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퀸 메리골드 호텔.
나는 티파니로부터 들은 파티의 진행 순서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일단 호텔에 도착해, 그 앞에 차를 대고 먼저 내린다.
그리고 다가온 보이에게 키를 줘 주차를 부탁하고 티파니를 에스코트해 안으로 들어선다.
그 과정 모두를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기자나 사람들이 지켜보게 된다.
‘이거였지.’
일단 그 과정에만 집중하기로 한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티파니.”
“네.”
“쇼에서 보면 초대된 사람들이 한 시간대에 몰리지 않고 다 다른 시간에 도착하잖아요.”
나는 TV에서 보고는 했던 시상식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레드 카펫이 펼쳐져 있는 건물 앞. 차례대로 헐리우드 스타들이 등장해 내리고 사진 세례를 받고, 뭐 그러는 식이었지.
“그건 어떻게 하는 거야?”
뒷골목에서 자기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아닐 테고.
“5분 간격으로 초대하는 거죠.”
“참 간단한 방법이군.”
“네, 그래서 아주 정확한 시간에 도착해야만 해요. 우리는 8시 10분에 초대받았네요.”
지금은 6분.
“속력을 높여야겠네.”
나는 액셀을 밟았다.
배기음이 한층 더 짜릿하게 치솟았다. 차량은 뉴욕의 도로를 미끄러져 파티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몇 블록 전부터 대충 위치가 감이 오기 시작했다.
‘더럽게 화려하군.’
아니, 그보다 주변에 다른 호텔도 많은데 저래도 괜찮나?
하늘을 향해 꼬리를 물고 날아오른 폭죽이 터졌다.
옛날 배트맨 영화도 아니고.
‘2005년의 감성이로군.’
어색하게 웃은 나는 호텔 앞으로 계속해서 차를 몰고 갔다.
길을 미리 터두고 있는 경호원들의 안내를 받아 무사히 주차.
“멋지게 부탁해요.”
티파니의 응원(?)을 받으며 차에서 내린 나는 일단 도로 반대편의 ‘관객’들을 확인했다.
셀럽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모여 있는 사람들.
간간히 환호성이 일었지만 모두가 날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였다.
거기에서 싱긋 웃는다.
환호가 이는 쪽으로 가볍게 손을 흔들어 답을 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곁으로 다가오는 호텔 보이에게 열쇠를 건넸다.
“확실히 맡았습니다.”
“고마워요.”
인사를 마치고 돌아가 조수석의 문을 열자 티파니가 내렸다.
“좀 심플한데?”
“과한 건 좋지 않죠.”
카메라 세례가 이어졌다.
나는 티파니를 에스코트하며 그대로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말 그대로, 여유를 보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움직였다.
사실, 이 모든 게 처음이라 긴장을 좀 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그건 내 팔을 잡고 있는 티파니에게만 전해지고 있을 터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고풍스러운 호텔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경호원과 초대를 받은 사람들, 직원들이 조금 있는 홀.
나와 티파니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던 노부인에게 다가갔다.
그래, 이 파티의 주최자이자 유일하게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는 참가자.
홉킨스 부인이었다.
철강 사업을 하던 남편과 사별하고 야구 스타인 조지프 기요세프와 얼마 전에 결혼을 했지.
티파니에게 받은 자료를 떠올린 나는 그대로 먼저 인사를 나누는 ‘후원자’들을 지켜보았다.
“티파니 맥센.”
“홉킨스 부인!”
“와줘서 고마워요. 이쪽은?”
“제가 이번에 밀고자 하는 선수에요. 링 네임은 신이죠.”
“신~. 반가워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홉킨스 부인.”
가까이 다가간 나는 부인의 손을 들고 입을 맞췄다.
“얼굴도 잘생긴 분이군요. 프로레슬러 같지 않다는 느낌.”
“하하, 그렇죠? 지금까지 왔던 선수들은 대부분 한 덩치 했으니까요.”
“그래도 이편이 멋진데요.”
“새 시대의 레슬러죠.”
그렇게 인사를 나눈 우리는 홉킨스 부인을 두고 먼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나는 곧장 물었다.
“……남편은?”
죽은 남편이 아니라 현 남편인 기요세프를 말하는 것이었다.
“아마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여자들과 놀고 있겠죠.”
“그래도 되요?”
“알고 결혼한 거니까 우리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죠.”
“…….”
“돈으로 사랑을 살 수는 있지만 묶어둘 수는 없는 거지.”
묘한 말이었다.
장난스럽게 웃은 티파니는 그대로 내 어깨에 기대어 섰다.
“조심해요, 신. 여기는 아마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로 가득할 테니까.”
“예를 들자면?”
“아버지가 제이나 화이트와 싸웠던 이유가 선수들 간에 격투기를 시키려고 해서였죠.”
“……각오를 다져야 하나?”
“아니, 걱정 말아요. 그건 내가 확실하게 이야기를 해뒀으니까. 선수들 간에 실전 격투기를 시키면 WWF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흐음.”
뭔가 좀 불안한데.
“다른 건 시킨다는 건가?”
“그건 모르겠는데요.”
“한번 알아보…….”
바로 그때였다.
최상층을 향해 가던 엘리베이터가 중간에 잠시 섰다. 나와 티파니는 순간 하던 이야기를 멈췄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어?”
내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아.”
상대방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 정확히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헤이, 맨~ 우리 구면이지?”
“스눕-덕.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만나게 되네요.”
“그러게. 신이었던가?”
“용케 기억하시네요.”
“아, 미안. 내가 그때 좀 머리가 휙 가있던 상황이라서.”
“…….”
“아, 티파니 맥센.”
스눕-덕은 내 뒤에 서있던 티파니를 알아보고 터벅터벅 다가왔다.
“오랜만이군요, 스누비.”
“잘 지냈죠?”
“예, 오늘도 공연하는 건가요?”
“그렇게 됐습니다. 홉킨스 부인이 배려를 해주시더군요.”
의외로…… 굉장히 신사답게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다.
“저희 신과는 언제 만나셨죠?”
“1년 전이었나?”
“……3일 전이죠.”
“아, 미안. 취해있으면 기억이 잘 안 나서 말이야.”
담배는 아닌 무언가에 말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났어요. 그때 인사 좀 나눴죠.”
“스누비가 모르는 사람하고 대화를 나눌 줄이야.”
“좀 미안한 말인데, 내가 봐오던 동양인들하고 많이 달라서.”
그렇게 말한 스눕-덕이 내게 다시 악수를 청했다.
“그때는 그랬어. 좀 인종적인 이야기라 정식으로 사과할게.”
“괜찮습니다.”
봐줬다.
악의는 없는 듯하고.
거기에 분위기를 깰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스눕-덕과 대화를 나누며 최상층으로 향했다.
루프 탑은 깔끔한 분위기였다.
디제잉 머신이 설치된 스테이지.
중앙의 큰 분수를 중심으로 각종 관엽 식물이 자라난 가운데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파티가 시작되기 전에 다들 미리 인사를 나누고 싶은 거겠지.
스눕-덕은 우리를 데리고 껄렁거리며 스테이지로 향했다.
“저 디제잉 머신이 이번에 나온 건데 성능이 아주 죽여줘.”
“뉴욕 사람들 대부분이 잠 못 이루는 밤이 되겠군요.”
“걱정 마. 다들 돈을 모아서 이 근처 호텔의 하룻밤을 샀으니까.”
“그거 멋진데요.”
말과 달리 나는 아주 약간 많이 당황해 티파니를 돌아보았다.
‘그게 참가비였어요.’라고 나에게 귓속말을 해주는 그녀.
이게 사교계라는 건가.
뭐, 그렇게 돈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가면 화젯거리도 되어서 다들 원하던 상황이라는 거겠지.
“일단 한 잔씩 하자고.”
스눕-덕은 스테이지 위에 놓여 있던 술을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그리고 신, 우리는 친구가 되기로 하지 않았던가?”
“그랬었죠.”
오해였지만.
“스누비라고 불러. 내 친구들은 모두 날 그렇게 부르니까. 선수라고 하더니, ‘샴피’는 괜찮나?”
“그 정도면 뭐.”
“여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샴페인을 한 잔 마셔보게나.”
나는 스눕이 따라주는 샴페인을 가볍게 한 모금 마셨다.
“200만 달러(23억 원)짜리지.”
“……?”
“아니, 그거 안에 들어있는 다이아몬드 때문에 비싼 거잖아요.”
“크히히, 잘못하면 다이아몬드를 마셔버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순간 당황한 날 보며 웃은 스누비가 스테이지 위로 올라갔다.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음악을 틀고 디제잉을 시작했다.
“재미있는 사람이죠?”
“……200만 달러짜리 샴페인을 병나발 불고 있다는 점만 빼면요.”
“그러니까 재미있는 거지. 일단 인사나 계속해서 다니자고요.”
나는 티파니의 손에 이끌려 파티장을 잠시 돌아다녔다.
초대된 후원자와 그 선수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는 묘한 사실을 하나 느끼고 눈썹을 치켜떴다.
그들이 무슨 운동을 하는지 딱히 자기소개를 하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 느껴졌다.
‘미식축구로군.’
포지션은 라인인가?
어깨가 넓고 키가 큰 선수와 만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맞았다.
키가 크고 말랐으며 손발이 유난스러울 정도로 큰 건 농구.
체격은 평범한데 바지통이 좀 넓은 남자는 아마 축구 선수.
아예 평범해 보이는 남자는 말할 것도 없이 F1의 드라이버.
그 외에 복싱, 종합격투기는 주먹이나 얼굴을 보고 구분했다.
‘눈이 좀 좋아지기는 했군.’
나는 젠틀하게 인사를 나누면서도 그들을 면밀히 살폈다.
티파니의 말대로라면 아마 오늘 뭔가 이들과 경쟁을 벌여야 할 것 같은 상황이니 말이다.
* * *
제이나 화이트.
올해 34세의 그는 종합격투기 사업을 인수한 뒤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크게 키워냈다.
Almighty Fighting Championship.
줄여서 AFC.
세간에서는 타 단체를 박살내는 그의 방식을 보고 제2의 바트 맥센과 같다는 평가를 했지만.
제이나 자신은 그런 말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남자였다.
바트 맥센은 금수저 출신.
하지만 그는 기껏해야 에어로빅이나 가르치던 애송이였다.
사업 파트너를 끌어들여 필사적으로 비전을 설명하고 패배의 쓴맛을 느끼며 이곳까지 기어왔다.
때문에 바트와 비교를 당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 굴욕이었다.
거기다 황금기가 지나간 구닥다리 ‘가짜’ 프로레슬링과 달리, 종합격투기 사업은 성장할 여지가 많이 남아있는 상태였으니까.
‘가짜 주제에.’
바 테이블에 앉은 제이나는 단숨에 술을 들이키며 생각했다.
힐끔 돌아간 그의 시선이 파티장의 한쪽에 서있는 아름다운 여인에게로 향했다.
바로 티파니 맥센이었다.
오기 전에 확인한 손님 목록에서 그녀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분이 나빴는지 모른다.
겨우 눈엣가시 같던 바트 맥센을 안 볼 수 있게 되었나 싶었는데 이게 더 기분이 더러웠다.
제이나의 시선이 미소를 짓고 있는 티파니의 얼굴로 향했다.
‘기껏해야 20대 중반.’
결국 바트와 같은 금수저였다.
그렇기에 제이나는 티파니에게서 더 큰 혐오감을 느꼈다.
적어도 프로레슬링 사업을 키워낸 경험이 있는 바트와 달리, 그녀는 온전히 배경으로만 이 파티에 참석했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오늘은 어떻게 해서든 한 방 먹여주고 싶었다.
그를 위해 준비해온 것이 바로 옆에 서있는 바로 이 남자.
프레디 헬버그.
이름이 알려진 선수는 아니다.
데뷔조차 3개월 뒤의 시합이 될 것이었다. 즉, 지금 한창 몸을 만들고 있는 도중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 실력은 확실했다.
그간 수많은 선수를 보아온 제이나가 느끼기에, 오늘 가장 데려오기에 적합한 선수였다.
‘아니, 그걸 제외하고서라도 프로레슬러에게 질 리는 없지만.’
결국 쇼나 하는 놈들이다.
게임이 어떤 형태든 간에 실전이라면 이쪽이 반드시 우위.
거기다 그는 게임의 룰에도 미리 손을 써둔 상태였다.
“프레디.”
그 이야기를 위해 제이나는 옆에 있던 프레디를 돌아보았다.
“프레디?”
하지만 그 시선은 티파니의 옆에 서있는 남자에게 팔린 채였다.
제이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프레디는 아직 티파니 맥센이 누군지도 몰랐다. 그러므로 ‘티파니 옆에 있는 선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 터.
“무슨 일이야?”
몇 번이고 묻자 고개를 갸웃거린 프레디가 겨우 입을 열었다.
“……아니, 뭔가 이상해서요.”
“뭐가?”
프레디는 말했었다.
자신은 대강 양복을 입은 것만 봐도 어떤 선수가 어떤 스포츠를 해왔는지가 보인다고.
그런데…….
“저기 저 동양인은 뭔가 좀 이상합니다.”
“뭐……?”
“무슨 운동을 해왔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확실히 제대로 단련해온 몸입니다. 저 두터운 목을 보면 알 수 있죠.”
그 말에 티파니의 옆에 선 동양인을 돌아본 제이나는 이내 어이가 없어 웃었다.
설마 그럴 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