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65화 (65/634)

65.

고릴라 포지션 안.

한발 먼저 퇴장했던 나는 링 위에서 세리모니를 마친 뒤 돌아온 러셀을 반갑게 맞이했다.

“좀 회복됐냐?”

“그래, 걱정해줘서 고마워.”

우리는 재회를 기뻐하며 가볍게 주먹을 부딪쳤다. 그러자니 러셀을 발견한 직원들이 입을 열었다.

“러셀, 복귀 축하해요!”

“엄청난 환호였어요!”

비행기의 연착으로 그가 여기 도착한 것은 쇼가 시작된 후였다.

거기에 깜짝 복귀를 알리기 위해 러셀은 계속 주차된 밴에 숨어 있어 대부분이 지금 만났다.

사람들의 환대에 싱긋 웃은 러셀은 옆에 선 나를 가리켰다.

“다 이 친구 덕이죠.”

“맞아요. 확실히 신이 악역 챔피언으로 쇼를 든든히 이끌어줬죠.”

“쇼가 진짜로 흥행하면 고릴라 포지션이 쩌렁쩌렁 울린다던데. 그게 정말이었을 줄은…….”

“텔레비전으로 다 지켜봤어. 너와 경기를 가지면 누구든 수 배 이상은 실력이 오르던데.”

갑자기 또 칭찬의 화살이 내 쪽으로 돌아왔다. 나는 쓰게 웃으며 러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다 나은 거 맞지?”

“아무렇지도 않아. 테스트도 통과 했고. 바로 링 위에 오를 수 있을 정도야.”

“그래도 경기 전까지는 몸에 무리가지 않도록 하자고.”

“그래야지. 또 다쳐서 민폐를 끼칠 순 없으니 말이야.”

미안함을 느끼는 듯 눈썹을 찡그리는 러셀.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부상이 필요(?)할 때 잘 터져줬다는 생각을 했던 내가 더 사과를 해야 한다고 봤다.

‘속으로만 생각해서 다행이지.’

누가 부상을 당했는데 ‘유훕! 이제 각본으로 쓰자!’라고 한다면 당장에 쓰레기 취급을 받으리라.

어쨌든 건강하게 회복되어서 다행이었다. 거기에 벌크가 더 커져서 어깨를 만지니 제법 단단했다.

그렇게 우리가 재회의 기쁨을 나눌 즈음, 관객들에게 인사를 마친 할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회포를 푸는 건 락커룸에 가서 하라고, 꼬마들. 아직 다크 매치가 진행되어야 하니 말이야.”

“아, 넵. 할리.”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가 안으로 들어오자 번잡함은 더 강해졌다.

“할리! 멋졌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직 안 죽었네요!”

“……이 자식들이.”

뺨이 붉어지는 할리.

나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같이 가시죠. 할리.”

“음, 일을 도울까 했더니.”

“노인네가 그렇게 오래 벗고 있으면 감기 걸려요.”

“그런 노인네한테 얻어터진 게 어디의 누구였더라?”

“애송이 탑힐이죠.”

짓궂은 어투로 대답한 나는 뒷일은 맡긴 뒤 할리, 러셀과 함께 락커룸 쪽으로 빠져나왔다.

긴 복도를 걷던 중 링 위에서 낙법을 치느라 붉게 달아오른 할리의 등이 눈에 들어왔다.

“고생하셨어요.”

“……고맙다.”

“제가 뭘 했다고요. 사람들 반응이 정말로 어마어마하던데요.”

“내게는 더 이상 그런 반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지.”

“그래요?”

“그래, 아무리 옛날에 그랬어도 지금의 내가 그만한 환대를 받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생각했었다.”

할리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링 위에서 피와 땀을 흘리지도 않는 자신이 그만한 반응을 받는 건 좀 미안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네 덕에 오늘 밤은 아주 푹 잘 수 있겠어.”

“다행이네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오늘 할리의 모습을 보고 어떤 노인은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몸을 비춰보지 않을까.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말이다.

그리고 손주와 함께 경기장을 찾고, 연금으로 티켓 값을 지불하고 티셔츠를 사준다면 최고겠지.

“그냥 아예 선수 복귀하시죠?”

“관 하나만 예약해두고.”

시니컬하게 대답한 그가 허리를 만지며 락커룸 안으로 들어섰다.

기다리고 있던 선수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할리를 맞이했다.

‘확실히 오늘 밤은 푹 자겠군.’

나는 속이 시원한 듯 웃는 할리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 * *

쇼가 끝난 뒤.

회사로 돌아온 선수들은 휴게실에 모여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나도 빠짐없이 챙겨들었겠지만, 오늘은 내용이 예상 되어 그냥 중간에 빠져 나왔다.

‘어차피 극찬하겠지.’

고요한 밤이었다.

풀벌레가 우는 가운데, 인근 주유소까지도 꽤나 거리가 있는 회사에는 적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생각에 잠기기에는 편했다.

‘러셀이 생각보다 빨리 왔군.’

원래대로라면 그의 복귀는 다음 페이퍼뷰의 직전이 되었어야 했을 터였지만, 이렇게 되고 말았다.

현재 10월 초.

다음 페이퍼뷰는 12월 중순.

말인즉슨 대략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주간 쇼에서 대립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과연 가능할까?’

이리저리 고민해 보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는 답이 나왔다.

그처럼 길게 대립을 가져가는 것은 GCW 스타일이 아니었다.

모든 대립은 페이퍼뷰에서 끝낸다.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메인과 달리 페이퍼뷰가 세 달에 한 번이었다.

그렇기에 대립을 끌고 나갈 때, 다양한 방식으로 그걸 극복했다.

중간에 대립을 끝낸다던가. 세 사람이 대립을 한다던가. 아니면 팀이 대립을 하는 식으로.

하지만 나와 러셀의 대립을 그렇게 오래 끌고 갈 수는 없었다.

왜냐면 우리의 대립은 내가 러셀을 배신한 순간부터 지금껏 이어져 왔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러셀의 귀환을 기다렸다. 내가 누구와 대립을 해도 러셀에 대해서 기억했다.

그렇기에 할리를 도와주며 나타난 러셀은 나에 버금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건 사람들이 그만큼 그를 기다렸다는 뜻이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늘어지게 할 수는 없었다.

지금부터 대략 열 번의 쇼.

2개월 반.

그렇게 오랫동안 대립을 이어나간다면 분명 다들 지칠 테니까.

‘최대한 빠르게. 하지만 충분히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각본으로.’

러셀에게 벨트를 넘겨 차기 탑 페이스가 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면 나는 원하던 대로 1년이 넘도록 이어진 신의 이야기를 끝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예상한 대로 반응이 나온다면 나는 몸값을 잔뜩 올린 상태에서 메인으로 갈 수 있겠지.

‘거기다 직업적인 만족감(?)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을 거고.’

이런 식으로 멋진 스토리는 선수 경력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부디 잘 되기를.

그런 결론을 내릴 즈음,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러셀?”

“……여기서 뭐해?”

아까 전부터 선배들로부터 잔뜩 복귀에 대한 축하(?)를 받고 있던 녀석은 무척 지친 얼굴이었다.

녀석이 양손에 들고 있던 비타민 음료 중 하나를 내게 건넸다.

“고민 좀 하느라고.”

“스토리? 막혔으면 각본 팀하고 회의를 해보는 게 낫지 않아?”

“그래야겠어. ……근데 이거 웬 거야? 냉장고에 보니 없던데.”

“시나하고 마신 날 밤에 남은 거야. 내 방에 그대로 있더라고.”

“……마셔도 괜찮은 걸까.”

“유통기한은 남았던데.”

나는 러셀이 먼저 한 모금 마시는 걸 본 뒤에 마시기로 했다.

별생각 없다는 듯 비타민 음료를 꿀꺽 마신 녀석이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집에서 느긋하게 쇼 보면서 느낀 건데.”

“응.”

“우리 어머니가 너 집에 오면 죽이겠다고 메이플 시럽을 크게 한 통 준비해놓으셨더라고.”

“……메이플 시럽?”

“캐나다인은 그걸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기술을 배워.”

“처음 듣는 소린데.”

“가르쳐줄까.”

싱긋 웃는 러셀.

스스로 차별적인 농담을 해오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마 날 편하게 느껴서 그러는 거겠지.

왠지 우리 어머니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슬링 가문에서 태어났어도 어머니라는 존재는 결국 별반 다르진 않은 것일까.

“어쨌든, 역시 링 위의 넌 다른 누구보다도 멋졌어. 나라면 사람들의 야유에 파묻혀버렸을 텐데.”

“과찬이야.”

“하지만 하나가 계속 걸렸지.”

“응?”

“윌리와의 이야기는 어쩔 거야? 지금처럼 계속 무시하려고?”

“글쎄.”

“……물론 이렇게 넘어가는 것도 방법이겠지. 하지만 영 석연찮아.”

러셀은 좀 복잡한 얼굴이었다.

결국 GCW는 지금껏 윌리와의 일을 없던 일처럼 굴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없었던 일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렇게 넘어가는 건 우리가 윌리를 GCW에 초대해 기쁨을 줬던 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소년이 세상을 떴기에, 함부로 언급해오지는 않았다.

완전히 체크 메이트였다.

……완전히 마음을 정할 때까지는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빙긋 웃으며 물었다.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나?”

“그래, 어떻게 생각해.”

“지킬 건 지키고 싶지만, 그 선을 정하는 게 힘들 것 같아.”

“선?”

“네가 부정적인 반응을 얻기 위해 쇼에서 윌리를 모욕한다던가.”

“하지만 내가 널 배신한 시점에서 이미 그렇게 되지 않았어?”

“그건…….”

러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이 맞았다.

윌리와의 약속을 깬 시점에서 이미 우리는 선을 넘었다. 현실의 사건이 각본에 더해져버렸다.

화제성을 위해 태그 팀을 쪼개고 윌리를 다시 이용한 것이지.

다들 그렇게 생각할 터였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러셀. 아직 우리 둘의 대립은 끝나지 않았잖아?”

“뭐?”

“끝나기 전까지는 이 모든 걸 바로 잡을 기회가 있다는 거야.”

“…….”

“윌리가 전에 그랬었거든. 대니라는 친구와 싸웠기에 우리 둘은 싸우지 않고 지냈으면 했대.”

“대니?”

“자기는 화해하지 못했고, 대니는 영영 돌아오지 않게 된 거지.”

“……그렇군.”

“근데 그게 말이나 돼? 사람이 안 싸운다니. 더군다나 우리 둘은 1년 전만 해도 서로 치고 박고 싸우면서 커리어를 시작했지.”

“그 말은…….”

“나는 나에 대해서 말하고, 넌 너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고 한바탕 싸운 끝에 서로를 이해한다. 그거면 멋진 각본이지 않겠어?”

그 말을 들은 러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이내, 녀석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에보니와 이야기하고 깨달았다. 윌리를 무시하고 넘어가는 게 실례라는 사실을.

러셀도 그에 동의했다.

“확실히, 넌 날 배신할 만하지.”

“맞아. 나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인간이니까.”

“난 그런 너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을 테지. ……그렇기에 신을 단순히 미워하지만은 않을 거야.”

“나 역시도 정말 널 싫어해서 공격했던 건 아닐지도 모르지.”

“호오…….”

러셀은 마치 연극의 배우가 역할에 깊이 빠져드는 것 같았다.

이어 날 바라보는 녀석의 시선이전과 달리 조금 복잡해졌다.

녀석은 녀석대로 아이디어를 내고, 난 나대로 제시한다. 그리하여 각본의 끝이 지어질 터였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우리는 윌리에 대해서 이야기할 거야. 경기하기 바로 전 주에.”

그렇게 말한 나는 러셀을 향해 비타민 음료를 내밀었다.

가볍게 건배.

* * *

그렇게 하여 마침내, 나와 러셀의 대립 각본이 시작되었다.

기간은 3주.

4주째에 경기해서 벨트를 넘겨줄 예정이었으며, 그때까지는 링 세그먼트와 프로모로 대립을 발달시킬 예정이었다.

그리하여 러셀과 나의 본격적인 대립이 시작된 첫 번째 쇼.

오프닝을 장식한 러셀은 찢어지는 기타 리프와 함께 사람들의 환호를 받고 링 위로 올라섰다.

[많은 일이 있었죠.]

그렇게 해서 녀석은 담백하게 자신의 일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딱히 기술은 필요 없었다.

괜히 우렁차게 과장된 동작으로 말할 필요도 없었다. 사람들은 러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괴로웠습니다. TV쇼를 보는 것도 버거웠죠. 하지만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 계속 보았습니다.]

감정을 최대한 절제한 말.

[녀석과 챔피언 벨트를 두고 싸울 날을 기다리면서 말이죠. 저는 이제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에 적합한 장소도 생각해두었죠.]

하지만 그것이 도리어 현실감을 더해주었다. 러셀은 지금 최대한 분노를 절제하고 있는 것이었다.

관객들의 호응 역시 좋았다.

이 대립의 끝은 내가 GCW에서 할 마지막 경기가 될 터였다.

거기다 상대는 러셀이었다.

내 1년 반의 커리어를 거의 대부분 함께해온 라이벌 선수.

그렇게 오래도록 이어진 대립에 끝을 내기 위해서는 분명 그만한 무대가 필요한 법이었다.

[바로 ‘스틸 케이지’입니다.]

우리는 철장 안에 갇힌 야수가 되어 싸울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정은 예정일 뿐.

며칠 뒤, 일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