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120화 (120/634)

120.

뉴욕 시내의 초호화 아파트.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

같이 엘리베이터에 탄 양반이, 무려 힙합의 왕이었던 것이다.

스눕-덕.

분명히 담배는 아닌 걸 말아서 피우고 있던 그는 침묵한 채 계속해서 뻐끔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바로 옆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범접할 수 없는 포스가 풍겼다.

“…….”

사인 받고 싶다.

하지만 참자.

저쪽에서 먼저 해달라고 안 했으니까. 말하자면 자존심 싸움이다.

고층 엘리베이터라 그런지 올라가는 데만 시간이 꽤나 걸렸다.

한숨을 내쉰 스눕은 선글라스 너머의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못 보던 얼굴인데.”

“어, 예?”

“이사 왔나?”

“아, 아뇨! 친구!”

“그래, 친구 하자고.”

“…….”

우리는 악수를 했다.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닌데.

뭔가에 크게 취해 있어 달리 정정할 의미는 느끼지 못했다.

그는 슬랭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내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멋진 근육이군.”

“감사합니다.”

“풋볼?”

“프로레슬링이요.”

“기간트가 정말 멋졌지.”

죽었는데.

“그때는 재미있게 봤는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좀 별로가 됐어.”

“왜죠?”

“백인들만 나오니까. 그런 의미에서 자네도…… 힘들겠군.”

“그래도 열심히 해야죠.”

“멋지군.”

끄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요새는 어떻지? 팍이 나온 것은 들었는데, 누가 가장 핫해?”

“저요.”

“너? 이름이?”

“신입니다.”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흥미로운지 고개를 끄덕인 스눕-덕이 이름을 기억했다.

“진.”

“아니, 신이요.”

“짐.”

완전히 가버렸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나는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 정도의 아파트였다.

스눕-덕이라면 미국 힙합 역사상 가장 핫한 인물 중 하나였다.

힙합 업계가 동부와 서부로 갈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미래에도 전설로 남은 랩퍼.

‘그런데 저 양반, 아마 내가 알기로 서부 쪽 사람일 텐데.’

여기는 별장 같은 건가?

돈을 엄청 벌긴 했나 보군.

그 정도로 놀라운 아파트였다.

한 층에 한 세대만 거주하는, 다시 말해 층 전체가 방 하나였다.

거기다 복층이었다.

1층에서 이름을 대지 않으면 엘리베이터조차 타지 못하는 그야말로 최첨단 하이퍼 아파트.

이 소유자가 티파니라니.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바트 맥센이 아니라 티파니 맥센이었다.

나 괜찮은 걸까.

“아, 신!”

드넓은 거실에 있던 그녀가 날 돌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달려와 푹 안겼다.

나는 그녀를 에스코트하기 위해 있던 사용인들의 눈치를 살폈다.

“……다들 보는데.”

“뭐 어때.”

내 품에 안긴 채 떨어질 생각을 안 하는 티파니. 다들 시선을 피해서 나도 포기하고 소파로 향했다.

반대편은 통유리로, 뉴욕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경이 멋졌다.

“저기, 일 얘기 좀.”

“좀만 더 이러고.”

“……사람들이라도 좀.”

“아, 다들 쉬고 있어요.”

다행히 사용인들은 그 말에 눈치를 대충 채고 물러갔다.

“내가 체리 사탕 사왔지.”

“…….”

“방송에서 여자랑 키스한 만큼 나한테도 해주기로 했잖아요?”

“안 했는데.”

“그럼 미리 내놓고 가.”

내 무릎 위에서 웃으며 말한 티파니는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입 안에 있던 사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잠깐 시간이 흘렀다.

“일 이야기로 넘어가죠.”

“…….”

반대편으로 넘어간 티파니는 체리 사탕을 하나 더 입에 물었다.

정장을 다시 제대로 입고, 새침하게 안경을 꺼내서 쓰는 모습이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별하는 그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사탕 하나 먹을래요?”

“……아뇨.”

이쪽은 ‘반 개’만으로 지쳤다.

“일단, 3일 뒤의 저녁에 개최되는 파티에 초대를 받았어요. 장소는 여기서 일곱 블럭 뒤의 호텔.”

“어떤 파티죠?”

“스포츠 스타들의 모임이죠. 정확히 말하면 그들을 후원하는 후원자들의 자기 자랑과 친목 도모 파티에요. 거기에 아버지가 절 보내셨고, 당신은 내 파트너.”

그리고 거기에는 각종 스포츠 매거진의 기자나 편집장들 역시도 참가할 예정이었다.

“보통은 회장이…….”

“그게, 아버지가 재작년에 제이나 화이트하고 리얼 파이트를 하셔서 참석을 금지 당했거든.”

“…….”

제이나 화이트.

프로레슬링의 라이벌……은 아니고, 그냥 비슷하게 생긴 업종에 있는 종합격투기 기업 회장이다.

싸움은 못하게 생겼던데.

바트가 일방적으로 이겼을 것 같다. 그래서 금지 당했겠지.

“어쨌든, 그쪽 파티에 가려면 일단 당신을 좀 꾸며야 해요.”

“어떤 식으로?”

“차는 있어야지.”

“캠핑 버스?”

“어후, 죽이고 싶다.”

“…….”

농담이었는데.

활짝 웃는 티파니의 모습이 무섭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사실, 이런 사교계는 처음이라 그 말을 따르는 게 정석이겠지.

으레 자본주의 국가가 그렇듯이, 미국은 귀족 체재가 존재했다.

옛날과 달리 왕 대신 ‘돈’이 그 작위를 수여해줬지만 말이다.

돈이 있는 자들은 그들끼리 일반인은 알지 못하는 세계를 구축했고, 그걸 TV로 보여주었다.

그게 바로 미국의 ‘셀러브리티 문화’였다. 그로 인해 유명세가 돈이 되는 시대가 찾아왔다.

대표적으로 패리스 윌튼이나 킴 카라시안, 린제이 도한, 로널드 트럼프 같은 경우가 여기에 속했다.

대중은 미디어에 나오는 셀럽들을 소비하고 대리만족하면서 그들에게 세금을 바치는 거지.

티파니 역시 비슷한 경우였다.

“너무 비싼 차도 그렇죠. 데뷔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어떻게 할까요.”

“사실 미리 매물을 구해두긴 했어요. 작년에 발매한 무르시엘라고. 색깔은 아직 안 칠했고.”

“……람보르기니?”

“얼마 안 해요. 40만 정도.”

……40만 달러(5억 원)라고.

“색깔은 어떻게 할까요?”

“음, 빨간색?”

“촌스러워. 검은색으로 가죠.”

“그, 그렇게 하죠. 돈은…….”

“됐어요. 내가 냈으니까.”

“아니, 이번에는 안 돼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의아한 듯 고개를 드는 티파니.

“지금까지 받은 게 너무 많아요. 티파니. 더 이상 받는 건 뭔가 좀 부담스럽다고 해야 하나…….”

“괜찮아요. 이건 ‘사업가’인 티파니 맥센이 후원하는 거니까.”

“후원?”

“예, ……솔직히 말할게요. 저는 당신을 끝까지 밀어줄 거예요. 끈적거리는 사이와는 별개로.”

요염하게 웃는 티파니.

“당신은 아버지를 왕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내 무기거든요.”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계속 진행해도 될까요?”

“부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 후, 아파트에는 고풍스러운 이미지의 재단사가 찾아왔다.

그는 티파니의 오더에 따라 곧바로 내 몸의 사이즈를 재나갔다.

이게 또 무슨 상황이래.

당황해 그저 흐름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내 앞에서 티파니는 계속 주문을 이어나갔다.

“움직이기에 최대한 편한 걸로 만들어줘요. 입고서 발레를 해도 될 정도로 신축성이 좋게.”

“납기일은?”

“3일 뒤, 저녁까지.”

“가격은?”

“마음대로 해요.”

“5만.”

“오케이. 대신에 평소처럼 확실하게 해줘요. 내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위약금 물어내야 돼.”

“끌끌.”

등이 굽은 노인은 속옷 하나 달랑 입은 내 몸의 사이즈를 섬세하게 재며 상세히 기록했다.

장인의 솜씨가 느껴졌다.

“방탄 기능도 넣어줄까?”

“그건 됐어요.”

약간 아쉬워하는 재단사.

나는 지금 세상을 구할 첩보 요원이 되려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파티에 입고 갈 정장을 주문한 뒤에는 미용사까지 불러 깔끔하게 관리를 받았다.

일단 머리를 단정히 자르고, 눈썹도 정리하고, 마스크 팩도 하고, 코털도 뽑고, 그 밖에 여러 가지.

심지어는 마사지까지 받으며 그동안 몸에 쌓인 피로를 풀었다.

……제기랄, 어떻게든 돈을 벌고 싶어질 정도로 호화스러웠다.

그렇게 다시 태어난(?) 나를 본 티파니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원래도 잘생긴 외모지만 관리를 해주니 더 빛이 나네요.”

나 역시 만족스러웠다.

매일매일 전 세계를 여행하는 프로레슬러는 이처럼 좋은 관리를 받는 것이 많이 힘든 법인데.

오랜만에 때를 벗겨내니 날아갈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었다.

‘나쁘지 않은데.’

파티에서도 즐겁게 놀 수 있을 것 같은 멋진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사용인들이 차려준 훌륭한 저녁식사까지 마치자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시간은 오후 9시.

하지만 일이 있다.

“아, 아. 크흠. 음음.”

피로도 풀렸겠다.

목을 가다듬은 나는 머무르기로 한 방에 혼자 서서 준비를 했다.

손에는 보이스 레코더.

이걸로 틈틈이 직쏘의 대사를 녹음해 제임스 관에게 보낼 예정이었는데, 오늘이 처음이었다.

‘빨리 해서 보내야겠군.’

어떤 식으로 녹음할지는 대강 생각해뒀으니 빠르게 진행하자.

보이스 레코더를 입에 댄 나는 몇 번 목소리를 녹음해보았다.

전생의 직쏘는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미치광이 살인마였다.

하지만 내가 배우가 된 현생의 직쏘는 그런 병을 이겨내고 건강을 되찾은 미치광이 살인마다.

자신의 철학을 남에게 가르치려고 한다는 부분은 똑같았지만, 그 코어는 완벽하게 달랐다.

전생의 직쏘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자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내 직쏘는 그와는 정반대로 그들을 계몽하고자 하는 더 재수 없고 미친 캐릭터였다.

목소리를 살짝 깐 나는 각본에 쓰인 대사를 차례대로 읽어보았다.

“……게임을 시작하지.”

기존의 직쏘가 내던 목소리에서 아주 미묘하게 톤을 변화시켰다.

내 직쏘는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환자가 아니었다. 건강을 회복하고 깨달음을 얻은…… 사이코지.

내가 대본 리딩 당시 연기했던 직쏘는 그 완성형이었다. 그렇기에 제임스에게 좋은 평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 이상으로 연기를 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걸 위해서는 일단 캐릭터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자신에게 감춰져 있던, 사람을 해하는 것에 대한 욕망을 깨달으며 서서히 미쳐가는 캐릭터.

녹음해야 할 씬은 총 열네 개.

피해자의 숫자는 다섯 명.

나는 함께 받아온 각본을 확인하며 살인의 기록을 정리했다.

……아니, 이렇게 생각하니까 진짜로 내가 사이코가 된 듯한데.

첫 번째 살인부터 마지막 살인까지. 직쏘는 점점 가학적인 충동에 휩싸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때문에 첫 번째 ‘게임’을 설명할 때는 다소 기계적으로. 두 번째부터는 조금 들뜬 기색으로.

그게 이어져 마지막 살인을 예고할 때는 살인 게임이 즐거운 것을 애써 참고 있는 기색으로.

나는 보이스 레코더를 틀고 대사를 하나하나 녹음해나갔다.

“……게임을 시작하지.”

거기서 멈추고.

“너희는 지금 발이 묶인 상태다. 빠져나갈 수는 없고, 한 시간 뒤면 방에 독가스가 분사되겠지.”

그렇게 한참 집중하며 대사를 계속해서 녹음하던 순간이었다.

조심스럽게 이어지는 노크 소리.

때마침 첫 번째 피해자에 대한 녹음이 완료된 찰나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대충 누군지 예상하고 문을 열었다.

“블루 마운틴, 어때요?”

네글리제 차림의 티파니가 커피를 든 채 서있었다.

“……집 안에서는 편하게 지내는 모양이로군.”

시선을 둘 곳이 난감해진 나는 일단 그녀를 안으로 들였다.

마침 졸음이 오던 찰나라 커피 한 잔이 반갑기도 했고.

“뭐하고 있었어요?”

“영화 녹음이요.”

“아, 그 제임스 완인가?”

“관이요.”

“괜찮을 것 같아요?”

“대박이 날 겁니다.”

“공포 영화의 시대는 한물가지 않았던가. 괜찮겠어요?”

“제 안목을 믿으시죠.”

“여전히 자신만만하네.”

싱긋 웃은 티파니는 다리를 슬쩍 꼬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쪽 일도 일이지만 3일 뒤까지 나와도 할 일이 좀 있어요.”

“뭐죠?”

“일단 무르시엘라고에 적응하는 것. 에스코트는 그쪽이 하는 거라 운전도 해야 되니까요.”

“그리고?”

“파티에 참석하는 30명의 후원자들 이름과 얼굴을 모조리 외워요.”

“예?”

“기왕 하는 김에 같이 오는 스포츠 스타의 자료도 줄게요. 파티에서는 후원자와 함께 다닐 테니 연계해서 외우면 한결 쉽겠죠.”

“…….”

“사교계에서는 필수적인 일이에요. 적응해두는 게 좋지.”

“한번 해보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좋은 기회이기는 했다.

파티에 참여해 얼굴을 알린다면 내 값어치는 더 올라가리라.

피플즈 매거진이 매년 뽑는 섹시 가이 목록.

거기에 올라가기 위해, 일단 사교계에 진입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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