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86화 (86/634)

86.

그렇게 시작된 메인 이벤트.

레볼루션의 두 사람이 먼저 링 위에 올랐다. 사람들은 평소보다 그들에게 더 큰 야유를 보냈다.

사실 레볼루션은 악역 스테이블이었으므로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링 위의 바티스타나 오튼은 꽤나 당황한 눈초리였다.

그야 당연했다.

레볼루션의 멤버들은 지금껏 헌터의 각본 통제 아래에 철저한 위상 보호를 받아왔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레볼루션은 악역이었지만 좋아하는 팬들 역시 많았다.

어쨌든 그들은 최종전에서 승리하고 계속 벨트를 지켜왔으니까.

하지만 그건 선역들을 죽이면서 낳은 결과였다. 때문에 업계는 추락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지표상으로 그렇게 큰 표시가 나지는 않았지만.’

선역의 통쾌한 승리가 없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흥미를 잃었다.

그렇다고 해서 락콜드의 ‘태도 불량 시대’처럼 완전히 자극적으로 갈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대가 변화하며 방송국이나 심의 위원회에서 점차 내용에 대한 규제를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점차 예전 시대의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없는 순간이 다가왔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회사에서는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고자 했다.

따라서 이전 시대의 조역이었던 헌터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었다.

참으로 안일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회사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과감한 변화를 꾀하기에는 아직까지 그 근거가 부족했다.

그렇기 때문에, 레볼루션은 어찌 보자면 내게 필요한 아군이었다.

사람들은 분명 이들을 박살 내고 버닝콩에 평화를 되찾아줄 선역의 존재를 갈망하고 있을 터였다.

그게 바로 내가 되었다.

부커가 먼저 나갔다.

사람들은 흥겨운 힙합 음악과 함께 등장한 그를 보고 열광했다.

‘역시 팬-페이보릿답군.’

실력적으로 모난 부분도 없고 멋진 근육질에 연기력까지 출중한 그는 확실히 멋진 선수였다.

팬들을 잔뜩 열광시킨 그는 입장로 위에 멈춰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 맞춰 고릴라 포지션의 직원들이 기기를 조작했다.

그리고 흘러나온 건, 근 6개월 만에 다시 듣는 음악이었다.

그레고리안 성가와 덥스텝.

성스럽지만 천박한 음악.

“복귀를 축하해요. 신.”

싱긋 웃은 티파니의 축하와 함께 나는 커튼을 걷고 나갔다.

[Yeeeeeeeeeeeeeaaaaah!!!]

그야말로 엄청난 환호였다.

거기다 이건 단순히 선수의 등장을 환영하는 게 아니었다.

모든 조지아의 사람들이 기다려온 전설의 귀환이었다.

탄흔 재킷.

러닝 셔츠와 청바지.

특유의 삐딱한 자세.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있는 남자.

신이 돌아왔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엄청난 챈트에 내 옆에 서있던 부커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다가온 그는 고막에 때려 박히는 음악을 쳐내듯 크게 소리쳤다.

“엄청난데?!”

“이게 평균이죠.”

건방진 대답을 한 나는 팔을 펼치며 관객들의 성원에 대답했다.

사람에 대한 첫인상처럼 선수의 복귀 순간 역시 중요한 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 대한 지금 사람들의 반응은 원래 예상하던 반응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챈트와 환호.

관객들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나에게 손 한번 잡아달라며 바리게이트 밖으로 손을 뻗었다.

링 아나운서가 소리쳤다.

[출신! 캘리포니아 로스 엔젤레스! 195cm에 110kg! 신!!]

소개가 끝나는 순간, 나는 머리 위로 힘차게 검지를 치켜들었다.

쾅! 콰앙! 콰콰콰콰콰쾅!!

등 뒤로 폭발이 일어났다.

지면에서 크게 솟아오른 불꽃이 나의 귀환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한발에 대략 일천 달러쯤 하는 폭죽이 내 앞길에 빛을 밝혔다.

등장만으로도 거진 메인 이벤터 급의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텔레비전 앞의 시청자들도 생각하겠지.

‘저놈, 보통 놈이 아니다.’

오늘의 쇼는 분명 세간에서 큰 회자가 될 터였다. 신의 이미지 정착에 꽤나 큰 도움을 주겠지.

그런 상황을 완벽히 만들어낸 나는 부커와 함께 링에 올랐다.

오튼과 바티스타가 그런 우리에게 압도되어 링 아래로 내려갔다.

이게 시사하는 바는 컸다.

신으로 돌아온 나는 레볼루션의 두 사람과 비슷한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 * *

경기는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

핫 태그를 하는 것은 평소처럼 부커가 아닌 내 몫이 되었다.

쇼의 주인공은 나였다.

나는 오튼과 바티스타를 완벽히 제압하며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그렇게 쇼가 끝났고.

“후우.”

나는 귀가 약간 먹먹한 것을 느기며 락커룸에 앉아 있었다.

다들 퇴근한 뒤.

링을 해체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바로 헌터였다.

일부러 그를 불러낸 것은 나였다. 약속 시간은 꽤 지났지만 헌터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예상했던 터라 락커룸에 나는 덩그라니 놓인 라디오를 틀었다.

채널을 맞추고 기다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목소리가 나왔다.

그동안 계속 듣기는 했지만 오늘 같은 반응은 오랜만이었다.

레슬링 전문 기자들의 목소리는 흥분을 최대한 감추고 있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흥분을 한 상태라는 이야기였다.

[……요새 WWF가 미쳤나?]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어썸한 각본을 만들 리가 없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GCW 역시…… 그랬었지.]

[무슨 말이야? GCW는 지금 러셀이 아주 잘 하고 있는데.]

[그걸 되짚어보라고. GCW의 아이콘에 다다르게 될 테니까.]

[아아, 신을 말하는 거군.]

[그래, 이번에도 그렇지. 대충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이번 각본을 주도한 게 신이라더군.]

[쿵-퓨리 때도 멋지긴 했어. 패러다임 시프트였지. 기존에 우리가 알던 세계를 멋지게 부쉈어.]

[선수들이 으레 캐치프레이즈를 말하긴 하지만, 이 친구는 정말로 그걸 현실에서 실현하고 있지.]

내가 원하던 반응이라 좋았다.

나는 현실에서도 그렇고, 각본에서도 언제나 그걸 위해 노력했다.

전문가들은 지금 그것을 정확하게 꿰뚫어 봐준 것이었다.

왜 내 캐치프레이즈가 ‘Break The World’인지를 말이다.

말은 계속 이어졌다.

[프로레슬링이란 무엇인가. 이 친구를 보자면 그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어.]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지.]

[그건 회사에서 하는 말이고. 사람마다 다 생각이 다를 거야.]

[그렇지. 그리고 이 친구는 우리가 알던 프로레슬링을 부수고 있어.]

[처음 메인에 올라왔을 때는 어떻게 되나 싶었는데. 나름대로 무기를 하나 잘 만들어두었더군.]

[무기?]

[티파니 맥센.]

[아, 그녀도 이번에 복귀했지?]

[티파니가 GCW를 맡았단 이야기는 했지? 그게 알고 봤더니 신의 작품이었고……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 각본에 스며든 거지.]

[GCW를 더 키우겠다는 거군.]

[어쨌든 만들어둔 사업장 중 하나니까. 바트도 변화를 필요로 하는 시점이니 한번 맡겨본 거겠지.]

[그리고 엄청난 대박이었어.]

[맞아. 오늘 오튼이 신을 제대로 공격하지 못할 정도였어.]

[푸하하! 그 자식은 아직 멀었군. 관객이 한 대 때릴 때 야유한다고 악역이 멈추다니.]

[많이 부족한 친구라니까.]

“헛소리를 듣고 있군.”

목소리가 이어졌다.

고개를 돌린 나는 문 앞에 폼을 잡고 서있는 헌터와 그 줄줄이 비엔나소시지들을 발견했다.

“혼자 오실 줄 알았는데.”

“끝나고 다 같이 맥주나 마실까 했거든. 자네도 함께 가겠나?”

“술 안 마시는데요.”

“아쉽게 됐군. ……할 이야기가 있다면 다들 나가있으라고 할까?”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나는 빙긋 웃었다.

그와 함께 돌아보자 문 바깥에 서있던 오튼과 눈이 마주쳤다.

세 사람은 헌터의 눈짓에 별 저항 없이 물러갔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이야기 좀 할까 했죠.”

“그래? 이 쓰레기 라디오에 관한 심도 깊은 토론 같은 거?”

“저는 뭐, 딱히 그렇게 나쁜 내용 갖지는 않은데요.”

“업계의 비밀을 떠벌리니 문제지. 이 개자식들이 심어놓은 스파이로 인해 쇼의 몰입이 깨지고 흥행에 방해가 되잖나.”

“어차피 다들 가짜라는 걸 아는데 뭐 어때요. 중요한 건 사람들이 보고 싶은 내용을 보여주느냐 마느냐죠.”

그러고 보니 헌터는 이 뉴스레터의 아저씨들이 징할 정도로 깎아내리는 선수 중 하나였다.

거의 뭐 선수 취급도 안 할 정도니 말 다 했지. 그리고 내 생각과는 무척이나 달랐다.

헌터 역시도 WWF 역사상 순위권에 들어가는 멋진 선수였다.

다만 너무 욕심을 부린다는 인식이 있어 사람들로부터 크게 저평가를 당하는 것에 불과했다.

‘사실 자업자득이긴 한데.’

그래도 어깨에 힘 좀 뺄줄 알면 좀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어쨌거나.

“오늘 어땠어요?”

“오늘?”

“쇼 말이에요. 잔뼈 굵은 당신이라면 어떻게 보셨을까 해서.”

“날 바보로 만드는 쇼였지.”

헌터가 날 힐끔 노려보았다.

“갑자기 되도 않는 ‘계약서 사기 각본’에 참여하라고 해서 우리 위상은 완전히 박살이 났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가?”

“제가 GCW 챔피언 시절에 이미 당신하고 만나봤죠. 그런 의미에서 이런 각본도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죠.”

“내가 네놈이 두려워서 계약서를 조작했다는 각본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물론이죠. 당신은 좀 더 날 두려워할 필요가 있어요.”

“내가 왜?”

“그래야 새 돈줄이 생기니까.”

나는 라디오를 툭 껐다.

고요한 정적.

바깥에서 장비가 해체되는 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정신 차리라고. 헌터. 쇼가 망해가고 있다는 게 안 느껴지나?”

“……올해 1분기 실적이 크게 뛴 걸 보고선 말하는 거겠지?”

“그건 당신네 덕이 아니라 새로 체결한 TV 계약 때문이잖아.”

“그 계약을 누가…….”

“락콜드지. 병신아.”

나는 험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헌터를 부른 이유는, 확실히 주지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쇼는 앞으로 변화한다.

나는 느꼈다.

오늘의 반응을 보자면 확실히 바트 맥센은 우리를 밀어줄 터였다. 하지만 문제는 남았다.

레볼루션은 납득하지 못할 터였고 비협조적으로 굴 공산이 컸다.

내가 티파니라는 절대적인 카드를 가진 이상 뭔 짓을 할 수는 없겠지만. 그와 별개로 같이 일하는 건 바로 이 인간들이었다.

때문에 설득해야만 했다.

벨트를 내려놓는 각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 떡대를 주무르기 위해서는 일단 위협이 중요했다.

……사실 난 딱히 이런 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럼에 2004년의 레슬러 세계에서는 이렇게 해야만 했다.

“더 팍, 맥카인드, 캐스켓-테이커. 그다음이 당신이야. 당신이 그 시대의 주인공이 아니었다고.”

“……말조심해라. 꼬마.”

“꼬마? 날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똑바로 행동하고서 말해.”

난 헌터를 몰아붙였다.

자리에 앉은 그는 내가 바싹 다가섰음에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뉴스레터의 인간들과 같은 심리였다. 오히려 너무 화가 나 그것을 뒤로 미뤄두는 것이었다.

“당신 장점을 살리라고. 당신이 가진 최고의 장점은 바로 스타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거야.”

“누구? 너를?”

“아니, 부커-리지.”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그 무대는 레슬 임페리움야. 그렇게 되어야 마땅해.”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내기할까? 아, 하지 않았나? 그리고 당신은 패배했지. 사람들이 쿵-퓨리가 웃긴 새끼였다고 해서 내 복귀를 우습게 여겼나?”

“조지아니까 그렇지.”

“조지아의 반응이 세계에 퍼졌어. 나는 그만한 수준이 되었지. 하지만 오튼은? 멍청이 소리나 듣는 게 전부잖아?”

“…….”

“잘 들어. 오튼의 재능은 일류야. 하지만 잘못된 부킹이 지금 그 자식을 선수로 망치고 있지.”

“지금 바트의 부킹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이 새끼, 떠넘기네? 레볼루션이 바트 아이디어야? 그쪽 아이디어지. 내가 호구로 보여?”

다시금 침묵하는 헌터.

잠시 버티던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각본이 좋았다는 건 인정하지. 하지만 그 기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는 거야.”

“난 안다니까?”

회귀했다고!

다 알고 있어!

……물론 그렇게까지는 말할 수 없었다. 헌터는 목까지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방을 나갔다.

나는 그 거대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낄낄 웃었다.

‘재밌는데?’

해보니 의외로 좋았다.

헌터는 한마디도 반격하지 못했다. 내가 저 괴물 녀석에게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을 줄이야.

뭐, 자존심 때문인지 앞으로도 꽤나 저항해올 느낌이지만.

‘뭘 어떻게 막으려고?’

우리는 앞으로 레볼루션을 상대로 삼아 위상을 올릴 텐데.

그렇게 생각한 나는 이내 짐을 챙겨 호텔로 돌아갔다.

함께 술을 마시자는 선수들의 연락을 무시하고 티파니와 각본 이야기를 하자는 약속만 정해두었다.

그리고 얌전히 잠을 자려던 내게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늦은 밤.

폴더폰을 펼쳐 확인해보자 생각도 못한 인물이 보낸 것이었다.

[잠깐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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