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마이크를 손에 쥔 스눕-덕은 파티에 참가한 이들의 시선 속에서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단, 다들 바쁜 와중에도 내 생일 파티에 와줘서 고마워.”
특유의 껄렁한 스웩과 함께 그는 모두에게 감사를 표했다.
“테이블도 있고 하니까 랩퍼들답게 자기 음악이 죽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와서 틀고.”
가벼운 농담에 듣고 있던 모든 랩퍼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
뒤를 이어 스눕-덕이 나를 가리키자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이곳의 흑인 랩퍼들은 자신들의 왕인 스눕의 초대를 받고 온 외부인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스눕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저 친구는 다들 누군지 모를 텐데……. 신이라고 하지. 잠깐 이쪽으로 좀 올라와봐.”
스눕이 날 불렀다.
머쓱해져 사양을 할까 했으나, 나는 이내 계단 위로 올라갔다.
스눕은 내 어깨에 손을 두르고 자랑스럽다는 듯 이야기했다.
“이봐, 친구. 자네가 얼마나 배드애스한 남잔지 말해줘.”
“……내가?”
처음 듣는 소린데.
“내가 말했잖아? 지난번 파티에서 술병을 깨고 그 위에서 팔씨름을 제안한 미친놈이 있다고.”
스눕의 말을 들은 랩퍼들이 그제야 내가 누군지 안 것 같았다.
……아까 분명히 메르시가 내가 누군지 대충 설명한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프로레슬러라고 생각을 하지는 못한 건가.
내가 약간 의아해하자 스눕이 조심스럽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내가 굳이 피부색에 관해 말하지는 않았는데……. 그래서 다들 그런 모양이야. 친구.”
“저라도 놀라겠는데요. 동양인에 이처럼 핫한 프로레슬러라니.”
“다들 바보들이라서 말이야.”
가볍게 낄낄거린 스눕이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뭐, 아무튼 꽤나 괜찮은 친구니까 배척하지 말고 이야기해봐.”
스눕의 소개가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데 도움이 된 듯했다.
다들 어깨에서 조금씩 힘을 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이었다.
“좋아, 다들 즐겨보자고!”
스눕-덕이 소리치자 턴테이블 앞에 있던 DJ가 음악을 틀었다.
그 노래를 기억해낸 나는 옆에서 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스눕을 보고 물었다.
“이거 이번에 나온 거죠?”
“그래, ‘뜨겁게 조져’라는 노랜데. 나름 잘 나가고 있지.”
“아주 좋은데요.”
그리고 그런 내 의견과는 별개로, 실제로 스눕-덕의 신곡은 엄청난 대박을 거두어들였다.
빌보트 차트 1위를 달성하고, 연말에 각종 시상식에서 수많은 상을 쓸어 담게 되는데.
특히나 흑백으로 나온 뮤직 비디오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
“힙합을 알아주다니. 고맙군.”
가볍게 웃은 스눕이 이어서 나에게 보드카 한 잔을 권했다.
“아직 뮤직비디오가 나오지 않은 것만 빼면 괜찮은 노래야.”
“어라, 아직 안 나왔어요?”
“뭔가 이렇다 싶은 게 아직 안 떠올라서 말이야.”
고개를 내젓는 스눕-덕.
물론, 그 문제의 뮤직비디오 내용을 미리 알고 있는 나는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저한테는 당신이 춤을 추고 있는 광경이 떠오르는데요?”
“내가?”
“예. C-walk라던가.”
“C-walk에 대해서도 안다고?”
“유명하잖아요?”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크릭스 갱단원들이 사용하는 특유의 춤을 C-walk라고 한다.
발로 C-R-I-C-K-S를 그리면서 가볍게 추는 동작인데.
전생에 내가 알고 있는 그 뮤직비디오에서 스눕은 C-walk를 추며 신나게 랩을 했다.
문제는 그것이 현재는 크릭스 갱단에게만 허용되는 동작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 인원들은 대부분 그 크릭스 소속이었다.
“그럼 어디 한번 볼까.”
“……제가요?”
“그래, 한번 멋지게 흔들어봐.”
“총 맞고 싶지는 않아서.”
“안 속는군.”
내가 가벼운 감정으로 C-walk를 말했는지 시험한 것 같았다.
잠시 구부정하게 서있던 스눕이 이어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발을 움직이며 서서히 C-walk를 밟아나가기 시작했다.
“이거 괜찮은데. 잘 맞아.”
“멋진데요.”
“그렇게 보여? 젠장, 투-샥이 알면 놀라 엎어지겠군. 내가 동양인 친구가 마음에 들다니.”
스눕은 내 아이디어가 마음에 드는지 계속해서 춤을 췄다.
거기에서 나는 몇 가지 기억을 더 떠올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로우라이더를 돌리는 거죠.”
“로우라이더? 어떻게.”
“이렇게요.”
나는 몸 앞에서 가볍게 핸들을 돌리는 동작을 취해보였다.
“호오, 꽤 괜찮은데.”
“헤이, 스눕!”
바로 그때, 복층 아래에서 놀고 있던 랩퍼 중 하나가 소리쳤다.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스눕-덕과 함께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거장이자 프로듀서로서의 능력은 가장 최고라고 평가를 받는 랩퍼, 닥터 드뤼에였다.
“이야기 끝났으면 내려와서 술이나 한잔하자고!”
“맨~. 너도 거기 있지 말고 올라와봐. 내가 방금 엄청난 이야기를 들었다고.”
“응?”
그 말에 술잔을 들고 있던 닥터 드뤼에가 계단 위로 올라왔다.
“뭔데 그래?”
“내 이번 노래. 뮤직 비디오에 이 춤을 넣으면 어떨까 해서.”
“C-walk? 제기랄, 왜 우리가 그 생각을 못했던 거지?”
“나도 못했어. 모든 건 바로 옆에 있는 이 친구가 한 거지.”
“와우…… 신이라고 했나?”
“예, 드뤼에 씨.”
“제기랄, 모양 빠지게. 그냥 드뤼에라고 불러. C-walk를 생각하다니 멋진 발상이로군.”
“같이 하자고!”
“맨, 내가 갱스터로 보이나?”
“하지만 N-이긴 하지.”
흑인끼리 서로를 친근감 있게 부르는 단어를 언급한 스눕-덕이 드뤼에의 팔을 잡아끌었다.
이 별장 안에서 최고라고 볼 수 있는 두 사람이 그렇게 춤을 추기 시작하자 모두가 관심을 보였다.
그런 분위기를 알아차린 나는 옆에서 계속 리듬을 타고 있던 스눕-덕을 툭툭 건드렸다.
“다들 추고 싶어 하는데요.”
“크릭스 놈들답군.”
싱긋 웃은 스눕과 드뤼에는 1층으로 내려가 계속 춤을 춰나갔다.
사실, 잘 나가는 랩퍼의 생일 파티라기에는 너무 건전(?)한 느낌이었으나,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파티에 수많은 랩퍼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소녀, 메르시가 껴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들 C-walk를 추면서 나름 즐거워하는 모습들이었다.
“삼촌, 너무 멋져!”
내가 위로 올라간 사이 잠시 지루해하던 메르시는 스눕-덕의 댄스를 보고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 말에 또 신이 난 스눕이 박자에 맞춰 신나게 춤을 췄다.
[Snoooooooppppp~~~!]
여자의 간드러지는 목소리에 맞춰 계속 C-walk를 타는 랩퍼들.
그러자니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온 티파니가 황당해하며 물었다.
“이게 뭐에요……?”
“악마 소환 의식.”
꽈악.
뺨을 꼬집혔다.
“……이번에 뮤직 비디오 내용이 고민이라고 해서 좀 떠오르는 이미지를 말했더니 이렇게 됐어.”
“당신, 이런 쪽에도 박식해요?”
“아니, 오히려 모르기 때문에 잘 아는 사람들이 짚어내지 못하는 당연한 걸 짚어내는 거지.”
그렇기에 무슨 일이든 차근차근 짚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전생에는 이 노래에 C-walk를 접목하자는 게 누구였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내가 되었다.
그 사실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무슨 소리래.”
기가 차다는 듯 웃은 티파니는 이내 음악을 즐기기 시작했다.
“노래 자체는 되게 좋네요. 이거 인기 많다고 듣기는 했어요.”
“연말에 상 좀 탈 것 같은데.”
“가사가 너무 저질이지만.”
“……엄, 그건.”
“‘네 목구멍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도 더 하얗지.’라니. 으…….”
“그거 치약 말하는 건데.”
꽈악.
“미안합니다. 노래 가사가 좀 저질인 것 같기는 해요.”
“거기 두 사람.”
바로 그때, 앞에서 춤을 추고 있던 스눕-덕이 우리를 불렀다.
“내 손님으로 왔으니 오늘만 크릭스가 되어보는 건 어때?”
“…….”
“어머, 그거 영광이네요.”
제안에 당황해 입을 다문 나와 달리 티파니는 넉살좋게 웃으며 랩퍼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모두가 그런 그녀를 환영했다.
사실 안에 들어올 때부터 다들 크게 티를 내지는 않았으나, 미인인 티파니를 신경 쓰는 듯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활달한 매력을 보이기 시작하자 티파니는 랩퍼들 사이에 섞여들었다.
“오오-!”
“언니, 이렇게 하는 거야.”
“이렇게요?”
“잘하는데?”
“같이 해보자고!”
어쨌든, 이로서 확실해졌다.
역시 랩퍼들의 파티인 만큼 이들은 음악을 즐길 줄 알았다.
“시, 신 선수! 같이 해요!”
결국 메르시의 초대를 받은 나까지도 오늘 하루 크릭스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엄마, 갱스터가 되서 미안해.
* * *
그렇게 새벽까지 이어진 파티가 끝나고 아침이 찾아왔다.
계속해서 춤을 추고 대화를 나누던 랩퍼들이 하나둘씩 아무 방이나 들어가서 곯아떨어졌다.
그런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은 나와 스눕은 가장 먼저 잠이 들었던 티파니와 메르시의 안전을 확인하고 바깥으로 잠시 나왔다.
2층의 테라스.
새벽 해가 하늘에 색을 입혔다.
약간의 취기와 피로를 느끼고 있던 나는 또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인 스눕을 놀라 바라보았다.
“그렇게나 피우면서 랩할 때 숨 차는 건 한 번도 못 본 것 같네요.”
“맨, 타고 나는 거야.”
낄낄 웃은 그가 아예 보드카 병을 입에 대고 들이부었다.
“너야말로 미쳤군. 랩퍼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다니 말이야.”
“……제가 그랬나요.”
“안에서는 티파니가 더 대단했지만 너는 바깥이 어울렸지.”
그가 수영장을 가리켰다.
“얼어붙은 밤에 수영을 하자고 하는 건 네가 처음일 거야.”
“제, 가 그랬나요.”
사실,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그런지 간밤의 기억이 좀 없었다.
“정말 대단했어. 저 수영장 물을 다 마시고 보드카로 가득 채워서 마시자고 제안하다니 말이야.”
“…….”
“메르시가 먼저 잠이 들어서 다행이야.”
“영웅의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는 거죠?”
“맞아. 하지만 난 네가 얼마나 멋진 놈인지를 알았지.”
말인즉슨, TV 속에서 표현되는 것 이상으로 내가 매력적인 인간이라는 것일까.
“가끔 일 없을 때 이렇게 만나서 마시자고. 괜찮지?”
“아니면 뭐……. 같이 일하고 끝난 뒤에 마셔도 괜찮고요.”
“흠?”
스눕이 눈썹을 치켜떴다.
방금까지와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그것을 느꼈는지 그는 보드카 병을 내려놓았다.
“무슨 이야기지?”
“뭐, 일이라기에는 너무 거창한가 싶기도 한데.”
나는 싱긋 웃었다.
분위기도 그렇고, 지금이 가장 말하기에 적절한 타이밍 같았다.
랩퍼들과 관계를 쌓아둔 것과는 별개로, 나는 확실하게 스눕-덕에게 도움을 받고 싶었다.
“저 곧 영화 개봉하거든요.”
“영화?”
“예, 시사회도 할 생각인데, 어떠세요? 그때 와주신다면…….”
“어떤 영화지?”
“공포 영화요.”
“흐음.”
생각 외로 스눕은 이야기를 곧장 받아들이지는 않는 듯했다.
고민에 빠져 있던 그가 내게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시사회를 한다면 극장 개봉작이라는 건데. 네 역할은?”
“주연입니다.”
“그래? 프로레슬러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공포 영화라…….”
턱을 두들기는 스눕.
“미안, 아무래도 이미지로 먹고 사는 직업이니 만큼 말이야.”
“이해합니다.”
“그런 행사에 갔다가 언로의 주목을 받고 괴짜 취급 받는 건 영 내키지가 않아서.”
“자유로운 게 당신이죠.”
“……알고 있었을 줄이야.”
“뭐, 대충 보입니다. 당신은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이미지가 매력적이죠.”
“맞아. 하지만 괴짜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선은 유지해야지.”
스눕이 빙그레 웃었다.
“난 대중들에게 허상을 만들어서 그들이 원하는 걸 보여주는 일을 하니까.”
그걸 랩으로 표현하는 게 스눕.
반대로 링 위에서 몸으로 표현하는 게 우리라는 말이었다.
거기에서 착안해 나는 그에게 한 가지 답을 제시할 수 있었다.
“친구의 첫 영화라 보러올 수밖에 없었다는 건 어떻습니까?”
“친구?”
“예, 거기다 그 친구가 요새 가장 핫한 동양인인 거죠.”
“동양인 친구라.”
“인종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괜찮은 놈은 누구든 만나는 것. 그게 바로 스눕-덕 아닙니까?”
나 역시 미소를 지었다.
우리 둘의 관계를 조금 더 과장해 보여준다면, 스눕-덕의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는 이미지를 쌓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제안.
“나쁘지 않군.”
스눕-덕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로서 헬-쏘우는 전생보다 훨씬 더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시작될 것이 분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