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147화 (147/634)

147.

[Boooooooooooooo!!]

그야말로 엄청난 야유였다.

버닝콩의 방송 중계를 맡고 있는 두 해설자는 그런 광경에 한순간 말문이 막히는 걸 느꼈다.

벌써 수십 년이 넘게 활동을 해왔음에 처음 겪는 일이었다.

말문이 막힌 것도 그렇고, 이렇게 그렉 하트가 엄청난 야유를 받는 것 역시도 그랬다.

그 모두가 처음 겪는 일.

그리고 입장로 위에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신기하게도 야유는 뚝 끊어지고 말았다.

“아~ 아무래도 그렉 하트가 아닌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역시 그 남자밖에 없겠군요!”

말을 하면서도 소름이 돋았다.

WWF 방송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관객들의 반응이 중요했다.

원하는 반응을 뽑아내는 것, 거기에 더해 얼마나 크게 반응을 뽑아낼 수 있는가.

그것은 좋은 각본과 좋은 선수를 가르는 척도였다.

“바로 신입니다!”

휠체어가 움직였다.

야유는 뚝 멈췄고, 대신 관객들은 호기심이 섞인 눈으로 휠체어에 앉은 신에게 집중했다.

그렉과 존을 우스꽝스럽게 합친 분장을 하고 있는 신에게로.

해설자들은 거기에 대해서 관객들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저게 뭔가요?!”

“아무래도 신이 그렉을 조롱하려는 것 같습니다! 하핫! 정말로 웃긴 모습인데요!”

뒤에 서있던 직원이 휠체어를 끌고 몇 걸음 나가더니 이내 어색한 자세로 바닥에 넘어졌다.

앞으로 밀려나 경사진 입장로를 따라서 천천히 굴러가는 휠체어.

몇몇 관객들이 ‘어어?!’ 하고 놀라 소리쳤고, 휠체어 위의 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입장로를 따라서 내려간 휠체어가 이윽고 바닥에 쓰러졌다.

신은 마치 시체처럼 추욱 늘어져 나가떨어졌다. 해설자들은 그야말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엄청난 연기력이었다.

그렉 하트를 완전히 늙은 머저리 취급하는 각본. 거기에 동화된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신이 완전히 그렉을 멍청이로 만드는군요! 그를 열 받게 만들 생각이라면 잘 먹히겠는데요?!”

“푸하하하! 저것 좀 보세요! 허리를 짚고 일어나다가 다시 엎어졌군요! 정말 대단합니다!”

“남을 조롱하는 거라면 신을 따라갈 선수가 없겠어요!”

그들은 신의 행동을 보고는 실제로 껄껄 웃을 정도였다.

허리를 짚고 일어난 그가 비틀거리며 링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로프를 넘어 통과하려다 다리를 걸려 넘어지고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러다 링 아나운서인 릴리 가르시아의 앞에 대자로 누웠다.

팬티를 엿보려는 추한 행동.

치마를 입고 있던 릴리는 신의 그런 행동에 깔깔 웃으며 그의 얼굴 위에 살포시 주저앉았다.

숨이 막히는지 팔다리를 휘적거리는 신.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는 숨이 넘어가라 웃었다.

그리고 릴리가 다시 일어섰을 때, 신의 얼굴은 엄청난 코피 자국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자극이 너무 심했는지 심장을 움켜쥐며 고통스러워하다 이내 꽥, 하고 죽는(?) 신.

“푸하하하하! 제가 아는 친구의 삼촌도 저렇게 노시다가 심장 마비로 돌아가셨었죠!”

“아~ 이걸 그렉이 어떤 모습으로 지켜볼까가 눈에 선합니다!”

카메라가 폭소를 터뜨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촬영했다.

개중 몇몇은 진짜 웃다가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질 정도.

죽어있던 신은 이윽고 피를 닦아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눈이 한껏 진지해져, 분위기는 순간 확실하게 뒤바뀌었다.

“신이 관객들…… 아니, 그렉에게 할 말이 있는 모양입니다.”

“버닝콩의 관객들 모두가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군요. 정말이지 대단한 선수에요!”

“확실히 전의를 다지고 있어요! 젊음의 패기가 느껴집니다!”

“릴리의 눈빛을 보세요! 아무리 추한 분장을 하고 있어도 신을 달콤한 눈빛으로 바라보는군요!”

[잠깐 오해를 하게 만들었군. 오클랜드. 나는 굉장히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렉 하트가 아니야.]

그 유머러스한 말솜씨에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뭐, 별반 다르진 않잖아? 추하게 늙어빠져서 욕망을 탐하는 모습이 말이야.]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확실히 그들은 멋졌지. 하지만 지금은 이래. 마이클스의 카우보이모자에는 구멍이 뚫렸고, 그렉 하트의 재킷은 이렇게 찢어졌지.]

하나하나 복장의 의미를 설명하며 관객들을 완전히 자신의 편으로 포섭하는 신.

[어때, 열 받지? 그렉. 그럴 거야. 당신이 GCW 시절 애송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 거물이고 당신을 은퇴시킬 남자니까 말이야.]

그는 도발을 시전했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겠지? 그러면 제발 나와! 나와서 나와 싸워달라고! 이렇게 빌 테니까!!]

그 직후, 기다렸다는 듯 그렉 하트의 음악이 다시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진짜’가 나타났다.

그렉 하트와 존 마이클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안심하고 마음껏 야유를 보냈다.

[Booooooooooooo!!]

입장로 위에서 마이크를 쥔 그렉이 그대로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야유는 쉽게 걷히지 않았고, 거기에서 타이밍 좋게 신이 끼어들어 그를 도와주었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야유를 걷어낸 것은 신의 첫 마디였다.

[내가 어떻게 보여? 그렉.]

[실력으로 패배하고 상대 선수를 조롱하는 게 네 특기인가?]

다시 야유가 쏟아졌다.

[나는 그런 인간이 아니야. 그건 여기에 있는 모두가…….]

[Fight Again! Fight Again! Fight Again! Fight Again!]

멋진 그림이 나왔다.

해설자들은 완전히 선수들이 전개하고 있는 각본에 빠져들어 경기장 안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모든 관객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챈트를 보내고 있었다.

신의 뒤에 서서 그렉에게 다시 한 번 싸우라고 요구했다.

경악한 그렉은 마이크에서 입을 뗀 채 관객들을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신도 마이크 워크를 이어나갈 수 있게 끼어들지 않았다. 말인즉슨 간단했다.

이 모든 상황이 그들의 의도대로라는 이야기였다.

해설자들과 고릴라 포지션에서 지켜보고 있는 모두가, 그 모습에 감탄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개중에서 유일하게 바트 맥센만이 분노로 몸을 파르르 떨었다.

* * *

링 세그먼트가 끝난 뒤.

백 스테이지로 돌아온 그렉 하트의 모습이 카메라에 비춰졌다.

철로 된 락커를 강하게 후려친 그렉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락커룸 내에서 난동을 부렸다.

관객들은 그런 그의 모습을 대부분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광고가 이어지는 사이 관객석이 잘 보이는 곳으로 온 나는 생각한 그대로의 반응임을 느꼈다.

조금 전의 링 세그먼트에서는 당황할지언정 끝까지 여유를 보이던 그렉의 갑작스러운 모습.

‘놀라는 게 당연하지.’

예상한대로의 흐름이었다.

바로 그때, 난동을 부리는 그렉을 마이클스가 뒤에서 붙잡았다.

[그렉, 그만해요.]

[저 애새끼가 지금 우리를……!]

[알아요. 알아.]

그때야 야유가 터져 나왔다.

한숨을 내쉰 그렉이 자리에 앉았다. 마이클스는 그 옆에 서서 그를 잠시 위로해주었다.

과거를 회상하는 두 사람.

[자네와 나의 시대는 환상적이었지. 이제는 아무도 그 사실을 기억하지 않겠지만 말이야.]

[아뇨,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음 시대에 가려져 그렇다고 느끼는 거겠죠.]

그 말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렉 하트.

[내가?]

[예, 그렉.]

마이클스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제가 락콜드에게 벨트를 넘겨줄 때 그런 느낌이었죠. 등 부상으로 골골 앓으면서도 그 친구를 원망하고 미워했어요.]

[그 친구는 대단했지.]

[예, 선배 역시 신에게서 그걸 느끼고 있는 게 아닌가요?]

[……맞아. 난 신을 보고 자네를 생각했어. 현재의 나보다 그가 더 낫다는 사실이 두려웠지.]

[하지만 시대란 게 그런 법 아니겠습니까. 우리 같은 노장들은 남겨두고, 더 나아가겠죠.]

[존…….]

[안타깝고 쓸쓸하군요.]

그 말을 들은 그렉은 자신의 어깨에 놓인 벨트를 매만졌다.

영광스러웠던 과거.

하지만 현재의 두 사람은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노장이었다.

관객들은 침묵했다.

방금까지 그렉의 모습은 단지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보여준 허세라는 것이 밝혀졌다.

‘바로 여기지.’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나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중년의 남성 관객이 이를 빠득 깨무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몰입했다.

그 시절을 아는 사람들.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

각자가 저물어가는 노장의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다.

* * *

레슬 임페리움까지 2주.

다시금 버닝콩의 오프닝은 나와 그렉의 대립이 장식하게 되었다.

먼저 링에 오른 그렉은 더 이상 관객들의 야유를 받지 않았다.

그는 뭔가 깊은 결심을 마친 얼굴로 마이크를 들고 날 불렀다.

[신, 할 말이 있으니 나와라. 우리 경기에 대해서 말해보자.]

거기에 나는 곧바로 응해 환호 속에서 링 위로 올라갔다. 관객들은 내 이름을 마구 외쳐댔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리고 그렉이 마이크를 입에 대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거기에서 나는 더 이상 그렉이 기존처럼 야유를 받는 존재가 아니게 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이 벨트가 가지고 싶나?”

“아니지, 돌려받고 싶은 거지.”

“내가 마이클스와 연합해 너의 벨트를 빼앗아가서인가?”

“그건 아니지. 오히려 당신이 그렉 하트가 아니었다면 날 속였다는 사실을 축하했을 거야.”

“내가 그렉 하트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건가?”

“그래, 정확히는 그렇게 일을 벌인 이후로 당신은 그렉 하트가 아니라 추해빠진 늙은이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지.”

“…….”

“어이쿠, 이거 열이 받으셨네. 그래도 어쩌겠어. 존 마이클스와의 화해도 결국 당신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서가 아닌가?”

분노한 그렉이 나를 향해서 한 발자국 다가섰다.

일촉즉발의 상황.

관객들은 숨조차 쉬지 못하고 우리 두 사람의 페이스 투 페이스를 지켜보았다.

나는 계속해서 그렉을 조롱했다.

“생각해보면 웃겨. 당신이 커리어 막바지에 그 같잖은 자존심을 내려놨기 때문에 그토록 증오하던 마이클스와 화해한 거잖아.”

우리가 처한 현실이 각본 속으로 절묘하게 발을 들여놓았다.

실제로 그렉이 자존심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마이클스와 화해를 한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조금 비틀어 각본으로서 사용한 것이었다.

그렉이 느꼈던 열등감과 분노.

그리고 깨달음.

지금 그렉은 서서히 예전의 자기 자신을 떠올리고 있었다.

“당신이 20년 동안 사랑을 받아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지금 당신은 그걸 잃어버리고 추한 늙은이가 된 상태지.”

나는 거침없이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사람들에게 야유를 받는 거야. 당신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지만 말이야.”

나는 우리를 보기 위해 온 수많은 관객들을 가리키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이들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당신은 이들과의 소통을 거부했지!”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이들이 정말 당신을 버리고 날 택했다고 생각해? 아니야! 당신이 그렉 하트가 아니게 되었기에 이들은 나를 택한 거야!”

현실에 대한 은유가 섞인 이야기. 수만의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챈트를 이어나갔다.

그렉은 얼마 전까지의 자기 모습을 각본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자신을 다시 응원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마침내, 그가 마지막 한마디를 입에 담았다.

“레슬 임페리움.”

“그래.”

“너와 나.”

“좋아.”

“일대일.”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계약식은 다음 주.”

사람들은 그렉에게 저번 주와는 다른 큰 환호를 보내주었다.

드디어 그렉이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고집을 꺾었기 때문이었다.

경기장이 떠나가라 관객들이 챈트를 하는 가운데, 나는 그들을 돌아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꽤나 멋지군.’

어찌 보자면 지금 이 관객들은, 프로레슬링 캐릭터인 그렉 하트의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 * *

레슬 임페리움까지 1주.

이번 주의 버닝콩을 마지막으로 레슬 임페리움이 개최되었다.

각 대립이 절정 부분에 이른 만큼, 시청률도 폭발적이었고 대립 강도 역시 크게 심화되었다.

GCW의 크루들 역시 마지막 주의 버닝콩을 하나라도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개중에서도 모두가 가장 기대하는 것은 신과 그렉 하트의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계약식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대립을 볼 때는 다들 조금 가벼운 분위기였다.

병맥주를 홀짝거리던 티파니는 실버백을 상대하게 된 크리스 젠코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완전히 망했네.’

위상이 전혀 맞지를 않았다.

헌터가 부상으로 빠졌기 때문일까. 사실 상 실버백을 막을 수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대립 자체에 사람들은 딱히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선역인 실버백이 젠코를 링에서 쫓아낸다는 진부한 마지막.

그런 식이었다.

대부분 A가 B를 쫓아내는 식으로 마지막 대립이 완성되었다.

고전적인 수법이다.

하지만 재미는 없었다.

각본 간에 조율이 전혀 되고 있지 않다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신과 함께 있으며 티파니는 점점 그런 전체적인 쇼의 상황에 대해서 뚜렷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걸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이 많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것이 그렉 하트의 마지막이기 때문인지, 메인이벤트는 신과 그렉의 경기 계약식이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티파니는 고집을 꺾고 그렉에게 예우를 갖춘 바트에게 잠시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자자, 모두 집중해라!”

바쿠가 그렇게 한마디 하자 소란스럽던 공기가 싹 멎었다.

선수들은 링 위로 나오는 신과 그렉의 모습을 진지한 눈으로 지켜보기 시작했다.

‘과연 마지막을 어떻게 할까.’

지난주에 그렉이 환호를 받도록 짠 세그먼트는 환상적이었다.

[루시퍼가 다시 하늘로 승천하는 것 같군요! 그렉 하트의 눈은 더없이 맑고 깨끗합니다!]

[하핫! 그렇다면 신은 신神의 사자겠군요! 그렉의 눈을 뜨게 해주었으니 말입니다!]

더군다나 세그먼트는 신이 그렉에게 결코 선역으로서의 반응이 밀리지 않도록 짜여졌다.

말인즉슨, 전설적인 그렉 하트와 신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똑같다는 이야기였다.

두 사람이 나와, 링 위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자 그야말로 엄청난 챈트가 이어졌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Grek Hart! Grek Hart! Grek Hart! Grek Hart! Grek Hart!]

반응이 양분되지 않았다.

그런 와중, 먼저 입을 연 것은 바로 그렉 하트였다.

[내가 그렉 하트가 아니라고.]

[내 말이 틀렸나?]

[……그래, 인정하겠어. 나는 조금 나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시야를 잃어버린 상태였지.]

카메라가 신을 비췄다.

티파니는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끼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여기가 가장 중요해.’

그렉 하트가 다시 원래의 영웅으로 돌아왔음을 공고히 해야만 두 사람의 대립이 완성되었다.

영웅과 싸워서 이기고, 신이 그 위상을 이어받는 남자가 된다.

거기다 영웅은 하나가 아니었다.

아니, 영웅은 셀 수가 없었다.

존 마이클스까지 포함해, 그렉 하트가 상징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영광스러운 옛 시대’였다.

그렇다면 신은 자연히 ‘신세대의 기수’로서 이미지를 갖추게 된다.

반드시 신이 이겨야만 했다.

그가 이길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티파니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와 함께 꿈을 그리고 있는 사람으로서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대립에 몰입한 결과였다.

[이제 되찾은 건가?]

[사실, 이 말이 하고 싶어서 여기에 나온 건데……. 원래부터 잃어버린 적조차 없었어.]

[뭐?]

[나는 추한 늙은이였다. 하지만 그조차 그렉 하트라는 거야.]

그렉은 당당히 말했다.

[은퇴를 쉽사리 받아들일 수 있는 선수는 그리 많지 않아. 더군다나 나처럼 ‘최고였으며 최고이고 최고일 선수’에게는 더욱 그렇지.]

그렉 하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시그니처 대사를 이야기했다.

실력에 대한 자부심과 정정당당한 면모를 내세워 살아온 20년.

“그렉…….”

그것을 알고 있는 바쿠는 그렉의 마지막이 다가온 걸 느꼈다.

그리고 그 상대가 신이라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꼈다.

[그게 나다. 하지만 동시에 느꼈지. 이런 식으로 커리어를 이어가봤자 내가 가장 빛났던 시대에 대한 모욕이라는 것을.]

[은퇴를 하겠다는 건가?]

[그건 아니다.]

덤덤히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던 그렉이 씨익 웃어 보였다.

[너희들이 아는 그렉 하트는 그렇게 순순히 포기하지 않아.]

[드디어 좀 당신이 보이는군.]

[증명해주마! 어디 한번 정정당당하게 싸워보자고! 여기 있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로 말이야!]

그렉 하트가 돌아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그렉이 먼저 사인을 했다. 신의 도전을 피하지 않는 그 모습에 모두가 그렉 하트의 이름을 연호했다.

[Grek Hart! Grek Hart! Grek Hart! Grek Hart! Grek Hart!]

[좀 촌스럽지만 이건 어때?]

바로 그때, 신이 슬쩍 장난스러운 미소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시대와 시대의 격돌. 우리 대결은 그러한 부제가 붙는 거야.]

[……해볼 수 있으면 어디 한번 해봐라. 아직 시대의 입구에조차 서있지 않은 애송이 놈아.]

[당신의 시대를 쓰러뜨리면 열릴 수도 있겠지. 안 그래?]

두 사람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는 챈트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신까지 사인을 마치고, 두 사람은 테이블을 치운 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잠시 노려보았다.

멋진 페이스 투 페이스.

거기에 관객들의 엄청난 반응까지 겹쳐져, 티파니는 온몸에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다.

이제 데뷔한 지 2년차의 신인이 전설과 마주보고 서있는데도.

사람들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레슬 임페리움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