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56화 (56/634)

56.

라디오에서 뉴스레터의 진행자들이 이번 주의 GCW 주간 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셀 콤비는 이번에 타이틀을 넘겨야 해. 그게 합리적이지.]

[왜? 두 사람은 지금 태그 팀으로서 인기가 절정에 이르렀는데.]

[그러니까 해체해야지. 둘을 찢어놓으면 당장에 바비와 와이엇을 넘어서는 솔로 메인이벤터가 두 명이나 생기는 셈인데.]

[하긴, 그렇긴 하지.]

[둘이 다시 대립을 시작하면 어마어마한 열기를 낳을 거라고. 이번에는 러셀이 악역을 해도 좋겠군. 잘할까 싶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신에 비하면 기믹 소화력이 한 수 아래지.]

[그래, 신. 그 친구가 대박이야. 이번에 1만석 매진시킨 대기록이 누구에게서 왔다고 생각해?]

[당연히 신-셀 태그팀이지.]

[그중에서도 신의 역할이 컸어. 혼자서는 재미없는 러셀을 잘 이끌어줬지. 하지만 지금 이 시기를 넘기면 또 3개월을 같은 스토리로 가야 해. 아무리 그래도 시청률에 좋은 영향은 주지 못하겠지.]

[그런데, 문제가 있어.]

[뭔데?]

[윌리.]

[아, 그 아이…….]

[GCW의 전환점에 함께한 친구잖아. 그 친구가 신-셀 태그팀은 평생 친구로 남아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던가?]

[……엄, 그 이야기를 지금 꺼내는 건 좀 안 좋은 일인데.]

[왜?]

[윌리가 며칠 전에 숨을 거뒀거든. 향년 6세로.]

[……뭐?]

[이야기를 들으니 쇼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다음에 편하게 갔다던데. ……음, 지금 꺼내기 좋은 이야기는 아니로군. 죄송합니다. 청자 분들. 조심히 다뤘어야 할 이야기를 가볍게 다루었네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와서. 윌리를 위해서라도 두 사람의 태그팀이 ‘일반적인 방식’으로 끝나는 건 좀 좋지 못하겠군.]

[어린아이와 했던 약속을 지켜주기 위해……. 그런데, 이게 과연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나?]

[무슨 말이야?]

[두 선수는 앞으로도 계속 활동하겠지. 그런데 ‘평생 친구’로 남는다고? 그게 말이나 돼? 캡틴 로건 시절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작위적인 이야기가 되겠군.]

[근데 뭐 별수 있나. GCW로서는 자충수가 된 셈이지.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것조차 윌리와 유족들에게는 실례가 되겠군.]

[아예 이 이야기는 하지 말지.]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었다.

늦은 밤.

기숙사의 침대에 앉은 나는 머릿속이 복잡한 것을 느꼈다.

윌리의 죽음의 원인은 GCW가 아니다. 원래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던 윌리는 꿈을 이룬 이후 정말로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고 했다.

장례식에도 다녀왔다.

에보니는 참석하지 않았고, 윌리의 부모님은 눈물을 흘리며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어 고맙다고 했다.

GCW의 사람들도 대부분 경기를 앞둔 우리를 배려해 말은 않았지만 큰 충격에 휩싸인 눈치였다.

나 역시 마음이 좋지 못했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었다.

그럼에도 앞서 뉴스레터의 발행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자 그 부분에서 또 고민이 되었다.

그 말이 맞았다.

나와 러셀은 분명 이제 슬슬 태그팀을 해체해야 할 시기였다.

6월의 페이퍼뷰.

그게 끝나면 나는 연봉 협상을 하고 GCW에 남을지, 아니면 메인으로 올라갈지를 정해야 했다.

올라간다면 태그 팀 벨트를 반납해야 했고, 사실 남는다고 해도 별반 달라지지는 않을 터였다.

어쨌든 우리는 나와 러셀이 분열하는 방향으로 가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어린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을 수는 없기 때문에.

‘하지만…….’

그건 좀 작위적인 이야기였다.

내가 이대로 올라간다면 러셀이 혼자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당장 그게 걱정이었다.

그렇지만 윌리가 우리에게 했던 이야기가 걸려 어떻게 손을 쓰기가 힘든 것 또한 사실이었다.

만약 윌리의 말을 무시하고 내가 러셀을 공격해 태그팀이 해체가 된다면, 난 정말로 천하에 둘도 없는 개자식이 될 테니까.

‘싫군.’

이런 계산적인 생각이나 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더러웠다.

하지만 그저 윌리의 죽음을 추모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난 프로레슬러고.

이건 비즈니스니까.

그렇기에 결단을 내려야겠지.

우리가 이후 어떻게 해야 할지.

* *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내 생각이 들어맞아 페이퍼뷰의 흥행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여름이 성큼 걸어온 어느 날 밤.

총 관객수 10,384명.

언론에서는 우리의 성공을 극찬했고 이내 상부에서도 GCW의 상품성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할리는 며칠 지나지 않아 코네티컷에 위치한 본사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서둘러 돌아온 그는 각 팀장들과 나를 한자리에 모았다.

“좋은 결과가 하나.”

우리는 모두 복잡한 심경이 되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쁜 결과가 하나.”

“좋은 결과부터 말해주십쇼.”

“일단, 당장 다음 주부터 경기장을 옮기라더군. 2,000석 규모로.”

“나쁜 결과는?”

“너보고 올라오란다. 그리고 각본 관련 조건을 하나 붙였다.”

“……뭐죠?”

“부상당한 러셀을 공격하고 각본을 마무리 지은 뒤 올라올 것. ……네 위상을 올리기 위해서.”

“정확히 그렇게 말했습니까?”

“그래, 로이타스의 지시다.”

“트리플H겠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대강 그려졌다.

녀석은 하트 패밀리와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렇기에 내가 확실하게 산하 단체에서 러셀을 조진 뒤 올라오기를 바라는 거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할리가 동의했다.

“하지만 본사의 조건은 그랬다.”

“말도 안 됩니다. 할리. 저희가 지금 사랑 받는 이유가 신-셀 팀의 인기 덕분인데. 그걸 완전히 부수고 위로 올라오라뇨?”

“2,000석 규모에서 점점 인기 떨어지다가 우리 다 잘리고 원래대로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되겠지.”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죠?”

팀장들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답은 간단했다.

트리플H나 로이타스나, 산하 단체의 경영 따위는 어찌 되든 좋은 것이었다. 그 주변의 인간들은 다 딸랑이들뿐이고.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랬다.

이 회사는 세계 최고이지만 그만한 양심을 갖추지 못했다. 오히려 야만성은 훨씬 더 강했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어느 편을 들 것인가.’ 하는 제안을 듣자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를 어쩐다.’

나는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분명 괜찮은 제안이다.

트리플H 같은 거물 밑에서 시작하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그 말을 따라 러셀을 박살내고 올라가는 건 싫었다.

그렇다고 해서 단지 우리 둘이 악수를 하고 올라가는 것도 영 마음에 드는 선택은 아니었다.

윌리.

러셀.

트리플H.

온갖 복잡한 것들이 뒤얽혀 있는 상황. 나는 좀처럼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에 빠졌다.

바로 그때였다.

“……?”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핸드폰을 꺼낸 나는 뜻밖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보니였다.

* * *

늦은 밤.

차를 끌고 애틀랜타 시내로 나온 나는 펍에서 에보니를 만났다.

찰랑이는 머리를 하나로 묶은 그녀는 자리에 날 앉히고 말했다.

“맥주면 되죠?”

“운전을 해야 되서.”

“그럼 콜라로.”

에보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펍 안을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주변을 확인했다.

온갖 사내며 여자들이 GCW를 보고 있었다. 와이엇의 입장에 모두가 환호를 보내며 좋아했다.

……일단 모자를 눌러 쓰자.

어쨌든.

에보니가 왜 갑자기 내게 만나자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머리를 좀 식히고 싶어서 나왔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보면 묘안이 떠오를지도 모르고 말이다.

‘이런 곳도 오랜만이군.’

전생에는 자주 갔는데 말이다.

선수 생활할 때도 알음알음 다녔고, 프로듀서로 일할 때나 일용직을 할 때는 자주 다녔다.

그리고 어느 순간, 펍은 버릇처럼 하루 일과를 끝마치는 장소가 되었다. 당시의 나는 위스키를 잔뜩 마시고 취해서야 잠이 들었다.

젊음은 실패로 끝났고, 남아있는 건 없었다. 그렇기에 인생의 후반부로 갈수록 나는 더욱 더 술에 빠져 지냈다.

‘그랬었지.’

반쯤 알코올 중독이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버릇은 회귀한 후로는 싹 사라졌다.

딱히 술 생각도 나지 않았고, 나 자신을 연마할 생각만 들었다.

각종 격투기와 운동, 연기와 외모 가꾸기에 마냥 열중할 뿐.

회귀한 후로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일반적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

‘대체 왜일까.’

그렇게 생각할 때쯤, 에보니가 맥주와 콜라를 들고 돌아왔다.

“여기요.”

“잘 마실게요.”

“별말씀을. 이쪽이 불렀으니 한 잔 사는 거야 당연한 거죠.”

“……그래서, 무슨 일로?”

“장례식에 다녀오셨다면서요?”

맥주를 크게 한 모금 들이킨 에보니가 그대로 말을 시작했다.

“예, 그랬죠.”

“듣고서 좀 놀랐어요. 많이 바쁘신 걸로 아는데 신경 써주셔서.”

“윌리와는 기억이 있으니까요. 저도, 저희 GCW에서도 예의를 갖춰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러셀과 내가 대표로 다녀왔다.

“기억……. 그래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에보니. 이번엔 내가 궁금해졌다.

“힐난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묻는 건데. 그쪽은 왜 안 왔어요?”

“교대 시간이 겹쳤거든요.”

“…….”

“왜요. 위선자 같아요?”

“사람마다 사정이 있는 거죠.”

“위선자 맞지 뭘 그래요. 잘생긴 레슬러 앞에서 아는 척, 아이 위하는 척하다가 죽으니까 모르는 척하는 거. 참 나쁜 간호사죠.”

에보니가 시선을 피했다.

검은 눈동자가 가늘게 찌푸려진 채 허공을 응시하는 게 보였다.

“그래도, 아마 그날이 비번이었어도 가지는 않았을 거예요.”

“어째서죠?”

“제가 감정에 휩쓸리면 아이들이 저로 인해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을 계속 상기할 테니까요.”

“…….”

“소아암 센터에서는 아이들을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상태로 두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전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을 거예요.”

“뭔가 씁쓸한 이야기군요.”

“죽었단 소식을 들으면 담배를 한 대 피워요. 그리고 자죠. 당장 다섯 시간 뒤에 교대니까.”

“죄송합니다. 괜히 물었네요.”

“……하지만. 윌리는 제가 간호사가 되고 처음 만난 아이였어요. 세 살 때 발병해서 입원했죠.”

에보니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그래서 좀 더 신경을 썼던 걸지도 몰라요. 그래선 안 되는데.”

“어려운 일이죠.”

“맞아요.”

“그렇게 기계적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그냥 넘기고. 이런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문제고. 그렇지 않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저도 같은 기분이거든요.”

나는 쓰게 웃었다.

“사실, 관련된 모두가 그렇죠. 우리는 윌리의 죽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생각이 많아지네요.”

“……솔직하게 물어봐도 되요?”

“그러시죠.”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러셀과 당신의 태그 팀. 해체할지 말지로 말이 꽤 많던데.”

“……어떻게 알아요?”

“음, 뭐. 아이들이 볼 때 함께 보게 되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저희 집 애도 당신 좋아하고요.”

“애가 있어요?”

“아빠는 없지만.”

피식 웃는 에보니. 그러다 이내 뭔가 떠올린 듯 고개를 내저었다.

“음~ 아뇨. 말 바꿔서 미안한데, 이야기해줄 필요 없어요.”

“갑자기 왜요.”

“뭔가 보는 재미가 없어질 것 같거든. 게다가…… 내가 뭔가 큰 착각을 한 것 같고.”

“무슨 착각이요?”

“당신을 뭔가 만화나 드라마 속의 인물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하지만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그런 게 전혀 아니었네요.”

“어디서 그런 걸 느꼈죠?”

“나와 같은 고민을 하잖아.”

에보니가 피식 웃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이내 어렵지 않게 결론이 나는 것을 느꼈다.

프로레슬러와 쇼의 캐릭터를 동일시하는 에보니의 착각은 사람들이 흔히들 하는 것이었다.

특히나 프로레슬러의 캐릭터가 현실에 있을 법할수록 말이다.

그리고 현실에 밀접하게 연관될수록 프로레슬러는 ‘현실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캐릭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상기해냈다.

지금껏 해온, GCW에서의 내 캐릭터. ‘신’에 대한 이야기.

그는 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가. 왜 그의 이름은 신SIN인가.

세상의 불공정함을 원망하는 악당으로서 지어진 나의 이름.

그걸 풀어내기 위해서는 ‘죽은 윌리’의 도움이 절실했다.

‘얄궂구만.’

인생의 끝에서 갑자기 시작지점으로 돌아온 남자가 성공하기 위해서 어떤 짓까지 하느냐.

그리고 그 결말.

“…….”

간단한 답이 나왔다.

‘어쩔 수가 없군.’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음 주 쇼 말인데요.”

“표라도 주시려고?”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볼 수 있으면 꼭 보라고요.”

나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에보니는 윌리의 죽음을 회피하려고 했다. 분명 직업상의 소명 때문에라도 그 편이 효율적일 터였다.

하지만 난 아니었다.

내가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난 그렇게 할 수 있다.

내가 여기에서 원하는 건, 윌리의 죽음을 피하지 않는 일이었다.

나는 그 죽음조차 이용해 프로레슬러로서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모두가 추모를 하고 그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나는 내 방식을 써서 윌리의 무덤에 꽃을 얹어주고 싶었다.

내 진지한 눈빛에 잠시 뺨이 붉어져 있던 에보니가 미소를 지었다.

“치사뿡.”

“하, 그런 말도 써?”

나는 어이가 없어 대답했다.

에보니가 짓궂게 웃었다.

나는 잠시 그 미소가 눈부시다고 생각했다.

또한, 한 가지 착각을 했다.

나는 돈을 위해 남 똥구멍의 분비물이나 빨면서 살려고 이 업계에 다시 투신한 것이 아니었다.

내 꿈을 이루고 싶어서 왔다.

할리가 말했듯, 불변하지 않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트리플H가 그렇듯, 나는 그걸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전생에 나를 무시했던 프로듀서, 레슬러들, 심지어는 관객들.

나는 그들에게 ‘너희가 틀렸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싶었다.

거기에서 필요한 건 간단했다.

‘미적지근한 방식이 아니지.’

확실히 마무리를 짓는다.

윌리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하지만 그 눈치를 볼 생각도 없었다.

러셀 하트를 박살 내고 최고의 악당이 되어 쇼를 전설로 남긴다.

나는 GCW의 아이콘이 된다.

그것을 위한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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