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초대된 사람들이 모두 파티장에 도착하고, 스눕-덕이 본격적으로 디제잉을 시작했다.
스테이지 앞 공간에 모인 사람들이 춤을 추는 게 보였다.
젊은 사람들이 주로 모인다는 티파니의 말이 맞았다.
사실, 재작년에 바트가 여기에 초대되었다고 해서 과연 맞는 말인가 싶었는데.
후원자와 선수 외에도 기자들과 모델, 가수나 배우들까지.
일류는 아니었지만 TV쇼에 간간히 얼굴이 보이는 신인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초대된 그들은 후원자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려고 노력했다.
스눕-덕의 디제잉에 맞춰 열심히 춤을 추었다.
거기에서 나는 새삼 깨달았다.
‘이런 느낌이군.’
사교계의 파티가 마냥 즐기는 곳만은 아니란 사실을.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바 테이블에 기대어 서있던 나는 주변을 면밀히 살폈다.
티파니는 홉킨스 부인과 대화를 나누겠다며 잠시 빠졌다.
일단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마티니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목표로 점찍어둔 기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검은 피부에 펑키한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은 여성.
난간 앞에 서서 스테이지와 뉴욕 풍경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올리비아 마르셰.
프랑스계 미국인.
현재 남성 잡지인 스트롱 가이즈의 기자를 맡고 있으며, 모델이 마음에 들지 않자 직접 세미 누드 화보를 찍은 걸로 유명했다.
지루한 듯한 표정에서 나는 그녀를 타겟으로 삼은 것이었다.
일단 근처를 지나가던 보이에게서 샴페인 두 잔을 챙겼다.
그리고 나는 무표정한 얼굴의 올리비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거기에서 원래대로라면 자기소개가 이어질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나는 잔을 건네고, 옆에 기대어 서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샴페인을 마셨다.
[DJ-Dugg! DJ-Dugg! DJ-Dugg! DJ-Dugg! DJ-Dugg!]
스눕-덕이 스테이지 위에서 사람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파티장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와 동시에 폭죽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피슈우우우~~! 펑!!
퍼펑! 펑!
……더럽게 화려하군.
하지만 스눕-덕의 디제잉은 역시 왕이라 불리는 남자다웠다.
크게 동부와 서부, 남부로 나뉘어 있는 미국의 힙합.
개중에서 스눕-덕만큼 꾸준히 활동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Hey doggy! Hey doggy! Hey doggy! Hey doggy!]
자연스럽게 턱짓을 하게 만드는 그루브였다. 나는 그렇게 한동안 스누비의 음악을 즐겼다.
그러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대로 그쪽에서 먼저 내게 흥미를 가지고 말을 걸어왔다.
“자기소개는 안 해요?”
“음악이 좋잖아요.”
“이상한 사람이네. 보통 여기 처음 오면 다들 자기 자신을 알리려고 혈안이 되는 것 같던데.”
“그래요?”
“저기 저 친구를 봐요.”
올리비아가 스테이지로부터 좀 벗어난 바 쪽을 가리켰다.
아는 얼굴이었다.
AFC 사장인 제이나 화이트.
“제이나 화이트 옆에 서있는 남자 보이죠? 이번에 데뷔한다는 격투기 선수인데.”
“프레디로군.”
“응? 알아요?”
“관심이 있어서.”
나는 적당히 이야기했다.
사실 전생에 꽤나 유명한 선수였기에 기억하는 것뿐이었다.
프레디 헬버그.
산하 단체에서 24전 24승을 기록하고 위로 올라온 몬스터.
이후에는 AFC 4대 신성 중 하나로 거론될 정도로 성장했다.
올리비아는 프레디를 알아보는 날 흥미롭다는 듯 보았다.
하긴, 지금의 프레디는 이름이 알려진 선수는 아니니까.
“저 친구 보시면 제이나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니고 있죠.”
“흐음.”
“눈치를 보는 걸 보면 뭔가 이유가 있어서 데려온 거다 싶은데 그걸 도저히 모르겠단 말이지.”
“그렇군요.”
“……다시 돌아와서, 그쪽도 나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샴페인만 마시는군요.”
일련의 대화로 나는 올리비아를 고른 내 안목에 확신을 느꼈다.
원하는 대로, 그녀는 이곳의 사람들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이것도 작전?”
“그렇죠.”
“어떤 작전이죠?”
“그쪽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면 ‘심심해 보여서 왔다.’라고 멋지게 말해줄 생각이었죠.”
“그걸 밝히는 이유는?”
“그래야 웃어줄 것 같아서.”
“푸핫!”
올리비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싱긋 웃은 나는 그 옆에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녀에게 나라는 남자에 대해 각인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신입니다.”
“……알고 있어요. 저는 올리비아 마르셰라고 해요.”
“스트롱 가이즈의 기자님이시죠. 지난달의 기사는 잘 봤습니다.”
“저도 경기 잘 보고 있어요.”
“어떤 경기요?”
“그러는 그쪽은?”
“이번 달의 핫한 유럽 모델 특집이었죠. 여기 오기 전에 받은 자료에서 읽었습니다.”
“어머, 우연이네요. 나도 그쪽 경기 뉴스로 다 봤는데.”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분위기를 풀어나갔다.
“WWF는 미국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기업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에서 성공하려면 정말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했겠군요.”
“뼈보다는 지방을 깎아냈죠.”
“흐음…….”
잠시 침묵하던 그녀가 이내 자신의 핸드백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나중에 연락 줄래요?”
“꼭 드리죠.”
이걸로 됐다.
그 후로 적당히 몇 마디를 더 주고받은 나는 올리비아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나쁘지 않군.’
그녀가 반드시 내 기사를 써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확률을 올려둬야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스테이지에서 떨어져 있는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녔다.
처음에는 시치미를 떼며 접근했다가, 농담하는 척하며 속내를 드러내는 식으로 오히려 솔직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줘 호감을 얻는다.
그럼 그쪽에서는 내 매력적인 캐릭터와 외모를 보고는 흥미를 느끼는 식이었다.
그리하여 파티가 슬슬 무르익을 즈음, 나는 열 명이 넘는 기자들과 교류를 끝마쳤다.
다들 내게 예의 이상의 호의를 보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일이 술술 풀리는군.’
스테이지 위의 스눕-덕은 완전히 흥이 올라 어느새 셔츠를 벗어던진 뒤였다.
댄서들이 나와서 춤을 추었고 그가 가장 히트시킨 노래인 ‘매일 담배 피워’가 이어졌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 터져 오르는 폭죽. 사람들은 스눕-덕을 따라 미친 듯이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그게 끝날 즈음해서 티파니가 내 옆으로 돌아왔다.
“어땠어요?”
“열 명 정도?”
“호오, 그 정도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했는데요.”
감탄하며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티파니.
술을 좀 마셨는지 양 뺨이 붉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이쪽도 이야기 잘 끝났어요.”
“홉킨스 부인하고? 대체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거야?”
“술 좀 먹여서 오늘 파티에서 무슨 꿍꿍이가 있나 물어봤죠.”
“……그런 걸 걱정해야 합니까?”
“예, 홉킨스 부인은 매년 선수들을 선정해서 각종 대결을 시키는 걸로 유명하거든요.”
“뭐……?”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고. 깃발 뺏기나 팔씨름 같은 평범한 게임이에요. 다만 프로들끼리 붙으니 그 열기가 장난이 아닌 거지.”
“그런 걸 왜 하는 거야?”
“홉킨스 부인의 취미에요. 그 여자, 생각보다 성미가 나쁘거든.”
“……설마 재작년에 바트와 제이나가 싸웠다는 이유가?”
“그 게임이 격해지면서죠.”
“흐음.”
“그런데, 다행히 오늘 우리는 대결 대상에는 없다는 군요.”
“좋은 건가?”
“예, 어울려줄 필요 없어요. 졌을 때 잃는 게 너무 많아.”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승리한다면 좋은 반응을 얻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기자들이 매의 눈으로 선수들의 대결을 지켜볼 테니까.
대결에 나섰다가 지기라도 한다면 완전히 창피를 당하겠지.
물론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우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천천히 내 이름을 알리는 것.
그리고 그건 이미 나쁘지 않게 진행되고 난 뒤였다.
바로 그때였다.
“사실, 오늘 당신의 모습을 보고 좀 기대하기는 했거든요. 그래서 대결을 시켜볼까 했는데.”
언제 왔는지 돌연 홉킨스 부인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오너의 전략이라면 따르는 게 맞겠네. 그렇죠?”
“…….”
“하긴, 프로레슬러가 승부에서 이긴 적도 없고 말이야.”
작게 중얼거린 그녀가 우리를 스쳐 그대로 무대 위로 올라갔다.
심한 욕을 내뱉은 티파니가 냉정한 얼굴로 날 돌아보았다.
“도발에 넘어가지 말죠.”
“……뭔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봤을 때랑 좀 다른 사람인데.”
“저렇게 은근히 사람 무시하는 게 본성이에요. 주인공 병도 있으니까, 잘 봐둬요.”
티파니는 피식 웃었다.
스눕-덕의 음악이 끝났고, 무대 위로 올라간 홉킨스 부인이 마이크를 잡아 인사를 시작했다.
[오늘도 프로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주시는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저렇게 주인공하고 싶으면 파티 참가할 때 돈이나 내지 말라고 하던가.”
그 말을 비웃는 티파니.
[저는 프로스포츠가 항상 최첨단을 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파티 역시도 최대한 그런 구성을 취하려고 하죠.]
왜냐면 그렇게 해야 스포츠 자체가 젊어지기 때문에……. 어쩌고저쩌고. 블라블라블라.
이어지는 개똥철학.
티파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죽겠네.”
동의하는 바였다.
한참을 이야기하던 홉킨스 부인은 계속해서 신난 듯이 소리쳤다.
[그럼, 각 분야에서 모인 스포츠 스타들의 실력을 봐야겠죠?]
마치 프로레슬링 쇼라도 진행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것도 더럽게 구린 쇼.
하지만 스테이지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환호를 보냈다.
[큰 박수로 환영해주세요! 킹스로우 레코드의 수장, 베인과 농구 스타! 마샬 루이스입니다!]
조명이 우리의 반대편에 서있던 두 흑인을 환하게 비췄다.
잠시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은 두 사람이 무대 위로 나갔다.
‘다들 모르는 모양이군.’
그런 식이었다.
스포츠 스타들은 홉킨스 부인의 말 한마디에 광대가 되었다.
게임 자체는 간단했다.
하지만 기묘할 정도로 스포츠 스타들의 신체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라 더 기분이 나빴다.
선수들이 뒤로 돌아서있다 소리에 맞춰 깃발을 잡는 ‘깃발 뺏기’부터 시작해서, 그 대부분이.
멍청하지만 교묘하게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었다.
나는 단언했다.
“홉킨스 부인의 영향력이 인근에서 꽤나 큰 편인가 봐?”
“그렇죠. 죽은 남편이 물려준 재산이 좀 어마어마해야 말이죠.”
그렇겠지.
그렇지 않다면 저런 멍청한 게임에 다들 웃으며 어울려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겠지 싶었다.
‘사업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에 꽤나 손을 뻗어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몇 개의 게임이 끝난 뒤, 나는 어쩐지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우리를 보며 씨익 웃은 홉킨스 부인이 먼저 호명을 했다.
[그럼 다음으로……! AFC 사장인 제이나 화이트와 격투가, 프레디 헬버그를 환영해주세요!]
조명은 바로 옆에 비췄다.
어느새 다가온 건지 제이나 화이트가 우리를 비웃듯이 바라보며 서있었다.
“만나서 반갑군. 티파니 맥센. 아버지 몸은 좀 건강하신가?”
“오, 제이나 화이트. 그쪽 코뼈는 잘 붙었나요?”
신경전을 벌이는 두 사람.
하지만 나는 자신만만한 제이나의 미소에서 알아차렸다.
티파니의 요청에 앞서 제이나가 뭔가 손을 써두었다고.
[그런 AFC를 상대할 것은……! WWF의 티파니 맥센과 슈퍼스타, 신입니다! 환영해주세요!]
“뭐?!”
깜짝 놀라 돌아보는 티파니.
스테이지 위의 홉킨스 부인은 그저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신…….”
“뭐, 성격이 나쁘다는 점에서 예상을 해뒀어야 하는데.”
“하아, 미안해요. 어떻게든 잘 이야기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어쩌겠어.”
나는 싱긋 웃었다.
멍청한 게임이었지만 그게 이 파티의 룰이라면 따라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무대를 바라보던 나는 이어 사람들의 커다란 탄식을 들었다.
“음?”
그들의 시선은 내 옆으로 향했다. 뭔가 싶어 돌아본 나는 머릿속이 차갑게 식는 걸 느꼈다.
제이나 화이트.
티파니의 뒤로 다가온 그가 머리 위로 샴페인을 쏟았다.
기울여진 잔에서는 아직도 불투명한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티파니는 안색이 창백하게 물들어 굳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시가를 입에 물고 있던 제이나가 잔을 털어냈다.
“실례, 손이 미끄러져서.”
“…….”
“어떻게 빠져나갈지 궁리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 위로 올라가자고. 이건 어차피 ‘쇼’잖아?”
그렇게 말한 그는 티파니의 어깨를 툭 치고 그대로 지나갔다.
‘AFC의 악당 보스.’
그런 악명을 이용해 자신의 진심을 드러낸 퍼포먼스였다.
나는 엉망이 된 티파니를 향해 손수건을 내밀었다.
“티파니.”
“아니, 됐어요. 이러고 있는 게 훨씬 ‘언더독’ 같아 보이겠죠.”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 시선은 불길에 휩쓸려 사람들의 야유를 끌어내고 있는 제이나 화이트에게로 향했다.
[Booooooo~~!]
“하하! 더 야유하라고!”
“……같은 의견이죠?”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 원하는 걸 가지고 빠지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여기서 누가 가장 쇼를 잘하는지 보여줘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