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랜스 오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최악에 가까웠다.
녀석은 마치 가십 잡지에 자주 오르내리는 셀러브리티 같았다.
그냥 숨만 쉬어도 욕을 먹었다.
사람들은 그를 프로레슬러라고 인정조차 하지 않았고, 그냥 링에서 꺼지기를 바라며 야유했다.
오튼으로서는 그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엄청난 모욕을 듣고 있다.
그게 정당하냐고 묻는다면, 글쎄다.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관객들이 오튼에게 그렇게 심한 모욕을 하는 게 정당한 일인가.
이건 사실 전제가 잘못되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문제는 선과 악으로 분류될 수가 없다. 그렇기에 그런 논의는 무의미했다.
관객들의 이런 습성은 우리가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여기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오튼은 뭘 원하는가.’였다.
“더 하고 싶어?”
오튼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손바닥을 펼쳐 보여주었다.
작은 압정이 거기에 박혔다.
“이걸로 할 수 있다면.”
“날 믿는 거냐.”
“널 믿어.”
녀석은 눈물을 찔끔 흘렸으나 의지로 가득 찬 모습이었다.
일이 잘 풀려,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내 경기라서 더 그랬겠지.’
사실 내가 팬-페이보릿이라서 오튼에 대한 반발이 더 커진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대립이 둘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임을 알았다.
한쪽은 업계의 밑바닥에서 자신을 증명해오며 성장한 선수.
신.
다른 한쪽은 금수저로 처음부터 벨트를 가지고 시작한 선수.
랜스 오튼.
러셀 하트와 비슷하지만 달랐다.
오튼은 그런 금수저 악역으로서 확실한 재능을 가진 선수였다.
일단은 그걸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보이지만.
“네가 왜 욕을 먹는 거 같아?”
“인위적이라서…….”
“그렇지. 그걸 벗어나는데 이 압정이 꽤나 큰 도움을 줄 거야.”
“왜?”
“사람들이 너에게 느끼는 대부분의 반발심을 날려줄 테니까.”
오튼은 사람들이 뚜렷하게 느낄 정도로 계속해서 보호를 받아왔다.
누가 그걸 좋아하겠는가?
경기에서 몸을 던지지도 않는 자식을 누가 강자라고 생각하며 회사의 부킹을 받아들이겠는가?
“안 그래?”
“나, 나도 그동안 그걸 극복해보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안타깝게도, 한 번 박힌 인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던 거지.”
오튼의 발상도 부족했다.
열심히 한다는 건 알겠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전해지진 않았다.
하지만 몸을 사리지 않는 하드코어 매치를 소화한다면 사람들은 분명 오튼을 인정해줄 터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하드코어 매치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요는 분명히 있다.
‘그것도 꽤 많이.’
현 시대의 시청자들은 폭력과 유혈을 기대하고 쇼를 봤으니까.
* * *
10월 2주차의 버닝콩.
오프닝 영상이 끝난 뒤, 나와 부커가 오튼의 비겁한 공격에 의해 벨트를 잃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충격적인 효과음과 함께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화면을 뒤덮었다.
[오튼이 신의 머리에 잔인한 체어샷을 날립니다! 아……?! 신의 뒤에 나타난 바티스타가!!]
흑백으로 연출된 영상은 경기의 마지막 부분을 재생하고 있었다.
내가 바티스타 밤에 맞았고, 화면이 전환되며 레볼루션의 세 사람이 챔피언 벨트를 들어올렸다.
지독한 반칙.
그로 인한 벨트 도둑질.
[Boooooooooooo!]
관객들의 큰 야유 속에서 화면이 다시 한 번 전환되었고, 락커룸에 서있는 내 모습이 나타났다.
지난주에 촬영했던 백스테이지 세그먼트. 그 내용은 간단했다.
부커와 나의 향방.
태그 팀 벨트를 잃은 우리는 과연 이후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분을 참지 못하고 있는 내게 다가온 부커가 위로를 건넸다.
[너무 상심하지 마라.]
[저는 괜찮습니다.]
[전혀 그런 얼굴이 아닌데. 뭐, 오튼의 체어샷만 아니었어도 우리가 분명히 이기는 경기였지.]
[방심했습니다. 옛날 같았으면 오튼의 그딴 개 같은 짓거리쯤이야 진즉에 간파했을 텐데.]
[그러고 보니 그건 네 특기였지. 이기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제가 마음만 먹으면 오튼 그 자식은 매일 밤마다 침대 밑에 제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시달리게 될 겁니다.]
[훗, 그게 너였지. ……좋아, 오튼의 상대는 당분간 네게 맡기마.]
[부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한 번 더 공석인 벨트를 노려볼까 생각하고 있다.]
[월드 챔피언이요?]
[그래. 내가 할 수 있을까?]
[물론이죠. 부커.]
싱긋 웃은 내가 부커와 악수를 나누자 사람들이 환호를 보냈다.
패배에 안주하지 않고 싸운다.
선역으로서 멋진 행동이었다.
그것을 안 해설자들이 세그먼트가 끝나자 코멘트를 덧붙였다.
[신과 부커의 커리어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솔직히 두 사람을 응원하게 되네요!]
[해설자로서 너무 편파적인 말 아닌가요? 하지만 인정합니다. 특히 오튼은 좀 당해봐야죠!]
그 말을 들은 나는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오튼을 돌아보았다.
좀 불안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녀석은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자, 잘 부탁한다.”
“그래, 재미있게 해보자고.”
아무래도 날 믿는 모양이다.
나 역시도 오늘의 세그먼트는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당분간은 내가 오튼을 일방적으로 엿 먹이는 전개가 될 테니까.
지금껏 비겁한 짓을 일삼던 악역이 똑같은 방법으로 당한다.
오튼은 대립 내내 철저하게 당해주며 회사로부터 보호를 받는다는 자신의 이미지를 씻어낸다.
그리고 그것을 페이퍼뷰에서 확실하게 터뜨려 인정을 받는다.
그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쇼는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경기 하나가 지나간 뒤, 헌터를 뺀 레볼루션의 멤버들이 링 위에 올라 세그먼트를 시작했다.
링 위에는 붉은 융단이 깔렸고, 파티 음식들이 한가득한 상태.
‘곰 인형 탈’을 쓴 나는 링 아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오늘 각본은 레볼루션의 축하 파티에 몰래 참가해 오튼을 습격한다는 내용이었다.
먼저 플레어가 마이크를 잡았다.
“비록 헌터가 잠시 빠졌지만 우리 레볼루션은 아직 건재해!”
세 명의 선수가 모두 벨트를 차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거기에 헌터의 월드 챔피언 벨트까지. 확실히 레볼루션은 쇼의 중심이 되는 스테이블이었다.
이전까지는 말이다.
헌터가 부상으로 빠진 레볼루션은 다시금 모든 멤버가 벨트를 감았지만 좀 무게감이 떨어졌다.
오튼과 바티스타가 아직 무게감이 떨어지는 신인이라서 그런가.
그리고 오튼이 앞으로 나서자 사람들이 크게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각오를 굳힌 녀석은 망설임 없이 대사를 시작했다.
“다들 이런 건 처음 보겠지? 너희 같은 가난한 멍청이들은 보기 힘든 파티 음식이야. 여기 이건 랍스터라고 하는 건데…….”
[Booooooooooo!!]
“두 사람이 벨트를 재탈환한 걸 축하하기 위해 제가 준비했죠.”
“아주 멋진데, 랜스. 나도 기념을 위해 돔 페리뇽을 준비했지.”
“구찌 양복을 맞춰 입고 승자로서 즐기는 파티. 여기 이 패배자들은 절대 겪을 수 없는 일이군!”
정말 재수 없는 놈들이다.
곰 인형 탈을 쓴 나는 레볼루션이 받는 야유를 함께 느꼈다. 그들은 확실히 멋진 악역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은 바랄 터였다.
레볼루션, 특히 더 재수 없다고 느끼는 오튼을 누군가가 박살 내주길.
그리고 다들 날 생각하겠지.
레볼루션 역시도 거기에 대해 말하는 것을 빼먹지는 않았다.
“닉, 혹시 들으셨습니까?”
“음? 무슨 말이야?”
“신, 그놈이 오튼을 노리고 있다는군요. 이건 뭔가 수를 써두는 게 맞지 않나 싶은데.”
“하하, 게이브. 너무 과민한 거야. 여기는 링 위고 그 멍청이가 나오면 우리가 다 알 텐데.”
“그럴까요.”
“그래요, 게이브. 그 녀석이 우리 셋을 무슨 수로 상대하겠어요?”
오튼이 거만하게 웃자 사람들이 내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SIN! SIN! SIN! SIN! SIN……!]
“너희가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어! 그 자식도 패배자거든!”
오튼의 재수 없는 대사를 마지막으로 파티가 시작되었다.
링 아래에 서있던 바니 걸과 곰 인형 탈을 쓴 내가 올라가 레볼루션 멤버들과 놀기 시작했다.
하지만 분명 이질적이었다.
애들 생일 파티도 아니고 곰 인형 탈이라니. 그런 부분을 짚어내듯 카메라가 나를 촬영했다.
거기에서 나는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어그로를 잔뜩 끌었다.
레볼루션 멤버들은 내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고 파티를 즐겼다.
섹시한 바니 걸들을 옆에 끼고 샴페인을 즐기며 놈들은 졸부 악역으로서의 면모를 잔뜩 드러냈다.
그러던 중, 가장 먼저 오튼이 곰 인형 탈의 이질감을 알아차렸다.
“잠깐, 잠깐, 잠깐.”
놈이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물론 나는 이미 바티스타와 계획했던 대로 준비를 끝낸 뒤였다.
“저 곰 인형 탈은 누가 준비한 거예요? 저런 게 여기 왜 있어?”
“나는 아닌데. 게이브?”
“저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잠깐의 침묵.
나는 오튼의 뒤에 섰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관객들이 오오- 하며 소리를 냈다. 오튼이 천천히 뒤로 돌았다.
나는 곰 인형 탈을 벗었다.
[Yeeeeeeeeeeeeeah!]
환호하는 관객들.
먼저 반응한 것은 바티스타였다.
나는 바닥에 늘어져 있던 전선을 발로 밟아 휙 당겼다. 그것이 팽팽히 당겨지며 바티스타의 다리를 휘감아 거구를 쓰러뜨렸다.
“……?!”
곰 인형 탈로 링 위에서 장난을 치며 미리 준비해둔 것이었다.
바티스타의 몸은 쓰러지며 테이블을 건드렸고, 후르츠 펀치와 파이, 샴페인이 밑으로 쏟아졌다.
링 위는 엉망진창이 되었고, 음식으로 범벅된 바티스타는 혼란에 빠진 채 몸부림쳤다.
사람들이 환호를 보냈다.
“이 자식!!”
분통을 터뜨리며 달려드는 오튼.
그것을 피해 움직인 나는 일단 플레어를 링 밖으로 넘겨버렸다.
그리고 흥분해 달려드는 오튼을 완전히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푸헉?!”
파이를 던져 얼굴에 명중시키자 오튼은 허우적대며 쓰러졌다.
그 위에 올라탄 나는 온갖 도구들을 사용해 놈을 개박살 냈다.
“그, 그만……!!”
값비싼 돔 페리뇽을 얼굴에 쏟아 붓고, 파이를 얼굴에 문대며 완전히 오튼을 바보로 만들었다.
자기가 그토록 자랑하던 값비싼 파티 음식에 당하는 오튼.
사람들은 속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3주와 4주차의 버닝콩에서 오튼은 계속 얻어터질 예정이었다.
* * *
조지아, 애틀랜타.
GCW에서는 언제나 월요일 밤과 금요일 밤은 일정을 비웠다.
모두 훈련장에 모여 버닝콩과 랙다운을 시청했기 때문이다.
신과 와이엇 패밀리가 각각의 단체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이후에 만들어진 기묘한 전통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자유분방하게 의자나 소파를 가져온 이들이 병맥주 하나씩을 손에 든 채 방송을 보고 있었다.
티파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쿠의 배려를 받아 좋은 소파 자리를 얻게 된 그녀는 병맥주를 홀짝거리며 쇼를 시청했다.
“좋아! 잘한다~!”
신이 오튼을 작살내는 모습을 본 셰무스가 신이 나 소리쳤다.
반면 러셀은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자세히 관찰하고 있었다.
티파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역시 천재야.’
자신이 봐온 그 어떤 프로레슬러보다도 빛나는 재능이었다.
옆에서 봐온 결과, 저 아이디어의 대부분은 신이 낸 것이겠지.
[신이 링 위의 오튼을 밧줄로 묶습니다! 경호원들이나 레볼루션의 멤버들은 다 어디에 있죠?!]
[아마 백스테이지에서 각개격파 당한 것 같습니다. 적으로 돌리면 가장 골치 아픈 남자를 만났군요.]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멋진 세그먼트를 내놓을 수 있을 리가.
오튼을 완전히 박살 낸 신은 그를 밧줄로 묶고 링 아래를 끌고 다니며 모욕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오튼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고는 폭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티파니는 고작 이걸로 끝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4주차의 쇼였다.
주말에는 페이퍼뷰.
아직 경기가 확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오튼의 이미지가 너무 추락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남은 방송 시간은 5분.’
과연 그 시간에 신은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낼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쳐내듯, 오튼을 조롱하던 신이 링 위로 올라갔다.
지친 채 무릎을 꿇는 오튼.
신은 그 앞에 가부좌를 틀었다.
티파니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멋진 그림이야.’
조금 전만 해도 상황은 코미디에 가까웠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무릎을 꿇은 오튼.
그 앞에 앉은 신.
두 사람의 비장한 표정이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환상적이었다.
[이제 좀 내가 무서워지냐?]
[……당장 이거 풀어.]
[그건 안 되지. 넌 아직 내가 갖고 싶은 걸 내놓지 않았어.]
[벨트가 가지고 싶은 거냐?]
[정확히 말하자면, 널 합법적으로 패고 싶은 것에 가깝지.]
[나도 마찬가지야!]
[지금까지 레볼루션의 보호나 받던 놈이 무슨. 어차피 헌터가 허락하지 않으면 넌 아무것도 못하는 멍청이에 불과하잖아?]
대사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겼다.
관객들이 느낀 오튼에 대한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역시 신은 일류였다.
하지만 오튼 역시 지지 않았다.
[내가 그렇다고? 링에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지 한번 볼까?]
[싱글 챔피언십 매치.]
[아니, 더 나가자고. 신……! 내가 어떤 놈인지 보여줄 테니까!]
분을 참지 못한 오튼은 씩씩 거리며 한마디를 입에 담았다.
하드코어 매치.
그 말을 들은 순간 티파니는 머리가 새하얗게 물드는 걸 느꼈다.
“안 돼…….”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병맥주가 땅에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티파니 맥센은 얼마 전의 일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유럽 투어.
자신의 몸을 불사르듯 사람들의 앞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였던 신.
그게 하드코어 매치와 결합된다면 무슨 결과가 나올까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