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137화 (137/634)

137.

그렇게 위켄드 쇼 촬영을 마친 뒤, WWF에서는 곧바로 머천다이즈 할인 이벤트를 진행했다.

티셔츠가 4장에 40달러.

머그컵 네 개가 25달러.

커피를 담아도 뜨겁지 않아요!

그 외에도 사인 포스터, 어린이용 식기 세트, 신발, 팬티, 양말.

모자, 후드 티, 점퍼, 선수 별로 착용하고 나오는 특수 아이템.

이뿐이랴.

가방, 도시락 통, 보블헤드 인형, 그냥 인형, 액션 피규어, 액션 피규어용 경기장, 게임 CD.

챔피언 벨트, 벨트 옆에 들어가는 선수별 사이드 플레이트.

‘더럽게도 많군.’

그 전부가 할인 이벤트가 들어갔다. 회사에서 그야말로 창고 대방출을 개시한 것이었다.

정확히 원하던 대로였다.

일이 이렇게 된 것에는 티파니 맥센이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그녀가 이벤트 안건을 올리고 회사 간부들에게 넌지시 통과를 시켜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그렇게 머천다이즈 할인 이벤트가 2주 정도 진행되었다.

버닝콩 촬영을 마친 뒤, 나는 스탬포드의 WWF 본사에 왔다.

티파니 맥센과 ‘초콜릿 상자’를 열어보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열기 전까지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를 초콜릿 상자를.

그리고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뜻밖의 광경과 마주하게 되었다.

방 저편까지 뻗은 널찍한 책상 위에 머천다이즈들이 가득했다.

나는 아직 안으로 들어서지 않고 문에 달린 작은 창문으로 안쪽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는 티파니의 모습이 더 가관이었다.

“푸슈우, 푸.”

“…….”

어린이용 WWF 경기장 세트.

곳곳에 설치된 스프링으로 액션 피규어를 던지면서 놀 수 있는 3~4세용 어린이 장난감.

거기에서 20살 정도가 더 많은 티파니는 나와 락콜드의 피규어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져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금발은 하나로 묶었고, 화장기는 거의 없는 새하얀 피부, 동그란 안경을 쓴 게 어쩐지 귀여웠다.

검은 바지 정장을 입은 티파니는 완전히 몰두해 입으로 소리를 내며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책상 앞에 무릎을 꿇고 말이다.

조, 좀 흥미가 생긴다.

락콜드와 나의 대결이라니.

누가 이길까.

유치한 궁금증을 느낀 나는 잠시 숨어 티파니의 놀이(?)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투닥투닥.”

“…….”

“스터너~를 반격.”

근데 좀 귀엽긴 하다.

그렇게 느끼는 동시에 나도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나도 저거 가지고 놀았거든. 내가 제일 존경하는 선배인 존 마이클스 피규어로.

알고 봤더니 피규어가 조잡한 중국산 가짜라 3일쯤 지나니 얼굴에 그려진 페인트가 벗겨졌지만.

그래서 매직으로 다시 얼굴을 그렸다가 더 이상해지고, 새로 사달라고 조르다 아버지한테 2층 밖으로 내던져졌던 기억이 있다.

“…….”

그러고 보니 경기장도 안 사줘서 종이 경기장을 만들었었지.

“원, 투, 쓰리! 땡땡땡!”

어, 락콜드가 이겼잖아.

“왜 내가 지는 건데?”

“꺅?!”

살짝 흥분해 안으로 들어서자 티파니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시, 신?!”

커다란 눈망울에 순간 당혹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그러더니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졌다.

“아니, 그……!”

“왜 내가 지냐고.”

“그게 말이죠! 어, 아니 재미있게 놀고 있었던 게 아니거든요!”

“완전 푹 빠졌던데. 스터너를 대체 어떻게 반격한 거야?”

“이, 이익!!”

티파니가 주먹을 내질렀다.

가볍게 막아낸 나는 그대로 팔을 잡고 돌려 돌아선 티파니를 뒤에서부터 살짝 끌어안았다.

“왜 내가 졌냐고.”

“사, 사람이 참!”

“유치하다고?”

“그래요! 질 수도 있지!”

“3~4세용 완구를 완전 몰입해서 가지고 노는 것보다는 덜.”

“당신, 내가 정말 언젠가 마시는 술에 독을 타고 말 거야!”

어찌나 창피했는지 티파니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목덜미까지 새빨간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게 귀여워 나는 팔에 좀 힘을 줬다. 그러자니 티파니는 락콜드의 피규어를 들어올렸다.

“아니, 그게 이유가 있어요.”

“뭔데?”

“이 장난감이 이기는 쪽이 안 좋아지는 그런 게 있어서.”

“응?”

그러고 보니 장난감 링이 어딘가 좀 이상한 모습이었다.

링 바깥에 거대한 관 같은 것이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이 장난감은 출시하지 못한 건데, ‘캐스켓-테이커의 데드맨 메이커’라는 장난감이거든요.”

“그래서?”

“승자는 이기면 관에 들어가서……. 이렇게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면 정해지는 건데요.”

티파니가 락콜드 피규어를 관에 넣더니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싸구려 효과음과 함께 관 안쪽에 녹색 물이 차올랐다.

락콜드 선생님의 대머리가 천천히 녹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피규어를 망자로 만드는 컨셉의 장난감이죠.”

“………….”

“녹색으로 변한 피규어를 가지게 될 수 있는 게 멋지죠.”

“아니, 원래 색으로는 어떻게 되돌릴 수 있는 건데?”

“네? 못하죠.”

“그럼 어떻게…….”

“녹색 피규어가 생기면 이제 일반 피규어를 다시 사야 되잖아요. 그걸 노린 제품이었죠.”

“……왜 이런 게 있는 거야.”

“이뿐만이 아니에요.”

티파니는 락콜드의 피규어를 안에서 꺼내들더니 손가락 두 개로 목을 살짝 눌렀다.

그러자니 머리가 툭 튀어나와 땅에 떨어졌다.

나는 공포를 느꼈다.

“좀비가 된 컨셉이라서 이렇게 머리가 빠지게 피규어가 바뀌죠.”

“………….”

“이제 좀 알겠어요? 제가 왜 당신을 지게 만들었는지.”

“이걸 애들한테 판매해서 가지고 놀도록 시켰다고?”

“절대 안 되죠. 아버지 아이디어였는데 이거 실험 때 녹색 물을 마셨던 꼬마의 피부가 녹색으로 물들기 시작해서…….”

“그걸 왜 당신은 가지고 있지.”

“그 애가 저였으니까요.”

“…….”

업계의 비밀을 안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당신, 전에 봤을 때 허벅지 안쪽에 녹색 점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조명 때문이고요.”

눈을 가늘게 뜨며 돌아선 티파니가 내 코를 꽈악 움켜쥐었다.

“회사 창고에서 샘플을 찾아서 오랜만에 좀 테스트를 해본 거예요. 절대 가지고 논 게 아니고.”

“예, 예.”

“아, 역시 당신 피규어도 넣어서 녹색으로 만들어야겠어.”

“안 돼!!!”

그런 티파니를 말리며 나는 한동안 정신없이 웃어댔다.

그리고 이내 장난감을 치워두고 상품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게 다 뭐야?”

“이번에 ‘묶음 판매’로 잘 나갔던 것들을 한번 모아봤어요.”

“굳이 이래야 할 필요가?”

“사원 몇 명이 자리에서 갤보그 게임을 하다 걸려서 말이죠.”

“악독한 사장님이로군.”

“회사에서 일을 해야지 게임을 하고 있으면 안 되죠.”

그렇게 말한 티파니는 하나하나 나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판매량이 꽤나 잘 나와서 충분히 데이터가 모인 상태였다.

“일단 우리 예상이 맞았어요. 위켄드 쇼의 영향 덕분인지 당신, 시나, 러셀, 오튼의 티셔츠가 함께 나가는 일이 아주 많았죠.”

“나머지도?”

“예, 그래서 회사에서는 당분간 관련 상품을 더 제작할 거예요. 여기 이것들은 그 샘플이고.”

티파니는 한쪽에 모아둔 샘플 상품들을 모아서 보여주었다.

나는 그중 조그마한 어린이용 브리프 팬티를 들어보였다.

엉덩이에 캐릭터로 그려진 시나의 얼굴이 있는 것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숀 시나 팬티?”

“애들이 잘 산다고 하던데.”

“설마 내 것도 나오나?”

“당신 얼굴이 엉덩이에 프린트 된 팬티를 입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되겠죠.”

“그러다가 애들이 만약 바지에 실수를 하게 된다면…….”

“상상도 하기 싫어요.”

“갈색의…….”

“그, 그만!”

티파니가 비명을 내질렀다.

정말 싫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쨌든 그래요. 회사도, 팬들도 당신과 시나, 러셀, 오튼이 미래를 책임질 루키라고 생각한다는 게 이걸로 증명이 됐죠.”

“내 말이 맞았군.”

“하나만 물어봐도 되요?”

“뭔데?”

“설마 파이널 포를 정할 때 이런 부분까지 다 염두에 둔 건가요? 사람들이 당신은 정말 미쳤다면서 혀를 내두르던데.”

“글쎄, 어떨까.”

정확히 말하자면 세밀한 부분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기는 했다.

나는 단지 전생의 기억과 현재의 정보를 토대로 최선의 부킹을 하고 결과를 지켜봤을 뿐.

그리고 그 결과를 다시 굴려서 여기까지 키워냈을 뿐이었다.

“정말, 당신과 있으면 놀랄 일밖에 없는 기분이군요.”

“뭘 이 정도 가지고.”

“아뇨, 실제로 그래요. 우리가 이건 안 된다고 하는 걸 당신은 언제나 현실로 바꾸어놓죠.”

거기까지 이야기한 티파니는 작은 상자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이건, 현재 당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물건이에요.”

사이드 플레이트가 든 상자.

그것을 받아든 나는 조심스럽게 열어 그 내용물을 확인했다.

WWF의 메인급 챔피언 벨트에는 그 주인의 네임과 로고, 캐치프레이즈가 새겨진 사이드 플레이트가 양쪽에 들어갔다.

상품으로 제작되는 사이드 플레이트는 그 레플리카 제품이었다.

원본은 강철에 글자를 도금해 제작되었지만 레플리카는 아연 합금으로 제작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봤을 때는 거의 똑같아 그 선수가 챔피언이었음을 기념하는 제품인 것이었다.

나는 상자를 열었다.

SIN.

Break The World.

검정 바탕에 황금색으로 글자가 새겨져 있는 원형 플레이트.

내가 만약 월드 챔피언에 오른다면 이 진품을 가져다가 교체를 해서 들고 다니게 되겠지.

그런 미래를 생각하며 플레이트를 바라보고 있자니 가까이 온 티파니가 내 손을 붙잡았다.

“감격했어요?”

“조금.”

역시 이해를 해주었다.

나처럼 꿈이 있는 선수들은 때로는 이런 상징적인 물건 하나에 크게 감명을 받는 법이었다.

회사원이 처음으로 받은 명함을 보듯이. 아니면 진급 후에 바뀐 자신의 직급명을 보듯이.

나 역시도 내 이름이 새겨진 사이드 플레이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뭔지 모를 감격을 느꼈다.

“현실로 만들어야죠. 왜냐면 이건 응당 당신이 가지고 있어야 할 물건이니까.”

“……그래.”

“저도 꼭 보고 싶어요. 당신이 월드 챔피언에 오른 모습을.”

티파니가 슬쩍 까치발을 들었다.

우리는 잠시 애정을 나누었다.

같은 꿈을 걸어 나갈 수 있는 상대라서 그런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맞는 기분이었다.

내가 막연히 생각하던 것과는 달리 티파니는 순수한 사람이었고 또한 나와도 굉장히 잘 맞았다.

“끝나고 레슬링이나 할까?”

“여, 여기서요?”

“저기 저 장난감으로.”

“……아, 난 또.”

뭘 상상한 거야.

쓰게 웃은 나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내 피규어를 들었다.

눈을 좀 작게 그렸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뭐 넘어가기로 했다.

제작비 절감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겠지.

“그것도 판매량이 엄청나대요. 구하기 힘들 정도라고 하던데.”

“그래?”

“예, 복장 바꿔서 다음 시리즈 내자고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복장을?”

“네네, 이제 당신은 더 이상 ‘뒷골목 출신 양아치’가 아니라 WWF 슈퍼스타잖아요.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은데.”

“……복장이라.”

나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분명 나쁘지 않은 제안이기는 했다. 지금의 내 복장은 프로레슬러라고 느껴지지는 않으니까.

레슬링 팬츠를 입는다면 분명히 그 나름대로 장점이 있겠지.

여러 팬츠를 제작해 입으면서 관객들에게 신선한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줄 수 있다던가.

그리고 그렇게 팬츠마다 신규 액션 피규어를 발매해 ‘XX 에디션’이라고 붙여서 파는 거지.

나는 왠지 모르게 바쿠가 ‘넌 킹 오브 자본주의야! 제기랄!’ 하고 외치던 광경을 떠올렸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 생각하고서 무작정 경기복장을 바꾸기에는 여러모로 필요한 게 많았다.

확실한 각본과 타이밍.

그리고 대립 상대.

현재 나는 회사에서 그렉 하트와의 대립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킹스 럼블에서의 석연찮은 탈락을 빌미로 그렉이 나에게 시비를 걸어서 생기게 된 대립.

원래대로라면 이번 레슬 임페리움에서 은퇴하게 될 그렉의 마지막 대립이 될 예정이었으나.

얼마 전 그렉은 나에게 ‘선수 생활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즉, 전생의 역사에서 크게 바뀌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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