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128화 (128/634)

128.

바트 맥센.

그는 내 럼블 매치 계획을 듣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미친놈!”

그건 너고.

“정말로 나보고 럼블 매치에 나오라는 건가? 대체 어째서?”

“JBL이 졸부형 악역이니까요.”

나는 흥미를 가지는 바트 맥센의 앞에서 계획을 설명해나갔다.

모두가 모인 회의실.

나와 헤이건이 짜낸 럼블 매치를 본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링 프로듀서와 각본팀 쪽 사람들 모두가 그것만으로 자연히 드라마를 상상했다.

바트 역시도 흥미롭다는 듯 내 설명을 들어, 나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진행되었다.

“JBL이 회장님께 부탁을 드리는 거죠. 시나를 어떻게든 해주시면 변함없는 충성으로 보답을 해드리겠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30번으로 출전한 내가 시나를 떨어뜨리려고 하는 건가?”

“그럴 리가요. 일단은 링 아래에서 마이크를 쥐고 ‘당장 탈락해라!’라고 꼬장을 부리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네 사람이 시나를 감싸는 겁니다.”

“말이 안 통하자 흥분한 내가 링 위로 올라가고?”

“두들겨 맞는 거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 바트.

나름 업계에서 분골쇄신해온 회장님답게 눈치가 빨랐다.

하지만 그런 내 각본에 오히려 가만히 앉아있던 다른 직원들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분위기는 급속하게 냉각되었고 바트는 한동안 침묵한 채 내가 제시한 각본을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입을 열었다.

“다 나가.”

“옙.”

“넌 빼고. 멍청아.”

이빨을 드러내는 바트.

그 흉흉한 반응에 모두가 꼬리를 말고 바깥으로 나갔다.

오직 헤이건만이 이후를 부탁한다는 듯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나갔을 뿐이었다.

그렇게 거대한 회의실에는 나와 바트만이 남게 되었다.

“일단, 앉아.”

나는 그 말에 따라 그의 반대편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이 파이널 포.”

“예.”

“정말 네 저열한 생각이 드러나서 못 써먹을 지경이군.”

“…….”

나는 대답 대신 웃었다.

파이널 포.

럼블 매치에서 살아남는 마지막 네 명의 선수를 그렇게 표현했다.

당연히도 이 네 명 중에 우승자가 나온다는 말이었고. 이 네 명은 매치에서 특별히 취급되었다.

그런데 그 네 명이.

“러셀 하트.”

“멋진 놈이죠.”

“숀 시나.”

“당연한 말이고.”

“신.”

“저도 그렇고.”

“랜스 오튼인가?”

“괜찮지 않습니까?”

“왜, 아예 테이커가 노환으로 링에서 죽는 각본을 만들지?”

“메인 이벤터들은 굳이 파이널 포 목록에 남겨두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 개중에 우승자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네 명이 남았을 때 경기는 대체 누가 조율을 하지?”

“저라니까요. 노망나셨습니까?”

바트가 이를 빠득 갈았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를 할 시점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내 아이디어를 관철시켜야만 했다.

“모두 너의 사람들이로군.”

“아뇨, 회사의 미래죠.”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렉 하트.

트리플H.

캐스켓 테이커.

이들 역시 멋진 선수들이다.

하지만 과거다.

지금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로 걸어가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그들이 슬슬 져줄 타이밍이 됐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못해 전생에 WWF는 험한 꼴을 봤기 때문이었다.

바통을 적절한 순간에 넘겨주는 건 언제나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그 선택을 게을리 했다. 정확히는 상황에 안주하며 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전생의 약 4년 뒤.

오튼은 그때까지도 트리플H에게 내내 당하는 신세였고, 내 친구인 애덤(엣지) 역시 테이커에게 항상 밀리는 존재로 묘사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시나만이 오직 부동의 탑으로 그려졌지만, 때문에 적수랄 선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헌터와 테이커가 은퇴하자 쇼의 수준 자체가 크게 내려가 버리고 만 것이었다.

시나는 시대를 만들어낸 주인공이었지만, 그 시대에서 함께 싸우는 이들의 급이 떨어졌다.

그것도 너무나 많이.

실제로 그랬다기보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말았다.

‘결국 헌터나 테이커한테 안 되는 놈들인데 그런 놈들을 왜 봄?’

레전드들을 결국 이기지 못한 메인 이벤터들은 성공적으로 대관식을 이뤄내지 못했다.

태도 불량 시대와는 정반대였다.

락콜드도 탑에 올라서기 위해 존 마이클스를 혼자 쓰러뜨렸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걸맞은 위상을 가진 더 팍, 트리플H, 테이커, 믹 졸리 등의 선수와 자신의 시대를 만들어나갔다.

우리 역시 그래야만 했다.

엄밀히 말해 헌터와 테이커는 전 시대의 선수였다.

말인즉슨 그들을 몰아내는 것이 우리들의 숙제라는 이야기.

전생에는 안타깝게도 그게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이번 생에는 내가 그걸 해낼 생각이었다.

프로레슬링을 지키기 위해서.

내가 시나와 함께 우뚝 서서 내 시대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시나가 킹스 럼블에서 우승하는 건 정말로 멋진 일입니다. 새 시대의 시작이기 때문이죠.”

“글쎄, 아무리 그래도 시나가 새 시대를 연다는 건 너무 허황된 이야기 아닐까 싶은데.”

“아뇨, 반드시 그럴 겁니다.”

나는 단호히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바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날 바라보았다.

“그럼 자네는?”

“저는 그런 시나의 시대를 뒤집어버릴 생각입니다.”

“후후, 통하질 않는군.”

바트는 고개를 내저었다.

시대는 하나다.

때문에 바트는 날 순간 당황시키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물론 통하지 않았지만.

“참 신기해.”

그는 방금까지의 분노가 다 거짓임을 내게 말하듯 침착한 태도로 말을 이어나갔다.

“자네의 말은 모두 맞아. 슬슬 미래를 보기 위해 우리도 시나를 탑 가이로 밀려는 거지.”

“그 생각에는 동의합니다.”

“그런 탑 가이를 만들기 위해 베테랑들이 나서서 도와주는 게 프로레슬링의 방식인데.”

“아쉽게도 저는 그런 도움을 딱히 필요로 하지 않죠.”

“……그게 틀린 말이 아니라서 불쾌하군. 참으로 그래.”

“하지만 여기에서 한 명의 베테랑이 저희를 도와주긴 합니다.”

“누구지?”

“바로 당신이죠. 보스.”

“…….”

“당신이 링 위에 올라가 두들겨 맞고 내쫓기는 걸 보면 관객들은 분명히 미쳐 날뛸 겁니다.”

넷 중 세 명이 신인.

오튼 역시 젊은 피.

“혈기왕성한 젊은 청년들이 모여서 바트 맥센의 거만한 갑질을 때려눕히는 거죠.”

“결국 너희 네 사람을 띄워주는 건 나라는 이야기로군.”

“그리고 멋진 혈투 끝에 시나가 마지막에 우승을 한다.”

“……조건이 있네.”

바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까이 다가온 그는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내 얼굴을 보았다.

“날 한 대 때려보게.”

어이가 없어 웃었다.

그리고 나는 힘차게 주먹을 휘둘러 바트의 얼굴을 후려쳤다.

빠악-!

둔탁한 소리와 함께 코를 얻어맞은 바트가 무릎을 꿇었다.

방금 난 ‘진짜’로 때렸다.

“크윽…….”

“전력을 다하면 뼈가 부러질 것 같아서 힘을 덜 줬습니다만.”

“그, 래.”

“일단 좀 일어나시죠.”

나는 비틀거리며 중심을 못 잡는 바트를 잠시 부축해주었다.

그는 이런 스타일이었다.

올드해서기도 했고 스스로 마초라고 생각했기에 경기 중에 자신을 ‘진짜로 때릴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일반적인 선수들은 회장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를 건드리는 걸 무척 두려워했다.

하지만 바트는 ‘사람을 때리는 걸 주저하는 근성도 없는 놈들이 무슨 레슬러야!’라며 오히려 그런 선수들을 크게 질책했다.

그걸 미리 알고 있던 나는 망설임 없이 주먹을 날린 것이었고.

“역시 자네에게는 안 통하는군.”

그로서 날 인정해주었다.

“링 위에서 날 봐주지 말고 때리게. 그렇다면 인정해주지.”

“그랬다간 죽습니다.”

“근성을 보이란 거야.”

“…….”

“러셀 하트, 숀 시나, 랜스 오튼. 3일 내로 나한테 찾아와서 내 얼굴을 한 대씩 때릴 것.”

“죽는다니까요.”

“닥쳐. 그러지 않으면 그 각본은 승낙할 수 없어.”

나름대로 마지막으로 내건 자존심이라는 듯 바트는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았다.

‘과연 괜찮으려나.’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세 사람과 미팅 시간을 잡았다.

* * *

전생에 우리 회장님을 패본 인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나와 오튼은 적어도 한 번씩 바트를 쇼에서 공격해봤고, 개중에서도 오튼은 정말로 심했다.

무려 격투기 기술인 ‘사커 킥’으로 바트를 걷어찼으니까.

뇌진탕 판정을 받은 바트는 병원으로 실려 갔고, 실제로 세게 차라고 명령을 받았던 오튼은 울며불며 난리를 피워댔다.

‘그랬지.’

때문에 이런 반응이 나온 것도 딱히 이상할 건 없었다.

“그걸 어떻게 때려!”

오튼이 징징거렸다.

“주먹으로? 알았어.”

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러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앞에 앉아 있던 나는 냉장고 문을 열고 비타민 음료를 꺼내 모두에게 한 개씩 던져주었다.

내 캠핑 버스 안.

쇼가 있는 날 저녁에 셋을 모아 ‘바트 죽빵을 갈겨라.’라고 요구했더니 이런 상황이었다.

“일단, 러셀.”

“왜?”

“할 수 있어, 없어.”

“뭐, 해야지. 그게 회장님이 바라신다면 말이야. 근데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라서 좀 한숨이 나온 거지.”

“그렇지?”

“왜? 바트는 접수를 잘 못하니까 제대로 때리란 거 아니야?”

“…….”

러셀이 생각도 못한 시선을 보여주는 시나를 당황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난 거기에서 선을 그었다.

“아니, 그냥 바트가 좀 미친 인간이라서 그러는 거야.”

“난 못해.”

바로 그때, 비타민 음료를 꿀떡꿀떡 해치운 오튼이 단호하게 자기 입장을 고수했다.

“그 양반, 기업 회장이라고? 때렸다가 대체 무슨 후폭풍을 감당해야 할지 알 수가 없잖아!”

“오히려 그러니까 좋은 거 아니야? 평소에 쌓였던 울분을 이렇게라도 토해내는 거지.”

시나의 말에 오튼이 또 놀랐다.

나는 다시 제지했다.

이야기가 패턴화가 되는데.

“오히려 안 때리는 게 바트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야, 오튼. 자기가 진짜 남자라는 걸 증명해보라, 뭐 그런 심리지.”

“끄으으윽……!”

“그런데 신.”

시나가 입을 열었다.

“경기에서도 주먹질만으로 끝을 낼 건 아니지? 다 같이 피니시 무브라라도 한 방씩 쓰는 게 뭔가 그림이 서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되겠지.”

러셀의 샤프 슈터.

오튼의 R.K.O.

시나의 F.U.

나의 플라잉 니 킥까지.

“순서는 가장 마지막에 시나의 F.U.가 들어가게 될 거야.”

“삼단 로프 밖으로 바트를 던져버리게 되는 건가?”

시나는 잔인하게 말했다.

순수한 얼굴로 저렇게 악독한 아이디어를 내다니. 무섭군.

그것을 이해한 러셀이 아이디어를 하나 더 덧붙였다.

“……그렇다면 영감님 위험하지 않게 누가 아래에서 받아줘야 할 것 같은데.”

“세 번째로 샤프 슈터가 들어갈 때 JBL과 부하들이 바트를 도와주기 위해 나오는 거지.”

내 말을 들은 두 사람은 그림을 그려내고는 이내 납득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바트가 링에 올라왔을 때, 일단 내가 플라잉 니 킥을 먹인다.

그리고 휘청거리며 쓰러지려는 그에게 오튼이 R.K.O를 쓴다.

R.K.O는 상대의 목을 잡고 자기 몸을 앞으로 던지며 쓰러지는 ‘커터’ 기술이었다.

그림이 나오겠지.

“쓰러진 바트의 다리를 잡고 러셀이 샤프 슈터를 쓰는 거야.”

“하하! 그때 우리가 괴로워하는 바트를 조롱하는 거고!”

“마지막으로 JBL과 친구들이 나오면 시나가 던져버린다.”

그렇게 이야기가 나왔다.

나와 러셀, 시나는 각자 합이 맞는 걸 느끼고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안색이 창백해져 있던 오튼이 손을 들었다.

“난 못해.”

하지만 녀석의 의지는 애초부터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그걸 해야만 했다.

슈퍼 멋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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