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144화 (144/634)

144.

존 마이클스의 테마 음악에 대해서 말하자면 환상 그 자체였다.

90년대에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90년대로 가는 열차에 올라탄 듯한 기분이었다.

좀 오그라들지만 그 오프닝이 내게 어떻게 들리는가를 필요는 없지만 문자로 서술하자면.

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열정적이고 신나는 사운드와 함께.

[oh~~~ oh~~~ John~~]

여자가 존의 이름을 부르고, 그가 직접 부른 노래가 시작되었다.

[I Think I’m Cute~. I Know I’m Sexy~.]

“크흡, 이거지.”

저 노래를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나라에서 존밖에 없다.

나도 못한다. 촌스러우니까.

그 시절에 유행하던, 뭔지는 잘 모르지만 더럽게 신나는 메탈.

하지만 그와 함께 나오는 존 마이클스는 비장한 모습이었다.

수염은 깎았고, 덕분에 원래의 그 모습으로 완전히 돌아왔다.

자신은 섹시하고 너희들의 보이 토이가 아니라고 건방지게 말하는 섹시 보이의 음악.

그건 온전히 마이클스만이 소화할 수 있는 음악이었다.

그리고 프로레슬링 팬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느끼겠지.

정말 개쩐다고.

존의 노래다.

60년대의 비틀스 음악이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은 것처럼.

그가 거쳐 온 길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존의 입장 음악은 그야말로 환상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쏟아지는 건 야유였다.

[Boooooooooooo!!]

[F-ck you! John! F-ck you! John! F-ck you! John! F-ck you! John! F-ck you! John!]

캘거리의 사람들은 그렉과 존의 사이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존이 정치질을 해서 그렉을 묻었다고 생각하고 느꼈다. 때문에 마이클스에게 적대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상황에서 기묘한 일이 벌어지는 걸 보았다.

“허.”

그렉이 마이크를 들자 그 많던 관객의 욕설이 단숨에 멎었다.

그리고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윽고 첫 마디를 내뱉었다.

[널 증오했다.]

두 전설이 대화를 시작했다.

[날 비웃음거리로 만들고, 내가 해온 프로레슬링을 바보 같다면서 비웃은 네가 너무나도 싫었다.]

‘그랬었지.’

분명히 그때 존은 그렉을 ‘구식’으로 몰고 가면서 새 세태에 야합하지 못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나니 좀 다른 생각이 들더군. 그때 난 네 방식과 싸워서 이겼어야 했어.]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시대가 원하는 것은 결국 존 마이클스와 같은 사내였다.

자극적이며 유혈이 낭자하던 태도 불량 시대의 서막.

[사람들의 야유가 날 좀먹었던 거야. 네가 씌운 구식이라는 프레임이 계속 나를 쫓아다녔지.]

[그전에, 내가 첫 월드 챔피언이 되었을 때를 기억합니까?]

[물론 기억하지.]

[그때 나는 당신과 같은 모범적인 챔피언이 되고 싶었습니다.]

마이클스가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날 인정해주지 않았죠. 난 벨트를 다시 빼앗겼고, 그때 내 방식을 통해 당신을 이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D-X.

[하지만 선배는 끝까지 날 싫어했죠. 락콜드는 귀여워했으면서 나의 방식은 비난만 했으니까.]

[네가 고참으로서 다른 선수들의 모범이 되었으면 해서였다.]

[하지만 그때 나는 비난이 아닌 인정이 필요했어요. 그것도 ‘최고’였던 남자의 인정이 말이죠.]

관객들은 숨조차 쉬지 못하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 시대의 백스테이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십 년 가까이 미궁 속에 있었던 디테일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래서 날 증오했나?]

그렉의 목소리가 떨렸다.

[증오했습니다.]

마이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비겁한 방식으로 당신을 이겼다는 죄책감이 평생 절 괴롭힐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가 그때 조금만 더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더라면. 락콜드의 시대는 없었겠지.]

[그랬을 겁니다.]

순순히 인정하는 마이클스.

그렉이 먼저 손을 뻗었고, 마이클스가 이내 악수를 받았다.

바로 그 순간, 380명의 관객들이 감격에 벅차 소리를 질렀다.

‘대박이군.’

나는 몸이 근질거리는 것을 느끼며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딱히 마이크워크를 짠 게 아니었는데도 이런 몰입감이라니.

확실히 엄청난 호흡이었다.

관객들의 반응도 확실하고, 카메라에도 좋은 그림이 찍혔다.

‘바트의 반응이 궁금해지는군.’

나는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 * *

어둠에 휩싸인 회의실.

사업팀에서 보낸 영상 하나가 현장팀의 회의에서 틀어졌다.

전략홍보팀 직원 하나가 인터넷 반응을 살피다 찾은 영상.

흰 머리를 감추기 위해 어제 바로 뿌리 염색을 했던 바트 맥센은 처음에는 심드렁했으나.

이내 영상을 보고는 테이블을 힘차게 내리치며 버럭 소리쳤다.

“이게 대체 뭐야!!”

회의실 전체를 울리는 그 소리에 각 팀장들이 몸을 떨었다.

그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왜 존 마이클스와 그렉 하트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저런 걸 하고 있는 건데!!”

“보, 보스. 그게…….”

“당장 말하란 말이야!!”

물론, 거기에 대해서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 역시 ‘인터넷에서 발굴한 영상’이라는 말에 딱히 체크를 하지 않고 넘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그조차 일단 바트 맥센의 심기를 크게 거슬렀다.

‘WWF는 절대 타 프로레슬링 단체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불문율이었다.

프로레슬링은 오직 WWF에만 있다. 그것이 이 세계 최대의 유일무이한 기업이 취하는 스탠스.

따라서 그걸 정면으로 부정하는 저 영상은, 말하자면 바트 맥센의 왕국을 부정한 것이었다.

그가 수십 년에 걸쳐서 쌓아온 유산이 이러한 공격을 받게 될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회의실 문이 열리며 바트의 비서가 다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냉랭해진 공기 속에 잔뜩 긴장한 채 바트의 귀에 대고 다급히 몇 마디 말을 속삭였다.

바트는 더 참지 못했다.

“끄아아아아악!!”

자리에서 일어선 노인은 자신의 직함이 새겨진 명패를 스크린을 향해서 힘차게 집어던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런 개……! 그 개자식이!!”

손에 잡히는 건 무엇이든지 집어던지며 그는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부정했다.

“회, 회장님!”

결국 보다 못한 팀장들이 그를 뜯어말려 억지로 붙잡았다.

세계 최대의 기업, 그 회장이 보이기에는 추한 행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일은 바트 맥센이 남자로서 가지고 있는 자존심을 아주 제대로 긁어놓았다.

[나는 반드시 신에게 이길 거다. 그를 위해선 네 도움이 필요해.]

그렉 하트는 그렇게 말했다.

그를 오랫동안 봐온 바트는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렉 하트는 이번 레슬 임페리움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다.

거기에, 존 마이클스를 마지막 각본에 참여시켜서는 자신의 못난 과오를 수정할 생각이겠지.

바트는 자신이 만들어낸 스토리가 그렇게 마지막에 일그러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몰락한 영웅, 그렉 하트.

불운한 천재, 존 마이클스.

그게 지금 어떤 한 개자식의 농간으로 인해 무너지려고 했다.

“이거 놔……!!”

“좀 진정하십시오!”

“그 빌어처먹을 애송이 어디 있어! 지금 당장 불러와!!”

“누, 누구를……!”

“신, 신 말이야!!”

이를 빠득 깨문 바트는 그렇게 한동안 계속해서 난동을 피웠다.

그를 말리려다 주먹에 맞은 시설팀장의 코뼈가 주저앉았다.

유리가 깨져 주먹이 피투성이가 된 바트는 그제야 좀 진정하고는 엉망인 회의실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모두를 나가게 한 뒤, 혼자 방에 앉아 전화를 걸었다.

그 빌어먹을 목소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돌아왔다.

[예, 보스.]

“……너, 무슨 짓을 한 거냐.”

[별로요. 저는 진짜 이번에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렉 하트와 존 마이클스가 화해를 한다고? 그걸 그딴 싸구려 인터넷에 올려버렸다고?”

[화제는 되었나 보군요.]

“그걸 내 쇼에서 했으면 전 세계의 수천만 명이 봤을 거다!”

[하지만 그건 진심으로 화해를 하는 게 아니었겠죠. 당신이 만들어낸 화해였을 뿐.]

신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연락 좀 왔어요?]

“너 대체……!”

[요즘 기자들 참 빠르다니까. 이쪽으로는 올린 지 5분도 안 되서 전화가 오더니, 안 받으니까 바로 그쪽으로 돌아섰네.]

바트의 귀가 시뻘게졌다.

그는 지금 자신과 단체가 완전히 엿을 먹었음을 깨달았다.

저딴, 파리 시체에서 덜 빠진 목숨보다도 못한 역겨운 중소 단체의 다음이 되고 말았다.

바트 맥센은 그런 상황에 순간 울먹거릴 정도로 분함을 느꼈다.

“……그렉에게 말해라. 이러고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냐고.”

[그럼요. 당신 지금 머릿속으로는 이 돈 되는 ‘아이디어’를 빼앗으려고 난리도 아니잖아요?]

“난 그렉에게……!”

[나와 이야기해. 바트 맥센.]

신이 말을 잘라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어렵지 않아. 그냥 그렉을 얌전히 예우하고 은퇴시켜주기만 하면 돼.]

“………….”

[그걸로 당신이 얻는 거? 간단하지.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이야. 그리고 명성이지. 당신의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말이야.]

“만약, 내가 거절한다면?”

[왜 거절하겠어? 당신은 프로레슬링 너드잖아! 이 각본이 얼마나 죽여주는지 알고 있잖아!]

“이, 개자식…….”

[얼마를 지불하더라도 그걸 자기 걸로 만들고 싶겠지. 당신의 성에 아주 잘 어울리는 역사니까.]

“널, 반드시…….”

[전에, 남자는 꿈을 먹고 산다고 했잖아? 바트. 내가 당신의 꿈을 이루어주겠다고 하는 거지.]

신은 영혼을 팔기를 권하는 악마와 같이 유혹했다.

아니, 그게 아니다.

악마조차 그에게 영혼을 판 것만 같았다.

바트 맥센은 분노와 절망 속에 그 사실을 절절히 느꼈다.

[돈을 내. 그리고 약속해. 그렇다면 우리 모두 WWF로 돌아가서 이 짓거리를 다시 해줄 거야.]

“그렇게 할 순 없겠지…….”

[아, 들켰나?]

아마 스턴포드 레슬링에서 촬영된 이 영상은 인터넷을 통해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것이었다.

그렇기에 WWF에서 다시 찍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그러면 뭐, 스턴포드 레슬링하고 협업을 하는 수밖엔 없겠네.]

우지끈!

바트 맥센의 손에 쥐여져 있던 핸드폰이 산산이 부서졌다.

목에 올라선 핏줄과 근육으로 뒤덮인 팔은 그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가를 입증했다.

그것만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기가 만든 세계 외에 다른 프로레슬링을 인정할 순 없었다.

* * *

하지만 일은 바트 맥센이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진행되었다.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이클스와 단기 계약을 맺고 세그먼트의 권리를 사오는 정도였다.

바트가 가장 싫어하는 방식.

돈과 권력으로 사오기.

그래도 나는 그 결단만큼은 크게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덕분에 우리는 원하던 결과를 얻어낼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2월의 페이퍼뷰인 콜드 블러드.

거기에서 물론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그렉과 나의 경기였다.

이미 온갖 매체로 그렉과 마이클스의 이야기가 퍼져나갔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어떠한 기대감에 느끼며 경기를 지켜보았다.

나에게는 환호.

그렉에게는 야유.

하지만 그렉은 사람들이 보내는 반응을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나 역시 그러했다.

이야기는 우리가 원하던 대로 아주 잘 풀려가고 있었으니까.

사람들은 비참하게 늙은 그렉의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금 관객들은 그가 재계약을 한 뒤, 정치질로 나를 묻어버리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신의 앞길을 가로막지 말고 은퇴해라.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Boooooooooooooo!!]

그런 이유로 인해 계속되고 있는 야유에 그렉은 지지 않고 내게 샤프슈터를 먹였다.

그때, 바트는 내게 말했었다.

‘만약 큰 부상으로 더 이상 경기를 뛸 수 없게 되면 자네는 모든 걸 내려놓고 은퇴할 수 있나?’

같잖은 가정이었다.

하지만 그 감정을 모르지는 않기에, 나는 그렉 하트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신념을 이어받아, 내가 은퇴하는 그날까지 전달할 생각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악!!”

나는 비명을 내질렀다.

그렉의 샤프 슈터는 단단히 내 무릎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엎드린 상태에서 어떻게든 로프를 향해서 기어가려고 했지만 그렉이 버티는 힘은 너무도 강했다.

결국 나는, 항복 의사를 묻기 위해 다가온 심판의 멱살을 쥐고 힘차게 잡아당겼다.

관객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선수로서의 비겁한 행동.

[Yeeeeeeeeaaaaahhhh!!]

하지만 환호가 나왔다.

그렉은 그 정도로 미움을 받았고, 나는 사랑을 받았다.

중심을 잃은 심판이 그렉의 등에 부딪히며 관절기가 풀렸다.

환호 속에서 무릎을 잡고 일어난 나는 마지막을 준비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링 코너에서 로프를 잡고 투지를 불태우듯 그렉을 기다렸다.

경기의 종반부.

힘차게 내달린 나는…….

쫘악-!

경기장에 난입한 존 마이클스의 킥을 맞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Uooooooooooohhhhhh!!]

충격에 빠진 관객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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