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슈퍼카 중 하나. 그리고 개중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시리즈.
위로 열리는 시저 도어가 마치 날개를 편 박쥐와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 무르시엘라고다.
……스페인어로 박쥐가 무르시엘라고 하는데. 참으로 멋지지만 효율 없는 작명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그냥 Bat라고 하는데.’
나는 물끄러미 눈앞에 있는 검은 슈퍼카를 보면서 생각했다.
뉴욕의 람보르기니 전용 매장.
아침이 되어 티파니와 함께 이곳에 온 나는 준비된 무르시엘라고를 픽 업 하는 중이었다.
황금색의 소가 새겨진 로고.
각지고 남성적인 디자인.
날렵하고 낮은 차체.
새틴 블랙의 컬러링은 시크했고 휠 안쪽의 브레이크 캘리퍼는 그대로 붉은색이라 더 멋졌다.
‘환상적이군.’
침이 꼴깍 넘어갔다.
말했듯 나는 운전을 꽤나 많이 했고, 좋아하는 편이었다.
때문에 눈앞의 이 황소가 가진 매력이 그대로 느껴졌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자를 눈앞에 둔 기분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신!”
그에 지지 않을 정도로 멋진 여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주차장 입구로 들어오던 티파니가 뭔가를 휙 던졌다.
무르시엘라고의 차 키였다.
손에 딱 잡히는 열쇠는 잭나이프처럼 펼치게 되어 있었다.
“등록은 해놨으니 타면 되요.”
“……너무 호화스러운데.”
“며칠 타면 익숙해져요.”
빙긋 웃은 그녀는 자신을 따라 나온 직원을 돌아보았다.
“배려 고마워요.”
“아닙니다. 오히려 마침 필요하신 차량이 있어 다행이었네요.”
그렇게 인사를 마친 티파니가 조수석 쪽으로 다가왔다.
“안 타고 뭐해요?”
“에스코트라도 할까 해서.”
“어머, 고마워라.”
나는 조수석의 문을 열고 티파니가 먼저 타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운전석에 타자 마치 차와 하나가 된 것 같았다.
‘멋지군.’
꽉 잡히는 그립.
침을 꿀꺽 삼킨 나는 그대로 천천히 시동을 걸어보았다.
우르르르르릉…….
진짜로 천둥이 치는 듯했다.
외부의 소리는 모두 차단되었고 배기음만이 내 귀에 들려왔다.
차원이 다른 감각이었다.
“어때요?”
“……번호 따고 싶은데.”
내가 타고 있는 람보르기니에게 핸드폰이 있다면 말이다.
쓰게 웃으며 농담한 나는 천천히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다.
주차장 입구에 나란히 서있던 직원들이 우리를 배웅했다.
그대로 실내주차장을 빠져나온 나와 티파니, 람보는 뉴욕 시내를 마음껏 질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금방 깨달았다.
‘사람들이 이래서 슈퍼카, 슈퍼카, 노래를 부르는 거였군.’
이 머신이 생각보다 훨씬 더 괜찮은 놈이라는 사실을.
환상적이었다.
힘이 좋은 반면 정숙했고, 운전할 때의 감각도 아주 좋았다.
액셀을 밟을 때마다 이어지는 사운드가 귀를 간질였다.
나는 완전히 사랑에 빠져 계속해서 뉴욕 시내를 달렸다.
그러자니 얼마 후 티파니가 슬그머니 말을 걸어왔다.
“점심 먹고 갈래요?”
“점심?”
“예, 아침은 가볍게 먹었으니까 근처 텐 가이즈라도 사서 가죠.”
“……그런 것도 먹어요?”
“나는 동화책에 나오는 세상물정 모르는 공주님이 아니거든요?”
티파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
텐 가이즈.
모든 메뉴를 땅콩기름으로 튀기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좋은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이었다.
“건강을 위해서는 안 먹는 게 제일이지만, 보셨다시피 우리 집 메뉴는 너무 건강식 위주라서.”
“그래요? 어제 맛있었는데.”
“보통 미국인의 식사에 비하면 거의 채식주의자 수준이죠.”
그건 그렇기는 했다.
나름 꾸며진 식단이었지만 칼로리는 철저하게 계산해둬서 나 역시도 마음껏 먹었던 거였지.
“그럼, 갈까요?”
“좋아요.”
미소를 짓는 티파니.
그렇게 근처의 가게에 도착한 우리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문을 열고 내리려던 순간, 티파니가 나를 제지했다.
“잠깐만요. 신.”
“왜요?”
“내리기 전에 주변을 확인해요.”
그 말에 창문 밖을 돌아본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변을 지나치던 사람들이 우리 차를 신기해하며 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텐 가이즈 안의 사람들 역시도 햄버거를 먹다 말고 놀라 차를 바라보았다.
“어…….”
역시 이 차를 타고 여기에 오는 건 잘못된 선택이었나?
순간 당황한 나와 달리 티파니는 침착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슈퍼카가 이런 면에서 장점이자 단점이 되는 거죠.”
“……장점이 됩니까?”
“예, 과시할 수 있잖아요. 여기에 스크린 하나만 씌우면 대리만족이 될 수 있기도 하고.”
그 말이 맞았다.
셀러브리티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담아낸 리얼리티 방송은 언제나 시청률이 보장되었다.
“그런 만큼 불필요하게 대중의 관심을 끌어서 피곤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거고요.”
“확실히 그렇군요.”
수백 개의 눈동자가 날 보는 게 여간 곤혹스럽지가 않았다.
내가 이런 상황을 한 번 겪어보도록 하기 위해 티파니는 텐 가이즈를 선택한 것일까.
“하지만 사교계 인사들은 언제나 이 유명세를 필요로 하죠. 호화로운 저택, 차, 보석과 돈.”
“……자기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 돈을 벌어들이는 거군.”
“예, 일종의 순환이죠. 윌튼이 말했잖아요. ‘상속녀로 태어나는 게 가장 중요하다.’라고요.”
“패리스 윌튼?”
“예, 제가 만난 그녀는 이미지와 다르게 굉장히 스마트한 사람이에요. 그러니 그 위치까지 올랐죠.”
대중들이 그녀를 골 빈 상속녀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전략.
“뭔가 저희 프로레슬러와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군요.”
현실에 결합된 캐릭터와 이야기가 상품이 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맞아요. 그러니 당신이라면 분명 잘할 수 있을 거예요.”
대충 알 것 같았다.
티파니가 무슨 이유로 날 이곳에 데려왔는지. 내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할지.
‘이제는 링 밖에서도 케이페이브를 지킬 필요가 있다는 말이군.’
우리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현실에서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 프로레슬러에게 있어 기본이었으니까.
섹시한 플레이보이.
사교계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유명세를 키워나간다.
뭐, 말이 복잡하지. 적당히 이미지를 챙기라는 이야기이리라.
나는 지금 눈앞에 있는 대중들을 쇼의 관객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표정을 가다듬고, 감정을 정돈한 뒤 차에서 나서려던 순간.
“그럼, 다녀와요.”
티파니가 손을 흔들었다.
“같이 가는 거 아니었어?”
“연습은 혼자 해야죠. 절대 사람들 사이에 휘말리고 싶어서 이러는 건 아니고.”
“…….”
틀린 말은 아니군.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곧바로 문을 열고 내렸다.
오, 하고 기대하는 소리.
사람들의 시선에 살짝 시선이 갔으나 무시하고 움직였다.
이 사람들은 말하자면 언제 몰아칠지 모르는 파도와 같았다.
내가 프로레슬링을 하며 배운 바에 따르면, 자극하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 가장 좋았다.
동시에 신경을 쓰지 않고.
난 여기에 버거를 사러 왔지 사인하러 온 게 아니다.
지금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면 사람들은 곧바로 ‘나도! 나도!’ 하면서 달려들 게 분명했다.
그러면 버거도 못 사겠지.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나는 적당히 인사를 건네며 사람들 사이를 지나쳤다.
대부분은 길을 터주었지만 몇몇이 흥분해 내 앞으로 나섰다.
잔뜩 흥분한 그들은 심지어 내 티셔츠를 입고 있기까지 했다.
“신, 사인 좀……!”
“죄송합니다. 지금 너무 복잡해서 사인은 힘들 것 같아요.”
나는 일부러 그런 이들이 보내는 애정을 좀 밀어냈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른 게 도움이 되었음에도 말이다.
날 모른 채 있던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신이라고?”
“몰라? 프로레슬러 있잖아.”
“와, 키 엄청 크네. 몸도 좋고.”
“심지어 잘생겼어!”
그들을 향해 한번 싱긋 웃어준 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물론, 지금 날 보기 위해 모인 사람의 숫자는 극히 적었다.
프로레슬러로서 공항에 갈 때마다 모인 사람들의 절반?
하지만 이들은 날 모른다. 거기에 프로레슬링에 관심도 없겠지.
그러므로 집에 가서 나에 대해 찾아볼 것이고, 이는 이름이 점점 퍼져 나가는 계기가 될 터였다.
파티에서는 더 그렇겠지.
그곳에 셀럽들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의 숫자는 엄청날 테니까.
거기다 그 안에는 기사를 써서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자들도 꽤나 많을 터.
‘이런 느낌이군.’
나는 링 위에서 그랬던 것처럼 몇 마디 말로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며 목적을 향해 나아갔다.
“죄송합니다. 잠깐만요.”
최대한 상냥하고 부드럽게.
“신! 팬이에요!”
“감사합니다.”
용기를 낸 외침에 반응해주며 나는 햄버거를 주문했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어깨를 곧게 펴고 서서 딱히 서있는 모습에 결함이 없도록 유지한다.
몇몇 사람들이 사진을 함께 찍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때마다 정중히 거절하고 돌려보냈다.
하지만 거리를 두고 날 찍는 사진은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카운터의 여자 직원이 날 불렀다.
“소, 손님, 포장 나왔습니다!”
“소란스럽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여기 버거가 워낙 맛있어서.”
“아, 아니에요!”
뺨이 붉어진 채 대답하는 직원.
나는 그대로 돌아서 아까 전과 같은 방법으로 빠져나왔다.
람보르기니에 도착해 티파니에게 종이봉투를 건네주었다.
“어땠어요?”
“뭐, 별거 있겠습니까.”
“이미지는 잡혀요? 파티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그냥 적당히 남들 앞에서 젠틀하게 굴란 것 아닙니까?”
“호오, 쉽게 가능해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해?”
나는 시동을 걸고 텐 가이즈를 빠져나오며 싱긋 웃어 보였다.
“내가 아닌 캐릭터를 연기하는 거야 도가 튼 인간이라고.”
“후후, 잘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크으, 패티 두 장. 멋져.”
“텐 가이즈가 원래 그렇잖아.”
“아으이 으애오…….”
“다 씹고 말해.”
나는 티파니를 배려해 일부러 차를 조금 살살 몰았다.
어쨌든 이로써 알았다.
내가 미디어에서 보인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각인되는 정도를.
그들은 내 행동을 보고 정말 날 TV 속에서 보던 선수와 똑같은 성격이라고 생각할 터였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는 내가 미디어에 비슷한 방식으로 계속 노출될수록 더 강렬해지겠지.
‘이래서 옛날 사람들이 프로레슬링이 진짜라고 생각한 거군.’
하나를 배운 느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알고 있던 사실의 활용 용도를 알게 된 것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전생에서는 결코 알 수 없던 감각이었다.
* * *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남은 이틀 동안 1차 녹음을 마치고, 참석자들의 목록을 전부 외우는 것으로 참석 준비를 마쳤다.
오후 8시에 시작하는 파티.
즉,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진다는 이야기였다.
때문에 일부러 티파니와 나는 낮잠을 자 체력을 보충했다.
그리고 일어나자 3일 전에 맞췄던 정장이 도착한 뒤였다.
색깔은 블루블랙.
좀 화려하지 않나 싶었으나 커튼 뒤쪽에서 드레스를 입고 있던 티파니는 내 말을 부정했다.
“완전 상류층 파티가 아니에요. 좀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파티라서 그 정도가 딱 예뻐요.”
“그런가?”
“예, 당신은 체격도 딱 정장이 아슬아슬하게 어울릴 정도라.”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검정색 원피스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무릎까지 이르는 원피스는 화려한 시스루로 무척 잘 어울렸다.
“보기에 괜찮네요.”
“당신도 그래.”
“흠, 내 원피스가 검정색이라서 실망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응? 그것도 예뻐.”
“……아니, 보통은요.”
눈을 가늘게 뜬 그녀가 이내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커플로 색 맞춰서 가는 게 일반적이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이 경우에는 사업자와 후원자의 관계니까……. 아! 몰라! 말하니까 더 창피하잖아!”
으앙! 하고 우는 소리를 낸 그녀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이거나 해줘요!”
뭔가 싶어 안을 확인한 나는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파란색’ 사파이어 목걸이가 그 안에 들어있었다.
이건 좀 귀여운데.
“자, 해요.”
내 앞에서 돌아선 티파니.
틀어 올려 묶은 금발 아래의 가느다란 목이 붉게 물든 채였다.
“내 정장이랑 색이 아주 딱 맞는 파란색 목걸이잖아?”
“……조용해.”
나는 겨우 그 말만 하는 티파니에게 목걸이를 해주었다.
그녀는 반대로 내 손에 첫 선물로 주었던 시계를 차주었고.
그렇게 파티 준비가 끝낸 우리는 아파트를 나섰다.
‘어디 한번 해보자고.’
미국 사교계의 파티.
물론 난 자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