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그 후, 적당히 상황을 수습한 우리는 바로 말리부로 출발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나는 방금 전의 광경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습한 것보다는 도망친 쪽에 더 가깝군.’
붙잡히면 파티 시간에 맞추기 힘들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내렸던 티파니를 다시 차에 태웠고.
그대로 주민들의 시선을 받으며 람보르기니를 타고 도망쳤다.
그리고 중간쯤에서 티파니와 자리를 교대해 옷을 갈아입었다.
검은색의 정장은 캐주얼한 느낌으로 금실로 문양이 들어가 팝 가수의 무대 의상처럼 느껴졌다.
차 안을 스치는 도로 조명이 비출 때마다 번쩍거려, 나는 조금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화려한 거 아니야?”
“그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을 생각하자면 적절한 옷이에요.”
티파니 역시 화려한 화이트 원피스 차림이었다. 검은색 꽃을 수놓은 게 어딘가 동양적이었다.
“거기 초대된 사람들 대부분이 음악계 지인들이더라고요.”
“그런 자리에 우리가?”
“예, 지난번 파티에서 당신이 보여준 활약이 어지간히 인상적이었나 봐요. 꼭 와달라고 하던데?”
“거기 가서 또 유리병 깨고 그래야 하는 건 아니겠지.”
“하하, 설마요. 오늘은 정말로 친한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거니까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우린 아니지만.”
“그게 문제죠.”
티파니가 빙긋 웃었다.
“당신을 왜 부른 걸까요?”
“……뭐.”
그건 대충 알 것 같았다.
말했듯, 스눕-덕의 사촌 중에는 프로레슬링의 엄청난 팬으로 향후 선수까지 되는 꼬마가 있었다.
스눕이 정말 그 하룻밤의 일로 날 파티에 초대할 정도로 호감을 가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아마 그 꼬마가 날 보고 싶다고 해서 초대를 한 것 같은데.’
거기까지는 대충 알겠다.
그냥 가서 적당히 이야기 나누고 사인 좀 해주면 되는 거겠지.
하지만 그것을 증명할 길이 없었던 나는 일단 말을 바꿨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가 오늘 파티를 가서 무엇을 얻어올 수 있는가가 아니겠어?”
“하긴 그렇겠네요. 이런 인맥은 우리 쪽으로서도 구하는 게 무척이나 까다로워서 이번 기회에 좀 알아두면 어떨까 싶은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미국의 사교계는 둘 중 하나가 충족되어야만 진입할 수 있는 일종의 폐쇄된 상류 사회였다.
돈이 많거나.
아니면 유명하거나.
둘 다거나.
그런 조건이 충족되는 사람들은 크게 봤을 때 재계, 연예계, 스포츠계에서 많이들 나오는데.
그 와중에도 큰 행사가 아니면 끼리끼리 모이는 경향이 컸다.
힙합은 특히나 더 그랬다.
그것은 흑인으로부터 시작된 문화였고, 인종적인 성향이 다른 업계에 비해서 짙다고 느껴졌다.
내가 흑인이 아니라서 완벽하게 이해를 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그리고 분명히, 내가 틀리게 생각하는 부분도 꽤나 있겠지만.
힙합계의 전설인 에지엠 같은 경우에도 백인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그 실력을 의심 받았다.
‘네가 흑인이었다면 같은 실력으로 그 정도 위치에 올라갔을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말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눕-덕과 그 조카로 인해서 그들과 연결이 된 것은 어찌 보자면 엄청난 행운이었다.
“거래를 하나 제안하고 싶은데.”
“누구, 스눕-덕에게요?”
“그래, 나 이번에 영화 개봉하는 거 있잖아?”
“아니, 잠깐만. 잠깐만.”
티파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일 파티에 가서 느닷없이 일 이야기를 꺼내면 좋은 반응을 보여주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 하지만 뭐……. 그쪽 역시 나를 단순히 손님으로서 초대하는 건 아닐 것 같아서.”
그가 날 부르는 이유가 정말로 조카 때문이라면.
나는 스눕-덕에게 당당히 '부탁' 하나 정도는 할 수 있게 되는 입장에 놓이는 셈이었다.
“나 같은 일류를 부르고도 돈 한 푼 안 드는 건데. 안 그래?”
“당신, 지금 뭔가 흥미로운 생각을 하나 하고 있군요?”
“어떻게 알았어?”
“얼굴을 보면 알죠. 타이거.”
가벼운 농담을 건넨 티파니가 액셀을 좀 더 세게 밟았다.
람보르기니가 해안가 도로를 따라서 어둠 속을 내달렸다.
* * *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파티장인 스눕-덕의 별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생각했던 것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것을 느끼고 놀랐다.
지난번의 그, 아슬아슬하게 교양을 유지하려는 파티와는 달랐다.
엄청나게 장식된 로우-라이더 차량이 즐비하게 늘어선 가운데.
연초를 입에 물고, 다들 당연하다는 듯 바지 뒤쪽에 권총을 꽂고 있는 웨스트 코스트의 랩퍼들.
'이런 느낌이군.'
나는 쓰게 웃으며 생각했다.
스눕-덕 역시도 '크릭스'라는 이름의 스트리트 갱단 출신이었다.
비록 지금 대부분은 랩퍼로서 성공해 굳이 저렇게 위험한 척을 드러낼 필요는 없을 테지만.
사실 저런 갱스터 모습조차 하나의 포장된 콘셉트에 불과했다.
랩퍼들의 삶은 신뢰할 수 없는 공권력에 굴하지 않고 위험한 동네에서 거칠게 자라서 성공했다는 식으로 포장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게 거짓은 아니다.
다만 좀 더 매력적으로 구성되어서 더럽거나 위험한 부분은 대부분 어물쩍 넘어가는 게 일종의 포장이라는 말이었다.
정말로 저 총으로 누군가를 쏠 인간이었으면 여기가 아니라 감옥이나 무덤 속에 있겠지.
그렇기에 나는 좀 긴장한 것처럼 보이는 티파니와 함께 차에서 내려 스눕-덕에게 다가갔다.
크릭스를 상징하는 파란색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던 그는 내가 다가가자 곧바로 손을 뻗어왔다.
손을 맞잡은 나는 그와 어깨를 맞대고 가볍게 인사를 했다.
“신~. 내 친구.”
“생일 축하드립니다. 스눕.”
“와줘서 고맙군. 이것저것 있으니 마음껏 즐기고 갔으면 좋겠어.”
“예, 옙.”
“티파니도 와줘서 고마워.”
“고마워요. 스누비. 당신의 파티에 올 수 있어서 영광이네요.”
티파니가 손등을 내밀자 스눕이 허리를 숙여 입을 맞췄다.
“아직도 자네의 그 배드애스한 모습이 잊히지가 않는군.”
“오늘도 준비된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오늘은 굉장히 평화로운 파티가 될 거야. 그러니까 저쪽에서 총도 걷고 있지.”
스눕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본 나는 경호원들이 손님들에게서 총을 잠시 맡아두는 걸 확인했다.
“저 안에는 네 팬들도 많이 있어서 심심하진 않을 거야.”
“그런가요?”
“그래, 우리는 맨손으로 뭔가를 일궈낸 사나이를 좋아하거든.”
의미심장한 말이다.
아무래도 파티 중에 누군가 나에게 팬으로서 접근할 것이라는 말을 돌려서 한 듯했다.
그 말을 듣고 대답 없이 빙긋 웃은 나는 티파니를 에스코트하며 별장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맥센 저택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컸고, 건물 바로 옆에 있는 수영장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총 같은 건 가져오지 않은 우리는 그대로 경호원을 통과해 별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입이 떡 벌어졌다.
티파니 역시도 그랬다.
“이거, 진짜 호랑이겠죠?”
“……아마 그렇겠지.”
복층 구조에 내부가 고급스러운 나무로 꾸며진 것이 특징이었다.
산타클로스가 횡령을 하면 이만한 통나무집에서 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풍경이었다.
바닥에 깔린 호랑이 가죽 양탄자를 대표로 가구들이나 장식들도 모두가 엄청나게 비싸보였고.
준비된 음식들이나 술들도 죄다 눈이 돌아갈 정도로 엄청났다.
그 비싼 샴페인인 돔 페리뇽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처럼 쌓아올린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마냥 즐기고 있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곳곳에 있던 랩퍼들이 황당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 숙덕거렸는데, 그 목소리가 여기까지 다 들렸다.
딱히 경계하고 있는 걸 숨길 생각은 없다는 태도가 느껴졌다.
“뭐야, 저건.”
“아시아 놈이 여긴 왜 왔지?”
“옆에는 여자까지 끼고.”
시선이 마주치자 도리어 뭐 어쩔 거냐는 듯이 노려보는 그들.
그런 반응을 느낀 티파니가 오히려 나보다 더 기분 나빠했다.
“사람 처음 보나?”
“뭐, 나 같은 사람이 파티에 초대 받은 건 처음 보겠지.”
“……조금 전 스눕이 그러지 않았나요? 당신 팬이 많을 거라고.”
“그걸 믿었어?”
피식 웃은 나는 그렇게 딱히 좋지만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조용한 자리로 이동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굳어져 있던 분위기를 풀어내듯 조그마한 인영이 랩퍼들 사이로 달려 나왔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그 꼬마의 존재가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는 요소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시, 시……!!”
흥분해 얼굴이 새빨개져 내 앞에 선 것은 10대의 소녀였다.
검은 머리칼을 길게 길렀고, 연한 갈색 피부에 귀여운 인상.
티파니와 다른 랩퍼들 모두가 의하해 바라보고 있자니 소녀가 이윽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신 선수!!!”
자, 여기서 어떻게 할까.
모두가 이런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 소녀는 스눕-덕의 친척이자 그가 세상에서 가장 예뻐하고 있는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와 같은 스눕-덕의 랩퍼 친구들 사이에서도 조카처럼 예쁨을 받았고.
그런 소녀가 나의 팬이라는 건 굉장한 무기라는 말이었다.
메르시우스 바르나도.
줄여서 메르시.
WWF의 링네임은 사샤 징크스.
포 라이더스의 일원으로 업계에 변혁을 가져오는 프로레슬러.
‘여기서는 좀 아는 척을 해둘까.’
그 편이 좀 더 효과적일 듯했다.
나는 일단 이 소녀의 환상을 지켜주며…… 동시에 내가 원하는 걸 가져와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이 무서운 랩퍼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똑똑히 말하고 싶었고.
“메르시. 맞지?”
“어, 어어어어어, 어떻게 제 이름을?!”
“물론 알지. 많이 들었어.”
전생의 기억으로 말이다.
뭐, 스눕이 이 사실을 알아도 대충 술에 취해있을 때 횡설수설했다는 식으로 넘어가면 되겠지.
나는 손을 뻗었다.
더없이 황홀해하는 메르시와 악수를 나누고 그대로 젠틀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티파니가 말했던 것처럼, 일종의 이미지를 쌓는 셈이었다.
“내 팬이라고 들었는데.”
“어, 사실 신 선수는 2등…… 아, 아니, 죄송해요! 제가 갑자기 무슨 말을 한 건지……! 그래도 남자 선수 중에서는 가장 좋아해요!”
“하하, 괜찮아. 1등은 누군데?”
“리키타요! 리키타!”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시대의 소녀들이 리키타와 트리쉬 같은 여성 선수들을 보고 꿈을 키운 건 유명했다.
“이따가 전화해볼래?”
“저, 정말요?!”
“그럼.”
그렇게 말한 나는 뒤쪽에 서있는 티파니에게 눈빛을 보냈다.
사실 놀랍게도 나는 리키타 누님의 전화번호를 몰랐다.
……아니, 같이 일할 일이 없어서.
내 신호를 받은 티파니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메르시의 등장으로 이 파티장에서 단숨에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리키타를 넘어서 메르시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네.”
“시, 신도 리키타에 지지 않을 정도로 좋아해요!”
“그러면 다행이고.”
그리고 솔직히 말해, 생전에 나에게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았던 후배가 팬이 되어줘서 무척 기뻤다.
그 후, 메르시는 내 옆에 딱 달라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그녀는 티파니도 물론 알아보았고 인사를 나누었지만.
“티파니 맥센이라고 해.”
“아, 예…….”
슬쩍 악수를 나누더니 다시 내 옆에 찰싹 달라붙을 뿐이었다.
티파니는 뭔가 느꼈는지 미소를 지었으나, 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티파니도 나름 우리 업계에서는 슈퍼스타인데 반갑지 않나?
“애가 당신을 그냥 팬으로서 좋아하는 건 아닌 모양인데요.”
“……그럴 리가.”
“방금 좀 느껴졌어.”
티파니가 킥킥 웃었다.
거기에 의아해하자니 주변의 랩퍼들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군지 알아오라는 듯이 부하를 불러 명령을 내릴 때마다 별장의 분위기가 급속히 냉각되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또 메르시가 멋지게 내게 말을 걸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해냈다.
“저, 저기 이따가…….”
“응?”
“링, 봐줄래요?”
“링?”
“네, 저희 집에 링 있어요!”
“선수가 되고 싶은 거니?”
“되, 될 수 있다면요!”
“그래, 이따 가보자.”
그런 식이었다.
나는 경계를 하는 랩퍼들은 신경 쓰지 않고 그렇게 메르시와 대화를 나누며 서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뒷문으로 들어온 스눕-덕이 복층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좋아~. 다들 모였군.”
그렇게 파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