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등 뒤로 폭죽이 터져 올랐다.
관객들의 반응은 엄청났다.
이십만의 인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구 날뛰는 탓에 그 진동이 여기까지 전해져올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반응을 이끌어낸 것과는 반대로 지극히 생리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리는 줄 알았네.’
그야말로 희대의 스턴트였다.
비록 만전에 만전을 기했으나, 수십 미터 아래에 관객들을 두고 뛰어내리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반응은 내가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멋졌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모두가 나를 크게 환영해주었다.
팔을 번쩍 들어 거기에 응답한 나는 그대로 링 위로 올라섰다.
그렉 하트는 웃고 있었다.
집 라인을 타고 내려오는 날 보고는 과거를 떠올렸기 때문일까.
우리는 다시금 마주보았다.
심판이 우리 사이에 서서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벨트를 들었다.
하지만 난 거기에 조금도 시선을 주지 않고 그렉만 보았다.
다시 한 번 투지를 다졌다.
나는 오늘 그렉 하트를 박살내고 시대를 가져갈 생각이었다.
경기장이 순간 고요해졌다.
관객들은 집중한 채 우리 두 사람이 심판에게 신체검사를 맡는 과정을 면밀하게 지켜보았다.
큰 경기이니 만큼 연출 역시도 요란하게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최대한 뜸을 들이고.
땡땡땡!
경기가 시작되었다.
[Yeeeeeeeeaaaaaahhhh!!]
그제야 관객들 사이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렉과 나는 황야의 카우보이들처럼 거리를 벌린 채 가볍게 링을 돌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경기는 천천히 피치를 올려가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렉의 체력 문제도 있는데다가, 어차피 초창부터 빡세게 가져가지 않아도 될 경기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Grek Hart! Grek Hart! Grek Hart! Grek Hart! Grek Hart!]
빌드 업을 제대로 해두었다.
따라서 관객들이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큰 반응을 보내주었다.
이십만이 외치는 챈트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거의 국가 간의 대항전에 맞먹을 정도였다.
그 직후, 그렉이 크게 발을 구르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체인 레슬링을 시작하려는 그렉의 신호를 무시하고 옆으로 슬쩍 피해버렸다.
“……?!”
자리에 멈춘 그렉이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 올리며 그에게 심리전을 걸었다.
그러자니 곁으로 다가온 그렉이 힘차게 내 뺨을 후려쳤다.
쫘악-!
[Woooooooooo!]
관객들이 비명을 질렀다.
진짜로 맞은 나는 아린 맛이 나는 뺨을 핥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반대로 근엄한 표정으로 서있는 그렉의 뺨을 올려붙였다.
봐주지 않고, 전력으로.
짜악-!
그렉의 턱이 힘차게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나와 똑같이 웃고는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스피드를 올렸다.
[Waaaaaaaaaaghhhh!!]
우리가 해머링을 주고받기 시작하자 관객들이 환호를 보냈다.
시동이 걸린 자동차, 혹은 두 경주마가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해머링을 주고받으며, 계획했던 대로 내가 그렉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그렉은 밀리는 것을 느낄 때쯤 바닥에 바싹 엎드렸다.
그리고는 내 팔이 허공을 휘젓는 타이밍에 맞춰 뒤로 기어들어와 체인 레슬링을 시도했다.
고전적인 방식이다.
다소 자극이 적은.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방식에조차 엄청난 환호를 보내주었다.
말했듯, 각본도 각본이거니와.
‘죽여주는데……?’
그렉의 솜씨도 엄청났다.
속도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무엇보다 안전했다.
팔을 강하게 꺾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건 단지 그렇게 보이도록 정확하게 비틀었을 뿐.
역시 그렉 하트다운 솜씨였다.
‘따라가볼까.’
한번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에게 GCW에서 배웠던 스킬.
기술을 시전하면서 미묘하게 딜레이를 걸어 파괴력이 높아 보이도록 하는 한편, 상대에게 낙법 타이밍을 미리 알려주는 테크닉.
나는 그걸 사용해 그렉 하트와 계속 체인 레슬링을 이어갔다.
그 속도는 점점 높아졌고, 그렉은 순식간에 땀투성이가 되었다.
‘슬슬 좀 쉴까.’
그렉에게 신호를 보낸 나는 그대로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내 시그니처 무브 중 하나.
로프 반동을 하고 달려오는 그렉의 몸을 뽑아 들어 그 속도를 이용해 힘차게 반대로 돌았다.
콰앙-!
스쿱 파워 슬램.
완벽하게 낙법을 취한 그렉은 고통스러운 듯 몸을 웅크렸다.
나는 곧바로 공격을 이어갔다.
바닥에 누워 있는 그렉의 위에 올라타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그사이 그렉은 숨을 골랐다.
사실 아이러니한 점인데, 선수들은 이렇게 해서 체력을 보충하는 식으로 경기를 진행한다.
누워서 하는 셀링은 숨을 고를 시간을 벌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도가 중요했다.
적당한 타이밍에 그렉을 다시 일으켜 세운 나는 경기장 전체를 사용하며 계속 공격했다.
반대편 코너로 던져버리고 달려가 그대로 몸으로 들이받았다.
“커흑?!”
뒤로 떨어져 비틀거리며 나오는 그렉을 잡고 그대로 수플렉스.
콰앙!
거친 공격이 연잇는 동안 관객들의 반응은 점점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Grek Hart! Grek Hart! Grek Hart! Grek Hart! Grek Hart!]
영웅의 이름이 불렸다.
하지만 그를 상대하고 있는 신인은 너무나도 강했다.
그렉은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해서 공격에 휘둘렸다.
이제 나이를 속일 순 없었다.
하지만 정신은 죽지 않았다.
커버.
1……!
그렉은 내가 핀을 따려고 할 때마다 곧바로 빠져나왔다.
내가 원하는 건 그저 3초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렉은 조금도 그 여유를 주지 않았다.
결국 초조해져 여유를 잃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그렉을 두고 일어난 나는 그대로 인상을 찌푸린 채 턴버클 위로 올라갔다.
하이플라잉 기술을 준비하자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나는 순간 내가 서있는 곳의 위치를 새삼 깨달았다.
그들이 나와 그렉의 경기를 보며 감동을 느끼는 것처럼.
나 역시 그들이 나를 보러온 것을 반대로 보고 감동을 느꼈다.
그대로 힘차게 뛰어올랐다.
내 두 번째 시그니처 무브인 탑 로프 엘보우 드랍.
하지만 너무 뜸을 들인 탓일까.
그렉은 순간 옆으로 한 바퀴 구르며 내 공격을 피해냈다.
나는 완전히 맨 바닥 위로 자폭한 꼴이 되고 말았다.
콰앙-!
그리고 그때를 놓치지 않고 일어난 그렉 하트가 자신의 영혼이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Yeeeeeeeeeaaaaaahhhhh!!]
샤프 슈터.
쓰러진 상대의 양다리를 붙잡아 드는 장면만으로도 관객들은 엄청난 환호성을 보냈다.
그 상태에서 나는 몇 번이고 당했던 샤프 슈터에 다시 한 번 당할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자신의 한쪽 다리에 내 다리를 꼬아 잡은 그렉이 그대로 뒤로 몸을 돌렸다.
“우오오오오오오오-!!”
그는 답지 않게 포효하며 자신의 건재함을 세상에 알렸다.
물론, 나 역시 선배에 대한 예우로 있는 힘껏 아픈 연기를 했다.
실제로도 더럽게 아팠지만, 그 이상으로 고통스럽다는 듯 온힘을 다해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지난번과 같이, 가까이 다가온 심판을 당겨서 샤프 슈터로부터 빠져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심판은 그런 기색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크흑……!!”
바닥을 쾅 내리친 나는 그대로 다시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렉 하트를 이기기 위해서는 바로 이 샤프 슈터로부터 정정당당히 빠져나와야 하는 것이다.
[SIN! SIN! SIN! SIN! SIN!]
[Grek Hart! Grek Hart!]
엇갈리는 챈트.
하지만 내가 천천히 앞으로 기어가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내 이름을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렉 역시 버티려고 들었지만 이내 주춤거리며 내게 끌려왔다.
상반신의 근력만으로 그렇게 앞으로 기어간 나는 그대로 로프를 붙잡고 샤프 슈터를 풀어냈다.
로프 브레이크.
심판이 그것을 선언하며 다리를 붙잡고 있는 그렉에게 기술을 풀라는 지시를 내렸다.
아쉬운 듯 다리를 놓은 그렉은 그대로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주도권이 넘어간 상태에서 나는 그의 기술을 연이어 받아주었다.
역대 최고의 테크니션이라 불리는 그렉은 갖가지 방법을 사용해 나를 괴롭혀대기 시작했다.
“크흑……!”
거기에 당하는 나를 보고 사람들이 크게 응원을 보내주었다.
링 아래로 내려가자 그렉이 나를 따라와 공격을 이어나갔다.
거기에 있자니 바리게이트 바로 뒤쪽에 있던 관객들이 말하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다.
“신, 지지 말아요!”
“그렉! 꼭 이겨요!”
그건 모두가 바라는 결말이었다.
신이 경기에서 이기는 것.
그렉이 경기에서 이기는 것.
더 이상 그렉은 ‘추한 늙은이’가 아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는 스스로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싸우는 프로레슬러였다.
정정당당하게.
세상의 모든 이들이 알고는 있지만, 외면한 채 살아가는 가치.
하지만 남자라면, 세상이 어떻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는 법이다.
그게 그렉은 ‘정정당당함’이고.
나는 ‘내가 정한다’일 뿐.
시대와 시대가, 정신과 정신이 부딪히며 전투가 계속 이어졌다.
물론 그걸 표현하기 위한 도구는 단순히 몸과 기술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팬들이라면 분명히 이걸 알아줄 것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면 이토록 큰 환호가 나올 리 만무했다.
내가 다시 주도권을 잡았고.
얼마 가지 못해 빼앗겼다.
주도권을 주고받는 시간은 점점 빨라졌다. 우리는 그렇게 한계까지 경기의 피치를 끌어올렸다.
이 경기의 승자가 되기 위해.
나는 다시 한 번 턴버클 위로 올라가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콰앙-!
이번에는 제대로 적중했다.
그렉의 얼굴을 찍어 누른 팔꿈치가 그대로 커버로 이어졌다.
1……!!
숨을 죽이며 지켜보는 관객들.
2……!!
그리고 그렉 하트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커버에서 빠져나왔다.
일명 ‘Two and Half’라고 불리는 아슬아슬한 탈출이었다.
의역하면 ‘반의 반’쯤 되려나.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절망하지 않고 계속 기술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내가 택한 건 바로 하트 패밀리의 기술인 샤프 슈터였다.
“끄으으으윽……!!”
비명을 꾹 참는 그렉.
그렇게 항복을 받아내려고 팔에 힘을 주던 나는 발이 휙 당겨지는 것을 느끼며 앞으로 쓰러졌다.
[Yeeeeeeeeeaaaaaahhhhh!!]
이 세상에서 오직 그렉 하트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나왔다.
샤프 슈터 받아치기.
상대의 발을 붙잡고 당기며 기술을 풀고, 자신이 일어나면서 곧바로 샤프 슈터로 이어가는 비장의 기술.
이것만큼은 그 어떤 하트 패밀리의 선수도 사용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그렉을 그들 중 최강으로 만들어주는 필살기였다.
“끄하아아아아아악!!”
거기에 처음 당해본 나는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로 다시 괴로움에 발버둥을 쳤다.
경기의 종반부가 다가왔다.
그렉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자신의 팔을 놓지 않았다.
언제 탭을 칠지 모르는 순간에 관객들이 나와 그렉의 이름을 번갈아 외치며 반응은 그렇게 극한을 꿰뚫고 하늘에 다다랐다.
기절할 것 같았다.
내 눈은 점점 풀려갔고, 괴로운 듯 고개를 내젓는 동작조차 하지 못하고 몸이 추욱 늘어졌다.
관객들은 점점 그런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를 응원하는 소리가 커졌음에 나는 전혀 그것을 듣지 못했다.
앞으로 다가온 심판이 그런 내게 항복의 의사를 물어보았다.
“신?! 항복하겠나?!”
바로 거기에서, 나는 곧바로 고개를 꼿꼿이 들고 앞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빠져나온 샤프 슈터다.
지긋지긋하게 맞아본 만큼 나는 이걸 견뎌내는 방법도 잘 알았다.
“크으으으윽……!!”
앞으로 기어가, 다시 로프를 붙잡자 엄청난 환호성이 경기장 안을 가득 채웠다.
심판의 놓으라는 말에 그렉도 힘이 풀렸는지 앞으로 고꾸라졌다.
더블 K.O. 상황.
이 상태에서 심판이 카운트를 세어 10초가 지나도록 아무도 일어나지 못할 경우, 무승부로 끝나게 된다는 규칙이 프로레슬링엔 존재했다.
1, 2, 3……!
그리고 그렉과 나는 천천히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로의 얼굴을 노려보며 로프를 붙잡고 겨우겨우 몸을 세웠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나는 반드시 그렉 하트를 쓰러뜨리고 시대를 쟁취해간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머릿속에 며칠 전 존 마이클스가 실제로 해준 말을 떠올렸다.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그렉 하트를 쓰러뜨릴 때, 내 기술이 필요하다면 사용해라.]
거기에서 착안해, 나는 새로운 피니시 무브를 만들게 되었다.
먼저 일어서 가까이 다가오는 그렉을 향해 힘차게 발을 들었다.
쫘악-!!
턱을 노린 슈퍼 킥.
[Uuuuoooooooooohhhhhh!!]
관객들의 탄성과 함께 그렉이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걸 보고선 잡고 있던 로프에 있는 힘껏 몸을 걸친 나는 그렉을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갔다.
쩌억-!!
연이어 턱을 노리는 러닝 니.
그렉의 몸은 그대로 뒤로 한 바퀴 돌아 바닥에 엎어졌다.
“허억, 헉……!”
이제 한계다.
이래도 일어선다면 내게는 정말 아무런 수도 남지 않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기어가 그렉의 몸을 돌리고는 그대로 커버를 했다.
심판이 카운트를 시작했다.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