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159화 (159/634)

159.

“존 마이클스……?”

“이 사람밖에 없죠.”

의아해하는 세 사람의 앞에서 나는 설명을 계속 이어나갔다.

“선배님처럼 저 역시 킥 계통 기술을 자주 사용하니까요.”

더욱이 이번 레슬 임페리움에서 새로운 피니시 무브를 선보였다.

슈퍼 킥 + 러닝 니 콤보.

슈퍼 킥에 맞은 상대가 무릎을 꿇으면 달려가 러닝 니를 안면에 꽂아 넣는 기술이었다.

시각적인 효과만큼이나 그 위험성도 어마어마한 기술이었다.

“롱 팬츠를 입는 편이 좀 더 안전하게 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모두가 납득했다.

롱 팬츠를 입으면 킥 기술을 사용할 때의 안정성이 더 커진다.

행여나 타점이 어긋나더라도 날카로운 정강이뼈로 사람을 때리는 불상사를 방지해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롱 팬츠.

존경하는 선배에 대한 헌정도 담아 내 새로운 경기복은 이런 스타일로 가기로 정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마이클스가 파일 철을 촥촥 넘기더니 사진 하나를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독특한 스타일의 경기복을 입은 마이클스가 있었다.

경기복은 똑같은 롱 팬츠였으나 기존의 스판 재질이 아니었다.

“챕스로군요.”

그 옛날 황야의 카우보이들이 말을 탈 때 더러워지지 않도록 청바지 위에 덧입은 가죽 바지.

실제로 챕스를 입은 건 아니었으나 마이클스는 가죽 팬츠 위에 그런 스타일의 문양을 새겼다.

그는 설명을 시작했다.

“커리어 초창기에는 정말 챕스를 입고 나와서 시작 전에 벗는 퍼포먼스를 취했지만, 나중에는 경기복에 직접 문양을 넣었지.”

“둘 다 멋지셨죠.”

“너라면 이 카우보이 느낌도 어렵지 않게 소화할 것 같은데.”

그 말에 나는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내가 마이클스에게 카우보이로서의 이미지를 물려받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 같았다.

하지만 난 고개를 내저었다.

“확실히 멋있긴 하지만, 거기까지 간다면 선배님의 하위호환밖에 될 수 없겠죠.”

“그래?”

“예, 거기다 제 캐릭터는 종교적인 성향이 은근히 배여 있거든요.”

“과연.”

“카우보이까지 섞는 건…… 뭔가 좀 잡탕 같아지겠죠.”

링네임인 SIN부터가 그랬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열등감과 증오를 이 캐릭터에 녹여냈다.

그건 어느 정도 성공한 지금에 와서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미국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한 번 큰 실패를 맛본 나는,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 SIN을 만들어냈다.

인종 차별에 무감각했던 인간의 역사와, 이 업계의 인간들이 만들어낸 원죄와도 같은 남자.

“그게 제 캐릭터입니다.”

“아이러니하군. 악역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던 네가 이제는 선역으로서 가장 사랑받고 있다니.”

“생각해보면 참 대단해. 너라는 선수로 인해 사람들이 가진 편견과 인식이 박살 나고 있으니까.”

“80년대 후반에 그렉이 성공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요.”

그렉 역시도 선수로서 나와 같은 약점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바로 캐나다라는 출신지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더욱 ‘주인공은 미국인’이란 공식이 중요하다고 여겨진 시대였다.

하지만 그렉은 자신의 카리스마로 그것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딱히 미국인이 아니더라도 충분한 실력이 있다면 탑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죠.”

“……그건 아니지.”

“네?”

“탑 페이스로 선수 생활을 할 때 나는 캐나다인으로서 가진 정체성을 철저하게 숨겼거든.”

그렉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자신이 어디까지나 ‘백인 남성’을 대표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눈 가리고 아웅’ 할 수도 없는 내 활약은 대단하다고.

“너는 어쩌면 이 업계뿐만이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에 어떠한 화두를 던지는지도 모르겠어.”

“에이, 과찬이십니다.”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사실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도 너에게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었거든.”

그렉이 솔직하게 인정을 했다.

“오히려 한계가 있던 것은 내가 가진 시야였을지도 모르겠군.”

“우리 모두가 그렇죠. 선배. 그래서 이 녀석이 대단한 거고.”

나는 두 전설의 계속된 칭찬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러다 끝이 없을 것 같으니 일단 원래의 화제로 돌아가자.

“어쨌든 그렇습니다. 가죽 롱 팬츠에 위에는 원래 스타일대로 가죽 재킷을 입을까 싶거든요.”

“경기 중에 상의는 벗고?”

“넵.”

“괜찮군. 일단은 본사의 디자인팀에게 맡겨 보는 걸로 할까?”

“에이, 선배. 신도 이제 나름 급이 있는데 외주를 맡겨야죠!”

마이클스가 코웃음을 쳤다.

“흠, 그게 나으려나?”

“……굳이 그래야 하나요?”

“받아보면 다를 거다.”

그렉조차도 동의를 했다.

나는 약간 의아함을 느꼈다.

분명 메인 이벤터 급 선수들은 경기복을 만들 때 외부 디자이너들에게 외주를 맡긴다고 듣기는 했으나.

검소한 이미지가 있는 그렉까지 그럴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다.

그냥 내부에 맡기면 비용은 전부 회사가 처리해주는데.

그 정도로 특별하다는 걸까.

흥미가 생겼다.

“혹시 아는 디자이너가 있으시면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업계 최고라고 불리는 양반이 있지. 나중에 연락처를 주마.”

그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결론이 났다.

나는 옆에서 계속 우리 이야기를 경청하던 러셀을 돌아보았다.

“너도 같이 어때?”

“……나?”

“그래, 기왕 하트를 벗어나는 건데 구리다고 여겨지면 안 되지.”

“나도 그게 좋을 것 같구나.”

“음, 삼촌 생각도 그러시다면.”

동의한 러셀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는 일단 턴 힐 후에 ‘킹 오브 하트’라는 기믹을 밀고 싶습니다.”

“레볼루션과 함께 말이지.”

“네, 은퇴한 삼촌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오르겠다는 야망을 드러내면서 신과 대립하는 거죠.”

“헌터를 축출하면서 이미지를 쌓으면 그런 대로 괜찮겠지.”

“그런 야망을 드러내기 위해서, 전 일단 다른 세 사람하고는 다른 팬츠로 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한 러셀이 선택한 것은 드로어즈 스타일의 팬츠였다.

“이걸로요.”

오튼은 삼각, 나는 롱, 시나는 하프쯤 되니 확실히 남은 건 드로어즈 스타일 정도가 되겠지.

“거기에 입장할 때 가운을 입어서 화려함을 더 하면 어떨까요.”

“오, 괜찮을 것 같은데?”

“네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네.”

러셀이 빙긋 웃어 보였다.

아니, 확실히.

기존과는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악역으로서도 어울리는 화려한 복장일 것 같았다.

거기다 러셀, 이 녀석은 몸도 좋은 편이라서 그렇게 가운을 벗는 퍼포먼스로 몸을 강조해도 오히려 멋져 보일 테고 말이다.

“나머지는 어떻게 하게?”

“일단 패드는 다 차려고.”

“그것도 테크니컬한 느낌이 나면서 괜찮을 것 같네.”

“그렇게 느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내 의도대로군.”

한동안 디테일을 짠 우리는 곧바로 그렉이 알려준 디자이너에게 연락을 했다.

* * *

키이이이이이잉-!

러셀 하트의 음악이 울려 퍼지자 경기장 안에 있던 관객들이 엄청난 야유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Booooooooooooo-!]

버스 안의 소파에 앉아 있던 나는 우리가 예상한 그대로의 반응에 그만 씨익 웃고 말았다.

현재, 버닝콩은 미국 반대편에서 실시간으로 쇼가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영화 시사회에 가면서 그것을 확인하고 있었다.

오늘 신은 버닝콩에 출연하지 않을 예정……이었으나, 여전히 그 영향력 아래서 쇼가 진행되고 있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평범한 옷차림을 한 러셀이 링 위에 오르자 사람들이 내 이름을 경기장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여기서 어떻게 할 거냐.’

나는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말했던 러셀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저런 관객들의 반응을 무시하고 말을 잇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실제로, 러셀이 마이크를 쥐자 사람들의 야유는 훨씬 커졌다.

대사를 치지 못할 정도로.

그런 상황에서 나는 러셀의 다음 행동을 기대하며 바라보았다.

“하.”

그리고 웃음이 나왔다.

코너의 턴 버클 위로 올라간 러셀은 그대로 왼쪽과 아래로 뻗은 로프 위에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나는 감탄을 참지 못했다.

‘저렇게 나온다고?’

관객들은 순간 조용해졌다.

이전까지 러셀이 보여준 적이 없었던 행동. 그에 대한 의문이 야유에 대한 의지를 꺾어놓았다.

그리고 저들은, 저 행동을 통해서 한 남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존 마이클스였다.

거만한 악역이었던 그가 링 위에 올라서 하는 전매특허 동작.

그걸 그렉 하트의 조카인 러셀 하트가 따라서 하고 있었다.

그렉의 인정을 받은 신을 저격하는 행동이 분명했다.

[그렉 하트와 존 마이클스는 분명 커리어 초창기만 하더라도 사이좋은 선후배 사이였지.]

괜찮은 시작이었다.

[나와 신도 그랬어. 우리는 매번 싸웠지만 분명히 친구였지.]

[Boooooooooooo-!]

[왜들 그래? 내가 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하나? 놀랍게도 아니야. 오히려 난 배신을 당했지.]

나는 완전히 선전포고를 듣는 기분으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러셀 하트.

잘한다.

확실히 성장했다.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이야기하는 만큼, 그의 이야기는 더 깊이 있게 다가왔다.

[그 자식은 내 자리를 빼앗았어. 원래 내가 받았어야 할 영광스러운 스포트라이트를 가로채갔지.]

[You Suck! You Suck! You Suck! You Suck! You Suck!]

[나는 지금껏 올바른 목표를 가지고 분명하게 왔어. GCW에서의 영광이 그 사실을 증명하지.]

러셀은 이를 빠득 깨물었다.

[그럼에도, 내가 조금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박살 났더군.]

나는 그 누구보다도 그의 대사 하나하나에 몰입해 지켜보았다.

[멍청한 삼촌은 나도 이겼던 신에게 패배해 은퇴했고, 하트 패밀리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지.]

이제는 야유조차 끊어졌다.

러셀의 한마디 한마디가 관객들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했다.

[나는 그 권위를 바로 세울 거야. 놈이 빼앗아간 영광을 되찾고 하트의 시대를 다시 열겠어.]

마이크가 툭 떨어졌다.

러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릴라 포지션으로 퇴장했다.

관객들은 확실한 자신의 신념을 보여준 그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생각한 대로군.’

이 부킹이 맞았다.

러셀이 확실한 증오를 받는 악역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이해를 받아야 한다.

그가 누군지 알아야만 사람들이 몰입해서 이야기를 볼 테니까.

물론 여기에서 잘못했다간 러셀에게 공감해 그를 아예 선역 취급 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었다.

때문에 우리는 트리플H의 복귀와 축출이라는 카드를 준비했다.

러셀의 마이크워크 이후로도 버닝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몇 개의 경기가 이어지고 각각의 대립들이 점차 심화되었다.

다들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퀄리티였으나 깊이는 전혀 없었다.

심지어는 메인 챔피언 대립조차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데.’

일단 저쪽은 계속해서 나쁜 분위기가 이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복귀해서 분위기를 살렸어야 할 트리플H조차 계획이 현저하게 바뀌었으니.

아마 계속 반응 없는 무적 챔피언 실버백이 벨트를 가지고 날뛰는 식으로 진행될 듯했다.

다음 희생자(?)를 공격해 쓰러뜨린 실버백이 포효를 내질렀다.

그리고 잠깐의 광고 타임.

메인이벤트에서 트리플H가 복귀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러셀과 레볼루션 멤버들이 각본을 과연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난 그 과정을 기대했다.

그렇게 이어진 광고가 끝난 뒤, 다시금 버닝콩이 시작되었다.

화면이 경기장 전체를 비췄다.

[버닝콩으로 돌아왔습니다!]

해설자가 흥분해 소리친 직후, 녹색의 조명과 함께 한 남자의 음악이 경기장 안을 가득 채웠다.

[Time to play the game……!]

[Yeeeeeaaaaahhhhhh!!]

반년만의 복귀.

사람들은 트리플H라는 빅 네임의 귀환에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환호를 보내주었다.

그렇기에 그가 습격을 받고 턴 페이스를 하는 이후의 각본이 당위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잘 해달라고.’

나는 경기장 위로 올라가는 헌터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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