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151화 (151/634)

151.

미국 서쪽에 위치한 캘리포니아는 내 고향인 동시에 맥센가의 대저택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즉, 내 본가와 무척 가까웠다.

‘참으로 대단한 우연이야.’

하지만 뭐랄까.

아무리 거리가 가깝다고는 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했다.

티파니가 살고 있는 동네인 말리부는 부자들의 멘션이나 별장들이 즐비한 곳으로 유명했고.

반대로 내가 살고 있는 코리아타운은 그냥 코리아타운이었다.

‘북창동 순두부’라는 가게가 꽤나 유명한데, 미국인들은 이걸 발음하지 못해 BCD라고 불렀다.

‘BCD Hot Soup’를 먹은 사람들이 한국인의 매운맛(아버지의 표현이다)을 느끼곤 ‘크어어! F-ck Yeah!’ 하는 걸 보고 있자면 얼마나 기묘한 기분이 들었는지.

어쨌든, 뭐.

생각해보면 말리부라는 시점에서 어딘가에 또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진짜 맥센 본가本家가 있을 법도 하다 싶기는 한데.

그렇게 되면 도저히 이 집안의 재력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으므로 적당히 넘기기로 했다.

티파니는 내게 말했다.

우리에게는 돈이 필요하다고.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승부욕에 미친 바트의 성격상 그럴 리는 없겠지만, 확실히 다른 준비를 해둘 필요는 있겠지.

‘패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중 하나가 사교계와 영화계 진출로 인해 얻는 명성이었다면.

나머지 하나는 돈이었다.

물론, 티파니가 말하기 이전에도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 알고 있는 나는 어떤 분야에 투자를 해야 하는지를 대강 알고 있으니까.

이건 굉장한 이점이었다.

주식 투자를 예로 들자면 미래에 어떤 종목이 떠오르는지 알 수 있다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그럼에 나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딱히 돈과 관련된 투자는 하지 않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나는 내가 회귀 당시에 무일푼이라는 점에서 기인했고.

나머지 하나는 2000년대 초반이라는 시대적 특성 때문이었다.

이때는 내가 기억하기로 수많은 IT기업들이 난립하던 시대였다.

어느 날 갑자기 핸드폰 화면이 컬러가 되더니 다음 달에는 TV가 나오고, 다음 달에는 갑자기 게임을 할 수 있게 되는 시대였다.

2005년은 3차 산업 혁명, 다시 말해 정보 혁명의 태동기였다.

PDA폰이 나오고 직장인들이 거대한 휴대전화로 끙끙 앓으며 업무를 보기 시작한 시대.

2020년쯤에는 전 세계를 지배하는 뉴튜브도 이제 나온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은 웹사이트였다.

사람들은 지금 매니크로 소프트나 노기아, 블루베리, 노토로라 같은 기업에 크게 주목했다.

물론 나는, 이후 어떤 기업들이 이 혼란스러운 시장에 혁명을 가져올지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액플, 구즐, 아마곤, 위에 언급한 MS와 같은 기업들 말이다.

‘슬슬 시작할 때기는 하지.’

돈 문제도, 티파니와 함께한다면 상당수 해결될 것 같았다.

내가 지금까지 모아둔 돈도 나름대로 거액이었으니 말이다.

150만 달러 정도.

물론 앞서 말한 기업들이 치고 올라가는 것은 적어도 2007년 이후라서 좀 기다려야 하겠지만.

어쨌든 슬슬…….

“저기요.”

바로 그때였다.

꽁하게 노려보는 시선에 고개를 든 나는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티파니를 발견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 응?”

“지금 휴가잖아요.”

“……그렇죠?”

“일 생각은 그만해요.”

단호하게 말하는 티파니.

그러고 보니 그랬다.

내가 처음 말리부와 내가 살던 코리아타운에 관해 생각한 것도, 모두 지금 이 장소 때문이었다.

엔젤레스 국유림의 한 캠핑장.

숲과 공기, 다람쥐가 있는 곳에 나는 티파니와 둘이서 쉬러왔다.

그렉 하트의 경미한 발목 부상으로 인해서 일주일 정도 비는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단지 1박2일의 휴가였지만 그래도 좀 아무 걱정 없이 쉴 수 있게 되어서 좀 즐길 생각이었는데.

‘또 방심하니 일 생각을 했군.’

씁쓸하게 웃은 나는 곧바로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났다.

하루 동안 지낼 곳으로는 꽤나 호화롭게 느껴지는 오두막 앞.

내 정신을 차리게 한 티파니는 살짝 뾰로통해져 바로 앞에 피워둔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쪼그려 앉은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져 나는 슬그머니 다가갔다.

“산책이라도 다녀올까?”

“아뇨~. 더 생각해요.”

“내가 미안해. 이렇게 예쁜 여자를 앞에 두고 딴 생각을 하다니.”

“흥.”

“가자, 가자.”

내가 팔을 당기자 못내 일어선 티파니가 몇 마디를 더 했다.

“……여기 산책 코스가 있는데, 그 끝에 핀란드식 사우나가 반드시 들러야 할 코스라고 하던데요.”

“조사를 꽤 많이 해왔네.”

“따, 딱히 이런 곳에 놀러오는 것이 처음이라 긴장이 되서 조사를 해본 건 아니고요.”

해봤군.

그렇게 생각한 나는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 곰 퇴치용 스프레이와 산행 장비를 가지고 나왔다.

아무리 안전한 구역이라고는 해도 방심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자, 여기.”

“이게 굳이 필요할까요?”

“혹시 모르니까. 곰 펀치 한 방에 팔이 날아가고 싶지 않다면 필수적으로 가지고 다녀야지.”

“……왠지 상상했어.”

내 말에 안색이 창백해진 그녀가 얌전히 스프레이를 챙겼다.

날씨는 화창했다.

이제 완전한 봄이 찾아왔고, 티파니와 함께 숲을 걷자니 어딘가 좀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자니 마음이 편했다.

뭐, 그러다 서로 살짝 언성을 높이는 일도 없잖아 있었지만.

“그렉이 더 위거든요.”

“아니지. 단기간 임팩트로 따지면 마이클스가 훨씬 더 낫지.”

“그렉이 20년 가까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얼마나 많은 역사를 만들었는지 알고 하는 말이에요?”

“그렉의 전성기였던 90년대 초반에 당신은 유치원생이었잖아.”

“그때부터 봤죠. 그렉은 제가 처음으로 좋아하던 레슬러였는데.”

“호오, 그래서?”

“예?”

“그렉을 좋아했다고.”

“아, 아니! 그런 의미는……!”

티파니의 얼굴이 붉어졌다.

좀 귀엽다 싶어 나는 슬쩍 삐친 척하며 시선을 옆으로 피했다.

그러자니 다가온 티파니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알았어! 제일 좋아하는 건 당신! 당신이라고!”

“정말로?”

“그래요! 정말로!”

하지만 흐지부지됐다.

그런 식이었다.

나는 단기 임팩트나 시대적인 상징성에 있어서 마이클스가 더 위라고 생각하는 쪽이었고.

티파니는 꾸준함과 성실성을 예시로 그렉을 더 높게 쳤다.

어차피 정답이 없는 이야기라 우리는 그렇게 서로 장난을 쳤다.

그리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했다.

“레슬러는 왜 되고 싶었어요?”

“……너무 멋있어서?”

“누구를 보고?”

“나 때는 역시 마이클스였지.”

“어떻게 시작했는데?”

“그냥, 집 뒷마당에서 매트 놓고 친구랑 시작한 게 처음이었어.”

“우리 슬로건 몰라요?”

Don’t Try This.

“당연히 아는데…… 그때 혈기왕성했던 내가 그런 사소한 걸 신경 썼을 거라고 생각해?”

“안 죽은 게 용하네.”

“아버지가 날 죽이려고 했지.”

“아버지요? 신, 당신의?”

“그래, 나도 그런 게 있어.”

하도 황당하다는 듯이 대답해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자니 뭔가 빤히 나를 올려다보는 티파니.

……일단 설명을 이어보았다.

“음, 특수부대 출신으로 미국에 오셔서 어머니랑 결혼하셨지. 꽤나 엄하신 분이라. 내가 레슬링 따라하는 걸 무척 싫어하셨어.”

“기합 받고 그랬어요?”

“아니, 2층에서 던져졌어.”

“……?”

“그, 그러는 넌 어때. 어렸을 때 주로 뭘 하고 지냈어?”

“……방금 당신의 트라우마를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황급히 말을 돌리는 날 보고 티파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이내,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저는 뭐, 사실 현장팀과 함께 돌아다니면서 10대를 보내서.”

“아직도 당신이 방송에 나왔던 날이 기억나는군.”

“그래요?”

“첫눈에 반했거든.”

“…….”

티파니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 어쨌든 그래요. 학업 과정은 다 홈스쿨링으로 끝냈고. ……대학에 간 게 그나마 이 프로레슬링 업계를 벗어난 짓이었죠.”

분명히 선수를 도구로 생각하는 이 업계의 생태에 환멸을 느껴 그런 선택을 했다고 했지.

“하지만 대학이라는 곳도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더라고요.”

“그러던 중 날 만난 건가?”

“예, 갑자기 GCW 소식이 들려와서 호기심이 생겼는데, 생각보다 이상한 사람이 나와서 놀랬어.”

“이상해……?”

“그럼 이상하죠. 나를 완전히 자기 밑의 애송이 취급하는데.”

“맞잖아.”

“경력은 내가 더 길거든요.”

“하지만 나처럼 뭔가 확실히 연구를 했던 게 아니었지.”

“…….”

“그래도 당신이 내 피드백을 받아들일 때 그렇게 생각했지.”

“어떻게요?”

“괜찮은 사람이구나.”

“그거 참 감동적이네요.”

티파니가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나는 처음에 티파니를 약간 경계해 일부러 좀 시험을 했다.

그리고 점점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함께하고 있다.

‘사람 일이란 게 참 모르겠어.’

어색하게 웃은 나는 티파니의 어깨에 슬그머니 손을 올렸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찾아온 침묵을 즐기며 산책로를 걸었다.

그러자니 돌연, 티파니는 내게 흥미로운 제안을 하나 해왔다.

“내일 코리아타운 갈까요?”

“거긴 왜?”

“그냥 당신이 자란 장소의 음식이 어떤지 궁금해서 말이죠.”

“안 먹어봤어?”

“한 번도.”

“그럼 가지, 뭐.”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나는 산책로 끝에 무언가 서있는 것을 발견하고 멈춰 섰다.

나를 따라 고개를 돌린 티파니의 안색이 순간 창백해졌다.

“곰……?”

“아니, 사람이야.”

무지막지하게 컸지만 곰 크기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체 누군가 싶어 나는 잠시 굳어졌다.

여차하면 곰 스프레이를 뿌려서 퇴치한다는 방법도 있지만.

갑자기 나타난 저 미지의 존재가 무엇인지는 확인해볼…….

“꾸이이이익!!”

뭔가 비명을 질렀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본 나는 생각치도 못한 존재와 맞닥뜨렸다.

멧돼지였다.

거기다 무척 화가 난.

“꾸에에에에엑!!”

생각을 채 마치기도 전에, 그것이 우리를 향해 돌진해왔다.

말할 시간도 없었다.

나는 곧바로 티파니를 끌어안은 채 옆으로 힘차게 몸을 날렸다.

퍽석-!

그리고 옆에서 날아온 뭔가가 멧돼지의 머리를 꿰뚫었다.

그로테스크한 광경과 함께 미끄러지며 바닥에 쓰러지는 멧돼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절명한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고개를 돌렸다.

저벅, 저벅.

누군가가 반대편에서 걸어왔다.

“시, 신? 저건…….”

“………….”

나는 몸이 굳어지고 말았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그대로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자니 먼저 멧돼지의 머리에 꽂혀 있던 거대한 칼을 뽑아든 그가 우리를 돌아보았다.

거대한 체격의 동양인.

내 입에서 그제야, 아주 확실하게 한마디가 나왔다.

“박 씨 아저씨……?”

“응? 준호냐?”

“아니, 잠, 잠, 잠깐만요.”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나는 티파니를 끌어안은 손에 더 힘을 주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설마 생각보다 훨씬 거대하다고 생각했던 저게 설마.

“아빠?”

멧돼지를 어깨에 들쳐 업고 있던 아버지일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엄마가 전화로 이렇게 설명을 했지.

[박 씨 아저씨네 고기의 비결이 뭔지 아니, 준호야? 네 아빠랑 둘이서 도살장에 가서 아주 좋은 돼지고기를 가져오거든!]

그게 멧돼지일 줄이야.

말이 안 되는 소리는 아니었다.

여기는 캘리포니아고, 아버지는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고.

제기랄, 이게 말이나 돼?!

“…….”

당황해 굳어져 있자니 가까이 다가온 아버지는 나와 품에 안긴 티파니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준호.”

“예, 예?”

“여자를 알 나이인가.”

난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 * *

아버지와 박 씨 아저씨는 한국에 있을 때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모 특수부대에 계셨다고 들었다.

베트남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말할 수 없는 이유로 제대한 뒤 미국에 건너오셨다고 했지.

그리고 아버지는 고아였던 어머니와 결혼한 뒤 나를 낳으셨다.

박 씨 아저씨도 상황은 비슷해서, 그쪽 아들은 지금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를 한다고 들었다.

그리하여 두 분은 외부인에서 이제는 코리아타운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가 되어버렸다.

92년도 L.A.에 폭동이 발생했을 때도 한인들을 규합해 코리아타운을 방어하셨다고 했었지.

그런 식이었다.

이 머나먼 땅에 처음으로 도착한 한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가 되었다.

……그러므로, 한인 특유의 가족적인 문화가 있는데.

그게 일반적인 미국인들은 좀 괴리감을 느끼는 스타일이었다.

예를 들자면 지금처럼.

부모님과 이웃 주민들이 우리와 정확히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친목회를 왔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머님이 뵙고 싶다며 따라왔던 티파니는 지금 8명의 여사들께 묶여 있는 상황이었다.

“어마마, 얘가 준호 색시여?”

“Sexy……?”

모든 사람들이 한국말을 쓰셔서 티파니는 전혀 못 알아들었다.

“준호가 참으로 참한 처자를 데리고 왔네. 어때? 이 정도면 며느리로서 괜찮지 않아?”

“흥! 나는 김치를 담글 줄 모르는 여자는 안 돼!”

엄마, 왜 그래요.

누구든 좋다면서요.

내가 그런 광경을 걱정스레 바라보자니, 옆에 있던 아버지가 나에게 거대한 칼을 건넸다.

“준호야. 머리 좀 썰어라.”

남자 일행들은 모여서 멧돼지를 잡고 있는 중이었다.

아이들은 나가서 놀고.

“예, 예…….”

나는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아버지와 함께 거대한 멧돼지의 머리를 쓱쓱 썰어냈다.

“이 피가 참 좋은데.”

“기생충 걸려요…….”

“기생충까지도 먹는 거다.”

“…….”

“크하하! 김 씨가 참 뭐든지 잘 먹었지! 베트남 정글에서 먹을 게 떨어지니까 뱀을 잡아먹고!”

“나중에 한 잔씩 하지.”

나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티파니가 과연 괜찮을까 싶어서 그쪽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놀랍게도 한인 어머니들은, 티파니가 당황한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이것저것 챙겨주기 시작했다.

일단은 코리아 스타일 커피.

“Oh……!”

“처자가 맘에 들었는갑네!”

“아 이름이 뭐랬지?”

“띨빡이?”

“아니, 남 며느리 이름을 띨빡이라고 하면 어떻게 해!”

엄마, 싫다면서요.

“이름이 영어로 뭐였지?”

“네임! 네임이여!”

“어, 헤이! 걸! 네임!”

“Wh, what?”

“유 네임!”

“Oh, Tiffany Mcsen.”

“티파니?”

“아따, 우리 남편이랑 보는 드라마 여주인공이랑 이름이 같네!”

“아버지는 뭐하신데?”

“파더! 잡!”

저 영어가 통하는 게 놀랍군.

……참으로 놀랍게도, 부모님 대의 한인들은 대부분 자기들끼리만 모여 살아서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M, my dad is chairman of…….”

“준호야아아아아!!”

엄마가 날 불렀다.

드디어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가 나온 것이겠지.

“가봐라.”

“어, 고기 해체는 어쩌고요.”

“엄마한테나 효도해라.”

“예, 옙.”

아버지는 훈계하듯 말씀하셨다.

얼굴을 대면한 지 꽤나 오래간만이라서 좀 챙겨주라는 것이겠지.

그처럼, 우연히 날 만나게 된 엄마는 꽤나 기분이 좋아보였다.

나는 한국말을 했다.

“엄마, 왜요?”

“얘, 아버지 뭐하신 대니?”

“아니, 그걸 왜…….”

“얘는! 원래 결혼은 집안하고 집안이 하는 거야! 당연히 사돈될 분들 집을 알아야지 엄마가 네 신혼집도 구하고 그러지!”

“어…….”

당황한 나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은 티파니를 돌아보았다.

동양식이라고 느꼈는지 무릎 위에 단정히 손을 모은 모습.

미소를 짓고 있으나, 눈빛은 당혹스러운 채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영어로 이야기했다.

“티파니, 일단 엄마하고 이야기 좀 나누고 이야기하자.”

“펴, 편하게 하세요.”

그러자니 부인들은 그런 나와 티파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웜멤메, 영어로 뭐라는겨?”

“사랑을 속삭이는 거잖어!”

아니다.

“준호야! 빨리 말해! 이 엄마가 너 결혼할 때 집 한 채 못해줄 것 같아서 그러는 거니?”

“아니, 그…… 좀 복잡한데. 이 친구 아버지가…….”

내 최악의 적수다.

“사업! 조그맣게 사업하세요!”

일단 둘러댔다.

“무슨 사업!”

“그, 레슬링 티셔츠 팔아요!”

“아, 도매상이여?”

“도매상은 구두쇠가 많다던디. 혼수 잘 해오라고 해야겠어!”

다시금 친목회 부인들끼리 이것저것 말씀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사이, 티파니를 슬쩍 뒤쪽으로 빼낸 나는 상황을 설명했다.

“어, 음. 미안. 어머니들이 좀 너무 개인적인 걸 물어봤지?”

“아니에요. 오히려 재미있던데?”

“그러면 다행이고.”

“그런데, 다들 지금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 거예요?”

“어, 너희 아버지가 무슨 일 하시는지 그런 거?”

“응? 왜 그런 게 궁금하시지?”

“……한인 문화에서는 결혼할 때 집안과 집안이 한다고 하거든.”

“겨, 결혼?”

티파니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결혼?!”

두 번 말했다.

“저희 그거 해요?!”

저한테 물어보셔도.

티파니의 눈이 반짝거렸다.

뭔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나는 쓰게 웃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하면 나랑 해요.”

아니, 무슨 결혼이 조별과제도 아니고.

“알겠죠?!”

“아, 알겠어요.”

나는 흥분해 콧김을 내뿜는 티파니를 피해 슬쩍 돌아섰다.

……어머님들께서 그런 우리의 모습을 흥미롭게 보고 계셨다.

거기 팝콘통 내려놔요.

“나도 바깥양반이랑 저럴 때가 있었는디 말이여…….”

“지금은?”

“죽었으면 좋겠어.”

부인들께서 공감하셨다.

나는 옆에서 땀을 흘리며 열심히 멧돼지를 해체중인 ‘바깥양반’들께 잠시 묵념을 올렸다.

그러자니 친목회 부인들의 이야기는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갔다.

“어쨌든, 애가 피부도 하얗고 무슨 영화배우 같네. 워뗘, 얼른 손주 보고 싶지 않아?”

“엄마는 딸 셋 아들 셋!”

“…….”

“알겠지! 준호야!”

“준호?”

티파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 보니 김준호였죠?”

“……그렇지.”

“준호, 준호. 뭔가 멋지네요.”

본명으로 나를 몇 번 부른 티파니가 활짝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그러자니 부인들께서는 한층 더 흥분해 말을 내뱉으셨다.

“웜멈머, 티파니가 준호 발음을 할 줄 아네!”

“그럼, 미국인들도 준호 발음은 잘하지!”

“미국에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바보들이나 미국인이 준호 발음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여!”

“…….”

내가 아는 미국인은 안 그러던데. 걔들이 좀 이상한 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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