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129화 (129/634)

129.

그 후 우리 네 사람은 쇼가 시작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고 있던 바트를 찾아갔다.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곧바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좋아, 어디 근성을 보자고!”

그렇게 시작되었다.

퍼억!

코를 후려갈긴 러셀.

짜악!

뺨을 후려친 오튼.

뻐억!

턱에 훅을 갈긴 시나.

……시나야?

“어, 너무 세게 때렸다.”

바트는 러셀과 오튼의 공격은 그럭저럭 버티더니 시나의 일격을 턱에 맞고는 그대로 혼절했다.

그것을 본 오튼은 오줌을 지린 샘슨 가족의 빌하우스처럼 공포에 떨었다.

“……난 몰라.”

“바, 바트?”

모두가 굳어져 있는 가운데 나는 일단 바트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는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였고 쇼는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바트도 고레고레 짜증을 내며 고릴라 포지션으로 가던 중.

“망했군.”

나는 한숨을 내쉬며 바트의 뺨을 툭툭 쳐서 깨우려고 들었다.

“바트, 바트. 정신 차려 봐요. 당신 말대로 다 때렸잖아.”

“으, 으음…….”

“그래서 킹스 럼블 내 플랜대로 갈 거야, 말 거야. 자기 고집만 센 변태 영감탱이야.”

“신, 너무 속마음을 많이 말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 ……그러니 적당히 하고 일어나.”

시나의 지적을 듣고 대답한 나는 바트의 몸을 크게 흔들며 정신을 깨우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바트는 완전히 갔다.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을 말없이 올라가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기는 한데.’

그냥 적당히 쇼가 끝난 뒤에야 깨어날 것 같은 상태였다.

이를 어쩌나.

고민하며 고개를 든 나는 러셀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복도 반대편.

그 얼굴이 아주 미묘하게 경직되더니 이어 창백해졌다.

“러셀?”

“어, 음…….”

뒤를 돌아본 나는 그가 그렇게 된 이유를 깨달았다.

“너희들 뭘 하는 거냐.”

그렉 하트.

검은 머리칼을 찰랑거리며 다가온 그가 바트를 내려다보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보스, 보스. 정신 좀 차려보십시오.”

“그, 그렉?”

“신, 설명해라.”

나는 더없이 진지한 그의 앞에서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오튼이 울며 제발 말하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그냥 무시했다.

그러자니 이야기를 다 들은 그렉은 침착하게 시나를 가리켰다.

“일단 팀 닥터를 데려와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어떻게 하시게요?”

“일단 쇼는 해야 하니 다른 사람이 현장팀을 지휘해야겠지.”

골치 아프다는 듯 이야기한 그가 상황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영상 팀장에게 가 쇼를 지휘하라고 말했고, 바트를 의무실로 옮겨 일단 쉬게 만들었다.

그 모든 과정을 끝마친 뒤에야 쇼의 오프닝이 시작되었다.

“후우.”

한숨을 내쉰 그는 우리 네 사람을 냉정한 눈으로 돌아보았다.

“일단 쇼가 끝나고 보자.”

혼나게 생겼군.

* * *

그럼에도 그렉이 쿨했던 점은 끝까지 바트가 우리의 펀치로 기절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영상 팀장에게 단지 바트가 기절했다는 것만 전했고, 덕분에 악명은 퍼지지 않았다.

나는 거기에서 그렉이 참 멋진 남자라고 생각했다.

전생 마지막의 나와 거의 비슷한 나이였지만, 그는 그때의 나보다 훨씬 더 어른스러웠다.

덕분에 나는 예정했던 대로 오튼과 경기를 펼쳐 승리한 뒤 여성들로부터 키스 세례를 받는다는 각본을 멋지게 수행했다.

그렉의 커버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건 좀 아니다.

“나 때는 말이다.”

더 어른스럽기 때문에 그는 그때의 나보다 훨씬 ‘꼰대’였다.

“쇼가 시작하기 전에는 선배들 앞에서 옷 갈아입는 거 도와드리고 그러는 게 전통이었다.”

꼰대란 무엇인가.

묻지 않은 걸 이야기하면서 가르치려는 재미없는 자를 말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글쎄요.”

“이런 사고가 쇼의 직전에 일어나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었지.”

그렉이 눈썹을 찡그렸다.

“혈기왕성한 레슬러는 뭔 짓을 할지 알 수 없으니까.”

의무실 안.

바트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는 눈치를 보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우리 네 사람을 하나하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내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는 예상을 못했다.”

잠시 크게 한숨을 내쉰 그렉이 이어 큰 목소리로 외쳤다.

“기업 회장을 폭행해?!”

“자기가 하랬어요.”

“시끄러워! 그걸 하라고 해서 진짜 하는 녀석이 어디에 있어!”

“……그렉.”

바로 그때였다.

깨어난 바트가 낸 희미한 목소리에 그렉이 뒤로 돌아섰다.

“보스, 괜찮으십니까?”

“너무 뭐라고 하지 말게. 제안한 것은 나였으니까 말이야.”

“괜찮으십니까?”

“이 정도야 괜찮아. 아직도 뇌가 좀 많이 흔들린 것 같지만.”

“나이도 있으신데 너무 그렇게 무리하시는 건 안 좋습니다.”

“괜찮네. 그보다 일단 쇼부터 진행하도록 하지.”

“어, 그게…….”

“응?”

“쇼는, 끝났습니다. 기절해 계시는 동안에.”

그 말에 바트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잠시 몸을 떨고 있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내 인생의 유일한 낙을 감히 망쳐!!”

진짜로 분노한 그는 손에 집히는 물건을 우리 쪽으로 마구 집어던져대기 시작했다.

“바, 바트!”

“다 꺼져!! 꺼지라고!!”

어린애처럼 분노하는 그를 놔둔 우리 네 사람은 곧바로 의무실에서 도망쳐 나왔다.

텅 빈 복도.

“……이걸 어쩌지.”

완전히 넋이 나간 오튼이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이번 직장에서도 잘린다면 아빠가 분명히 날 죽일 거야.”

“…….”

이 자식, 날을 세웠던 때와는 다르게 성격이 너무 소심하다.

거기에 직장 운운하는 걸 보면 역시 하루하루 잘리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인 게 아닐까.

잠시 안쓰러워 생각한 나는 오튼을 위로해주었다.

“괜찮아. 오튼 무슨 일이 생기면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거기에 생길 리도 없다.

바트의 저런 미친 성격이야 어차피 유명한 거니까. 좀 진정하면 알아서 잘 받아들이겠지.

나는 울상이 된 채 안겨오는 오튼을 한동안 좀 받아주었다

사내 녀석이 그렇게 엉기자니 어쩐지 좀 기분이 더러웠지만.

대충 분위기를 수습한 나는 이어 나오는 그렉을 맞이했다.

바트에게 맞았는지 뺨이 붉게 부어오른 그가 입을 열었다.

“……누가 주모자지.”

“접니다.”

“신?”

“이 바보들이 아니라고 커버칠 텐데 제가 주도한 일 맞아요.”

나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뭐, 바트의 죽통을 갈겨 인정을 받기로 한 건 내가 맞았으니.

거기다 설령 아니더라고 하더라도 여기서는 팀의 리더로서 책임을 져야 멋있는 법이었다.

침묵하던 그렉은 이내 내게 정확한 설명을 요구했다.

“그게 그러니까…….”

나는 곧장 헤이건의 일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어처구니가 없을 거다.

진짜 때려보라고 요구하는 바트도, 그걸 진짜 때리겠다고 와서 때려버린 우리 네 사람도.

하지만 원래 이 회사는 이랬다.

……아니, 말하자면 모든 원흉은 저 정신 나간 기업 회장이겠지만.

한참을 고민하던 그렉은 이윽고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일단 이 일은 불문에 부치마. 바트가 너희를 비호해줬으니.”

“넵.”

“하지만 신, 다음에는 좀 행동에 조심을 하는 게 좋을 거다.”

그렇게 조용히 문제를 봉합한 그렉이 이어 뒤로 돌아섰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장난이 심하긴 했다고 생각했다.

바트 쪽에서 일부러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걸었으니, 좀 곤란한 상황을 맛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뭐, 문제가 있어도 내가 해결할 자신이 있었으니 그런 거지만.’

그렉은 그걸 몰랐고, 때문에 저렇게 화를 낸 것이었다.

하지만 이로서 그렉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한 기분이었다.

‘확실히 원칙주의자로군.’

아무래도 럼블 이후 대립을 진행할 때 그를 어떤 식으로 모욕해야 할지 알게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일단은 2주 뒤로 다가온 킹스 럼블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는 것에 더 신경을 써야 할 때였다.

* * *

바트는 곧바로 우리의 근성을 인정해 각본에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헤이건과 나는 성공을 자축하며 계속해서 각본을 써내려갔다.

그 과정 속에서 헤이건이 가지고 있는 인망이 크게 빛났다.

그는 나와 함께 있으면서 각본 이야기를 진행할 선수들을 계속해서 우리 쪽으로 불러주었다.

“어, 타부리야? 난데. ……어, 그쪽 쇼 끝나면 우리 쪽으로 넘어와. 킹스 럼블 각본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 부름에 다소 의아해하며 헤이건을 찾아왔던 타부리와 그 절친한 동료인 마이노.

그들은 내게서 럼블 매치에 대한 계획을 전해 듣고는 무척이나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적당히 싸우다가 고어 한 번 쓰고 탈락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거 각본이 꽤 재미있군.”

“마이노와는 즐겁게 태그 팀 했습니다. 그런 각본 있으면 더 의욕이 샘솟아서 기쁩니다.”

“무슨 소리야! 타부리!”

마이노가 버럭 소리쳤다.

“너와 나 사이에서는 마이노=상이잖아? 안 그래? 타부리=상!”

“하, 그렇군요. 마이노=상.”

두 사람이 그쪽 계통으로 보이는 인사를 한 차례 주고받았다.

……뭐, 타부리는 진짜 일본인이고 마이노와 친해지며 그쪽 문화에 감화시킨 것 같으니 상관없나.

그렇게 생각하자니 이어 타부리가 내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신.”

“뭘요, 선배가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가 있는데 그걸 쓸 수 있으면 쓰는 게 당연하죠.”

“그걸 생각해주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 여러모로 힘들었죠.”

프로레슬링 업계의 악습이다.

그들은 한 선수를 띄우기 위해 다른 많은 선수를 갈아 넣는다.

물론, 모두가 자신이 생각했던 만큼의 슈퍼스타가 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다 함께 위로 올라가는 것은 가능했다.

업계 자체가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면 보상이 되지.

그들에게 배분되는 돈 역시 커질 테니까.

그를 위해서는 적어도 다들 멋진 구석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타부리의 그린 미스트.

마이노의 고어.

두 기술이라면 충분했다.

마이노는 커다란 상반신에 작은 키로 마치 돌덩이 같은 사내였다.

그가 상대에게 돌진해 몸을 그대로 들이박는 ‘고어’라는 기술은 멋진 임팩트를 가지고 있었다.

‘GORE! GORE! GORE! GORE! GORE! GORE! GORE! GORE!’ 하고 빠르게 관객들이 외치는 챈트가 크게 유명했지.

그게 킹스 럼블에서 나온다면 반드시 큰 임팩트가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헤이건과 함께 선수 하나하나를 부르거나 전화를 해 대략적인 개괄도를 설명했다.

각자 자기와 자기가 엮인 선수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법이고.

탈락할 타이밍도 정해둬 대충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을 것이다.

이게 바로 효율이었다.

혁신이었고.

선수들에게 정보 몇 가지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알아서 합이 맞도록 만드는 마법.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정보를 기억하고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리드 보이 역할이었다.

거기에 하나 더.

나는 그렉 하트와 그 탈락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그랬더니 그는 막상 각본에 대해서는 순순히 응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혼란을 주었다.

“내가 분명히 올해 은퇴하겠다고 했던가.”

“……굳이 꼽아서 그렇게 말씀하신 적은 없긴 합니다만.”

“그렇다면 내 커리어에 대해 확실히 한번 말을 해두지. 신.”

그가 가슴을 펴며 말했다.

“나는 좀 더 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나가볼 생각이다.”

……그런 뜬금없는 이야기에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