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142화 (142/634)

142.

레베카 리킨보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녀는 세상에 둘도 없는 개망나니였던 존 마이클스를 참회시킨 성녀라는 것이었다.

존과 결혼하고 개신교에 귀의시킨 것도 그녀였으며, 레슬링 도장의 운영을 도왔다고 들었다.

그런 레베카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선 나는 완벽하게 정리가 된 풍경에 새삼 감탄했다.

비록 마이클스가 방금 쏜 문 앞은 부서진 나무 조각들로 인해서 난장판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는 내가 존경하는 선배, 존 마이클스가 바닥에 개구리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한숨을 내쉰 레베카가 그 앞에 놓여 있던 샷건을 들어 능숙하게 분해를 해보였다.

나는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는 술병을 넘어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니 레베카가 다시 한 번 내게 사과를 했다.

“미안해요. 평소에는 괜찮은 사람인데 옛날 일만 떠올리면 저렇게 거칠어지더라고요.”

“그 덕분에 제 손가락이 다섯 개가 될 뻔했군요.”

오른손에 두 개, 왼손에 세 개.

심장이 아직도 벌렁대는 걸 느끼며 나는 쓰러져 있는 마이클스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수염을 마구잡이로 기르고 있는 그의 얼굴은 내가 기억하고 있던 섹시 보이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왜 이래. 이 양반.’

그 정도로 그렉과 있었던 사건이 트라우마였다는 것일까.

하긴, 내가 알고 있는 마이클스는 링 위에서 보여주던 화려한 쇼 스타퍼였으니까.

이런 모습은…… 아마 그다지 쉽게 드러낼 수 없는 거겠지.

“존, 존.”

나는 쓰러진 마이클스의 몸을 잡고 흔들었다.

“음, 우음…….”

“일어나요. 이야기 좀 하게.”

“우으음……. 윽?!”

마이클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잠시 어색한 침묵.

시선이 마주친 채로 굳어져 있던 마이클스가 이어 괴성을 내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크아아아아악!!”

“윽?!”

순간 덮쳐져 엉덩방아를 찧은 나는 곧바로 대응을 실시했다.

양어깨를 잡은 뒤 마이클스의 배에 발을 대고 뒤로 넘겼다.

“그억?!”

그대로 몸이 반 바퀴 회전한 마이클스가 내 뒤에 똑바로 섰다.

무지막지하게 멋진 낙법, 아니, 덤블링이었다.

“…….”

“…….”

아, 근데 저 양반 허리.

“어이구구구구!!”

“여봇!!”

소리를 지른 레베카 여사께서 무릎을 꿇은 존에게 달려갔다.

이거 망했군.

* * *

지하의 레슬링 도장.

레베카 부인께서 자리를 피해주신 덕분에, 나와 존 마이클스는 독대를 할 수가 있었다.

아까의 허리 덤블링이 확 술을 깨게 만들었는지, 마이클스는 정신을 차리고 내게 사과를 했다.

“미안하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건만.”

“갑자기 그렉에게 연락이 와서 많이 놀라셨던 모양이군요.”

“……그래. 은퇴한 뒤로 업계 사람들과는 연락을 안 했으니까.”

그는 쓸쓸한 눈이었다.

은퇴한 뒤로 아무하고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분명 다큐멘터리에 나와서도 그렇게 말했었지.

“내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것도 헌터 정도지. 그 녀석과 연락한 지도 꽤나 오래되었지만 말이야.”

“그렇습니까.”

“화해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헌터와요?”

“그게 포인트지.”

마이클스의 눈은 진지했다.

“그렉은 내가 용서 받지 못할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했거든.”

“헌터는요?”

“녀석도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사과를 해야만 하는 쪽이지.”

마이클스는 쓰게 웃었다.

두껍게 얼굴을 뒤덮은 수염 아래에 뭔가 입 같은 게 살짝 드러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주면 자라는 잔디 인형을 대강 200년 정도 키우면 저렇게 되려나 싶은 모습이었다.

“나는, 죄를 많이 저질렀어.”

“그래도 복귀 준비는 꾸준히 하고 계셨던 모양이로군요.”

“……?”

이건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 수 있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는 블러핑이었다.

“아까도 정말 엄청나게 허리가 아파 보이시지는 않던데 말입니다.”

“……자네, 쇼에서 하는 짓만 보고서는 대체 얼마나 대단한 놈인가 싶었는데 말이야.”

마이클스의 입이 다시 수염 속에서 슬쩍 나왔다 사라졌다.

“정말로 대단하군. 내가 준비 중인 걸 알아볼 줄은 몰랐어.”

“바트와 이야기는 하셨나요?”

“안 해도 돼. 때가 되면…….”

“그렉이 은퇴하면?”

“귀신같군.”

기가 차다는 듯 웃는다.

“맞아. 나는 그렉이 은퇴한 뒤에 복귀를 할 생각이었어. ……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했으니까.”

그런 대답을 들은 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대충 알 것 같았다.

마이클스는 소심한 성격이었다.

상처도 많고, 홧김에 저지른 일이 자기 자신에게도 비수가 되는, 남들이 대하기 피곤한 남자.

에너지가 넘칠 때 보여주는 활력보다 이런 우울함이 사실 마이클스의 본래 성격인 것이겠지.

오튼과 비슷한 과다.

녀석이 자신의 약한 면을 숨기기 위해 날을 세웠던 것처럼, 마이클스도 유쾌한 척을 한 거지.

나중에 우울한 게 너무 심해지니까 망나니로까지 변질된 거고.

종교에 귀의하고 아내가 생긴 이후로는 의지할 곳이 생겨져 사람이 나아진 것이었으나.

그렉과의 문제는 과거의 일.

그것과 제대로 마주하지 않는 이상 해결되지 않는 것이었다.

‘뭐, 쉽게 말해서.’

귀찮은 성격이라는 거다.

그래도 해결 방안은 쉬웠다.

“존. 그래도 그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잖아요. 그 말인즉슨 당신을 용서하겠다는 이야기잖아요?”

“그런, 가.”

“서로 안 좋게 끝나기는 했지만, 이렇게 된 것 자체가 화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셈이죠.”

“…….”

잠시 침묵하던 마이클스가 이내 가슴팍 안으로 손을 넣었다.

목에 걸어둔 신앙심의 상징.

거기에 입을 맞춘 그는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가지.”

바로 그때, 저 멀리서 레베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염은 자르고 가요~!]

“…….”

“…….”

다 듣고 있었나.

* * *

표는 그쪽에서 끊어주어 우리는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움직였다.

캐나다 중서부에 위치한 캘거리는 프로레슬링 팬들에게는 성지聖地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프로레슬링 명문가 중 하나인 하트 패밀리의 총 본산이 바로 이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하트 던전.

이곳에서 배출된 수많은 캐나다인 프로레슬러들은 WWF의 링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개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것은 물론 그렉 하트였지만 말이다.

공항에서 내린 존 마이클스와 나는 그대로 픽업을 온 러셀의 봉고차에 짐을 싣고 올라탔다.

러셀은 마이클스를 보자마자 아주 깍듯하게 예의를 갖췄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존 마이클스.”

“그, 그래. 러셀이라고……?”

“어렸을 적에 한 번 뵈었죠.”

미소를 짓는 러셀.

내가 조수석에 앉았고, 마이클스는 뒤쪽에서 어깨를 움츠렸다.

그런 상태에서 차가 출발했다.

하트 던전으로의 여행.

러셀은 뒷좌석에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느라 고생했어.”

“아냐, 뭐.”

별일은 없었다.

공항으로 가는 내내 마이클스가 엉엉 울었다는 것만 빼면.

아, 공항에서 검색대를 통과할 때 철로 된 십자가는 절대 못 뺀다고 우겨서 겨우 통과했고.

또한 기내에서 마이클스가 그렉과의 일로 발작을 해 테러리스트로 잠깐 오해를 받았지만.

괜찮았다.

무사히 도착했으니까.

“삼촌도 거의 죽기 직전이야. 며칠째 식음을 전폐하고 연습용 링에서 잠을 자더라고.”

“제기랄, 사춘기 고등학생 둘 화해시키는 게 훨씬 쉽겠는데.”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어쨌든, 두 전설의 화해를 주선할 수 있는데다가 바트를 엿 먹일 수 있는 만큼 나로서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러셀이 있어줘 든든한 마음을 느꼈다. 우리는 그렇게 하트 던전을 향해서 이동했다.

새하얀 풍경 위에 마치 가르마를 탄 것처럼 난 포장 도로.

그 끝에 있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자 나무에 쌓인 눈이 떨어졌다.

하트 던전은 텍사스 황무지에 위치해있는 마이클스의 저택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카우보이의 집과는 다른 고급스러운 귀족의 저택 같은 느낌.

그곳에서 우리를 반긴 것은 하트 가문의 수장 두 사람이었다.

스티비 하트와 에일린 하트.

노년의 부부는 가장 먼저 나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표했다.

“고맙네. 신.”

“아닙니다. 저로서는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특히나 부인인 에일린은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였다.

“사고가 나기 전에 저희에게 말해줘서 정말로 고마워요.”

“사고?”

“그야 물론 사인을 하는 거지.”

스티비가 불쾌한 듯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사업 관계로 바트 맥센과 만나본 남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계약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터였다.

“바트 맥센과의 계약은 신중해야 해. 그 빌어먹을 개자식은 악마에게서 영혼을 산 놈이니까.”

“하하, 맞는 말이군요.”

확실히 그의 말대로였다.

바트 맥센은 악마조차 자신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할 인간이다.

‘그래봤자 나에게는 안 되지만. 나는 진짜 죽음에서 돌아왔거든.’

나는 그의 말에 맞장구치며 낄낄 웃었다.

그 후로, 하트 노부부는 내 뒤에 있던 마이클스에게 용기를 내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마이클스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부부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 그를 잠시 남겨두고, 나와 러셀은 자리를 빠져나왔다.

“삼촌은 링에 있어.”

지하의 훈련장 말고도 던전에는 외부에 따로 링을 설치해두었다.

이 작은 마을은 구성원 전체가 프로레슬링 관련 일을 생업으로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실제로 ‘스턴포드 레슬링’이라는 이름의 중소규모 단체를 운영 중이기까지 했다.

“우리 러셀 선생께서는 그런 스턴포드 레슬링이 싫어서 인정을 받고자 GCW로 오셨지.”

“……옛날 일이잖아.”

내가 다시 낄낄거리며 놀리자 러셀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저택 옆에 있는 작은 별채.

그 안으로 들어서자 곧바로 범프 링이 우리 둘을 맞이했다.

땀으로 흠뻑 젖은 그렉은 로프에 등을 기댄 채 서있었다.

그는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엔진 소리를 들었지.”

“그때부터 심장이 떨려서 계속 몸을 풀어둔 것입니까?”

“……너한텐 못 당하겠군.”

피식 웃은 그렉이 링 밑으로 내려왔다. 가까이 다가간 나는 옆에 있던 수건을 들어 건네주었다.

“샤워라도 하시죠. 둘이 만나면 감격해서 포옹할 것 같은데.”

“됐다.”

그렉이 딱 잘라 거절했다.

“며칠 동안 생각해봤는데, 오늘은 확실히 좋은 날이 아니야.”

“예?”

의아해 되묻자니, 가만히 서있던 그렉이 뒤를 돌아보았다.

……링이 있었다.

난 곧바로 이해했다.

그렉 하트는 자신과 존의 화해가 링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고 말한 것이었다.

“삼촌? 그게 무슨…….”

“WWF에요? 아니면 스턴포드 레슬링을 말하는 겁니까?”

“……역시 넌 이해하는군.”

그렉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좋긴 한데 땀 냄새나요. 아저씨.

“아마 지금 바트에게 이 아이디어를 가져갔다가는 무시당할 게 뻔하다. 그렇게 해서 가치를 훼손시키고 자신에게 유리한 형태로 계약을 맺으려고 하겠지.”

“물론, 그럴 인간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턴피드로부터 세계로 뻗어갈 거다.”

“……과연 그걸 마이클스가 승낙할지는 잘 모르겠군요.”

“그럴 거다. 녀석에 관해서는 내가 가장 잘 아니까.”

그렉은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자신의 양 뺨을 때렸다.

그러고는 곧바로 앞장서 저택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르던 나는 은근슬쩍 러셀에게 물어보았다.

“……우리도 한번 해볼까?”

“스턴피드에서?”

“재미있을 것 같은데.”

“계약상으로 문제가 될 거야. 스턴피드야 TV 방송도 안 나가는 작은 레슬링 쇼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렉은 어차피 나갈 사람이니까 신경 안 쓴다는 건가.”

“그렇겠지. 그냥 위약금 지불하고 나와버리면 되니까.”

원래 계획했던 대로 말이다.

거기에서 그렉이 정말로 은퇴를 결심했음을 느꼈다.

나는 그렉 하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벌크가 많이 줄어든 몸.

분명히 늙기는 했다.

그럼에도 링 위에서는 여전히 처형의 달인으로 활약하겠지.

‘좀 부럽군.’

전설을 남긴 그의 마지막이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전생보다도 더.

나로 인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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