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134화 (134/634)

134.

No chance in hell.

바트 맥센의 캐릭터를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테마 음악이었다.

럼블의 마지막 선수.

스테이시의 다음으로 나온 것은 바로 이 회사의 회장이었다.

특유의 거만한 걸음과 함께 나오는 그를 우리 네 사람은 당황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Yeeeeaaaahhh!!]

관객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그도 당연할 것이, 바트 맥센은 프로레슬링의 선각자였다.

매일 쇼에 나와서 악역 권력자 연기를 할 때는 물론 각본에 의거한 야유를 그에게 보냈지만.

지금처럼 오랜만에 나올 때는 환호가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그는 악역으로서는 유일무이하게 아이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바트가 마이크를 들었다.

“숀 시나!!”

바트는 과장된 톤으로 자신의 대사를 쳐내려가기 시작했다.

링 위에 서있던 나는 순간 그 모습을 보고는 감탄을 느꼈다.

그는 우리와 같이 전문적으로 연기를 배운 남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업계에서의 오랜 경험과 현실에서 따온 캐릭터가 절묘하게 어울려 바트를 만들어냈다.

“당장 링에서 내려와! 너는 럼블의 우승자로 어울리지 않아!”

[Boooooooooooooooo!!]

“이 회사의 회장으로서 내리는 명령이다! 아니면 넌 해고야!”

관객들의 야유는 거의 장내를 진동하게 만들 정도로 거셌다.

파이널 포, 모두가 현재 회사의 루키라는 극적인 상황이었다.

그 승부에 찬물을 끼얹는 바트의 행동은 분명히 역겨웠다.

“너희도 움직이지 마! 시나가 탈락할 때까지 경기는 중단한다!”

[Booooooooooooooo!!]

“러셀……! 오튼! 당장 짐 싸서 쫓겨나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어라?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빨리 내려오지 않고 뭐해!”

바트가 ‘다음’ 대사를 쳤다.

러셀과 오튼이 순간적으로 이쪽을 힐끔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저 새끼…….’

뭐 저렇게 인간이 유치하지?

방금 바트 맥센은 일부러 대사에서 내 이름을 빼먹었다.

원래의 대사는 신, 러셀 오튼. 세 사람을 함께 말하는 것.

하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그 저열한 심리가 느껴졌다.

관객들이 신에게 더 이상의 관심을 주지 않았으면 하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신을 뺀 나머지 두 사람의 이름만 이야기했다.

원래대로라면 바트가 대사를 친 후로 러셀과 오튼, 내가 시나를 보호하는 게 각본이었다.

하지만 그와 전혀 다른 바트의 대사와 굳어진 내 몸이, 순간 오튼과 러셀의 발을 멈추게 했다.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여기서 이렇게 될 줄이야.’

그냥 적당히 무시하고 각본대로 수행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굳이 그래야 하나?

대사를 틀린 건 바트다. 일부러 그런 것이겠지만 절대로 그것을 인정하려고 하지는 않겠지.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내 방식대로 철저하게 엿을 먹여주는 게 더 합리적인 해결법 아닐까?

내가 프로레슬링을 사랑하는 만큼, 놈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이 각본에 처절하게 몰입해 바트 맥센의 말을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그러므로 여기에서 나는…….

러셀, 오튼과 달리 시나를 보호해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게 오히려 더 맞지.’

바트가 날 언급하지 않았다는 말은 즉, 내가 링 위에서 수상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는 거니까.

“후.”

가볍게 심호흡을 한 나는 러셀과 오튼을 지나쳐 움직였다.

두 사람이 안심하고 나를 따라서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환호하는 관객들.

그래, 이 행동은 분명히 우리가 짠 각본이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시나를 보호해야만 했다.

링 아래로 바짝 다가온 바트를 노려보고 있는 시나를 말이다.

그리고 이어진 내 행동은 각본을 수행하고 있던 네 명을 순간 경악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아마 모니터링을 하고 있을 헤이건이나 생방송을 보고 있을 티파니도 황당해하고 있겠지.

나는 바트의 편을 들었다.

“자, 올라오시죠.”

하지만 현실에서는 바트의 마음을 지독히 후벼 팔 짓이었다.

2단 로프 위에 털썩 걸터앉은 나는 어깨로 3단 로프를 받치고 들어 바트가 쉽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아마 자기가 아직 정정하다고 생각하는 바트에게는 그렇겠지.

하지만 뭐 어쩌랴.

이렇게 해야만 2층 저편에 있는 관객들도 내 행동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릴 텐데 말이다.

[Booooooooo!]

순간 야유를 보내는 관객들.

내 행동은 분명히 선역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비겁한 짓이었다.

캐릭터에는 맞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각본은 깨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 무대 위에서 아직 유리구슬처럼 또르르 흘러갔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링 아래에 있는 바트를 향해 손짓했다.

유리구슬을 손에 쥔 건 이제 바트 맥센이었다.

그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여기에서 행동이 갈리겠지.

그리고 바트는 순간 진짜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럴 법도 했다.

나는 그가 날 무시하자 반대로 쇼 자체를 훔쳐버렸으니 말이다.

모두가 나에게 야유를 보냈고, 뒤에서 시나를 지키고 있는 러셀과 오튼은 안중에도 없었다.

유리구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제 어쩔 것인가. 바트 맥센.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선택을 종용했다. 바트는 이윽고 내 각본을 천천히 따라왔다.

“신, 너는 좀 말이 통하는군!”

멋진 연기다.

“성공을 위해선 뭐든지 한다고 했던가. 멋진 마음가짐이야.”

링 안으로 들어온 바트는 즉석에서 나를 칭찬하고는 다시금 각본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당장 내려가라고 했다! 시나!”

나는 그런 바트 맥센의 뒤로 허리를 낮춘 채 천천히 움직였다.

총을 빼들기 직전의 카우보이처럼 주도면밀하게 말이다.

“…….”

그런 내 행동의 이유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러셀이었다.

오튼과 녀석이 움직였고 우리는 바트를 순식간에 포위했다.

야유가 열화와 같은 환호로 뒤바뀌는 것은 한순간의 일이었다.

상황을 알아차린 바트가 당황스러운 눈으로 우릴 돌아보았다.

“보스, 저부터 갑니다.”

“……뭐?”

의아해 돌아보는 바트.

나는 곧바로 노인의 안면을 향해 힘차게 뛰어올랐다.

쩌억-!

호쾌한 플라잉 니 킥.

[Yeeeeeeeeaaaaaahhhhh!!]

관객들의 환호와 함께 바트의 몸이 그대로 뒤로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로기 상태가 된 바트를 억지로 일으켜 세운 오튼이 자신의 피니시 무브인 R.K.O.를 선사했다.

피폭자를 등진 상태에서 뛰어올라 머리를 붙잡고 떨어지는 ‘커터’ 계열의 기술이었다.

콰앙!

그 호쾌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바닥에 엎어진 바트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사람들은 꼴좋다는 듯 환호를 보냈다.

거기에서 탑 턴버클 위로 올라가있던 러셀의 슈팅스타 프레스까지 깔끔하게 이어졌다.

투콰앙-!

그렇게 한 기업의 회장님은 완전히 곤죽이 되고 말았다.

마무리는 물론 시나가 맡았다.

JBL의 부하들이 달려 나왔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시나는 어깨 위에 둘러매고 있던 바트를 그대로 던져버렸다.

아래에 있던 JBL의 부하들이 그를 안전하게 받아냈다.

[Yeeeeeeeaaaaaaahhh!!]

더 큰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

로프를 뒤흔들며 자신의 투지를 내보인 시나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다시 네 명이 남았다.

숀 시나.

러셀 하트.

랜스 오튼.

그리고 나, 신.

서로를 경계하는 우리를 보고 관객들의 기대감은 더 커졌다.

나는 엄청난 환호 속에서 세 사람에게 한 마디씩을 건넸다.

“10분 정도 남았어.”

시선은 으르렁거렸지만 우리는 현재 경기의 마지막을 멋지게 가져가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나도 그랬다.

기라성 같은 레전드들을 밀어내고 우리 네 사람이 이곳에 섰다.

그러므로 그만한 실력이 있다는 걸 모두에게 증명해야만 했다.

“러셀, 오튼을.”

나는 분석적으로 생각했다.

러셀의 실력은 상上 정도. 오튼은 중中, 그리고 시나가 하下였다.

그러므로 러셀이 오튼을, 내가 시나를 리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움직임일 터였다.

“호흡은 빠르게.”

구체적인 지시를 짧고 간결하게 전달한 나는, 곧바로 눈앞의 시나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체력은 이미 한계를 넘었다.

경기는 1시간이 넘게 이어졌고 누적된 피로에 정신을 붙잡고 있는 것만도 버거울 정도였다.

하지만 버텨냈다.

나에게는 목표가 있으니까.

십오만의 관객들.

그리고 전 세계에 있는 수천만 명의 프로레슬링 시청자들.

그들 모두가 각자 좋아하는 선수를 응원하며 완벽에 가까운 마무리를 바라고 있을 터였다.

그렇기에 나는 한계를 넘어서 계속해서 사투를 벌였다.

3단 로프 위로 넘어가 탈락의 위기에 처할 때마다 사람들의 탄성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우리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사실 그 누구보다 승리를 원하는 것이 바로 우리였다.

각본을 넘어서서, 이 경기에서 우승하는 사람은 레슬 임페리움이라는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무대에서 싸울 수 있다.

월드 챔피언.

그런 목표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 하나 포기하지 않았다.

싸움은 당연하다는 듯 2대2가 되었고 나와 러셀은 시나와 오튼을 팀워크로 밀어붙였다.

쩌억-!

러셀의 도움을 받은 나는 결국 오튼의 안면에 플라잉 니킥을 적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어 휘청거리며 쓰러지려는 오튼을 붙잡은 러셀이 그를 3단 로프 위로 힘차게 내던졌다.

하지만 오튼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로프를 붙잡고 버텼다.

“허억, 허억…….”

나는 코너에 반쯤 널브러진 채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자리에서 일어선 시나가 달려가 오튼을 밀어내려는 러셀을 함께 바깥으로 던져냈다.

두 사람이 동시에 탈락하는 걸 본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Uoooooooooooohhhhhh!!]

그로서 남은 건 숀 시나와 나, 오직 둘뿐이었다.

한동안 로프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던 시나가 이윽고 어깨를 꼿꼿이 세우며 일어섰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왠지 그런 느낌이다.

녀석과 내가 레슬 임페리움에서 일대일로 맞붙는 분위기였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Cena!]

사람들이 미쳐 날뛰었다.

나와 시나는 링 위를 크게 돌며 마지막 싸움을 준비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분명 여기에서 내가 패배하는 각본임에 기분이 무척 좋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것은 미래의 아이콘.

현재에도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남자, 숀 시나였다.

그리고 나는 그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남자였다.

단지 그것만으로 내 패배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엄청난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1번에서 여기까지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리드 보이로서 경기를 이끈 것 자체가 그랬다.

‘어디 해보자고.’

여기서부터는 모두 각본이다.

즉석에서 짜낸 경기가 아닌 아주 세심하게 고민한 스팟.

그게 시작되었다.

체인 레슬링.

팔을 엮고 걸고 빠져나오며 우리는 잠시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하지만 모조리 페이크였다.

빠져나가려던 시나의 팔을 당긴 나는 그대로 날아오르며 녀석의 안면에 무릎을 꽂아 넣었다.

콰직-!

1번으로 나왔던 나는 지쳐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물러났다.

시나는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내저으며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한순간 일어난 반전.

사람들은 둘 중 누가 이겨도 좋다는 듯이 시나와 나의 이름을 번갈아 소리치기 시작했다.

오늘 5시간이 넘는 쇼에서 가장 거대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앞으로 내달렸다.

드디어 마지막 순간이다.

1번으로 나왔던 나는 시나에 비해 체력이 훨씬 떨어진 상태였다.

그렇기에 시나는 달려든 나를 옆으로 돌아 힘차게 들어올렸다.

“끄하압-!!”

관객들이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그들은 거의 경기장에 난입할 기세로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일명 파이어맨즈 캐리 자세.

시나는 나를 양어깨 위에 올려서 가볍게 지탱했다. 그 힘은 정말 경탄스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직후, 시나의 어깨 위에 엎드린 채 붙잡혀 있던 나는 시야가 빙글 도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반 바퀴 회전한 몸이 등부터 해서 바닥에 추락했다.

투콰앙-!!

정신이 아찔한 한 방.

F-U가 터졌다.

그와 함께 폭발하는 환호.

시나의 손에 이끌려 일어난 나는 마지막 동작을 수행했다.

삼단 로프 위로 넘어간 몸이 링을 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을 목도한 관객들의 환호가 경기장 안을 가득 메웠다.

땡땡땡!

경기는 그 순간 종료되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럼블의 우승이 확정된 순간 시나는 눈물을 터뜨리며 기뻐했다.

저건 연기가 아니었다.

가짜도 아니었다.

회사에서 잘릴 위기까지 갔던 시나가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것이 드디어 보상을 받은 것이었다.

황망한 채 엉덩방아를 찧고 있던 나는 카메라맨이 시나를 찍기 시작하자 미소를 지었다.

‘축하한다. 시나.’

나 역시 많은 것을 얻었다.

리드 보이.

한 시간 이상을 럼블에서 버티며 얻어낸 강자의 이미지.

나와 함께 올라갈 네 명의 루키들의 위상을 확실히 세웠고.

그리고 그냥 기분이 좋았다.

관객들이 기뻐해주니까.

그들은 끝나고 집에 가서 내 티셔츠를 인터넷으로 주문하겠지.

정말이지 멋진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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