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10월 31일. 일요일.
버닝콩 독점으로 개최된 페이퍼뷰, ‘타부 선데이’가 시작되었다.
콰콰콰콰콰쾅!!
특수하게 준비된 세트장에서 화려한 폭죽이 터져 올랐다. 카메라가 멀리서 관객들을 비췄다.
오늘 입장객은 총 58,319명.
아이콘의 시대가 끝난 뒤의 과도기인 것치고는 좋은 결과였다.
확실히 멋진 대립으로 기대감을 키워놓은 만큼 많은 사람들이 보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난 오늘 랜스 오튼으로부터 WWF 인터컨티넨탈(대륙 간) 챔피언 벨트를 가져올 예정이었다.
WWF의 2선급 챔피언.
그걸 무사히 가진다는 건 내가 회사나 관객들에게 하이미드 카더로 인정받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되면 내 위에는 오직 ‘메인 챔피언’만 남는다는 뜻이고.
버닝콩의 WWF 월드 챔피언과 랙다운의 WWF 유니버스 챔피언.
‘마찬가지로 랙다운에도 2선 챔피언인 U.S. 챔피언이 있지만.’
아무래도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의 위상을 살짝 더 높게 쳤다. 벨트의 역사가 더 길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월드 챔피언도 유니버스 챔피언보다 아주 미세하게 더 높게 쳤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이내, 자연스레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1년차 신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상급의 푸시를 받는 셈이었다.
‘일단 경기에 집중하자.’
살이 찢어지고 피가 튈 예정이었고, 더 나아가 러셀과의 경기 때처럼 기절할 가능성도 컸다.
그러지 않기 위해 나는 오튼을 믿었고, 놈 역시 나를 믿었지만.
그럼에도 이 업계에서 사고란 건 항상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특히 오늘은 더.
‘정신 바싹 차리자.’
양 뺨을 찰싹 때린 나는 긴장과 여유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았다.
너무 긴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풀어지지도 않게.
나는 오프닝 매치부터 이어지는 버닝콩 선수들의 경기를 보며 차근차근 마음을 다잡아나갔다.
다들 바싹 준비를 해왔다.
비교적 경기 시간이 짧고, 페이퍼뷰의 앞에 배치된 로우 카더 간의 경기마저도 아주 좋았다.
그들은 정해진 시간 안에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와 오튼의 시간은 25분.
메인이벤트보다도 길었다.
그만큼 회사에서 내 경기를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거기에서 자부심을 느끼고 빙긋 웃었다.
저 친구들 나름대로 노력하겠지만, 날 따라올 수는 없을 거다.
난 최고니까.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여기 있으니까.
그렇게 준비된 열 개의 경기 중, 여덟 번째 경기까지 끝났다.
남은 건 오튼과 나의 경기. 그리고 월드 챔피언 경기. 두 개뿐.
미리 준비를 마쳐놓았던 나는 긴 복도의 정중앙에 위치한 고릴라 포지션을 향해 이동했다.
반대편에서, 꽤나 긴 거리였지만 오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큰 키에 양 어깨의 문신.
화려한 무늬가 들어간 검정색 삼각 레슬링 팬츠.
니 패드, 엘보우 패드, 팔목에는 붕대를 감았다. 마지막으로 부츠까지.
그 반대편에는 내가 있다.
청바지에 레슬링 부츠, 재킷과 러닝셔츠, 그리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로.
그런 우리의 움직임에 맞추듯 경기의 프로모 영상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이 왜 싸우는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동시에 흥을 돋우는 역할. 그것이 바로 프로모였다.
영상은 제일 먼저 4주 전의 월요일을 비추며 시작되었다.
나와 부커가 레볼루션의 두 사람에게 챔피언을 빼앗긴 날.
가장 비겁한 수단으로.
[신! 쓰리 카운트를 빼앗깁니다! 레볼루션의 전법이 먹혔습니다!]
환호하는 레볼루션.
화면이 전환되며 분노에 가득 찬 내 모습이 흘러나왔다.
[오튼 그 자식은 내 모습만 봐도 오줌을 지리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어진 파티 습격.
주차장 습격.
링 위의 습격.
오튼은 경호원을 대동하며 어떻게든 나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신경쇠약에 걸린 오튼은 같은 팀 멤버에게까지 분통을 터뜨렸다.
[그 개자식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고요! 다들 대체 날 지켜줄 마음이 있는 겁니까!]
거기에 내가 소리쳤다.
[넌 레볼루션이 지켜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멍청이야!]
[닥쳐! 그 입 닥치라고!!]
[넌 사람 잘못 건드렸어.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뭔지 알아? 내 잘못이 아닌데 당하는 거야.]
[내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애새끼로 보인다면 큰 오산이야!]
[그게 아니라면 넌 뭔데?!]
[네 엉덩이를 걷어차 주겠어!]
[내가 원하는 걸 말해!]
[하드코어 매치!!]
그렇게, 대립 기간 내내 이야기했던 우리의 대사를 함축해 하나의 프로모 영상이 완성되었다.
[SIN! SIN! SIN! SIN! SIN!]
벽 너머로 들려오는 관객들의 환호와 챈트. 모두가 날 원하는 분위기가 여기까지 전해져왔다.
고릴라 포지션 앞에서 마주친 오튼도 그렇게 느끼는 눈치였다.
“좀 떨리는데…….”
“긴장 풀어. 잘될 테니까.”
“이렇게 사랑받는 선수와 싸우는 입장이 될 줄은 몰랐거든.”
“거물하고 싸우게 됐으니까, 그만큼 욕먹을 각오는 해야지.”
“으음…….”
오히려 더 긴장한 것 같은 오튼.
‘이거 잘 이끌어줘야겠군.’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으악!!”
누군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에 우리는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티파니?”
“허억, 헉……! 아니, 그, 불러세울 말이 떠오르질 않아서요!”
웬일인지 조지아에 있어야 할 티파니 맥센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까지 뛰어서 오기라도 했는지 양복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슬쩍 돌아본 나는 아직 광고가 나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오튼, 먼저 들어가 있어.”
“그, 그래.”
안으로 들어서는 오튼.
나는 고릴라 포지션 안쪽에 배치된 페트병 물을 하나 가져왔다.
“경기 뛰고 왔어요?”
“농담할, 때에요?”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티파니.
뭔가, 내 집중을 다 흐트러뜨리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웃음이 나왔다.
“아니, 여긴 왜 왔어요?”
“……그간 밀린 업무 조지고 전세기 폭주시켜서 달려온 거예요.”
“왜?”
“나도 몰라.”
“광고 시간 다 끝나가요.”
“……오늘은 파트너 못 해줘요.”
“예?”
“그러니까, 적당히 해요. 그쪽 몸 축나면 당신만 손해니까. 아마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테니까.”
“…….”
“상품이라고 하지 말아요. 당신은 선수에요.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좀 돌보라는 말이에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여기까지 한참 뛰어왔기 때문일까, 티파니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아니, 물론 그건 아니겠지.
그녀가 보내는 순수한 걱정.
거기에 순간 마음이 착 가라앉았고, 경기를 해야 한다는 마음이 순간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어라.’
가장 좋은 상태였다.
편안하고, 딱히 경기를 의식하지 않고 있는 상태. 티파니의 말에 그냥 그렇게 되었다.
날 걱정해서 조지아에서부터 날아왔다는 게 참 고맙기도 했다.
나는 심장이 쿵쿵 대는 것을 느끼며 모니터링TV를 확인했다.
다행히 아직 광고 중이다.
할 말은 할 수 있겠군.
“유럽 투어 때도 그랬죠.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걸 애써 참는 게 눈에 들어왔어.”
“……알았어요?”
“물론이죠. 나는 다 알거든.”
티파니 맥센은 선수와 가깝게 지내며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하나의 상품으로써 천천히 망가져갔다.
그렇게 망가진 상품은 다른 상품으로 대체되었고, WWF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게 이 업계의 실상이다.
나는 그것을 주도했던 바트의 기분을 맞춰주어야 했고, 그 말 때문에 그녀가 마음이 상했으리란 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현 생애에서 티파니와 더 가까워지는 게 어쩐지 좀 미묘하다고 생각해 거리를 뒀던 거였는데.
이렇게 군다면 내 진심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때 리무진에서 했던 이야기 중 거짓말이 두 가지가 있어.”
“……뭔데요?”
“하나는 ‘아가씨’라는 단어였어.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당신이 좀 미친 여자처럼 보이거든.”
“하긴, 조지아에서 한마디 하려고 전세기 띄워서 달려오는 여자가 제정신일 리는 없겠죠.”
“술 마시면 오줌도 싸고.”
“………….”
티파니가 날 죽이려고 했다.
휘두르는 손을 가볍게 붙잡은 나는 낄낄 웃으며 다음 말을 꺼냈다.
“그리고 나머지 전부.”
“전부?”
“그래, 나는 위로 올라가기 위해 이 일을 하지. 남의 신뢰에 책임감을 느껴서 하고 있는 게 아니야.”
“그건, 나도?”
“물론이지. 사실 이건 바트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한데.”
“……뭐에요?”
“내가 나가서 큰 사고를 칠 테니 수습은 당신이 알아서 해.”
나는 티파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 황당해하던 그녀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막을 수 없었던 거군요.”
“그래. 그러니 그냥 믿으라고.”
“신!! 입장하셔야 합니다!!”
바로 그때, 뒤쪽에 서있던 직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링에 오를 시간이었다.
* * *
프로레슬러의 혹사에 관련해서는 업계에서도 말이 꽤 많았다.
고통을 견디기 위해 진통제를 먹다가 사망하는 이들도 많았다.
에디 비테레로 역시 그랬다.
진통제 부작용으로 호텔에 홀로 있던 그의 심장이 작동을 멈췄다.
나는 티파니가 추모 방송에 출연해 울던 일을 다시 떠올렸다.
그밖에도 수많은 선수들이 하나둘씩 업계나 세상을 떠나갔다.
나 역시 조심은 하고 있지만, 무리를 할 때도 분명 존재했다.
티파니는 그걸 걱정한 것이다.
내가 업계에서 사라질까봐.
하지만 증명을 위해서는 때로는 위험한 일도 해야 하는 법이다.
기회가 찾아왔을 때 쥘 수 있는 만큼 손에 쥐는 게 내 모토다.
경기 중반.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검은색의 천 봉투를 아래로 휙 뒤집었다.
우수수수 떨어지는 압정들.
그것을 본 사람들은 저마다 격렬한 반응을 보이며 경기의 분위기를 더 열광적으로 끌어올렸다.
안색이 창백해지고, 안 된다고 소리치고, YES! 챈트를 연호하고.
떨어진 압정이 조명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나는 숨을 삼키며 옆에 쓰러진 오튼을 돌아보았다.
우리는 이미 피투성이였다.
기술을 주고받으며 정해진 스팟에서 범프를 수행한 끝에 경기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내 경우에는 실수였다.
테이블 위에 떨어지면서 부서진 파편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튀었고 눈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혈은 하지 않았다.
나는 오튼과 결과를 낼 승부가 아직 남아있는 상태였으니까.
“오튼!!”
열이 잔뜩 뻗친 채 놈의 이름을 부르며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우리는 바닥에 퍼진 압정 위에서 경기를 해나갔다.
웅덩이처럼 바닥에 퍼진 압정들.
아슬아슬한 공방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몸을 휘청거리는 나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정해둔 타이밍이 왔다.
나는 경기 전, 오튼에게 ‘나도 압정에 당할 거다.’라고 말했다.
압정을 등 뒤에 둔 채 휘청거리던 오튼이 팔을 크게 휘둘렀다.
하라는 신호.
거기에 맞춰 뒤로 물러난 나는 로프 반동을 하며 동시에 허공을 향해서 높이 뛰어올랐다.
‘High Knee’.
공중으로 뛰어올라 니 킥을 먹이는 기술. 시전자는 피폭자의 바로 옆에 등으로 낙법을 한다.
말인즉슨, 오튼과 양옆으로 나란히 쓰러지며 똑같은 고통을 감수하게 된다는 말이었다.
쫘악-!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내 무릎이 오튼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수백 마리의 개미가 온몸을 물어뜯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사람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끄흡……!!”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옆으로 굴렀다. 등에 따닥따닥 박힌 압정의 개수가 감각으로 느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낙법을 칠 때 썼던 팔뚝과 손바닥에도 무수히 압정이 박혔다.
몸 곳곳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통증은 아드레날린이 지워냈다.
“허억, 허억……!”
나는 숨을 몰아쉬며 오튼을 향해 다시금 몸을 움직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굴러서 압정 지대를 빠져나온 녀석은 하단 로프에 팔을 걸친 채 물러났다.
“오튼, 자…… 어서!”
“제기랄, 이거 진짜!!”
오튼은 스톰핑을 위해 들어 올린 내 발을 쳐내고 반격했다.
녀석의 등에도 압정이 한가득 박힌 상태였다. 오튼은 그 고통을 견뎌내며 내 공격에 저항했다.
그리고 우리의 경기가 사람들에게 먹히고 있다는 증거가 나왔다.
[Fight Forever! Fight Forever! Fight Forever! Fight Forever!]
이걸 영원히 하라니.
어이가 없어 웃은 나는 로프 반동 후 달려오는 오튼을 넘겼다.
녀석 역시 이런 챈트는 처음 받겠지. 그렇기에 통증 속에 희미해져가던 눈빛이 다시 살아났다.
경기의 마지막 스팟.
“할 수 있겠어?”
“물론, 이지.”
의자와 사다리, 테이블.
거기에 압정까지.
온갖 도구들이 부서지고 박살이 났으나, 오튼과 나는 쓰러지지 않고 계속해서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나간다.
테이블을 세우고 그 위에 오튼을 눕힌 나는 턴버클 위로 올라가서 마지막 기술을 준비했다.
다이빙 엘보우 드롭.
오만팔천 명의 사람들이 날 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나는 오튼의 위치를 확인하고 곧바로 공중을 향해 뛰어올랐다.
문설트 같은 아름다운 기술은 아니지만, 브롤러로서 분명히 그 매력을 전할 수 있는 공중기.
그게 바로 다이빙 엘보우 드롭.
공중으로 뛰어오른 내 몸은 그대로 테이블 위의 오튼을 덮쳤다.
투콰앙!
시원한 소리와 함께 테이블이 박살 났고, 나는 그대로 오튼의 몸을 누르며 커버를 했다.
어깨 쪽으로 돌아온 심판과 함께 관객들이 커버를 셌다.
그 소리가 경기장을 뒤덮어 귀가 순간 먹먹해질 정도였다.
1!!
2!!
3!!
땡땡땡!
“고맙다. 신.”
함성 속에서 희미하게 이야기하는 오튼.
피식 웃은 나는 녀석의 가슴 위에 쓰러진 채 작게 중얼거렸다.
“나야말로.”
나는 이제부터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