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124화 (124/634)

124.

AFC는 멋진 기업이었다.

특히 제이나 화이트라는 남자가 인수한 뒤로 더 그렇게 되었다.

그들은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단숨에 가치를 끌어올렸고, 세계 최고의 MMA 기업이 되었다.

복싱처럼 인기가 확실한 전통적인 스포츠와 달리 AFC는 태생부터가 철저히 상업적이었다.

그들은 선수들에게 드라마를 요구했으며, 실력에 더해 스타성이 있는 선수를 찾는 데 혈안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간간히 프로레슬링과 비교를 받고는 했다.

격투기에 쇼의 요소를 가미.

하지만 프로레슬링은 ‘쇼’였고 AFC는 ‘종합격투기’였다.

그걸 알고 있는 제이나는 언제나 프로레슬링에게 사업적인 의미로 시비를 걸고는 했다.

유명세는 언제나 필요하니까.

그렇기에 나는 딱히 제이나가 악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방금까지는 말이다.

“하하, 이거 원. 서로 라이벌이라 그런지 신경전이 대단한데요?”

홉킨스 부인은 그런 상황을 오히려 더 즐기는 눈치였다.

“프로레슬링과 종합격투기! 과연 오늘의 승자는 누구일까요?!”

즉석에서 우리에게 감정을 심으며 사람들의 반응을 유도했다.

‘동일선상에 두지 말라니까.’

서로에게 실례다.

대부분은 그걸 모르지만.

사람들의 환호가 이어지는 가운데, 스테이지 위에 서있던 나는 옆의 제이나를 돌아보았다.

그는 반쯤 진심을 담아 티파니를 비웃듯 바라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도발은 사람들을 더 흥분하게 만들었고, 홉킨스 부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먼저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는 제이나에게 물었다.

“제이나, 어째서 그런 신사답지 못한 행동을 한 것이죠?”

“꽃에 물을 준 것뿐인데.”

미~친 새끼.

나는 욕이 나오는 걸 참으며 감정을 숨긴 채 서있었다.

하지만 제이나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를 더 도발했다.

“그나저나 그쪽 선수는 손수건도 준비 안 하고 다니나?”

타깃은 나였다.

그리고 티파니로 이어졌다.

품 안에서 열쇠를 하나 꺼내든 그가 티파니에게 내밀었다.

“많이 젖었는데, 내 방 열쇠니 가서 샤워라도 하고 있으라고.”

“어쩜, 어쩜!”

사람들은 오히려 당당하게 구는 그에게 환호를 보내주었다.

그런 상황.

흥분한 홉킨스 부인이 달려와 티파니에게 물었다.

“티파니, 어떻게 하시겠어요?”

“벌써 다 말랐는데요. 뭘.”

심드렁하게 말한 티파니는 손에 들고 있던 물병을 열었다.

그러더니 머리 위에서 쏟았다.

물이 티파니의 단정한 얼굴을 씻어냈고 반쯤 풀어낸 금발이 찰랑거리며 등 아래로 쏟아졌다.

사람들의 환호는 제이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컸다.

좀 전에 티파니는 말했다.

[워터 프루프라 다행이네요.]

방수 화장.

정말 혹시나 몰라 대비한 것이 제이나의 도움으로 적절한 상황에 쓰일 수 있게 되었다고.

그 말처럼 흘러내린 물은 화장을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마스카라가 번졌다면 그림이 이상해졌을 텐데. 티파니는 이걸로 멋지게 모욕을 받아쳐냈다.

순간 당황한 제이나를 앞에 둔 그녀가 씨익 웃어 보였다.

“당신은 날 못 적셔. 딱 보니 엄청 작을 것 같이 생겼는데.”

머리를 쓸어 넘긴 그녀는 이어 텅 빈 물병을 던졌다.

제이나의 발치로 날아가 떨어진 물병. 그것을 물끄러미 보던 제이나가 이내 호쾌하게 웃었다.

“좋아, 쇼나 하는 놈들답구먼! 어디 한번 해보자고!”

그는 홉킨스 부인이 말하기도 전에 뒤쪽의 작은 테이블을 가져와 우리 사이에 두었다.

그 위에는 복싱용으로 쓰이는 글러브가 놓여있었다.

“펀칭 팔씨름이지!”

“저기, 제이나? 그걸 당신이 먼저 이야기하면…….”

“됐으니 진행하죠! 부인!”

곤란한 듯 끼어드는 홉킨스 부인을 제지하는 제이나.

이로서 하나가 확실해졌다.

이 게임을 기획한 것은 제이나였다. 녀석의 자신만만한 표정에서 난 그것을 읽어냈다.

“그럼 룰을 설명할게요.”

조금 뾰로통해져 서있던 홉킨스 부인이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펀칭 팔씨름! 말 그대로 팔씨름을 하며 동시에 상대방을 주먹으로 공격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다시금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한 그녀는 글러브를 손에 들어 보이며 설명을 계속 이어나갔다.

“하지만 선수 간에 맨손은 위험하겠죠? 그러니 이 두꺼운 글러브를 착용하고 진행하겠습니다!”

사람들이 환호를 보냈다.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뭐, 이런 게임이 다 있냐.’

언뜻 흥미롭게 느껴지는 룰이었지만, 좀 자세히 생각해보면 저쪽이 크게 유리했다.

프레디 헬버그는 타격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 선수였다.

반면 나는 물론 열심히 수련을 거듭하긴 하지만 당연히 저쪽에는 되지 않는다.

그나마 붙어볼만 한 건 레슬링이나 힘? 하지만 힘을 저쪽이 완전히 봉쇄해버렸다.

펀치로.

‘이걸 어쩐다.’

고민하고 있자니 홉킨스 부인이 웃으며 글러브를 내밀었다.

“자, 여기요.”

“약속과는 다른데요.”

“했던가?”

시치미를 떼는군.

나는 다시 웃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계속 어이가 없어 웃는다는 건 무척이나 화가 났다는 소리였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홉킨스 부인, 협의도 없이 티파니의 머리 위에 술을 들이붓고 성적인 농담을 건넨 제이나 화이트까지.

‘이를 어쩐다.’

눈썹을 살짝 찡그리고 있자니 티파니가 귓속말을 건넸다.

“어떨 거 같아요?”

“완전히 다 박살내고 싶은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서.”

“그러고 싶어요?”

“물론이지.”

“그렇다면 해요. 당신이 친 사고의 수습은 내가 할 테니까.”

멋진 말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등 뒤에 선 티파니를 믿고 홉킨스 부인의 곁으로 다가갔다.

“홉킨스 부인, 제가 제안 하나만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음, 뭐죠?”

“한 판은 재미없고, 경기를 삼세판으로 하는 건 어떨까요.”

“흐음……. 그럴까요?”

“네.”

나는 활짝 웃었다.

헛기침을 한 홉킨스 부인이 이어 사람들에게 경기는 삼세판으로 이루어진다는 걸 설명했다.

‘이걸로 됐군.’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낼 준비를 마친 난 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에 이미 앉아 있던 프레디가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무슨 꿍꿍이죠?”

“글쎄.”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뭐?”

“격투기를 수련했습니까?”

“나름.”

“프로레슬링인데?”

“물론, 그쪽만큼은 아니지.”

그게 핵심이다.

상대는 어쨌든 프로 격투기 선수였다. 겹치는 부분이 조금은 있어도 단순 실력으로는 저쪽이 더 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이 펀칭 팔씨름은 분명히 저쪽의 게임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제이나가 그런 것처럼 무대를 내가 잘하는 쇼의 영역으로 끌어올 생각이었다.

프레디와 나는 이내 손을 맞잡고 팔꿈치를 바닥에 댔다.

그러자 홉킨스 부인이 주먹 위에 손을 대고 개시를 선언했다.

“좋아……! 시작!”

나는 팔에 힘을 주었다.

근력 자체는 내 쪽이 위인 것을 느낄 무렵, 들어오는 상대의 펀치를 글러브를 낀 팔로 막아냈다.

둔탁한 소리.

“……!”

굉장한 위력이었다.

거기다 엄청나게 빨랐다.

프로 격투기란 이런 거라고 말하는 듯이 프레디는 글러브를 낀 내 팔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버텨내며 힘을 주던 나는 이내 팔씨름을 하고 있던 녀석의 팔이 점점 밀려나는 걸 느꼈다.

‘이 자식이?’

그 의도를 읽어냈다.

지금 팔씨름을 위해 잡고 있는 내 오른팔은 다시 말해 오른쪽 안면을 보호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프레디는 힘에서 밀리는 척하며 내가 오른쪽 안면의 가드를 내리도록 하려고 했다.

나는 싱긋 웃었다.

‘여기서는 당해줘야겠군.’

괜찮은 생각이었다.

이걸 본다면 사람들은 분명 이 룰이 AFC 쪽에 유리하단 걸 느끼게 될 터였다.

그 타이밍에 쇼를 벌인다면 사람들은 분명 내게 넘어올 것이다.

그리고 AFC에게 유리한 룰을 하나 추가했으니 이번에는 반대로 프로레슬링의 룰을 하나 추가한다.

그걸 위해선 패배라는 이름의 드라마가 필요했다.

그렇게 프레디의 팔이 반쯤 넘어간 시점.

콰직!

오른쪽으로 날아온 녀석의 강렬한 펀치가 내 안면에 꽂혔다.

싸늘한 충격과 함께 순간 정신을 잃은 나는 깨닫는다.

그 짧은 순간.

의식이 빠진 0.001초에 프레디가 내 팔을 넘겨버렸다고.

아니, 그렇게 느끼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환호를 보내는 와중 홉킨스 부인이 선언했다.

“1차전! AFC의 승리!”

주륵, 코피가 흘러내렸다.

“…….”

잠시 날 바라보던 프레디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법인데.’

역시 프로답군.

찰나의 순간 뭔가를 느낀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그쪽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을 테지만.

뒤쪽에서 다가온 제이나가 프레디의 호쾌하게 웃어보였다.

“크하하! 잘했다! 프레디!”

“보스, 잠시…….”

불안감을 느낀 프레디가 일어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걸 무시하고 돌아서 티파니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눈썹을 찡그리며 손수건으로 코피를 닦아주었다.

“이게 작전이에요?”

“그렇지.”

“한 판 더 당해줄 거야?”

“그건 아니고.”

나는 씨익 웃었다.

한 번 밀려줬으니 이제 완전히 상대를 박살 낼 때였다.

일단 저 성질 나쁜 할망구로부터 주인공을 빼앗아와야겠지.

“홉킨스 부인.”

“예, 뭐죠?”

“괜찮다면 제가 관객들에게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글쎄요. 무슨 이유로?”

“좀 더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싶어서죠. 프로레슬러를 믿어주십쇼. 그건 저희의 전문 분야니까.”

나는 망설이던 홉킨스 부인에게서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나는 와일드하게 머리를 쓸어 넘기며 앞으로 나섰다.

“제기랄, 역시 AFC 선수의 펀치란 상당히 매섭군. 이거 너무 그쪽에만 유리한 룰 같은데?”

날 보며 웃는 사람들.

따라서 웃어준 나는 제이나를 향해 곧바로 도발을 했다.

“거기 대머리 아저씨, 이거 치사한 거 아니야? 펀칭 팔씨름이라니 우리 쪽에는 없는 룰이라고.”

그리고 마이크를 던졌다.

마치 프로레슬링에서 하는 링 세그먼트처럼. 마이크를 건네받은 제이나가 입을 열었다.

“뭐가 비겁하다는 거지? 같은 격투기 선수끼리…… 아, 그러고 보니 그쪽은 다 가짜였던가?”

“물론 가짜지. 그래서 말인데. 우리 쪽의 룰을 하나 추가해서 경기를 계속 진행하면 어떨까?”

“짜고 치는 거?”

관객들이 다시 웃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의 비웃음에 전혀 겁먹지 않았다.

“그래, 팔씨름에 종합격투기의 룰을 추가했으니 프로레슬링의 룰도 하나 추가하자는 거지.”

“무슨 룰?”

“기대해도 좋아. 당신들처럼 ‘룰’에서 노는 진짜와는 달리, 우리처럼 터프한 가짜밖에 할 수 없는 게 하나 있거든.”

“후하하! 좋아, 좋아. 어디 한번 얼마든지 추가해보시지!”

제이나는 호쾌하게 외쳤다.

뒤쪽에 선 프레디는 조금 불안해하는 눈초리였지만.

아쉽게도 티파니와 나의 팀과 다르게 두 사람은 서로 협력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걸 알았던 나는 씨익 웃으며 글러브를 벗고 앞으로 나섰다.

마이크를 입에 대고 무대 옆에서 우리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던 스눕-덕을 향해 소리쳤다.

“헤이, 스누비!”

그가 날 바라보았다.

“샴페인 좀 던져봐!”

이럴 땐 통이 크게 놀아줘야지.

무려 200만짜리 샴페인.

검은 보틀을 받아든 나는 수백 명을 조련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려 200만 달러짜리라는데! 듣자하니 안에 다이아몬드가 들었다고 하는군!”

사람들이 흥미를 가졌다.

“하지만 하나가 더 필요해. 스누비, 하나만 더 건네줄 수 있어? 엇, 차차차. 떨어뜨릴 뻔했네.”

일부러 아슬아슬하게 병을 받아 사람들의 반응을 끌어냈다.

제이나가 의아해했다.

“그걸로 뭘 하려고?”

“가짜만의 방식이지.”

술병을 들어 올린 나는 그대로 테이블 위로 힘차게 내리쳤다.

쨍그랑!!

날카로운 소리가 이어졌다.

파편이 튀었는지 순간 뺨이 짜릿했고, 나는 주변 공기가 싸늘하게 식은 것을 느꼈다.

이로서 모두가 깨달았다.

내가 말하는 가짜의 방식이 무엇인지.

하지만 반대로 이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테이블에는 병조각들과 다이아몬드가 한가득 놓인 상태였다.

제이나는 입만 벙긋거릴 뿐이었고 프레디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리고 홉킨스 부인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 아아…….”

현기증이 난 듯 비틀거리는 그녀를 경호원들이 받아갔다.

“방해꾼도 사라졌군.”

나는 곧바로 자리에 앉아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았다.

마이크를 쥐고 관객들에게 계속 말을 하면서 말이다.

으직, 으지직……!

살에 파고드는 유리가 느껴졌다.

테이블 위로 피가 번졌고 나는 굳어진 듯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제이나와 프레디를 노려보았다.

“뭐해? 운만 좋다면 팔에 다이아가 박힐 수도 있는 거라고.”

“끄으윽……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짓거리야!”

“이게 우리 스포츠의 미학이야. 쫄리면 뒤지시던가.”

내 말에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씩 말이 이어졌다.

[SIN……! SIN……!]

이곳 사람들 중에서도 프로레슬링의 팬은 물론 있는 법이겠지.

그들을 기점으로 사람들의 반응은 완전히 넘어왔다.

다들 내 이름을 부르며 환호하는 가운데 제이나와 프레디는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죠?”

내 뒤로 다가온 티파니가 슬그머니 팔에 기대어 앉았다.

“당신은 날 적시지 못한다고.”

“크윽……!”

분해하는 제이나.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상황에 자신의 선수를 내보낼 정도로 정신 나간 인물은 되지 못했다.

녀석은 완벽하게 조정된 룰 안에서만 놀 수 있는 진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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