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나는 러셀이 돌아올 때까지의 대립이 ‘오픈 챌린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픈 챌린지.
챔피언이 링에서 즉석으로 도전자를 받아 경기를 하는 것이다.
“제가 이렇게 대립을 이끌어나가고 싶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두가 내 말을 경청했다.
“제가 군림하는 시간은 약 다섯 달 정도일 겁니다. 뭐, 그나마도 해리슨 대통령보다는 길지만.”
미국의 9대 대통령인 해리슨은 취임 후 한 달 뒤에 죽어 가장 재임 기간이 짧은 대통령이었다.
“챔피언십의 가치를 올리기도, 다른 선수들의 위상을 함께 올려주기도 애매한 기간이죠.”
“그래서 오픈 챌린지로 최대한 많은 선수들을 상대하겠다?”
“그렇습니다. 여기 계신 바쿠가 말했죠. 선수가 똥일지라도 빛나는 똥으로 만들어 파는 게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이죠.”
나는 어쩐지 심경이 불편해 보이는 바쿠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오픈 챌린지 기간을 두고 멋진 경기를 보여준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요.”
“네 말은 이해했다.”
할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왜 나냐?”
“각본상으로 할리와 저의 대립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너와 나의 대립?”
“예, 제 협박에 의해 챔피언십의 기회를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하긴, 아직 대립의 여지는 좀 더 남아있군.”
“그래서 경기를 하잔 겁니다.”
“자, 잠깐만요. 신.”
당황한 듯 우리 두 사람의 말을 끊은 건 각본팀의 수장이었다.
“제가 이해를 잘 못하고 있는 건가 싶은데, 할리와 대립을 갖겠다는 말인즉슨…….”
“물론 경기도 해야죠.”
“60대의 노인하고요?”
“제 눈에 보이는 건 통산 8회의 월드 챔피언을 지낸 전설적인 프로레슬러입니다.”
“……음.”
할리의 눈이 조금 축축해졌다.
하지만 그런 내 말을 들은 팀장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야 당연한 일이었다.
60세의, 은퇴한 지 20년이 지난 레슬러가 경기를 가질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내 대답은 ‘경우에 따라서 불가능할 것도 없다.’였다.
할리는 그 조건을 충족했다.
부상으로 은퇴한 게 아니라서 몸도 건강했고, 운동 또한 나이를 먹은 뒤에도 꾸준히 해왔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 경기 정도는 맞춰서 하실 수 있겠죠.”
“맞춰서?”
“예. 위험한 동작은 최대한 배재한 상태에서 천천히…….”
“그럴 필요는 없다.”
할리가 내 말을 잘라냈다.
“대신, 준비할 시간을 좀 다오. 아무리 그래도 20년 만에 하는 낙법이니 다시 연습은 해야겠지.”
“……가능하겠어요?”
“괜찮아. 한 경기 정도는.”
팀장들의 걱정에 씨익 웃은 할리는 이어 날 돌아보았다.
“게다가 이런 말을 듣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도 사실이고.”
“그럼 준비가 될 때까지는 아까 말했던 둘 중 나머지 한 선수와 대립을 진행하는 걸로 할까요?”
“괜찮은 아이디어 같군.”
할리는 반응을 살피듯 팀장들을 돌아보았다. 모두들 동의의 뜻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할리가 물었다.
“그래서, 네가 대립을 생각하고 있다는 다른 선수가 누구냐?”
“말했잖습니까.”
“오픈 챌린지? 아니, 페이퍼뷰에서 대립을 진행할 상대 말이다.”
“그것마저도 오픈 챌린지로 정하는 거죠.”
“오픈 챌린지로……?”
“예, 동시에 여러 선수들의 위상을 키우기 위해서는 그것만큼 좋은 각본이 없으니까요.”
확신을 가지고 이어진 설명에 사람들이 납득하는 시간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후.
당시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던 숀 시나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메인 각본에서 빠졌다.
하지만 그 인기와 위상은 여전했다. 시나는 그것을 이용해 젊은 후배들을 띄워주기 시작했다.
메인 쇼의 2선 타이틀인 US 챔피언에 등극해 매주 다른 선수들과 챔피언전을 치른 것이다.
이를 ‘오픈 챌린지’라고 했다.
누구든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서 시나와 싸울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시나는 몇 달간 수많은 선수들을 상대로 주간 쇼에서 계속 방어전을 치렀다.
사람들은 시나라는 거물을 상대로 밀리지 않고 싸우는 선수들의 모습에 크게 흥미를 느꼈다.
이후, 시나와 챔피언전을 치렀던 선수 중 몇몇은 이후 팬들의 지지를 받는 레벨까지 성장했다.
거기에서 착안해, 나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챔피언 집권기를 지내고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목적이나 이유는 시나의 경우와는 다른 부분이 존재했다.
하나는 세 달에 한 번 페이퍼뷰를 치르는 특성을 고려해서였다.
만약 평소 같은 식으로 한 사람을 잡고 대립한다면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선수는 고작 하나였다.
다다음 페이퍼뷰에서 복귀한 러셀에게 타이틀을 건네주고 떠날 예정이었으니까.
‘한 명과 대립한 후 바로 다음에 타이틀을 넘겨주는 건 그림이 좀 안 살지.’
나는 최대한 많은 선수들과 싸워서 타이틀을 지켜야만 했다.
‘그래야만 러셀이 날 꺾었을 때 더 멋진 드라마가 나올 테니까.’
내 의견을 들은 수뇌부는 타당하다고 인정해 곧바로 오픈 챌린지와 연관된 각본을 짜주었다.
그렇게 해서 다음 주.
GCW 챔피언으로서 당연히 쇼의 오프닝을 장식한 나는 엄청난 야유 속에서 마이크를 쥐었다.
오늘 역시도 정장 차림이었다.
나는 더 이상 뒷골목 양아치가 아니라 이 GCW에서 거물로 성장한 악당이었으니까.
“다들 이렇게 날 반겨주다니. 정말로 몸 둘 바를 모르겠군.”
[Boooooooooo!]
“너희들이 그렇게 야유해도 내 어깨에 벨트가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마음껏 해보라고!”
[Booooooooooooooo~~!!]
기다렸다는 듯 야유가 한층 더 커졌다. 나는 마이크를 내밀어 관객들의 더 큰 반응을 유도했다.
모두 날 진짜로 싫어했다.
물론, 대부분 이것이 가짜라는 사실을 인지한 상태의 혐오였다.
하지만 현실의 일이 뒤섞인 내 캐릭터는 사람들이 쇼에 조금 더 깊이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아직도 날 의심하는 놈들이 많다는 건 알겠어. 하긴, 나 같은 놈이 이렇게 탑으로 서있는 게 마음에 안 드는 놈도 있겠지.”
나는 링 위를 점거한 채 하고 싶은 말을 계속해서 늘어놓았다.
“그래서 말하는데, 뭔가 불만이 있으면 그렇게 노려보지 말고 누구든 나와서 한번 붙자고.”
관객들이 동요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어깨의 벨트를 높이 치켜들며 보란 듯이 소리쳤다.
“이 벨트를 걸고서 말이야!”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기대감에 차 입장로 쪽을 돌아보았다.
누구든 좋으니 어서 나와 이 거만한 개자식의 벨트를 빼앗아 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우리가 제일 먼저 준비한 것은 가장 좋은 패였다.
그리고 이내 세찬 드럼 비트와 함께 바비 애슐리의 음악이 경기장 내부에 울려 퍼졌다.
링 위의 지배자. 바비 애슐리.
파괴적인 근육과 힘, 레슬링 스타일로 GCW 내에서 명백한 포식자의 위치에 있는 사나이.
실질적 탑페이스 도전자와 탑힐 챔피언의 GCW 챔피언십.
페이퍼뷰에서나 이루어질 법한 경기가 곧바로 시작되었다.
* * *
15분간의 혈투.
바비의 힘에 기술과 반칙으로 반격하며 멋진 경기를 치른 나는 마지막에 결국 승리를 챙겼다.
엄청난 환호와 야유가 뒤섞인 반응 속에서 일어난 나는 다시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며 카메라에 대고 다음 주 쇼를 홍보했다.
[봤냐! 앞으로 매주 쇼에서 너희가 날 존중해야 할 이유를 가르쳐주지! 오픈 챌린지다!]
쇼를 계속해서 보라는 노골적인 메시지를 담은 마이크 워크였다.
하지만 내 거만한 캐릭터에는 아주 잘 어울렸다. 나는 벨트를 들고 먼저 퇴장했다.
그리고 광고 시간……에 앞서 바비가 관객들의 응원을 받는 부분까지도 카메라에 담아냈다.
그 또한 노골적이었다.
하지만 영리한 행동이었다.
각본에는 모든 부분에 의미가 담겨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의미가 납득이 될 때 관객들은 반응을 보이고 쇼에 돈을 써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관객들이 패배한 바비를 응원했다는 사실은 우리의 의도가 먹혔다는 말이었다.
전문가들의 반응도 좋았다.
[멋지군. 러셀이 복귀할 때까지 오픈 챌린지를 하는 건가?]
[듣자니 신의 아이디어라고 하던데. 음, 이것 외에 다른 수를 썼으면 전부 다 별로였겠는데.]
[그렇지? 누구 하나와 대립을 하면 복귀 때까지 흐름이 애매했을 거야. 정말 좋은 선수야.]
[아니, 진짜로! 대체 어떻게 이런 미친 재능을 숨기고 살았는지 싶다니까? 데뷔 3년차인 바비 애슐리를 경기에서 리드한다고?]
[확실히 인디 쪽에 있을 때는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지. 영상 자체가 많지는 않았지만.]
[무슨 일일까. 대체.]
의문은 의문으로 남을 터였다.
그 뒤로도 나는 매주 쇼에 출연하고 각종 대외 활동을 펼치며 엄청나게 바쁜 시간을 보냈다.
셰무스, 칼리스타, 크리링, 기타 등등. 수많은 선수들과 매주 회의를 하고 엄청난 경기를 펼쳤다.
어차피 각 선수들에 대한 데이터는 대부분 머릿속에 있었고, 기술을 몇 번 주고받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대충 파악이 됐다.
그걸 기준으로 그 선수를 빛나게 하는 경기를 보여주었다.
최고 18퍼센트까지 치솟은 시청률은 15~16 선을 계속 유지했다.
적어도 120만 명 정도는 매주 우리 쇼를 시청한다는 소리였다.
거기에 갖가지 다른 방법을 써서 보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늘 테고 말이다.
현재 WWF 메인 쇼의 시청률이 현재 500만 명 전후를 마킹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자면, 얼추 잘 따라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애초에 WWF는 전국 방송이고 우리는 지역 방송이니까.
거기다 우리의 시청률은 지금껏 ‘상승해온 것’이다. 말인즉슨, 반응은 메인 쇼보다 훨씬 좋았다.
현재의 메인 쇼는 태도 불량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는 시기였다.
나는 내 시대가 이어지고 있는 GCW의 쇼가 훨씬 더 낫다고 자부심을 가졌다.
그렇기에 노력했다.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직원들과 끊임없이 회의하고 선수들과 합을 맞추며 계속 좋은 쇼를 만들었다.
그 노력은 결과로 돌아왔다.
2달 뒤인 9월 말.
다시금 페이퍼뷰가 찾아왔다.
[GCW 테이크다운! 사상 최대의 기록입니다! 무려 15,000명의 관객과 함께합니다!]
전국에서 우리 쇼를 보기 위해 모인 관객들이 그것을 증명했다.
메인이벤트는 나와 칼리스타, 바비와 셰무스의 페이탈 포 웨이 매치.
쉽게 말해서 일대일대일대일.
네 명의 선수가 하나의 벨트를 가지고 겨루는 단판 승부.
준비를 마친 나는 고릴라 포지션에서 다른 선수들이 앞서 입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챔피언은 마지막에 입장한다.
그것이 관례였다.
황금 벨트를 어깨에 걸친 나는 내 음악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TV 화면을 확인하자 바비의 음악이 끝나고, 모두가 긴장한 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를 보기 위해 비싼 값을 치르고 이곳에 온 15,000명의 관객.
나에게 도전하는 3명의 선수.
그리고 백 스테이지에서 이 모든 쇼를 총괄하는 이들까지도.
드디어 내 차례다.
신성한 음악에 맞춰 쏟아지는 사람들의 야유. 그걸 들으며 나는 커튼을 걷고 바깥으로 나갔다.
이런 야유도 경기가 끝날 때쯤이면 모두 환호로 뒤바뀌겠지.
나는 최고니까.
* * *
격렬한 싸움 끝에 나는 또 다시 챔피언 벨트를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경기를 뛴 세 명의 선수들은 엄청난 반응을 얻었다.
앞으로 이들이 다른 각본을 수행하더라도 관객들은 이런 모습을 기대하고 환호를 보내주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꽤나 힘들었다.
페이퍼뷰 다음 날 아침.
‘……일어날 수가 없군.’
잠에서 깨어난 나는 깊은 통증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페이퍼뷰인 만큼 평소보다 좀 더 강한 범프를 수행했다. 그리고 그 피폭 대상은 대부분 나였다.
‘챔피언이라는 게 쉽진 않아.’
그럼에도 나는 완벽하게 모든 동작을 받아주었다. 근육질 사내들의 땀과 기합이 얼룩진 공격을.
‘이렇게 말하니 좀 이상하군.’
어쨌든.
그래도 무리는 하지 않았다.
기술에 당해서 몸이 아픈 건 모조리 타박상이나 근육통이었다.
한 번 손상되면 복구하기 힘든 관절이나 척추, 목은 괜찮았다.
‘오늘은 좀 쉴까.’
일단은 의료실에 들러서 진통제라도 받아두는 게 나을 듯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일어선 나는 옆 침대에 놓아둔 챔피언 벨트를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그래도 한 단체의 얼굴인 챔피언으로 나름 잘 해나가고 있나.
물론 그럴 터였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경기들로 나는 내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무적의 챔피언임을 증명했다.
그만큼 사람들은 점점 내 다음 대립 상대가 누구일지에 대해서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
나는 할리가 슬슬 경기에 오를 준비를 마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