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74화 (74/634)

74.

그로부터 며칠 뒤.

훈련을 하고 있자니 바쿠가 곤란하다는 얼굴로 날 찾아왔다.

“신, 신!”

“……제가 도라이몽입니까.”

“큰일이야!”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요?”

“GCW 이어 어워즈의 수상자 명단에 큰 문제가 생겼어.”

“거기에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GCW Year Awards. 다시 말해 한 해를 돌아보고 활약한 선수들에게 상을 주는 시상식이었다.

방송계에 흔히 있는 시상식 같은 거다. 이번에는 분명히 많은 상을 받으리라고 예상했다.

난 쩔어줬으니까.

내가 아니라면 누가?

……그런 생각을 하긴 했는데.

바쿠의 이야기를 듣자 약간 황당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시청자 투표를 받았는데 모든 표가 너에게 집중되었다고!!”

“……예?”

“이걸 봐!”

바쿠가 종이를 내밀었다.

1. 올해의 남성 선수.

2. 올해의 여성 선수.

3. 올해의 챔피언.

4. 올해의 태그 팀.

5. 올해의 대립.

6. 올해의 경기.

7. 올해의 신인.

“제가 올해의 여성 선수상까지 수상할 줄은 몰랐는데요.”

“2번과 7번은 빼! 그 나머지 모두 네가 수상자란 말이다!”

“그렇군요.”

“제기랄, 이렇게 모든 상을 독식해도 되는 건가 싶지만…….”

잠시 입을 다물었던 바쿠는 이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너니까 괜찮겠지. 그 어떤 놈도 반박할 수 없을 거다.”

“러셀이 없어서 아쉽네요.”

“그 녀석은 내년이 있으니 괜찮을 거다. 아마 너보다 더 굉장한 기록을 쌓을지도 모르지.”

“잘 됐으면 좋겠네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낄낄 웃은 바쿠가 사무실로 돌아갔다. 나는 몸이 식은 걸 느끼고는 이쯤에서 끝내자고 생각했다.

‘좀 쉬어둘까.’

그렇게 생각하며 탈의실로 들어선 나는 묘한 광경과 맞닥뜨렸다.

선배 레슬러들과 나의 오랜 친구인 애덤이 서있는 게 보였다.

다들 타올 한 장만 걸친 채 애덤을 압박하는 모습이었다.

바지는 좀 입지.

“야야, 좋냐? 좋아?”

“아닙니다!”

군기가 바싹 든 애덤.

“신인상 받아서 좋아?!”

“아닙니다! 좋지 않습니다!”

“안 좋아? GCW에서 너 같은 찌꺼기한테 신인상을 준다는데 기쁘지 않다는 거냐?!”

“기, 기쁩니다!”

“…….”

정말 신나게 괴롭히는군.

처음에 날 건드렸기 때문인지, 애덤은 지금까지도 갈굼을 받았다. 참으로 불쌍한 녀석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서있자니 선배들이 이내 날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내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어, 운동 끝났냐?”

“예, 좀 씻으려고요.”

“미안하다. 길 막아서.”

옆으로 비켜서는 칼리스타.

덩치는 작았지만 그가 선수 중에서는 가장 성격이 불같았다.

듣자하니 멕시코 스타일의 갈굼으로 애덤이 바지에 오줌을 지리게 만든 적도 있다고 했던가.

애덤은 죽어가는 몽골리안 햄스터 같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불쌍하니 좀 도와줄까.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응? 무슨 소식.”

“이번에 제가 상 다섯 개를 모두 받게 된다고 하던데요.”

“아, 그거.”

“당연한 일이지. 네가 올해 얼마나 큰일을 했는데. ……그에 반해 여기 이 찌꺼기 놈은.”

어라.

“네가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

“아닙니다!”

“야, 인마. 나 때는 신인상도 은퇴할 때 받고 그랬어. 알아?”

“어, 음……!”

“왜, 거짓말 같냐?”

“아, 아아, 아닙니다!”

상황이 악화되었다.

나는 울상이 된 애덤의 시선을 피해 샤워실로 들어섰다.

힘내라. 애덤.

* * *

GCW 이어 어워즈는 GCW 주간 쇼를 대신해 TV로 방영되었다.

선수들은 파트너를 데려오는 것이 관례였고, 잠시 고민하던 나는 에보니를 초대했다.

이제 위로 올라가면 못 만날 텐데, 그전에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내 전화를 받은 에보니는 당황했는지 머뭇거리다 겨우 대답했다.

[……드레스를 입어야 할까요?]

“예, 대여도 가능할 텐데요.”

[그렇다면 ‘또’ 염치 불구하고.]

그렇게 나는 에보니를 파트너로 삼아 GCW 이어 어워즈에 참가하게 되었다.

애틀랜타의 한 호텔.

실시간으로 방송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나는 어색한 턱시도 차림으로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이곳에서는 케이페이브를 지키지 않아도 괜찮았다. 하지만 다들 적당히 즐기는 모양새였다.

그렇기에 나는 평소처럼 적당히 자신만만한 자세를 유지했다.

“신 선수, 올해 이어 어워즈의 수상을 확신하고 계신가요?”

“당연하죠. 제가 아니면 누가 받겠어요? 올해는 신의 해였죠.”

그런 식이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안으로 들어가자 화려한 파티장 안에 원형 테이블이 늘어서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각 후보와 그에 걸맞은 영상을 보여준 뒤, 시상자 커플이 앞으로 나와 수상자를 발표했다.

‘제대로군.’

에보니와 함께 테이블에 앉은 나는 식이 진행되는 걸 보았다.

참고로 말하자면, 다른 평범한 시상식처럼 모두 준비를 해왔다.

올해의 경기.

“러셀과 제 경기가 선정이 되어서 기쁩니다. 다 제 덕이죠.”

올해의 태그 팀.

“러셀과 제 태그 팀이 선정되어 무척 기쁩니다. 다 제 덕분이죠.”

……그런 식이었다.

사람들은 건방진 소리를 해대는 내게 큰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수상한 다섯 개의 상.

신기록이었다.

‘전생에는 하나도 못 받았는데.’

그걸 몰아서 받는 것 같았다.

트로피는 도금된 링 벨이었다. 생각보다 묵직했기에 전용 수납함에 넣어서 가져갈 예정이었다.

그렇게 시상식이 전부 진행된 뒤에는 곧바로 파티가 이어졌다.

방송용 카메라가 꺼졌고, 다들 마음껏 마시고 즐기기 시작했다.

나와 에보니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신기하네요.”

“뭐가요?”

“링 위에서 싸우던 사람들이 사이좋게 파티를 즐기고 있다니.”

“저도 그런데요.”

“후후, 하긴 그렇죠. 당신하고 러셀은 정말로 상대를 증오하는 것처럼 싸워서 좀 놀랐어요.”

“그래야 설득력이 있죠.”

“대단하네요. 기술도 진짜로 다 맞아주는 거잖아요? 나라면 무서워서 레슬링은 못할 것 같아.”

납득했는지 웃는 에보니.

“상대방을 믿는 거죠.”

“그래도 아프지 않아요?”

“예, 참는 거죠.”

“……뭐 하나 물어봐도 되요?”

“얼마든지.”

“왜 이 일을 하는 건가요?”

“그런 순간이 좋아서죠.”

“그런 순간……?”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 순간.”

내 말을 들은 에보니는 스파클링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돌연 고백을 했다.

“사실, 당신이 러셀을 처음 배신했을 때 심한 욕을 했어요.”

“어떤…….”

에보니가 욕을 했다.

너무 심한 말이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하게 된 거죠. ‘이건 결국 각본인데 왜 화가 난 거지?’ 하고요. 이 각본이 현실과 연결되었기 때문일까요?”

단어를 신중히 고르는 에보니.

그 앞에서 나는 눈을 바로 뜨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윌리요.”

“……예.”

“그래서 러셀을 배신한 겁니다.”

“왜죠?”

“그런 꼬마 하나의 말에 휘둘려서 해야 할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도리어 위선일 테니까요.”

더욱이 아프다고 해서, 더욱이 죽었다고 해서.

사람은 보통 누군가 죽으면 그전보다 예의를 갖추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착각을 많이 했다. 무작정 그것을 신격화하고 이야기하길 꺼린다.

그리고 점점 잊는다.

에보니 역시 그랬다.

나는 그것이 싫다고 느꼈다.

내가 전생에 기억될 새도 없이 죽어서 잊혀 졌기 때문일까?

그렇기에 나는 이것이 윌리에게 갖춰야 할 예의라고 생각했다.

아주 잠깐 만났을 뿐인 꼬마에게 휘둘리기보다, 더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래서 싸웠죠. 뭐, 사내놈들은 다 싸우고 크는 거 아닙니까.”

“그런 것치고는 너무 심하게 욕하고 싸우지 않았나 싶은데.”

“저는 러셀을 사랑하니까요. 사랑하는 만큼 증오도 큰 거죠.”

내 말에 에보니가 킥킥 웃었다.

뭔가 좀 후련해진 얼굴이었다.

파티장.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모두가 외부인처럼 느껴졌다. 잠시 심호흡을 한 에보니가 날 바라보았다.

“……윌리가 봤을까요?”

“저희 이야기를요? 당연하죠.”

“어떻게 확신하세요?”

“하나님도 제 팬일 테니까요. 천국에 TV 한 대쯤은 있겠죠.”

나는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런 내 말을 들은 에보니는 한바탕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슬쩍 다가와 보타이를 당기고 내 뺨에 입술을 맞췄다.

“고마워요. 챔피언. 당신은 정말로 멋진 남자에요.”

“별말씀을.”

너스레를 떨며 대답한 나는 에보니와 샴페인 잔을 맞부딪혔다.

정말로 멋진 마지막 밤이었다.

* * *

나는 그렇게 GCW를 떠났다.

상으로 받은 링 벨은 둘 곳이 없어 일단 본가로 보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어휴, 준호야! 왜 이렇게 오랜만에 전화했어!]

“어, 엄마.”

[집에 뭘 보낸 건지는 몰라도 아주 좋아! 아주 잘 쓰고 있어!]

“……남을 죽일 때 머리를 내리치는 용도로 쓰시는 건가요?”

[아니, 아니! 이 레코드판 같은 게 누름돌로 딱 좋지 뭐니!]

“누름…… 뭐요?”

[엄마가 이번에 김장을 했거든!]

와! 김치!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누름돌이군요.”

것보다 아들이 밖에서 잘 나가고 있는데 좀…….

[그리고 네 경기도 봤어!]

“보, 보셨다고요?!”

[음,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봤어! 애들이 엄청 좋아하던데? 이번에 대학 간 엄마 친구 영숙이 아줌마네 딸 미숙이 알지? 걔가 너랑 그 러식인가? 둘이 싸우는 거 보고 막 울더라니깐!]

“……러식이요.”

잠깐 당황해 대답했던 나는 이내 눈물이 나려는 걸 느꼈다.

전생에는 부모님께 아들이 제대로 된 레슬링하는 거 한 번 못 보여드렸는데.

[아, 그리고 이번에 옆집 영진이가 학교에서 토머스의 다리를 부러뜨려서 또 정학을 당했어!]

“…….”

[넌 왜 못 부러뜨리니? 너 혹시 일부러 져준 거 아니지? 엄마 아들, 승부 조작 같은 거 안 하지?]

부러뜨리면 큰일나유. 엄니.

아직도 프로레슬링이 진짜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었다.

쓰게 웃으며 통화를 마치고, 이어서 티파니 맥센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파티장에서는 잠깐 대화를 나눈 정도였지만, 그녀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도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 바빠요?]

“이동 중입니다.”

나는 워싱턴 D.C.에 도착한 버닝콩의 현장 팀과 합류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타고 있었다.

[아버지가 현장에 복귀하셨대요. 제가 이야기는 해뒀는데,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잘 모르겠네요.]

“……뭐, 대충 짐작이 갑니다.”

[그래요?]

“어쨌든 중요한 건 회장님께 제 능력을 보여드리는 일이겠죠.”

[자신만만하네요.]

“아뇨, 쉽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 지금껏 WWF에서는 저 같은 동양인이 선수였던 적조차 거의 없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죠. 하지만 당신은 증명해보인 게 있잖아요? 아마 잘만 이야기하면 괜찮을 거예요.]

“뭐, 일단 쇼에 적응하는 게 먼저겠죠. 노력해보겠습니다.”

[걱정 마요. 그쪽에는 단단히 이야기를 해뒀으니까. 아, 그보다. 당신 친구 중에 메인 쇼에 있는 사람이 있지 않았던가요?]

“시나요?”

[아, 예. 시나. 그 친구 최근 소식 혹시 들었어요?]

“메인 쪽에 올라가서는 연락이 좀 뜸했는데. 무슨 일이죠?”

[그쪽 팀에서 지금 평판이 무지막지하게 안 좋아서 지금 잘리기 일보 직전이라고 들었어요.]

“…………잠깐만요.”

나는 전화를 끊고 차의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반대편에서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와, 신?!]

“어, 난데. 요새 잘 지내?”

[응! 나는 무척 잘 지내!]

연기를 못하는군.

아니, 거짓말을 못하는 쪽인가.

어쨌거나 시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말은 사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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