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Sweet chin music.
해석하자면 ‘턱에서 나는 달콤한 음악’이라는 뜻으로, 존 마이클스의 현역 시절 피니셔였다.
거창하게 이름을 붙였으나 실상은 타점을 턱으로 둔 단순한 옆차기, 다시 말해 슈퍼 킥이었다.
하지만 존 마이클스는 그런 동작의 앞뒤에 쇼맨십을 첨가해 자기 고유의 무브로 만들어냈다.
거기에 선수의 위상까지 더해져 마이클스의 킥은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이었다.
쇼에서 가장 잘 나가고 있는 신인 선수조차 기습적인 킥에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말이다.
쓰러진 날 노려보던 마이클스가 이내 다시 링 아래로 내려갔다.
마이클스의 복귀에 환호를 보내던 사람들은 이어진 그렉의 행동을 보고는 다시 야유를 보냈다.
그는 쓰러져 있던 심판을 일으켜 세운 뒤 곧장 나를 커버했다.
[Booooooooooooooooo!!]
1……!
카운트가 이어지는 와중, 야유 속에서 그렉이 내게 말했다.
“이 반응을 가져가라.”
2……!
지금은 벨트를 빼앗기지만, 이것은 오히려 대립의 시작점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
레슬 임페리움.
나는 거기에서 타이틀을 되찾아오며 그렉을 은퇴시킨다.
3……!
땡땡땡!!
[Boooooooooooooooo!!]
그렉의 승리가 결정되자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야유를 보냈다.
* * *
거대한 미국 전역으로 물건을 실어 나르는 직업인 트럭커.
1년의 대부분을 도로 위에서 사는 그들은 밤이 되면 근처의 트럭 스탑으로 모이는 게 보통이었다.
여기 이 남자도 그랬다.
아버지를 따라 트럭커 일을 시작해 이제는 제법 베테랑이 된, 올해 35세의 올리버 톰슨.
두툼한 체구를 이끌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선 그는 어딘가 좀 묘한 관경을 발견했다.
“아이, 썅! 저게 뭐냐고!!”
“엿 먹어라!! 그렉!!”
한 무리의 사내들이 TV 앞에서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달려갔다.
“어떻게 됐어?!”
“그렉이 이겼어……! 저 빌어먹을 늙은 캐나다 자식이!”
“제기랄! 신이 졌다고?!”
“그냥 진 게 아니야! 갑자기 마이클스가 난입했다고!”
“마이클스……?”
올리버는 눈이 휘둥그레 커져서는 작은 TV 화면을 확인했다.
얼마 전,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알게 된 은퇴한 레전드.
그 말이 사실이었다.
[아~! 이럴 수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입니다!]
[마이클스!! 존 마이클스!! 그가 돌아왔습니다! 최악의 적수였던 그렉 하트의 든든한 우군으로!]
[두 사람 사이에 대체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요!]
“둘이 스턴포드 레슬링에서 화해를 하는 영상이 올라왔었지.”
“뭐?”
올리버가 놀라서 물었다.
“뉴스에 나왔어. 그 후로 WWF가 각본 권리를 사온 모양인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무래도 이제 그렉이 마이클스를 끌어들여서 회사 내에서 자기 입지를 굳히려는 모양인데.”
그것은 이상한 말이었다.
회사니 뭐니. 그 모두가 지금 각본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이 대립은 그런 차원을 이미 한참을 넘어선 이야기였다.
따라서 올리버는 그런 이야기를 아주 잠깐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최근 들어 신을 보고는 흥미가 생겨 프로레슬링을 보기 시작한 라이트 팬이었던 것이다.
“저기, 그렉이 자기 입지를 굳힌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이죠?”
거기에 순간 의아해 돌아본 트럭커들은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 한 것은 단순한 각본을 넘어선 이야기였다. 그러므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존재했다.
특히나 이제 막 프로레슬링을 즐기기 시작한 올리버 같은 팬에게 말하기에는 더 어려웠다.
바로 그때, 한 남자가 나섰다.
“그건 내가 설명하도록 하지.”
그런 말과 함께 한 중년의 백인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닉 코스, 48세.
트럭커 경력 25년.
프로레슬링 시청 38년.
그는 이제 갓 프로레슬링을 보기 시작한 올리버에게 친절하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렉이 비겁한 수단을 사용해서 벨트를 획득한 것 자체가 어찌 보면 현실의 은유인 셈이었다.
“반응이 안 좋으니까 마이클스와의 관계를 끌어들여서 어떻게든 환호를 받으려는 모양인데.”
그는 더 이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레전드가 아니라 때를 놓친 추한 늙은이일 뿐이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27세의 카페 웨이트리스, 모나 필슨은 다음과 같이 그 순간을 회상했다.
평균 체중 100kg 넘는 거구의 트럭커들이 프로레슬링에 빠져 열띤 토론을 나누는 모습은 뭔가 정말로 이상했다고.
* * *
바로 다음 날 이어진 버닝콩에서의 반응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WWF는 오프닝 영상에서 스턴포드 레슬링이 아닌 것처럼 교묘하게 편집된 그렉과 존의 화해 세그먼트를 먼저 보여주었다.
[나는 반드시 신에게 이길 거다. 그를 위해선 네 도움이 필요해.]
그리고 화면이 전환되며, 내 얼굴에 스윗 친 뮤직을 먹이고 있는 마이클스의 모습이 나왔다.
[그렉 하트가 승리를 빼앗았습니다! 영웅이 타락합니다!]
나를 커버하는 그렉.
땡땡땡!
화면이 극적인 효과와 함께 전환되며 벨트를 들어 올리고 있는 그렉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렉 하트는 더 이상 영웅이 아닙니다! 그는 샛별을 등지고 추락한 루시퍼가 되었습니다!]
쇼에서는 확실히 그렉 하트를 악역으로서 표현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Booooooooooooooooo!!]
오프닝 영상이 끝나고 링에 오른 그렉은 인터컨티넨탈 타이틀을 들어보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직 나는 건재하다고!!]
[Boooooooooooooooooo!!!]
어마어마한 야유.
나에게 타이틀을 빼앗아간 대가는 그야말로 참혹함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렉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들은 비겁한 행동을 통해 이기고도 떳떳하게 구는 그렉을 진심으로 미워했다.
하지만 그렉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여러분께 소개하지! 과거의 적수, 그리고 현재의 친우! Heart Break Boy! 존 마이클스다!]
몇 년 만에 WWF로 돌아온 존 마이클스를 보고도 사람들은 전혀 환영의 박수를 보내지 않았다.
청바지에 셔츠, 카우보이모자를 눌러 쓴 마이클스는 전혀 주눅이 들지 않고 링 위로 올라갔다.
악수를 나눈 두 사람은 그대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잘 돌아왔네. 친구.]
[당신은 여전하더군요. 그렉. 그 벨트도 무척 잘 어울려요.]
[이건 시작에 불과하지. 난 아직도 현역으로 뛸 수 있어.]
야유가 쏟아졌다.
[Please retire! Please retire! Please retire! Please retire!]
‘제발 은퇴해라.’라는 뜻.
최악의 챈트가 이어졌다.
[Same Old Sh-t! Same Old Sh-t! Same Old Sh-t! Same Old Sh-t! Same Old Sh-t!]
‘진부해빠졌다.’는 챈트.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마지막으로 내 이름까지.
하지만 두 사람은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난 아직 당신들을 위해서 싸울 수 있다는 말이다!]
[Boooooooooooooooo!!]
저런 상황에서 예정된 마이크워크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엄청난 배짱이었다.
모두가 자신을 적대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대변자로서 계속해서 싸우겠다는 말 자체가.
역반응은 최고조에 달했고, 사람들은 마음껏 그렉을 욕했다.
하지만 저 모든 것이, 우리가 예상하던 반응이었다.
선역이 야유를 받고, 악역이 환호를 받는 것이 바로 역반응.
하지만 그게 의도된 것이라면 각본의 몰입도는 더 상승한다.
우리는 ‘그렉이 재계약을 한다.’고 알려진 것을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각본에 써먹기로 했다.
사람들은 그가 존 마이클스를 부른 이유가 과거의 유산을 재현하기 위함이라고 믿었다.
그로서 그렉과 존은 엄청난 야유를 받았고, 그와 대적하는 나에게는 엄청난 환호가 나왔다.
은퇴하기 전, 그렉이 내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잡이었다.
그렉은 관객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대사를 쳐나갔다.
그것을 보던 각본진 중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경계가 무너졌군요.”
“사람들의 반응이 원하는 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저희가 실수를 했다는 것이니까요.”
나는 쓰게 웃었다.
“그렇다면 그걸 이용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한 수 배웠습니다.”
“별말씀을.”
온전히 내 공도 아니었다.
사실 이 아이디어 자체는 그렉의 먼저 제시한 것이었다.
그는 못나고 고집을 부렸던 자신의 모습을 각본에 투영했다.
그래야만 내가 자신을 이겼을 때 사람들이 더 큰 환호를 보낼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생각은 정확하게 먹혀들어, 얼마 후 그렉에 대한 관객들의 야유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고릴라 포지션에서 그 상황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던 중, 음향 팀장이 타이밍을 잡고 소리쳤다.
“신! 음악 나갑니다!”
[Boooooooooooooo!!]
[우리는 이제부터……!]
그렉이 엄청난 야유 속에 꿋꿋이 말을 이어가던 순간이었다.
내 음악이 순간 경기장의 분위기를 좌악- 갈라내며 나왔고.
[Yeeeeeeeeaaaaaaaaahhhh!!]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곧바로 커튼을 걷고 밖으로 나갔다. 어둠을 한 차례 지나치자 경기장의 모습이 보였다.
2만 명에 달하는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환호를 보냈다.
하지만 내 시선은 링 위에 올라가 있는 그렉과 존에게 향했다.
내가 입가에 마이크를 가져다대자 곧바로 음악이 멈췄다.
“좋은 날이겠군. 안 그래? 노인 둘이 모여서 과거를 회상하면서 자기들만 즐거우니 말이야.”
[Yeeeeaaahhhh!!]
“다 좋아. 나도 당신들을 존경하지. 하지만 틀니가 딱딱대는 소리 때문에 참을 수가 없더군!”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순간 얼굴이 빨개졌던 그렉이 이윽고 말을 이어나갔다.
“벨트를 빼앗긴 게 억울하다면 지금 올라와서 증명해보시지!”
“아, 그래. 여자라도 빼앗긴 기분이야. 네가 그 여인을 제멋대로 다룬다는 것이 더 불쾌하군.”
“내가? 제멋대로 다룬다고?”
“나와 즐겁게 놀던 멋진 여자가 늙다리의 품에 안겨있는데 당연히 배알이 꼴릴 수밖에 없지!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걸?!”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그렉 하트! 네가 한 짓이 비겁하다고 하지는 않겠어! 여기는 규칙이 존재하는 링이 아니야!”
나는 힘을 주어 소리쳤다.
“심판이 보지 못한다면 그 일은 없었던 게 되지! 그걸 이용하는 건 분명 선수의 당연한 권리야!”
“그래서 뭐……!”
“어디 한번 다시 해보자고! 오늘 밤! 이곳! 볼티모어에서!!
관객들이 보내는 환호성이 순간 천장을 꿰뚫을 정도였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네 손에 있는 마이클스라는 패를 아는 이상 나는 이제 더 이상 너 따위에게 지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거기가 포인트였다.
아마 업계 관계자들이라면 여기에서 우리의 각본이 얼마나 영리한 것인지를 알게 될 터였다.
“오늘은 아니다.”
그렉은 물러났다.
[Boooooooooooooooo!!]
“그리고 너에게는 자격이 없어! 이제는 다른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건 어떤가!”
그렉은 전과 달랐다.
싸움에 응하지 않고 추한 변명으로 일관하며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리고 그게, 지금까지의 그렉과는 다른 부분이었다.
그는 관객들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완벽하게 턴 힐 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상대하는 나에게는 큰 환호가 쏟아졌다.
그렉이 어째서 전설적인 선수인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는 야유 속에서 내게 한마디를 건넸다.
“아니면 증명을 하던가! 네가 나에게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를!”
거기에서 난 보란 듯이 웃었다.
[SIN! SIN! SIN! SIN! SIN!]
관객들은 기대감에 빠진 채 내 이름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