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152화 (152/634)

152.

그 후, 캠핑장에서는 코리안 스타일의 바비큐 파티가 이어졌다.

갓 잡은 신선한 멧돼지 고기에 집에서 가져온 온갖 한국 음식들을 곁들여서 먹는 바비큐.

엄마는 처음에 틱틱 거리던 것과 달리 티파니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듣자 하니 조용해서 좋다나.

엄마, 그거 애가 그냥 한국 말 못하니까 듣고만 있는 거잖아.

“애가 한국 음식은 잘 먹을까?”

“글쎄요. 아마 처음 먹을 텐데.”

아까의 대화로 미루어 짐작해보자면 그럴 것 같았다.

“엄마가 묵은지 가져왔는데.”

“…….”

“여기 효모 생긴 거 봐라.”

끄어어억.

“이걸로 청국장 끓일 건데. 어때. 맛있을 것 같지 않니?”

“준호 엄마.”

바로 그때, 구원자가 등장했다.

“그냥 둬. 며느리가 안 익숙한 음식이라서 잘 못 먹겠지.”

“……아니, 며느리라뇨. 아버지.”

당황해 대답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내 말에 반응하는 대신 어깨를 툭 치고는 다시 고기를 구우러 돌아갔다.

작업은 돼지고기를 굽는 남자 그룹과 곁들일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여자 그룹으로 나뉘었다.

그 가운데에서 잠시 굳어져 있자니 엄마가 내 옆구리를 툭 치며 해야 할 일을 가르쳐주었다.

“가서 애들하고 놀아줘.”

그 말을 들은 나는 테이블에 모여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좀 나이가 찬 애들은 오지 않았고, 대부분 어린애들이었다.

아이들은 티파니가 하는 이야기를 아주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사실 프로레슬링은 진짜야.”

“그, 그게 사실이야. 누나?!”

“그래, 브로큰 와이엇은 정말로 사이비 종교의 교주지. 우리 회사를 통해 전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어.”

“나 무서워…….”

“걱정 마! 내가 지켜줄 테니까!”

“와이엇은 어린 소년의 피를 뽑아서 마시는 걸 즐긴다고 해.”

“으, 으윽…….”

“특히나 자기 신도들을 이용해서 엄마 말을 안 듣는 나쁜 아이들을 주로 잡아간다고 하지.”

에이, 속겠냐.

“나, 나는 잘 들어!”

속네?

“나는 엄마 말 잘 들어! ……으, 어, 엄마 미안해! 우와아앙!”

“어, 어라?”

여섯 살 어린애들을 울렸다.

당황해 벌떡 일어선 티파니가 곧바로 소년을 안아들었다.

“자, 자. 착하지. 응? 괜찮아~. 와이엇이 괴롭히면 정의로운 신이 나타나서 지켜줄 거니까.”

“으극, 흐응……!”

“울지 말고 뚝!”

“뚜, 뚝…….”

“코, 흥!”

꼬마애가 티파니가 내민 옷소매에 대고는 힘차게 코를 풀었다.

가볍게 웃자니 곤란해하며 아이들을 달래던 티파니가 이윽고 나를 돌아보았다.

“와서 좀 도와줘요.”

“……정의롭다니, 나한테 언제 그런 설정이 붙은 거야?”

“쉿, 애들 듣겠어.”

“나 참.”

황당해 서있던 나는 마찬가지로 좀 울먹거리고 있던 최 씨네 딸을 높이 들어올렸다.

“자자, 괜찮아요. 밤에 부기맨이 나와도 아저씨가 있으니까.”

그렇게 애들을 달래주고 함께 놀아주며 시간을 보냈다.

이 나이대의 꼬마들은 프로레슬링이 짜고 친다는 걸 모른다.

그리고 산타가 그렇듯이 적당히 나이가 찰 때까지 그걸 모르고 지내도록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모를 때만 즐길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오히려 나보다도 티파니의 이야기에 푹 빠진 눈치였다.

“또 재미있는 이야기해줄까? 실버백은 하도 힘이 강해서 혼자서 나무를 뽑아낼 정도라고~.”

“우와, 정말로?”

“어떻게 하면 그렇게 커져?”

“시금치 많이 먹고 우유랑 비타민 많이 먹으면 많이 크지~.”

쾌활하게 웃으며 아이들에게 나름의 교훈을 전해주는 그녀.

회사에서 일 이야기나 우리 둘이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어서 뭔가 신선했다.

‘아이들에게 친절한 성격이군.’

업계에서 오래 있다 보니 그런 버릇이 든 걸 수도 있지만, 어쨌든 천성이 선하다는 반증이었다.

그렇게 티파니를 중심으로 아이들이 뭉치자 친목회의 부모님들은 안심하고 요리를 준비했다.

티파니는 아이들이 가져온 장난감으로 신(SIN)의 흉내를 내거나 하며 재밌게 놀아주었다.

그리고 요리가 나왔다.

엄마는 일부러 자신이 끓인 청국장을 티파니 쪽으로 두었다.

“자자, 다들 먹자~. 우리 새아가도 맛있게 먹어. 응?”

“S, Sae A ga?”

“그래~. 새아가~.”

엄마는 토닥토닥 티파니의 어깨를 두들기고는 청국장을 퍼줬다.

“어, 엄마. 괜찮아. 일단 고기부터 먹고 나중에 먹을 테…….”

“저기, 신. 괜찮아요.”

“응?”

“이거, 어머님이 해주신 요리죠? 그렇다면 한 번 먹어볼게요.”

“괜찮겠어?”

“네, 이중에 시체 썩은 내가 나는 요리만 아니면 무엇이든 한번 먹어볼게요.”

“그게 이거야.”

“…….”

티파니가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기대감에 찬 엄마의 시선을 감당하지 못하고 천천히 스푼을 들었다.

“이거, 먹을 수 있는 거죠?”

“……냄새만 좀 고약할 뿐이지. 일단 맛은 그런대로 있는 편이야.”

“뭘로 만들었는데요?”

“콩.”

“콩을 죽였군요.”

굳어진 표정으로 이야기한 티파니가 이윽고 청국장을 크게 한입 떠서 입에 넣었다.

냠냠, 꿀꺽.

그리고 내 예상과 달리.

“나쁘지 않은데요?”

“그, 그래?”

“네, 생각했던 것보다 맛있어요. 어머님께 그대로 전해주세요.”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엄마에게 그대로 말을 전했다.

“맛있대.”

“정말? 어쩜…….”

“……아니, 미안.”

하지만 엄마가 감격하려던 순간 티파니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

“…….”

황당해 돌아보는 한인들.

그 가운데에서, 나는 티파니가 고생을 해주었음을 알아차렸다.

한인들 중 하나가 소리쳤다.

“요즘 것들은 햄버거 피자 콜라 이런 것만 먹고 말이야!”

쟤들은 원래 그렇게 먹어요.

* * *

그래도 청국장 이후로 지뢰(?)라 할 만한 음식은 딱히 없었다.

애초부터 묵은지, 청국장이 한식 허들의 최종 보스 같은 거지 나머지는 그냥 무난한 정도였다.

내가 만나본 다른 문화권 출신 친구들의 의견에 따르자면, 한식의 가장 큰 벽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마늘.

하나는 발효.

하나는 비주얼.

아무래도 그들이 봤을 때 용광로(뚝배기)에 끓여 나오는 빨간 찌개는 충격적이라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난 그런 음식들은 되도록 먼저 권하지는 않고 고기와 쌈, 야채 위주로 챙겨주었다.

냠냠, 음식을 잘 받아먹은 티파니는 처음을 제외하면 그래도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듯했다.

후식으로 나온 수정과를 마시고는 웃으며 말했을 정도였다.

“한식은 처음이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맛있었어요. 아무래도 소질이 있는 거 아닐까?”

“청국장 먹을래?”

“…….”

티파니는 시선을 피했다.

그러더니 이어, 먼 곳에서 시무룩해하고 있는 엄마를 보았다.

“많이 화가 나셨을까요?”

“그럴 리는 없을 거야. 오히려 좀 미안해하고 있지 않을까.”

“……신, 한국어로 잘 먹었습니다, 라고 말하려면 어떻게 해요?”

나는 티파니에게 ‘잘 먹었습니다.’라는 문장을 이야기해주었다.

몇 번 읊조려보던 그녀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엄마의 앞으로 가 그렇게 이야기했다.

잠깐 멍해있던 엄마가 이내 활짝 웃으며 티파니에게 속사포 같은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이고,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다행이야! 맛있었어. 새아가?”

“마쉿섯서요?”

“그래, 그래!”

서투른 한국말을 듣고 웃은 엄마는 티파니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렇게 코리안 바비큐 파티가 나름대로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 되려던 찰나.

아버지가 곁으로 다가왔다.

“준호야.”

“예, 아버지.”

“이거 받아라.”

“……?”

아버지가 나에게 건넨 것은 100달러짜리 지폐 몇 장이었다.

“아버지? 이건 왜…….”

“돌아가서 새아가 옷이나 한 벌 해줘라. 맛있는 것도 사주고.”

“네?”

“애가 참 괜찮구나.”

“…….”

일단은 받아두고 나중에 부모님 통장으로 다시 넣어드리자.

* * *

그 후.

나는 새아가(?)와 함께 한인 사회에서 도망쳐 핀란드로 갔다.

말인즉슨, 둘이서 핀란드식 사우나를 하러 나왔다는 이야기였다.

주변이 슬슬 어두워져갔다.

덕분에 분위기는 괜찮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돌아가는 게 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관리인에게 연락을 할까.’

밤의 산림은 낮보다 더 위험하다. 무사히 오두막까지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게 나을 듯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일단 핀란드식 사우나에 몸을 맡겼다.

좁은 나무 방 안에 들어찬 열기.

이마에 땀이 맺혔다.

바로 옆에 앉은 티파니도 눈을 감은 채 열기를 즐기고 있었다.

어깨가 살짝 닿았다.

“돌아갈 때 관리인 부를까?”

“응? 왜요?”

“밤이면 위험하니까.”

“당신은 멧돼지 못 잡아요?”

“……난 총이 있어야 해.”

그리고 그걸 사람이라고 하지.

“당신 아버님이 상상했던 이미지와 달라서 좀 놀랐어요.”

“그 정도면 다행이군.”

“당신한테 유전된 건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당신, 덩치는 좋잖아요. 키도 많이 큰 편이고.”

그런가?

그러고 보니 그럴지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자니 티파니가 내 코를 꾹 만졌다.

“외모는 어머님을 닮았고.”

“……아까는 미안해. 부모님을 만나 뵌 건 네가 처음이거든.”

“괜찮아요. 조금 당황했지만 나에게 애정을 주시는 게 느껴져서 생각보다 훨씬 즐거웠거든요.”

“그랬어?”

“예, 당신도 아시다시피 저희 아버지는 정반대의 사람이라서.”

티파니는 씁쓸하게 웃었다.

“어머니도 다른 사업으로 바쁘셔서 집안에 거의 없으셨거든요.”

“우리 부모님은 정반대셨지.”

“그래서 그런지 처음 만난 사람이 가족이라는 이유로 애정을 준다는 게 무척 신선했어요.”

“우리가 벌써 결혼했나?”

“거, 거참……. 말이 그렇단 거죠! 참! Sae-a-ga라면서요!”

새아가의 발음을 굉장히 미국인 같은 느낌으로 발음하는 티파니.

좀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확실히, 우리 집안에 화목한 편인 것을 깨달았다.

부모님도 사이가 좋았고, 주변 이웃들과도 계속 교류를 했다.

유일한 걱정거리는 나였는데.

티파니가 곁에 있는 걸 보고는 좀 안심하신 듯해서 다행이었다.

원래 그 나이대의 부모님들은 죄다 아들이 장성하면 얼른 장가가서 가정을 이루길 원하시니까.

‘아직은 아니지만.’

그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에게는 아직 할 일이 있다.

그리고 나는, 바비큐 파티 때 티파니가 잠깐 전화를 받으러 자리를 비운 사실을 기억해냈다.

“누구랑 전화한 거야?”

“일 때문에요.”

“뭔데?”

“……뭐, 좋은 이야기니까.”

미소를 지은 티파니는 열기 속에서 흥미로운 주제를 꺼냈다.

“스눕-덕 기억나요?”

“나지. 내 친구잖아.”

“그 친구가 당신이 퍽이나 마음에 든 모양이에요. 이번에 자기 생일 파티에 초대를 했더라고.”

“그래?”

“그리고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파티가 열리는 장소가 바로 저희 집 옆에 있다는 거죠.”

“말리부?”

“네, 스눕-덕이 자주 사용하는 별장도 거기에 있거든요.”

“생각해보면 당연하군. 스눕-덕의 고향도 로스 엔젤레스니까.”

스눕-덕은 크게 사우스, 웨스트, 이스트로 나뉜 힙합 씬에서 ‘웨스트 코스트’에 속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구분을 떠나서도 힙합 씬에서 역사에 크게 이름을 남길 정도의 거물이었다.

활동 기간도 엄청나게 길어서 늙어 죽을 때까지 랩을 하는데.

프로레슬링으로 치자면 캐스켓-테이커와 비슷한 인물쯤 되나.

‘좀 흥미로운데.’

스눕-덕의 초대를 받다니.

이번 파티를 계기로 조금 더 친분을 쌓게 되면 어떨까 싶었다.

그는 미래에도 미국 사교계에서 명성을 떨치는 셀럽이었으니까.

‘거기다 중요한 건 그가 프로레슬링과도 연관이 있단 것이지.’

본인은 딱히 프로레슬링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다른 쪽으로 연관이 깊었다.

바로 스눕-덕 친척 중 한 명이 미래에 WWF의 프로레슬러로 데뷔를 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WWF와 연이 생긴 스눕-덕은 레슬 임페리움 같은 행사에도 참가하고는 했다.

‘그렇다면 날 초대한 이유가 대충 짐작이 가는데…….’

고민에 빠져 있던 그때, 옆에 있던 티파니가 말을 걸어왔다.

“무슨 생각해요?”

“생일 파티라고 한다면 가족들도 참가하겠지?”

“글, 쎄요. 보통은 기자들까지도 초대를 하니까 가족들과의 파티는 따로 하지 않나?”

“이번 파티에는 적어도 가족 한 사람은 올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티파니와 달리 나는 자신에 차 대답했다.

아마 며칠은 더 이곳 로스 엔젤레스에 머물러야 할 듯했다.

* * *

그리고 남은 며칠.

나는 L.A.의 본가에서 시간을 보내며 스눕-덕의 생일을 기다렸다.

티파니는 처리할 일이 남았다며 자기 저택으로 돌아갔고, 그동안 나는 부모님과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내가 생각했던 막연한 상상보다도 훨씬 더 괴로운 시간이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각자가 캠핑장에서 만났던 티파니에 대해서 무척 궁금해 했다.

특히나 엄마는, 나와 대화할 시간을 벌기 위해 내게 집안일을 시키고는 계속해서 따라다녔다.

그리고 청소기를 돌리는 내내 쉴 새 없이 질문을 해왔다.

“걔 나이가 몇 살이라니?”

“22살일걸요.”

“어마나, 준호 네가 26살이니까 네 살 차이! 딱이네! 날만 잡고 바로 식 올리면 되겠다!”

“아니 엄마, 아직 우리 일 때문에 그럴 생각 없다니까요.”

“얘는! 엄마랑 아빠도 다 바빴어! 매일 출근해서 일하고!”

“……그럼 어떻게 결혼한 건데?”

“애가 들어섰으니까 한 거지!”

“…….”

“너도 해! 네 아빠 닮아서 힘은 좋으니까 막 레설링 하고 다니고 그러는 거 아니니?!”

“아니, 뭘 하라고…….”

“준호야.”

바로 그때, 마당에서 장작을 패고 있던 아버지 날 불렀다.

엄마를 피해 밖으로 나가자 아버지가 나에게 손도끼를 건넸다.

“해봐라.”

“이걸로요?”

너무 작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며 바라보자 아버지는 내게 시범을 보여주었다.

장작을 내리친다.

장작이 죽는다.

끝.

“이렇게 해라.”

“…….”

아버지가 다시 건네주는 손도끼를 받은 나는 그대로 장작을 패기 시작했다.

쩌억, 쩌억.

그래도 나름 단련을 해와서인지 한 방에 대충 장작이 갈라졌다.

뭐, 어렸을 때 용돈벌이로 자주 해봐서 요령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장작을 죽이는 듯한 아버지의 힘에는 조금도 미치지 못했지만…….

‘특수부대 출신이라 그런가.’

아직까지 힘이 쩔어주셨다.

나름 운동도 되고 괜찮군.

그렇게 생각한 나는 일부러 정신을 좀 더 집중해 장작을 계속해서 패기 시작했다.

그러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응?”

“이거 어떠냐.”

아버지가 뭔가를 내밀었다.

나에게 장작 패기를 맡겨두고 대체 뭘 하고 계셨나 싶었는데.

아버지의 큰 손바닥 안에 꽉 들어차는 크기의 나무 조각이었다.

물고기를 만드시는 것 같군.

그 모양이 제법 두툼했다.

“멋진데요. 조각은 대체 어디서 배우신 거예요?”

“군대에서 부처님을 깎았지.”

“뭔가, 저로서는 알 수 없는 깊은 사연이 있어 보이는군요.”

“내가 조각칼을 다시 쥔 건 제대하고 처음 있는 일이다.”

“왜요? 엄마 드리려고?”

“이 잉어는 다산의 상징이다.”

“……?”

“마무리가 되면 가져가라.”

“예?”

의아해 되물었지만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고 잉어를 계속 깎았다.

다시 물어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나는 적당히 무시하고 계속 장작을 팼다.

‘아무래도.’

부모님께서 안심하신 건 좋은데 또 다른 기대가 생기신 듯했다.

그래도 집안 분위기는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로 훨씬 좋아졌다.

아버지는 좋아하신다는 한국 노래를 계속 흥얼거리셨고, 엄마도 매일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나는 그 기도의 대상이 한국 신화 속에서 아이를 점지해준다는 ‘삼신할미’라는 사실을 알았다.

따라서 티파니로부터 연락이 왔을 때는 드디어 해방되는구나 싶었다.

[신, 지금 가는 중이에요. 한 10분 내로 도착할 예정이고요.]

“오늘 밤인가?”

[예, 거기 도착해서 ‘장비’ 갖추고 떠나면 될 것 같은데요.]

“장비?”

[파티 정장이죠. 이번에도 제임스 본즈처럼 멋진 거고.]

기대가 되는군.

평소 원체 그런 옷을 입을 일이 없다보니 나름 기대가 됐다.

전화를 끊은 나는 부모님의 시선을 피해 집 밖으로 나왔다.

‘조용히 옷만 가지고 들어가서 입고 나오는 편이 좋겠군.’

티파니가 오면 또 일대에 소란이 벌어질 것 같았으니 말이다.

코리아타운 후미에 위치한 이 동네는 조용하고 사람들도 대부분 이 시간에는 집에서 쉬었다.

나는 하늘에 걸린 달을 올려다보며 티파니의 도착을 기다렸다.

‘그러고 보니, 무슨 차를 타고 오는지는 듣지 못했는데.’

다시 전화를 걸까 하다가 이내 뭐 어떠랴 싶어 놔두었다.

설마 말리부에서 여기까지 그 더럽게 비싼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를 타고 오는 인간이…….

부아아아아아아아앙!

‘있군.’

황소가 우는 듯한 낮은 배기음.

그런 소리가 이 조용한 거리에 울려 퍼지자 나는 생각했던 모든 계획이 박살 났음을 알아차렸다.

슈퍼 카는 자신의 위용을 마음껏 드러내며 집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거리에 곳곳에 있는 수많은 집에서 사람들이 나와 우리 집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건 물론 집 안에 계셨던 나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뭐, 뭐니. 준호야?!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저게 뭐냐.”

“회, 회사 차에요.”

“회사? 너 일하는 거기?”

“비슷합니다.”

어떻게든 수습해보려고 했지만,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차에서 내린 티파니를 본 엄마는 바로 당장 내일이라도 식장을 잡을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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