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결국 신이 도전권을 얻었군.]
[아주 멋진 개자식이었어. 할리를 몰아붙이는 태도나 관객들을 모욕하고 러셀과 자신의 관계를 부정하는 모든 게 말이지.]
[그렇게 해서 다음 주에 GCW 챔피언전이 열리기로 했으니 또 엄청난 관객들이 몰려들겠군.]
[신이 챔피언에 오르겠지?]
[물론 그럴 거야.]
[어떻게 확신해?]
[이번에 WWF 메인에서 소식이 들어왔는데, 와이엇 패밀리가 메인으로 올라간다더군. 당연히 벨트를 넘기고 떠나게 되겠지.]
[그럼 이제 메인 급의 선수는 바비와 셰무스 정도만 남았나?]
[만약 러셀이 돌아올 때까지 군림을 한다면 신이 그들 모두와 대립을 해야 한다는 거겠지.]
[그거 멋진 이야기인데.]
[신은 확실히 상대 선수를 띄워줄 줄 아니까. 챔피언이 그렇다는 건 정말로 귀중한 부분이지.]
[매번 말해서 입이 아프지만, 정말로 환상적인 선수야. 이런 보물을 얻어서 GCW는 기쁘겠어.]
“하이고, 참.”
나는 계속된 칭찬에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끼며 중얼거렸다.
선수들 대부분이 모인 휴게실.
경기가 끝난 뒤 다들 모여 뉴스레터의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나와 러셀, 시나를 시작으로 하나둘씩 가세하더니 이제는 선수단 대부분이 모이게 되었다.
사실, 이런 비평가들의 말은 어느 정도 걸러들을 필요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프로레슬링에 대한 조예가 깊은 이들은 관객의 입장에서 철저하게 쇼를 분석해주기 때문이다.
‘근데 요새는 대부분이 내 얘기라서 사실 도움이 되지는…….’
거기다 모두 칭찬일색이라서 좀 부끄러웠다. 나는 선수들의 주목에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자니 어느새 다가온 와이엇이 내 옆에 털썩 앉았다.
“잘 부탁한다고. 챔피언.”
“……아직 챔피언은 선배잖아요.”
“리드 좀 잘 해달라는 말이야.”
“그럼요. 1년 전에는 제가 압도적으로 패배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이겨야죠.”
“……좀 봐주라.”
물론 농담이었다.
와이엇은 운동 능력이 부족했지만, 그의 장점을 드러내는 스타일의 경기를 짠다면 분명히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 *
그렇게 시간은 다시 흘렀다.
7월 말.
GCW 챔피언전 당일.
[Booooooooooooo~~!!]
와이엇과 최선을 다해 경기를 준비한 나는 어마어마한 야유 속에서 경기장으로 입장했다.
지난주의 링 세그먼트를 통해 내 속내를 알게 된 관객들은 아낌없이 야유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신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GCW 챔피언 벨트였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도 그랬고, 각본 상의 캐릭터로서도 그랬다. 나는 벨트를 따내 링에서 내려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관객들이 내가 이길 것을 예상할 터였다.
뉴스레터에서 흘러나온 정보도 있고, 다들 아마 내 상승세를 통해 그렇게 예측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프로레슬링은 단순히 승패를 겨루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관객들은 이곳에 와이엇과 나의 드라마를 보기 위해 온 것이었다.
나는 허스키였던 남자를 짓밟았다. 그러자 그 안에 있던 브로큰 와이엇이라는 인격이 깨어났다.
사람들은 와이엇의 카리스마에 빠져들었다. 그가 자신을 따르라 말했을 때 큰 환호를 보냈다.
그리고 신과 러셀은 그가 데려온 부하들과 태그 팀으로 몇 번이고 대결을 펼쳤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신의 마음에는 야망이 하나 생겨났다.
“자신이 주먹을 갚아줘야 할 대상은 결국 이 와이엇이 아닌가.”
과장된 동작으로 외친 브로큰 와이엇이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부하들을 대동하고 나온 그는 특유의 장점을 살려 나의 심리를 파악했다는 듯이 설명했다.
“그리고 파트너가 자신의 족쇄임을 깨달은 거야. 안 그런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관객들은 와이엇에게 환호를 보내주었다. 그가 내뿜는 카리스마와 말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상을 입은 파트너를 버리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지.”
벨트를 어깨에 멘 와이엇이 심리전을 걸었다. 나는 무시하고 몸을 풀며 전투를 준비했다.
‘역시 대단하군.’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불길’이라는 말은 우리 둘의 챔피언십을 그대로 표현해주었다.
와이엇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의 남자였고, 나는 그런 놈을 쓰러뜨리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렇게 싸움이 시작되었다.
링 아래의 시나와 에디까지 신경 써야 하는 외로운 싸움이었다.
하지만 나는 강력했다.
공이 울린 직후 높은 타점의 드롭킥을 먹인 나는 그대로 와이엇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평소 나는 경기 중에 곧잘 여유를 부리며 장난을 쳐 지켜보는 관객들을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계속해서 와이엇을 몰아붙이며 보다 진지하게 변한 내 캐릭터를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다.
물론, 그 과정은 철저하게 와이엇과의 합을 전제로 두었다.
와이엇은 프로레슬러치고는 둔한 편이었다. 덩치가 커 그림은 살았지만 빠른 템포의 경기는 소화하기 버거워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와이엇이 따라올 수 있도록 각 기술 사이사이에 쉬는 구간을 두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쉴 틈 없는 격렬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 볼 때의 이야기였다.
해머링이나 찹 같은 기술은 받아주는 쪽에서 접수가 쉬웠다.
하지만 ‘낙법’을 쳐야 하는 기술을 쓸 때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콰앙!
나는 러셀에게서 배웠다고 설정된 각종 수플렉스로 와이엇을 밀어붙였다. 물론 충분히 다른 공격을 해서 대응할 시간을 주었다.
[Booooooooooooooooo!]
관객들은 내가 러셀의 기술을 쓸 때마다 야유를 보냈다. 그런 것도 전부 계산된 것이었다.
20분의 경기.
중반부를 넘어서자 와이엇의 체력이 급속히 줄어든 게 느껴졌다.
“괜찮아요?”
“그래…….”
“속도 좀 늦출게요.”
하지만 그게 도리어 그림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격렬한 공방전 끝에 지쳐가는 걸 표현했다.
거기에 와이엇이 쉴 시간을 더 벌기 위해 부하들이 난입하는 내용까지 경기에 더했다.
“야, 야! 어딜 올라오는 거야!”
심판이 크게 소리쳤다.
뒤를 돌아보자 링 안으로 들어오려는 시나의 모습이 보였다. 심판이 그를 억지로 막아섰다.
나는 곧바로 놈을 향해 달려들어 펀치를 날렸다. 그리고 삼단 로프 위로 곧바로 올라섰다.
회귀한 뒤, 나는 몸을 생각해 최대한 대미지가 남는 범프는 피하려고 하는 편이었다.
브롤러로 스타일을 정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몸에 가는 무리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확실하게 시선을 잡아끌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는 링 아래에서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시나와 그 뒤의 에디를 향해 힘차게 도약했다.
두 사람이 나를 받아내며 동시에 넘어졌다. 복근에 퍼지는 아찔한 통증에 나는 잠시 숨을 삼켰다.
하지만 곧바로 일어섰다.
2,000여명의 관객들은 점점 격해지는 경기에 자리에서 일어선지 오래였다. 환호가 쏟아졌다.
나에 대한 감정과는 별개로 멋진 경기에 보내는 호응이었다.
링 위로 올라가자 숨을 충분히 고른 와이엇이 날 공격했다.
그와 공방을 주고받으며 경기의 끝을 향해 달려 나갔다. 우리 둘은 관객이라는 불길 속에서 싸웠다.
그리고 마지막.
쩌억-!!
날카로운 무릎차기에 와이엇의 몸이 고꾸라졌다. 나는 그 위를 덮고 다리를 들어 커버했다.
1, 2, 3.
땡땡땡!!
공이 울리는 순간, 나는 온몸을 뒤덮은 통증이 사라짐을 느꼈다.
나의 승리였다.
나는 GCW 챔피언에 등극했다.
단체를 이끄는 우두머리.
탑힐.
내 음악이 흘러나왔다. 자리에서 일어선 관객들은 멋진 경기에 보답하듯 환호를 보내주었다.
저도 모르게 경기장 위에 무릎을 꿇고 있던 나는 심판이 가져오는 벨트를 손에 쥐었다.
“자, 신. 이제 네 거다.”
그 역시 멋진 경기를 보고 흥분한 눈치였다. 나는 황금 벨트를 품에 안고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꿈이 이루어졌다.
* * *
물론, 객관적으로 봤을 때 GCW 챔피언십은 WWF의 월드 챔피언십에 비해 훨씬 가치가 낮았다.
내 진정한 목표 역시도 WWF의 월드 챔피언이자 아이콘이었다.
그럼에도 이 벨트를 얻은 순간, 나는 정말로 꿈을 이룬 것처럼 기뻤다. 거짓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그동안 노력했던 이 1년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았다 느꼈기 때문이었다.
인종이 아닌 실력으로.
멋진 몸을 만들었고, 기술을 연마했으며, 기막힌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것이 관객들에게 먹혀 그들은 나를 사랑했고, 이제는 증오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세리머니를 끝마친 뒤 벨트를 들고 돌아오자 고릴라 포지션에 있던 모두가 날 반겨주었다.
“신! 고생 많았어요!”
“정말 멋진 경기였습니다!”
“챔피언 축하드려요!”
직원들의 덕담에 미소를 지은 나는 뒤이어 다가오는 바쿠를 발견하고는 입을 열었다.
“어땠어요?”
“네 자리를 찾았구나.”
상대와 자신, 단체를 더 높은 반석에 올리는 것이 챔피언의 역할.
그런 의미에서 바쿠는 이 벨트의 주인이 나임을 인정했다. 다가온 그가 벨트로 손을 뻗었다.
“내게 네 허리에 처음 벨트를 휘감을 수 있는 영광을 주겠냐?”
“저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배가 그래준다면 영광이죠.”
“짜식이~. 난 네 나이 때 맥주나 잔뜩 마실 줄 아는 멍청이였어.”
낄낄 웃은 바쿠는 내 뒤에 서서 허리에 챔피언 벨트를 감아주었다.
그 무게감과 감촉을 느끼던 나는 이어 할리와도 인사를 나눴다.
“수고 많았다.”
“감사합니다. 할리.”
“꼬마들이 뭘 준비했다고 하는데, 가서 얼굴이라도 비춰줘라.”
할리는 만족스러운 듯 내 등을 떠밀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락커룸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무언가 날아들었다.
푸화악!
차가운 액체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놀라 얼굴을 닦아낸 나는 이어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
‘바로 이거였군.’
샴페인을 중심으로 온갖 음식이 가득한 락커룸이 눈에 들어왔다.
“다 끝났냐? 챔피언!”
반쯤 취한 셰무스가 샴페인을 들이댄 채 낄낄거리며 웃었다.
먼저 들어온 와이엇 패밀리도 다들 음료를 즐기는 중이었다.
레슬러들은 안으로 들어온 날 보고 환하게 웃으며 모여들었다.
락커룸 리더인 바비가 내게 잔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축하한다. 챔피언.”
“……뭔가, 제가 모르는 사이에 올림픽 금메달이라도 딴 건가요?”
“러셀 때는 부상이라 좀 그랬고. 와이엇의 콜 업 축하 겸 네 챔피언 등극도 같이 축하할까 했지.”
“락커룸 분위기 너무 좋은데요.”
“그래서, 싫냐?”
“그럴 리가요.”
나는 샴페인을 한 잔 받았다.
이 정도야 괜찮겠지.
“감사합니다.”
나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순간 당황한 건 사실이었다.
무려 송별회를 할 정도라니.
전생에서는 꿈도 못 꿨을 일이었다. 이들은 언제나 수뇌부의 눈에 들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그렇기에 선수끼리 다투는 일도 많았고 자기가 스포트라이트를 독식하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 이유가 뭘까.
잠시 웃고 떠드는 선수들 사이에서 생각해보던 나는 어렵지 않게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다.
‘좀 부끄러운 답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던 중, 갑작스럽게 누군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다 네 덕이다.”
바비였다.
“예?”
그가 내가 한 생각과 똑같은 말을 할 줄은 몰랐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이렇게 분위기가 좋은 건 나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야.”
“그게 전부 제 덕이라고요?”
“네가 우두머리로서 이곳을 이끌어줬기에 가능한 일이지.”
싱긋 웃는 바비.
“모두가 너와의 대립으로 인기가 더 많아졌어. 티셔츠 매상도 몇 배나 올랐고. 너를 보고 너처럼 되고 싶어서 경기를 짤 때도 집중하고 훈련도 열심히 하게 되었지.”
“그, 그렇습니까.”
“그래, 네가 지금 이 시대를 이끌고 있는 거다. 아이콘.”
심장을 울리는 말이었다.
나 역시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 같은 결론을 내렸지만, 막상 다른 선수의 입으로 직접 듣자니 어딘가 좀 기분이 이상했다.
“잘 부탁한다.”
“저야말로요.”
약간 입이 마른 채 대답한 나는 시큰거리는 어깨를 매만졌다.
격렬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역시, 내가 최고라는 사실이 어깨에 걸려 있자 그런 통증은 순식간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