리의 몸이 가장 중요한 문제니까요.”
“예, 계속 지켜볼게요.”
고개를 끄덕인 에보니의 시선이 링 위의 윌리에게로 향했다.
행복에 겨워 웃고 있는 윌리를 보자니 카메라가 아까부터 계속 우리를 촬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 * *
그렇게 윌리에게 멋진 하루를 선물하고 난 다음 날.
모니터링을 위해 자리에 모인 우리는 쇼를 시청하고 있었다.
어제 생방송으로 나간 쇼는 6.2퍼센트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쇼의 방향성이 변화하면서 약간 지지부진해진 상승세였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쇼를 기점으로 다음 주, 다다음주 쇼에는 시청률이 크게 상승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오늘 쇼에는 소아암으로 투병 중인 윌리와 그 가족이 초대되었습니다. 윌리는 신-셀 콤비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는군요.]
오늘의 쇼를 기점으로 다음 주까지 지역 방송국에서 특별 다큐멘터리를 내보낼 예정이었다.
소아암 환자인 윌리를 신-셀 콤비와 GCW의 사람들이 초대해 행복한 하루를 만들어주는 다큐.
거기에 각종 지역 신문, 잡지에서도 쇼에 대한 홍보와 윌리에 대한 이야기를 실어주기로 했다.
모두 가족 단위 시청자층을 다시 프로레슬링 업계에 불러오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이었다.
[Wil-li! Wil-li! Wil-li! Wil-li! Wil-li! Wil-li! Wil-li! Wil-li!]
관객들이 윌리의 이름을 외쳤다. 뒤이어 등장한 우리는 윌리에게 새로 발매할 신-셀 태그팀의 티셔츠를 선물하며 경기를 가졌다.
쇼의 메인이벤트.
경기는 당연히 우리의 승리로 끝났고, 열화와 같은 성원 속에서 그렇게 쇼가 마무리 되었다.
TV를 끈 바쿠가 입을 열었다.
“이상입니다.”
“좋은데?”
할리가 씨익 웃었다.
쇼의 구성을 철저하게 지켰고 우리가 원하던 대로 가족 단위의 시청자들이 만족하게 만들었다.
깊은 신뢰로 맺어진 신-셀 태그팀이 승리한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여기까지는 말이야.”
비릿하게 웃는 할리.
그 말대로 문제는 TV쇼가 끝난 후에 생겼다. 나는 어제의 기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원래의 계획은, 관객들이 보는 가운데 우리가 윌리를 링 위로 불러 승리를 자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윌리에게 묻는다.
[윌리 보이, 우리에게 뭔가 바라는 게 있다면 말해주겠어?]
거기에 윌리는 원래대로라면 우리에게 ‘와이엇 패밀리와의 태그팀 챔피언십 매치에서 승리해주세요!’라고 말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박진감 넘치는 쇼에 크게 흥분한 녀석은 그만 약속을 잊고 다른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신하고 러셀이 평생 좋은 친구로 지냈으면 좋겠어요!]
“바로 그거였지.”
그 내용을 말한 바쿠가 골치 아프다는 듯 뺨을 긁적였다.
원래대로라면 우리는 이 내용을 뉴스나 다큐멘터리에 넣어 대립을 이끌어나갈 생각이었다.
페이퍼뷰에 대한 홍보도 할 겸 말이다. 하지만 윌리 보이는 그와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바꾸는 건 어때? 윌리가 실제로 한 말을 다르게…….”
“그러고 싶어요? 아이가 자기 진심을 담아서 말한 소원인데.”
“관객들이 있어서 안 돼. 우리에게 진심이 없다고 생각할 거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말이죠.”
할리의 말에 이은 내 이야기에 팀장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 뒤로 나는 윌리를 따로 만나 왜 그런 소원을 빌었는지 물었다.
자신이 했던 실수를 깨달은 소년은 약간 겁을 먹었고, 나는 괜찮다며 좀 달래주어야만 했다.
윌리가 힘겹게 대답했다.
[……둘이 친구라서 좋아요.]
[나도 러셀하고 친구라서 좋아.]
[대니가 있어요. 대니는 내 친군데. 그, 어느 날 인형을 가지고 싸운 다음에 보이지 않게 되었어요. 난 대니랑 화해하고 싶어요.]
그 말에서 깨달았다.
윌리가 왜 러셀과 날 응원했는가. 그리고 왜 대니라는 소년은 보이지 않게 되었는가. 그런 것들을.
‘어른이란 알기 싫은 것도 알게 되어버리는 단점이 있군.’
윌리는 러셀과 나의 우정을 보고 대니와 자신에게 대입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두 사람의 우정이 깨지길 원하지 않는 것이었다.
여섯 살 꼬마가 진심을 담아서 말한 소원.
“그걸 무시하고 넘긴다면 저희가 윌리를 초대한 건 정말로 완전한 비즈니스였다는 말이죠.”
“으음…….”
“전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고, GCW의 다른 선수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지?”
“그대로 내보내야죠.”
“별문제는 없겠지?”
“하나는 증명되었죠.”
“뭐?”
“러셀과 제 태그팀이 깨지면 수많은 소년소녀들이 눈물을 감추지 못할 거라는 것?”
“……뭔가 큰 제약이 걸렸군.”
“언제는 안 그랬나요.”
나는 별일 아닌 것처럼 웃으며 사람들을 격려했다.
어쨌든 당분간 나와 러셀의 태그팀은 계속 이어질 것 같았다.
뭔가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 * *
시간은 다시 흘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의 혁명은 성공적으로 완수되었다.
가족 단위 시청자를 노린다.
캡틴 로건의 시대로 돌아간다.
이상의 계획은 미래를 알고 있는 내 아이디어를 사용해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미국은 최고이며 비타민을 먹고 기도하라고 노래를 부르던 ‘영웅’ 캡틴 로건과는 달랐다.
우리는 단순한 각본 사이사이에 ‘디테일’을 넣었다. 그로서 미묘한 긴장감을 계속 유지시켰다.
예를 들자면 나와 러셀이 서로를 인정하지만 자신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라던가.
그것을 알아보는 성인들은 이 미묘한 부분을 재밌게 지켜볼 테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우리의 우정을 즐겁게 바라볼 터였다.
결과는 바로 찾아왔다.
소년소녀들이 러셀의 티셔츠를 입고 그들의 부모가 내 티셔츠를 입고 응원을 보냈다.
메인 이벤터로서 활약하는 건 바비와 와이엇이었으나, 그들의 인기는 신-셀 태그팀보다 못했다.
사람들은 뭔가에 홀린 것처럼 열광적인 응원을 보냈다. 나와 러셀은 GCW의 선봉으로서 선수들을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바로 ‘대립’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말이다.
덕분에 욕을 먹던 ‘애덤 앤 크리링’ 태그팀까지도 약간 모자란 바보 듀오로서 인기를 끌었다.
할리는 심상치 않은 속도로 상승하는 각종 수치들을 확인하고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이번 페이퍼뷰는 애틀랜타 크림 프레즐 센터에서 개최한다.”
그 말에 모두가 놀랐다.
애틀랜타 크림 프레즐 센터라면 1만 석 규모의 경기장이었다.
적어도 7,000석 이상을 매진시키지 않으면 적자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우리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다. 성과 역시도 충분히 냈다.
하지만 보수적인 윗선에서 그걸 허락해주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해서 물었더니 할리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내놓았다.
“놀랍게도 허락해줬다. 대신 손해를 보면 옷 벗으라더군.”
“하실 겁니까?”
“해야지.”
“직업이 걸렸으면 가족들하고도 이야기해보시는 게…….”
“마누라는 죽었고 자식들은 다 장성했다. 내 입에 풀칠하면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지만…… 우습게도 욕망은 아직 남아있더군.”
할리는 날 보며 씨익 웃었다.
그 눈빛을 보자니 영락없는 프로레슬링의 태동기에 활동했던 살아있는 전설 그 자체였다.
“이 GCW의 일원으로 남들이 못했던 기록을 달성하고 싶다고.”
“세간에선 그걸 꿈이라고 하죠.”
나 역시도 그런 꿈을 가졌다.
그렇기에 회귀한 뒤에도 다른 삶을 꿈꾸지 않고 이 프로레슬링 업계에 다시 투신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꿈을 이루기 직전에 서있는 셈이었다.
모두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할리를 위해, 큰 무대에 설 자신을 위해 더 열심히 일했다.
쇼는 계속해서 페이퍼뷰를 향해 진행되었고 결국 1만석 규모의 경기장을 매진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문제는 오히려 생각치도 못한 부분에서 발생했다.
1만석 경기장의 매진을 알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기숙사로 돌아온 밤.
부재중 전화에 뭔가 싶어 전화를 되걸었고, 나는 떨림을 애써 감추는 에보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윌리가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