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98화 (98/634)

98.

여기 압정이 있다.

“…….”

오튼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그리고 반대로 우리 주변에 모인 선수들은 다들 즐거운 듯 낄낄거리며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어차피 자기가 겪을 일이 아니란 거겠지. 게다가 오튼은 이들이 보기에 건방진 신인이었으니까.

압정을 경기의 최대 스팟으로 정해 이루어지는 하드코어 매치.

WWF 내에서 알음알음 있어 왔던 경기였고, 방송에 내보낼 수 있는 최대로 잔인한 경기였다.

사실 WWF 밖의, 방송에 나가지 않는 인디 단체에는 이런 종류의 경기가 꽤나 자주 이루어졌다.

아니, 그뿐이랴.

형광등, 가시철조망, 그 외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잔인한 도구들.

생명에 큰 위해는 가지 않되 폭력성을 드러낼 수 있는 물건들.

그런 것들을 최대한 사용하는 것이 바로 하드코어 매치였다.

‘물론 우리는 방송에 나가기 때문에 그렇게까지는 안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압정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최대한 ‘하드코어’한 물건이었다.

나는 바로 그 압정을 손에 들어 오튼을 향해서 내밀었다.

“이걸 쓸 거다.”

“……어, 어?”

“끝을 뭉툭하게 깎아놓은 물건이야. 깊게 박히지도 않고 출혈이 심하게 일어나지도 않지.”

“그, 그래도…….”

“물론 잘 안 박히는 만큼 더 아픈 건 사실이야. 한번 해봐.”

“뭘?”

“얼마나 아픈지 보라고.”

오튼의 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손가락 끝을 압정으로 건드렸다.

“뭐야, 이 자식. 겁나냐?”

바로 그때,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누군가 끼어들었다.

나와 한 번 태그를 맺기도 했던 잭 하디의 형인 맥 하디였다.

인디 출신인 두 선수는 하디 보이즈라는 이름으로 하드코어 매치를 주로 해 큰 인기를 끌었다.

개중에서도 동생인 잭 하디는 퇴폐적인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향후 WWF의 큰 선수로 성장했다.

‘형인 맥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발밑에 두었던 주머니를 들어 내밀었다.

“한번 보여줄래요?”

“뭐?”

“압정이라면 많이 있거든요.”

가죽으로 된 주머니를 열자 그 안에 잔뜩 들어 있던 압정이 잘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어색하게 웃은 맥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물러났다.

“경기도 아닌데 뭣 하러 해?”

“뭐, 그렇겠죠.”

“아, 아니, 경기라도 좀…….”

오튼은 주머니 안에 있는 압정을 보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못해. 난 못할 거야.”

“경기 중에는 아드레날린이 돌아서 생각보다는 덜 아플걸.”

“그래도 못해! 어제 경기 테이프를 봤다고! 압정을 바닥에 뿌리고 그 위로 등부터 떨어지는 걸……!”

“목표가 있으면 할 수 있어.”

“……뭐?”

“이번 대립을 통해 나는 인터컨티넨탈 벨트를 가져갈 거야.”

“나, 나는…….”

“직접 생각해.”

짧게 쳐내듯 대답한 나는 손바닥을 펼쳐 의자를 쾅 내리쳤다.

순간 내 행동을 본 주변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위에는 오튼이 확인하고 놓아둔 압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찌릿한 통증.

이게 수십 개가 몸에 박히는 건 분명히 유쾌한 경험은 아니겠지.

하지만 해야만 했다.

우리 경기에 이게 필요하니까.

“잘 생각해봐. 오튼. 이 대립에서 네가 무얼 얻어갈지 말이야.”

여유롭게 이야기한 나는 그대로 락커룸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복도에서 눈물을 찔끔 흘리며 압정을 빼냈다.

……확실히 아프기는 했다.

* * *

매인 주州, 포틀랜드.

월요일 밤의 버닝콩. 그 오프닝을 장식한 것은 레볼루션이었다.

목발을 짚은 헌터는 플레어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링을 올랐다.

그는 마치 상처 입은 맹수처럼 보였다. 말인즉슨 아직은 그 카리스마가 어디 가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마이크를 쥔 헌터는 당당한 태도로 말을 시작했다.

[다들 깜짝 놀란 얼굴이군. 이 버닝콩을 대표하는 선수가 이런 꼴로 나타났으니 그럴 수밖에.]

그는 딱히 액션을 하지 않았음에도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내가 이 허벅지의 부상으로 그 녀석에게 졌다는 변명은 하지 않겠어. 확실히 나는 패배했지.]

헌터는 어깨에 메고 있던 월드 챔피언 벨트를 손에 들어보였다.

[또한 벨트를 반납하게 되었어. ……하지만 반드시 돌아올 거다. 왜냐고? 나는 트리플H니까! 왕 중의 왕! 영리한 암살자!! 그게 바로 나다!!]

부상으로 잠시 억눌러두었던 투쟁심을 드러내듯 크게 소리치는 트리플H.

[Triple H! Triple H! Triple H!]

관객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각본을 넘어서 ‘실제로’ 부상을 입은 선수에 대한 격려를 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만족스러운 듯 웃는 헌터. 그는 자신의 옆에 서있던 플레어에게 챔피언 벨트를 넘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잠시 헌터의 행운을 빌어주었다.

그러자니 옆에 있던 바티스타가 헌터를 대신해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맞춰 옆에 서있던 직원이 입을 열었다.

“신, 부커. 준비해주세요.”

슬슬 나갈 타이밍이었다.

헌터의 패배로 내게 분노를 느낀 바티스타는 이전 챔피언으로서 재경기 조항을 사용하게 된다.

바티스타가 나쁘지 않은 언변으로 자신의 감정을 피력해 나가는 동안 나는 벨트를 확인했다.

‘이제 이것과도 작별이군.’

그동안 즐거웠다.

좋은 팀과 좋은 환경에서 멋진 각본으로 대립하는 게 가능했다.

부커 역시도 같은 생각을 하는 듯 벨트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신.”

“예, 부커.”

“그동안 고마웠다.”

“뭘요. 저야말로 고맙죠. ……뭔가 되게 감성적으로 말씀하시네.”

“너와 다시 태그 팀을 하게 될 일은 없을 것 같아서 말이다.”

“왜요. 별로였나?”

“그게 아니라, 너의 이후 커리어를 예상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부커의 눈은 진지했다.

“넌 유능해. 싱글 레슬러로서 탑에서 위로 쭉쭉 치고 올라가겠지. 거기에서 활약한 뒤 내려올 때쯤이면 나는 은퇴한 뒤일 테고.”

부커의 칭찬은 그 성격처럼 무뚝뚝했지만, 자신이 느낀 것을 가감 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납득할 수밖에 없는 대답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이 업계를 떠나야 하니까.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부커의 어깨를 툭 쳤다.

“쿵-퓨리와 함께할 수 있었던 건 당신밖에 없을 겁니다.”

“웃기는 재능이랬나?”

“……그것보단 신사답게 말했을 걸요.”

어깨를 으쓱한 직후, 모니터링TV를 보고 있던 직원이 외쳤다.

“음악 나갑니다!”

우리 팀의 마지막 입장이었다.

나는 새삼 부커가 멋진 파트너였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리고 쇼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레볼루션이 헌터의 복수를 빌미로 사용한 재도전권. 그리고 그에 따라서 메인이벤트가 정해졌다.

WWF 태그 팀 챔피언 매치.

그렇게 시청자들을 붙잡기 위한 이야기를 보여준 우리는 ‘일’을 마치고 락커룸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메인이벤트까지 방송을 체크하며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사실 평소라면 이때 상대하게 될 선수와 함께 잡담을 나누며 경기 내용을 더 심화시켰겠지만.

레볼루션의 멤버들과는 이전에도 헌터의 텃세 때문에 딱히 대화를 하지 않고 일을 했던 터라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좀 놀랍군.’

헌터 본인이 직접 데리고 왔다.

목발을 짚은 채 레볼루션 멤버들을 대동하고 나타난 그는 우리 크루가 독점해서 사용하고 있던 락커룸에 멋대로 들어왔다.

그리고 경악했다.

“시몬스…….”

“오, 헌터!”

“경기장에 뭘 반입한 겁니까.”

“보드카.”

“오늘 경기 없으십니까?”

“물론이지. 나는 대충 여기서 술이나 먹고 있다가 부르면 나가서 ‘DAMN!’이나 해주면 돼.”

“…….”

“…….”

다들 황당해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커는 이런 시몬스 선생이 창피했는지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경기가 없는 날에도 언제나 모여서 한 잔 걸치는 것이 우리 크루 사람들인데.

나도 그런 유쾌한 자유분방함이 나름대로 마음에 들었고 말이다.

‘이럴 땐 좀 창피하지만.’

그렇기에 나설 차례였다.

“어, 헌터. 무슨 일로…….”

“딱히, 오늘 할 일도 없어서 보드카나 한잔하러 왔다.”

즉석에서 지어낸 거짓말을 한 그가 이내 의자에 털썩 앉았다.

“시몬스, 한 잔만 줘요.”

“햐,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먼! 헌터가 술을 마시다니!”

“어차피 부상으로 결장할 테니 그동안은 좀 마셔도 돼요.”

보통 사람은 다쳤을 때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발상을 하지.

과연 프로레슬러들은 이래도 괜찮은 걸까 싶어 바라보던 나는 이내 어깨를 으쓱하고 근처에 앉았다.

‘알아서 잘 하겠지.’

일단은 이거다.

“경기 이야기나 좀 해볼까요.”

“그래, 그러지.”

경기의 주요 스팟은 다 정해두긴 했으나 시간이 부족해 디테일함은 잡아두지 못한 상태였다.

플레어는 먼저 경기의 가장 중요한 스팟에 관해 말을 꺼냈다.

“랜스, 의자는 빠르게 써라. 심판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 이야기의 핍진성이 떨어지니까.”

“예, 닉.”

“게이브, 힘은 충분하겠지.”

“충분히 먹고 쉬었습니다. 부커라면 몰라도 신이라면 경기 마지막에도 거뜬히 들 수 있어요.”

부커의 신체 스펙은 198cm에 110kg. 나는 188cm에 90kg 정도를 유지했다.

물론, 링 위에 나갈 때는 여기서 더 크게 불려서 이야기하지만.

경기의 마지막은 내가 오튼으로부터 체어샷을 맞은 뒤, 바티스타가 자신의 피니시 무브인 ‘바티스타 밤’을 날리는 것이었다.

사실 바티스타가 나이 문제로 체력이 빨리 빠져서 그렇지, 평범한 때에는 부커 역시 문제없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안전과 완벽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이런 요소도 항상 고려를 했다.

그나저나, 역시 닉 플레어다.

전설적인 악역 레슬러. 30년이 넘는 경력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는 듯 마구 조언을 해댔다.

그게 다 맞는 이야기라서 나는 끼어들 틈조차 없을 정도였다.

모여 앉은 나와 부커, 레볼루션의 세 사람은 그렇게 플레어를 중심으로 경기를 이야기했다.

점점 메인이벤트가 다가왔다.

* * *

현재 버닝콩에서 가장 핫한 선수를 꼽자면 당연히 나일 터였다.

GCW를 업계의 핫한 트렌드로 만들어내고, 위로 올라와 버닝콩에서도 관객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어떤 각본이든 수행했다.

크게는 진지한 것과 웃긴 것, 더 나아가 선역과 악역을 가리지 않고 수행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

캐릭터도 비록 지금은 선역이지만 언제 악역이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복잡한 캐릭터였다.

마지막으로 회사 내에서도 성장하기 시작한 티파니 맥센이 밀어주는 선수라는 점에서 사람들은 나와 함께 일하고 싶어 했다.

거기다 유능하고.

외모도 잘생기고.

몸도 좋고.

이런 선수를 누가 싫어할까.

예상대로, 경기는 관객들이 깊이 몰입한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좋은 선수는 무엇을 하든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기 마련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사실 정반대라고 생각했다.

좋은 선수는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행동을 한다.

링 사이콜로지.

링 위의 심리학.

행동을 의도해 이야기를 전하고 반응을 얻어내는 경기 방식.

나는 그 달인이었다.

그리고 상대 역시 달인이었다.

“신, 잘 부탁하네.”

“영광입니다. 플레어.”

경기 초반부터 나와 플레어는 서로의 역량을 마음껏 시험했다.

플레어는 일반적인 레슬러보다 훨씬 작은 175cm 정도의 키였다.

하지만 그런 단점을 특유의 카리스마와 경기력으로 극복했다.

더티 플레이어 달인.

30년 경력으로 정립된 특유의 스타일은 선수들의 귀감이었다.

“Woooooooooooooo~!”

[Woooooooooooooo~!!]

플레어가 특유의 호쾌한 함성을 지르자 관객들이 모두 따라했다.

그 소리를 듣자 몸이 찌릿찌릿 울렸다. 플레어는 선악을 넘어서 모두의 사랑을 받는 선수였다.

그렇기에 이런 선수는 너무 몰아붙이면 도리어 야유를 받았다.

나는 플레어와 공방을 주고받으며 반대로 그를 한껏 띄워주었다.

남들이 한다면 욕을 먹을 반칙도 플레어가 하면 환호가 나왔다.

[Flair! Flair! Flair! Flair! Flair!]

그런 반응에 감동하는 플레어.

“고맙네.”

“뭘요.”

경기 분위기는 내내 좋았다.

핫 태그를 반복하고, 바티와 부커가 각자 자기 강점을 드러냈다.

길쭉길쭉한 다리로 각종 킥 기술을 반복하는 부커와 힘을 과시하며 플레어를 보조하는 바티.

분위기가 한계까지 끓어올랐다.

관객들은 저마다 응원하는 선수의 이름을 목 놓아 소리쳤다.

그리고 나의 이름은 플레어나 부커에게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이어진 경기의 마지막 스팟.

일은 거기에서 발생했다.

[Boooooooooooooooooo!]

오튼이 철제 의자를 손에 든 순간, 나는 그 변화를 알아차렸다.

이야기의 몰입이 깨졌다.

앞자리에 앉은 관객들이 쌍욕을 해대는 게 귀에 똑똑히 들렸다.

“오튼, 이 ●●끼야!”

“너 같은 건 그냥 죽어버려!”

“좋은 경기 망치지 말고 꺼지라고! ●신 쓰레기 자식이!”

그런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에 순간 몸을 움찔 떠는 오튼.

바닥에 엎드려 있던 나는 바닥을 쾅! 하고 두들겼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 소리를 들은 오튼이 날 돌아보았다.

압정.

나는 상처가 덜 여문 손바닥을 보여주며 놈의 정신을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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