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146화 (146/634)

146.

그렉 하트와 나의 대립 각본은 그야말로 엄청난 파장을 낳았다.

대립을 시작한지 2주째.

그리고 4월 초순의 레슬 임페리움까지는 대략 3주가 남은 시점.

각지의 전문가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는 가운데, 생각보다 묘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전문가들이 ‘설명’을 아끼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WWF의 온갖 정보를 빼다가 전해주는 뉴스레터의 편집자들마저도 여기에서는 한 수 접었다.

[현재 신과 그렉의 대립을 보면 굉장히 재미있는 현상을 하나 발견할 수 있는데 말이야.]

[잠깐, 잠깐. 그 이야기를 굳이 지금 해야 할까?]

[응? 어째서.]

[나름대로 그렉에게는 예의를 갖추고 싶어서 말이야.]

[……아,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

캠핑 버스 안의 나는 그 말을 듣고는 순간 의아함을 느꼈다.

‘저것들이 왜 저래?’

회사 정보를 닥치는 대로 빼가서 자기들 라디오 방송에서 써먹는 탓에 별명이 기생충인 놈들이?

지금 가장 핫한 떡밥인 그렉과 나의 사건을 그냥 넘기겠다고?

“……무슨 소리야?”

대자로 엎어져 있던 오튼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반응이 좋지 못해 아까부터 계속 ‘정년까지 버틸 수 있을까.’라면서 난리더니.

“글, 쎄.”

러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뒷돈이라도 받았나. 나도 나중에 회사 잘리면 저거 해야지.”

“너 레슬링 싫어하잖아.”

“싫어하진 않아. 그냥 놀면서 편하게 돈을 벌고 싶어 하는 거지.”

“…….”

어떻게 이런 놈이 미래에 숀 시나의 라이벌이 되는 건지 싶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피식 웃으며 설명했다.

“뭐, 꿈같은 이야기지.”

“꿈?”

“그래, 저 인간들이 그렉에게 보내는 나름의 존경 같은 거니까.”

그 말이 맞았다.

[그렉은 정말 멋진 선수야. 20년 넘게 한결같은 모습이었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어. 로건 같은 빅 가이들이 아니더라도 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지.]

[존 마이클스와 함께 말이야. 락콜드로 인해 두 사람의 시대를 폄하하는 이들이 있지만, 회사 사정이 안 좋았을 뿐 그때 역시도 환상적인 시대였어.]

[그래서 존이 복귀해 그렉을 돕는 이 각본은…… 음, 아니야. 여기에서는 말을 좀 아끼지.]

“각본이 뭐 어떻다고?”

오튼이 고개를 갸웃거리자니 러셀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감동적이라는 거군?”

“맞아. 저들은 지금 사람들이 잘 모르는 포인트를 짚어낸 거지.”

“그런데 그렉에 대한 리스펙트로 굳이 말하지 않는 거라고?”

“그래.”

“왜 그럴 필요가 있는데?”

“그래야 이 각본이 주는 감동이 더 심화될 테니까 말이야.”

나는 싱긋 웃어 보였다.

지금 그렉이 받고 있는 야유는 역반응……임을 가장하고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의 심리해 교묘하게 사용해 각본을 전개해왔다.

사람들은 그렉이 욕심을 부린다고 생각해서 야유를 보냈지만, 사실 그게 아니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게 밝혀진다면?

‘야유를 할 이유가 사라지지.’

우리도 거기에 대비해 그렉을 완전히 악역으로 보이게끔 하는 각본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안 그래도 될 것 같았다.

‘그렉은 그냥 이대로 자신의 캐릭터를 전개하면 되겠군.’

이것이 WWF 역사상 가장 저평가 받았던 시대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일까.

다들 존경을 보였다.

그리고 일이 그렇게 되자 더 이상 거리낄 것은 없었다.

나는 이 각본에서 대박이 날 조짐을 느끼며 그대로 목적지까지 편안함 속에서 이동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캘리포니아 말리부에 위치한 맥센 대저택.

러셀과 오튼은 거대한 입구로부터 이어지는 수천 평의 정원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오튼이 얼이 빠져서 물었다.

“이게 다 뭐야……?”

“뭐긴 뭐야. 저택이지.”

“이걸 나중에 티파니 맥센 아가씨께서 다 물려받는다는 거야?”

“그건 모르지. 오빠인 케인 맥센도 있으니까 아마 전부를 물려받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케인은 뭘 하는데?”

“중국 쪽에서 사업한대.”

“오~.”

“왜?”

“아니, 너도 이제 얼마 안 지나서 ‘신 맥센’ 되는 거 아니야?”

“너 내 본명 모르니?”

“……응?”

“알아, 몰라?”

“준재 킴.”

“……러셀.”

“김준호.”

러셀의 발음은 완벽했다.

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자 오튼은 잠시 식은땀을 흘리며 당황해했다.

“너, 너도 모르잖아!”

“랜스 케이브 오튼.”

그 말을 듣자 오튼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구원자로 러셀이 나섰다.

“결혼할 거야?”

“글, 쎄.”

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금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사실 조금 전에 그 뭐다냐.

오튼이 말한 ‘준호 맥센’이란 소리에도 좀 당황하기는 했는데.

‘그렇게 되나?’

내가 데릴사위라고?

아니, 분명 전생에 헌터와 결혼했을 때는 티파니가 양쪽 성을 다 사용했던 것 같은데.

티파니 마리 맥센 리베스크로.

어, 그럼 이번 생애에는 잘만 풀린다면 티파니 마리 맥센 킴?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나나?

아니, 물론 나도 지금 티파니가 좋고…… 같은 목표를 바라보는 사이라서 딱히 싸운 적도 없고.

식성도 비슷하고, 칫솔질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작하고, 코를 골지도 않아서 딱 좋긴 한데.

“…….”

“저, 저기. 신. 미안하다. 내가 괜한 소리를 했어. 뭐, 이런 개인적인 걸 물어봐선 안 되지.”

“뭐야, 둘이 결혼해?”

“……오튼.”

“우리 엄마는 결혼할 사람이 생기면 각 집안의 음식을 먹어보라고 했어. 그래야 합쳐도 음식 가지고 다투지 않는다고 말이야.”

“……맥센이 어디 성씨지?”

“아일랜드일걸. 그쪽 음식을 지금까지 먹는지는 모르겠는데.”

“하하! 영국 음식이라고?!”

오튼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티파니가 김치를 잘 먹을까가 걱정이었다.

아니, 근데 만약에 합쳐서 살게 되면 우리 집안은 빵에 김치를 넣어서 먹는 건가.

* * *

“……표정이 안 좋은데?”

해결책 없는 고민을 했던 나를 본 티파니의 눈이 크게 뜨였다.

집안이어서 그런지 원피스를 입고 있는 모습이 꽤나 신선했다.

“오늘 예쁜데.”

“푸하하! 안 어울리게 왜 그래? 아무튼,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가까이 다가온 티파니가 내 뺨에 입술을 쪽, 하고 맞췄다. 상큼한 레몬 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내 뒤에 있던 러셀과 오튼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도 잘 왔어요.”

“여, 영광입니다!”

“하하,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말아요. 신의 친구면 내 친구이기도 하니까. 편하게 있다가 가요.”

우리 세 사람은 오늘 이 저택에서 하룻밤 묵을 예정이었다.

나는 나대로 할 일이 있었고, 나머지는 그냥 쉬러온 거지만.

어쨌든 그렇게 티파니의 환대를 받은 우리는 방을 안내받았다.

“오튼은 이쪽 방을 써요. 그리고 러셀은 그 반대편 방이고요.”

“방이 참 넓은데요.”

천장도 무지막지하게 높았다.

“거의 프랑스의 베르사체 궁전 같은 느낌이군요.”

“……베르사유.”

내가 오튼의 말을 정정하자 티파니가 또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럼, 둘 다 짐 풀고 아래로 내려와요. 저녁 식사를 하죠.”

거기에 살짝 의아해 물었다.

“티파니? 내 방은…….”

“응? 내 방이 있잖아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낄낄거리며 웃는 러셀과 오튼을 한 대씩 걷어찬 나는 그대로 티파니의 방으로 가 짐을 풀었다.

그리고 오튼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호화로운 저녁 식사를 즐긴 뒤,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 * *

주변은 완전히 어둑했다.

티파니의 안내를 받아 저택 뒤편으로 나온 나는 일단 거대한 야외 수영장을 하나 발견했다.

그리고 그 한편에 프로젝터가 설치되어 반대편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 대기 화면을 쏘아 보냈다.

“……부러워 미치겠군.”

“훗훗훗, 참고로 저는 온갖 프로레슬링 방송을 이걸로 보죠.”

“자주 놀러올게.”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은 우리는 스크린 뒤쪽에 준비된 안락의자로 가서 ‘일’ 이야기를 꺼냈다.

말했듯, 오튼과 러셀은 그냥 쉬러온 것이었지만 나는 달랐다.

“자료는 준비됐어?”

“부탁한 대로 확실히 해뒀죠. 그런데…… 하나 물어봐도 되요?”

“뭔데?”

“어디에 필요해서 이렇게 많은 자료를 준비시킨 거예요?”

“대립하는 데 필요한 자료야.”

“어떤 식으로 할 생각인데요?”

내가 티파니에게 부탁했던 것은 존 마이클스와 그렉 하트의 전성기 시절 비디오 자료였다.

다행히 WWF에서 DVD로 발매하기도 해서 자료는 꽤나 많이 남아있는 상태였을 것이다.

“난 그렉 하트와 존 마이클스의 시대를 조롱할 거야.”

“……그래도 괜찮아요?”

“그렇게 해야지. 그렉과 나의 대립은 그렇게 프레임이 짜였잖아.”

현재 가장 핫한 신세대와 아직 남아있는 구세대 간의 대립.

“아니, 당신이 선역인데 조롱을 해도 과연 괜찮을까 싶어서.”

“일단 지금은 그렇지.”

나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남은 3주 동안 그런 반응은 서서히 바뀌게 될 거야.”

“어떤 식으로요?”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점점 그렉을 응원하게 되겠지.”

“말인즉슨…….”

티파니가 잠시 고민에 잠겼다.

“과거를 재현해서 그렉의 자존심을 건드린다는 거군요?”

“그런 거지.”

내가 웃기게 조롱하면 그렉은 반발하면서 자신의 진짜 과거가 어떤 식이었는지를 가져오고.

거기에서 지금의 자신이 얼마나 못났는가를 깨닫게 되는 각본.

그리하여 마지막.

영웅이었던 그렉 하트는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나와 싸우는 것이다.

“멋진데요.”

가볍게 휘파람을 분 티파니가 이어서 리모컨을 조작했다.

그러자 초대형 스크린에 1996년도의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안락의자에 눕자 티파니가 내 팔을 베고는 옆에 누웠다.

챔피언, 그렉 하트와 도전자 존 마이클스의 WWF 챔피언십 매치.

젊은 두 사람의 경기가 해설자들의 코멘터리와 함께 이어졌다.

[하늘 위에 서있습니다!]

[워우!]

[아니! 캐노피 위로군요! 저 남자는 우리를 항상 놀랍게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헤드 라이너! 메인 이벤터!]

해설자의 소개와 함께 존 마이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10만 명이 운집해있는 돔 경기장의 캐노피 위에서 말이다.

[하트 브레이크 보이!! 존 마이클스가 내려옵니다!!]

그때 당시, 존 마이클스는 10만 명의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장 지붕에서 집 라인 로프를 타고 활강하며 입장을 했다.

테마 음악과 함께 10만의 사람들이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고, 그의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역사적인 광경이었다.

“엄청난데…….”

“저거 할 때 돈이 엄청 깨졌죠. 전문가들도 필요했고 카메라 설치에, 주변 안전 확보에, 존도 따로 안전 교육을 받았거든요.”

“흐음.”

“그럼에도 잘 보면 계산이 잘못 되서 중간에 멈춰서 밑으로 내려오죠. 아찔한 순간이었어요.”

티파니가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때의 존 마이클스는 확실히 떠오르고 있는 신성이었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 그렉 하트가 있었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호응을 받을 수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캡틴 로건과 기간트.

그렉 하트와 존 마이클스.

락콜드와 바트 맥센.

혹은 더 팍.

마지막으로 숀 시나와…….

“저거, 꽤 멋지겠는데요.”

바로 그때, 티파니 맥센이 한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응?”

“저 집 라인 타고 내려오는 거요. 경기장도 훨씬 커진 만큼 엄청나게 멋있을 것 같은데.”

“저걸……?”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에 나는 티파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내가 비디오를 보는 내내 꽤나 재미있어 보이는 아이디어들을 내주었고.

‘재미있겠는데.’

나는 미래에 일어날 일까지 더해 꽤나 괜찮은 세그먼트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 *

2005년 복귀한 존 마이클스는 이후 커리어 내내 선역으로 활동하며 항상 큰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복귀를 했던 ‘캡틴 로건’과 대립하며 잠시 악역으로 전환한 적이 있었다.

약 한 달가량의 악역 생활.

마이클스는 거기에서 그야말로 자신의 망나니 같은 재능을 마음껏 뽐내며 어그로를 끌었다.

그는 호건이 나이가 많은 점을 이용해 그야말로 전설적인 세그먼트를 하나 탄생시켰는데.

나는 거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번 세그먼트를 기획했다.

그렉과 존 역시도 꽤나 흥미롭다는 듯 내 이야기를 들었다.

“제가 두 분의 나이를 가지고 조롱하는 겁니다.”

“어떤 식으로?”

“얼굴에 주름을 그리고 그렉 당신과 마이클스의 복장을 적당히 혼합해서 입는 겁니다. 그리고 휠체어를 타고 나가겠어요.”

“내 음악에 맞춰서?”

“그게 필수죠.”

몇 마디 말로 그렉은 내가 하려는 컨셉을 대강 알아차렸다.

하지만 마이클스는 다소 걱정스럽다는 듯 그렉을 바라보았다.

“선배, 괜찮겠습니까?”

“응? 재미있을 것 같은데.”

“선배의 마지막이 너무 흉하게 끝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아냐. 마지막에 한껏 띄워주고 가는 게 우리들의 미덕이지.”

“음, 잠깐만요.”

나는 잠시 분위기를 잡았다.

두 사람이 뭔가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저는 딱히 그렉의 이미지를 망치고 싶은 게 아닙니다. 그건 너무 일차원적인 잡이잖아요?”

“그렇다면?”

“저는 사람들의 영웅인 그렉 하트와 싸워서 이기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그의 마지막도 빛나고.

승자인 나 역시도 이미지를 고스란히 챙겨갈 수 있는 것이다.

“저는 선배들을 조롱하면서 이걸 부정하고 싶다면 제발 나와 싸워달라고 이야기할 겁니다.”

“……아하.”

그렉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서 우리가 그게 아니라고 하면서 옛날의 자료를 직접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거군.”

“예, 그렇게 하면 두 사람에 대해서 모르는 관객들에게도 나름대로 설명이 될 수 있겠죠.”

“그리고 그걸 보던 내가 다시금 싸울 의지를 되찾는 것이고?”

“그렇습니다. 그 디테일에 관해서는 저보다는 선배님들이 짜시는 게 훨씬 더 나을 것 같군요.”

“환상적인 아이디어로군.”

그렉이 미소를 지었다.

말하자면 이것은 그렉과 존의 위상을 전성기 시절로 되돌리기 위한 물밑 작업인 셈이었다.

그래야 내가 그렉을 은퇴시켰을 때 드라마가 더 멋지게 된다.

‘내 위상 또한 더 높아지겠지.’

프로레슬링은 결국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드라마였고 단기간의 승패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패배한 다음에 얼마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가.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내가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을 빼앗긴 것은 정말로 멋진 그림이었다.

내가 그렉을 이겨야 할 동기가 생기는 동시에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준비가 끝났다.

* * *

레슬 임페리움까지 한 달이 남은 기간의 쇼는 특별하게 ‘로드 투 레슬 임페리움’이라고 부른다.

간단하게 해석하자면 레슬 임페리움까지의 여정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한 달도 깨지고 이제 3주가 남은 월요일 밤의 버닝콩.

사람들은 락커룸 밖으로 나온 나를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입고 있는 복장이 무척이나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시몬스가 단박에 알아챘다.

“푸하하하! 너무 심한데!”

“어때요, 지금 제 모습?”

“그런 꼴로 나가려고?! 와, 진짜 넌…… 미친놈이군. 진짜로.”

“부커, 어때요.”

“아는 척 마라. 창피하니까.”

“참 무뚝뚝한 양반이야.”

나는 애써 시선을 피하고 있는 부커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러자니 새하얀 가발이 흘러내리면서 시야를 방해했다.

지금 나는 그렉 하트와 존 마이클스를 적절하고 웃기게 섞은 듯한 복장을 입은 상태였다.

얼굴에는 주름을 그렸고, 선글라스는 한쪽 알이 깨졌고 가죽 자캣은 팔 부분이 쭉 찢어졌다.

바들바들 떨면서 걸으면 어딘가 아픈 노인네처럼 보일 정도.

이런 몰골을 본 관계자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나는 고릴라 포지션으로 향했다.

먼저 도착해있던 그렉과 마이클스 역시 웃음을 참지 못했다.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야, 정말로 그러고 나간다고?”

“멋지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다만. ……뒤는 돌아보지 마라. 지금 바트가 저주를 한껏 담아 너를 노려보고 있으니까.”

“제가 고꾸라지는 것을 바라고 있겠군요.”

“물론 그렇진 않겠지?”

“그야 당연하죠.”

나는 그렇게 쇼가 시작될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확실히, 그런 기류가 느껴졌다.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을 보고 실패를 간절히 바라는 인간들.

굳이 바트가 아니더라도, 단순히 날 싫어하거나 아니면 정치적으로 적대하고 있는 자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날 믿고 성공을 바라는 이들도 많았다.

오프닝 영상이 끝나고 먼저 그렉과 나의 지난 주 대립을 함축한 영상이 다시 한 번 흘러나왔다.

타락한 영웅, 그렉 하트와.

떠오르는 신성, 신의 대립.

슬슬 나갈 때임을 느낀 나는 미리 준비해둔 휠체어에 앉았다.

그러자니 각본에 도움을 주기로 한 직원이 휠체어를 잡았다.

“잘 부탁해요.”

“예, 옙!”

좀 긴장한 것 같지만.

오히려 그게 낫겠지.

[월요일 밤의 버닝콩!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해설자의 코멘트와 함께 음향 감독이 내게 신호를 보냈다.

[키이이이이이잉-!]

경기장 안에 날카롭게 울려 퍼지는 기타 사운드.

[Boooooooooooooo!!]

관객들은 기다렸다는 듯 그렉을 향해서 엄청난 야유를 보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대로 병든 닭처럼 연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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