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나와 시나, 러셀은 버닝콩과 랙다운에 출연해 링 서바이벌에 대한 기대감을 계속 끌어올렸다.
그렇게 4주차의 쇼가 끝났고, 각자 대략적인 포지션이 잡혔다.
나와 버닝콩 선수들은 WWF의 1군으로 활약하고 있는 탑독.
시나와 랙다운 선수들은 2군 쇼 취급을 받아 분개한 언더독.
마지막으로 경기의 조커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 러셀까지.
우리 세 사람은 그렇게 마지막까지 대등하게 대립을 끝마쳤다.
이제 남은 건 링 서바이벌에서 멋진 경기를 보여주는 것뿐.
하지만 그전에 일단 오늘은 추수감사절을 즐길 생각이었다.
시나와 러셀을 각각 랙다운과 GCW로 돌려보낸 나는 티파니와 함께 버닝콩 팀에 합류했다.
그리고 회사 측에서 준비한 추수감사절 파티에 함께 참여했다.
뭐, 연말 시상식처럼 거창하게 하는 건 아니고. 적당히 경기장 근처 펍을 빌려서 추수감사절 음식을 만들어 먹는 정도였지만.
어쨌든 다들 즐기는 분위기였던 터라 나와 티파니 역시도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들었다.
“오늘은 편하게 즐기죠.”
“그렇게 할까요.”
오랜만에 맞는 휴식이라 나도 딱히 거절할 생각은 않았다.
Thanksgiving Day.
추수감사절.
성탄절, 부활절과 함께 개신교의 최대 명절 중 하나였다. 하지만 국가가 지정한 명절이 그렇듯, 딱히 개신교가 아니더라도 즐길 사람은 다 즐겼다.
추수감사절의 상징 음식인 칠면조, 각종 파이를 뜯고 각자 원하는 술을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나 역시도 그토록 원하던 호박 파이를 질릴 때까지 먹었다.
‘탄수화물이다.’
이 죄책감이 너무 좋다.
고기와 다른,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듯한 이 강렬한 배덕감.
거의 눈물까지 찔끔 흘리는 날 보며 티파니가 놀라 물었다.
“그렇게 맛있어요?”
“……평소에 못 먹는 거라서.”
“저런. 평소에 뭐 먹고 싶었던 거 있어요? 만들라고 할 테니까.”
“된장찌개.”
“……?”
“소이빈 페이스트 수프.”
“……???”
이해하지 못하는 티파니.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된장찌개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아무튼 내일부터 다시 자제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짜릿한 쾌감이 혀에 맴돌았다.
그렇게 맛난 음식들로 배를 채워나갈 즈음, 누군가 나와 티파니 곁으로 다가왔다.
검은색의 곱슬머리를 어깨까지 기르고 있는 남자, 그렉 하트였다.
“멋진 파티로군, 신.”
“아, 그렉. 이 호박 파이가 정말이지 환상적인데요.”
“하하, 원래 경기 전에는 좀 먹어둬야 힘이 나는 법이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린 그렉이 이윽고 종이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보다, 이건 봤나?”
“뭔데요?”
“이번 링 서바이벌에 대한 도박 사이트의 배당률이다.”
“호오.”
흥미가 생겼다.
WWF처럼 전 세계에 영향력이 있는 프랜차이즈는 각종 도박 사이트에서 좋은 먹잇감이었다.
특히나 4대 페이퍼뷰 같이 사람들의 관심이 많이 몰리는 경우에는 그야말로 억만금이 오갔다.
따라서 회사에서도 화제를 위해서 최대한 경기 결과가 유출되지 않도록 조심했다.
정말 중요한 경우에는 선수 둘과 바트만 결과를 알 정도였다.
우리의 경기 역시도 그랬다.
결과를 아는 건 선수들과 티파니, 바트뿐. 다른 선수들은 우리의 경기가 최후에 이끌어낼 결과를 전혀 알지 못했다.
“어떻게 보나?”
“글쎄요.”
“결과를 알려달라고는 말 안 할 테니까 힌트만 좀 주겠나? 링 서바이벌에서 이기는 건 누구지?”
“이런 결과는 남에게 알려주는 게 아니라고 배웠는데요.”
“우리가 남인가. 내가 자네를 내 조카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실제 조카도 있잖습니까.”
“……그 녀석은 너무 고지식해서 아무리 물어봐도 안 알려주더군.”
그야 그렇겠지.
결과가 새어나가는 건 어쨌든 좋지 못한 일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그렉이 뽑아온 배당표를 잠시 확인했다.
경기 승패를 맞추는 도박.
‘신 > 시나 > 러셀’ 순으로 배당률이 낮았다. 즉, 사람들은 날 승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다.
나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그들의 예상은 맞았다. 링 서바이벌에서의 경기 승자는 내가 될 예정이었다.
‘좀 부끄러운데.’
그것은 시나와 러셀, 두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내가 현재 위상이 가장 높다는 뜻이었다.
기분이 좋기도 했고, 사람들이 예상하는 대로 결과가 흘러간다는 이야기라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멋진 경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렉, 한마디만 하죠.”
“그래, 뭐지?”
“우리 세 사람의 경기는 링 서바이벌에서 가장 핫할 겁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 * *
링 서바이벌 당일.
세미 메인으로 정해진 우리의 경기는, 사실상 오늘 페이퍼뷰에서 가장 기대 받는 매치 업이었다.
신선한 이미지와 멋진 드라마를 바탕으로 각자 나름대로의 커리어를 쌓아온 세 명의 선수.
신, 시나, 그리고 러셀.
그렇게, 우리는 주어진 기회를 살려보겠다는 일념 하에 최선을 다해 오늘의 경기를 준비했다.
그리고 10만의 관객이 모인 앞에서 링 서바이벌이 시작되었다.
페이퍼뷰의 양상은 버닝콩과 랙다운이 번갈아 한 점씩 가져가는 식으로 치열하게 이어졌다.
그렇게 아홉 번째 경기인 우리의 트리플 쓰렛이 시작되었다.
관객들의 열광 속에 입장한 나와 시나, 러셀은 미리 준비했던 대로 경기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일단 초반에는 적당히 공방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달궈나갔다.
불판을 달구듯 천천히.
농후한 향기를 풍기며 후반부를 기대하도록 만들었다.
테크니션 스타일인 러셀은 시나를 자신의 기술로서 농락했다.
녀석은 암 드래그와 체인 레슬링을 이어가며 시나에게 조금씩 대미지를 누적시켜 나갔다.
“으억?! 제기랄……!”
쿠웅-!
힘이 좋은 시나는 메쳐질 때마다 번쩍번쩍 일어났으나 러셀의 공격에 대응하지는 못했다.
그때, 내가 나섰다.
쫘악!
“크윽?!”
강렬한 찹과 함께 나는 러셀이 체인을 걸지 못하도록 일부러 빠른 공격을 거듭했다.
그리고 간간히 러셀이 사용하는 테크니션 기술도 섞었다.
“저먼.”
짧게 이야기한 나는 러셀이 그랬던 것처럼 빠르게 뒤를 잡았다.
콰앙!
허리를 잡고 넘기자 바닥에 호쾌한 소리와 함께 충돌하는 러셀.
그리고 일어선 내 앞에 시나가 분노를 표하며 서있었다.
“으엇?!”
그대로 번쩍 들려진 나는 등으로 떨어지며 낙법을 취했다.
바닥이 계속해서 흔들렸다.
공방은 점점 빨라졌고, 우리는 상대방을 자기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싸움으로 끌어오려고 했다.
시나는 힘 싸움.
러셀은 기술 싸움.
마지막으로 나는 막 싸움.
“…….”
생각하니 좀 어이가 없었지만 그 외에 내 레슬링 스타일을 설명해주는 단어가 딱히 없었다.
나는 그런 캐릭터였다.
빠른 속도로 시나를 밀어붙이다가 반대로 러셀과의 기술 싸움에서도 자기 능력을 발휘했다.
그렇기에 초반의 주도권은 내가 쥔 채로 경기를 이끌어 나갔다.
하지만 중반부의 양상은 그와는 정반대가 되었다.
세 명의 카우보이 중 가장 강한 하나는 다른 두 명의 타겟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니 말이다.
러셀과 시나가 힘을 합쳤다.
두 사람의 공격이 연이었고, 나는 버티지 못하고 물러났다.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두 사람은 나를 계속 공격했다.
콰앙!
그나마 다행인 건 두 사람 역시 서로를 견제했기에 핀을 따지는 못했다는 점이었다.
공격이 심화될 때면 두 사람은 자기들끼리도 서로를 공격했고, 그렇게 경기가 계속 이어졌다.
각종 기술들이 이어질 때마다 관객들의 환호는 더 거세졌다.
우리는 그들이 숨을 쉴 틈조차 주지 않고 계속해서 밀어붙였다.
경기를 빠른 속도로 전개하며 우리의 강점을 최대한 보여주었다.
트리플 쓰렛.
경기 시간은 15분.
다소 짧게 배정된 시간에 우리는 완급 조절을 최소한으로 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러셀과 시나 역시도 나와 같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아무리 짜놓은 각본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하는 것은 격투기였다. 그렇기에 체력 소모가 심했다.
힘이 부칠 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고비를 넘겼다.
우리가 힘겹게 산을 올라갈수록 관객들은 더 큰 환호를 보냈다.
경기의 마지막 스팟이 찾아올 때까지 나는 러셀과 시나를 띄워주고, 띄워지며, 끊임없이 싸웠다.
그리고 경기의 종반부.
계속해서 견제를 당했던 나는 목을 붙잡혀 두 사람의 더블 버티컬 수플렉스를 받아냈다.
수직으로 올라간 내 몸이 이내 바닥을 향해 힘차게 떨어졌다.
투콰앙!
“……!”
충격을 견뎌내며 옆으로 굴러 나는 링 아래로 내려갔다.
바리게이트에 팔을 걸치고 숨을 몰아쉬자 사람들이 내 어깨와 팔을 툭툭 때리며 응원을 외쳤다.
“신! 뭐하는 거야~!”
“올라가서 싸워야지!”
“이겨! 이길 수 있어!”
“제기랄……!”
혀를 찬 나는 그대로 다시 링 위로 올라가 시나를 공격했다.
그리고 러셀에게 신호를 보내 내가 두 사람에게 당했던 더블 수플렉스를 반대로 시도했다.
하지만 시나는 그걸 버텨냈다.
파워 하우스.
시나는 마치 신화 속의 헤라클레스와도 같은 힘을 발휘했다.
“웃?!”
“큭……!”
반대로 녀석이 우리 두 사람을 수플렉스로 넘겨버릴 정도였다.
콰앙!
[Waaaaaaaaaaagh!]
강력한 힘을 과시하는 시나의 모습에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
[Cena! Cena! Cena! Cena!]
호응을 유도한 시나는 러셀에게 다가가 공격을 이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러셀 역시도 그것을 마냥 당해주고 있지는 않았다.
시나의 팔을 쳐내고 턱을 걷어찬 러셀은 바닥에 넘어지는 시나의 다리를 잡고 일어났다.
희대의 테크니션인 그렉 하트보다 더 큰 재능을 가졌을지도 모르는 러셀.
그의 예술적인 레슬링 기술을 본 사람들이 그 이름을 외쳐댔다.
[Russell! Russell! Russell!]
여기서 하트 패밀리의 성명절기, 샤프 슈터가 등장할 차례였다.
러셀은 능숙한 동작으로 시나의 다리를 엮어 그대로 뒤로 돌았다.
다리를 붙잡힌 채 엎드린 시나는 허리와 다리에 큰 충격을 받으며 힘차게 비명을 내질렀다.
“끄하아아악!!”
그 앞으로 다가간 심판이 항복 의사를 물었다. 시나는 이를 악 물며 어떻게든 관절기를 버텨냈다.
그리고 그사이.
내 차례가 다가왔다.
관객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집중된 틈을 타, 나는 다시금 링 아래쪽으로 굴러 빠져나왔다.
카메라는 우리가 미리 요구했던 대로 러셀과 시나의 모습을 집중해 보여주고 있을 터였다.
숨을 한차례 몰아쉰 나는 그대로 링 바깥에서 턴버클을 밟고 힘차게 그 최정상으로 올라갔다.
다시금 등장한 내 모습에 사람들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경기의 가장 위험한 스팟.
그리고 마지막 순간.
나는 이 순간 10만 명의 집중을 받으며 반쯤 찢어져 벗겨지기 직전의 러닝셔츠를 뜯어냈다.
[Waaaaaaaaaaaghhhhhh!!]
지금까지의 모든 쇼를 통틀어 가장 거대한 환호가 나왔다.
숨을 몰아쉰 나는 SIN을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 속에서 힘차게 공중을 향해 뛰어올랐다.
러셀과 시나를 믿으며.
녀석들 역시 날 믿으며.
그대로 나는 샤프 슈터를 걸고 있는 러셀의 뒤통수를 향해 팔꿈치를 들어 올리며 뛰어내렸다.
다이빙 엘보우 드롭.
시간이 천천히 가는 듯한 착각 속에서, 나는 심판이 러셀에게 말을 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신이 뛰었으니 접수할 준비를 해라.’ 대충 그런 의미겠지.
시나의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러셀은 살짝 샤프 슈터를 풀었다.
나는 러셀의 뒤통수나 목이 아닌, 등의 위쪽을 찍으며 동시에 낙법 자세를 취했다.
콰앙-!!
러셀이 전방 낙법을 취하며 쓰러지자 두 사람이 바닥에 충돌한 소음이 크게 울려 퍼졌다.
10만 관객이 미친 듯이 열광하고 있는 가운데, 나는 일부러 조금 늦게 고개를 들었다.
시나는 샤프 슈터의 영향으로 일어서지 못하고 있는 상태.
나는 미동도 않고 쓰러진 러셀의 몸을 뒤집어 커버를 했다.
그와 동시에 물었다.
“괜찮냐?”
“아파.”
내 가슴 아래에 깔린 러셀은 내 물음에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깨를 보기 위해 링 위로 올라온 심판이 엎드려 커버를 셌다.
관객들이 힘차게 숫자를 셌다.
[1!]
[2!!]
[3!!!]
땡땡땡!!
링 벨이 힘차게 울리며 준비되어있던 내 음악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들자 시나가 필사적으로 팔을 뻗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디테일이 경기의 마지막 순간을 더 멋지게 완성시켜주었다.
옆으로 돌아 두 사람의 사이에 쓰러진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사실, 세리모니를 할 타이밍이었으나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좌우에 쓰러진 러셀과 시나를 대동한 채 나는 음악을 방패삼아 각본을 깬 이야기를 전했다.
“메인이벤트 어쩌냐.”
우리는 완전히 메인이벤트 경기를 빛 좋은 개살구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