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관객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레볼루션은 본디 트리플H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스테이블이었다.
현재를 상징하는 트리플H.
과거를 상징하는 닉 플레어.
미래를 상징하는 랜스 오튼과 게이브 바티스타.
이렇게 네 남자가 이 업계에 일대의 혁명을 일으키겠다며 만든 것이 바로 레볼루션이었다.
[하지만 트리플H, 너는 그 약속을 저버리고 혼자 사라졌지.]
러셀은 그런 헌터의 죄(?)를 낱낱이 고하기 시작했다.
관객석은 충격에 빠졌다.
헌터의 복귀를 축하하기 위해 나온 레볼루션 멤버들이 그를 습격할 때도 그랬고.
더욱이 뒤이어 링으로 올라온 러셀이 마이크를 잡으며 그 충격은 수십 배가 되었다.
[알아, 알아. 네가 크게 다쳤다는 걸. 하지만 그 이후로 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지.]
탁월한 말 솜씨였다.
[그저 사라졌고, 덕분에 미래는 좀 더 빨리 현재가 되어야만 했어. 그 결과, 넌 필요가 없어졌지.]
[Boooo……!]
야유는 아주 희미했다.
충격에 빠진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못했다.
러셀 하트가 레볼루션에?
도대체 일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런 표정을 카메라가 생생하게 잡으며 방송이 계속 이어졌다.
[거기다 넌 그 머저리 같은 신에게 패배했지. 내 삼촌, 그렉 하트와 마찬가지로 말이야.]
[Boooooooo……!]
그렉 하트에 대한 언급에 야유가 한층 더 커지는 듯했으나.
[우리는 달라.]
러셀의 진지한 얼굴을 본 사람들은 다시금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걸 증명해주마.]
마이크가 툭 떨어졌다.
레볼루션의 멤버들이 바닥에 쓰러진 헌터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자신들의 의지를 보이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 대상으로서 그를 무자비하게 구타하기 시작했다.
‘못 봐주겠군.’
그 잔혹한 행동에 몰입한 나는 TV를 꺼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블러드 잡이 허용되어 헌터의 이마는 금방 피투성이가 되었다.
[Booooooooooooooooo……!]
이제 막 복귀한 헌터에게 쏟아지는 잔혹한 행위에 관객들이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시금 혁명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한 레볼루션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바티스타 밤과 R.K.O.
마지막으로 탑 턴버클에 올라간 러셀의 크레센트까지.
버닝콩은 완전히 실신한 헌터와 그 앞에 서있는 레볼루션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끝이 났다.
‘후우.’
나는 그제야 숨을 몰아쉬었다.
그야말로 엄청났다.
본래의 역사에서, 레볼루션은 바티스타를 띄워주며 끝이 났다.
하지만 헌터의 갑작스러운 부상 치료로 그 예정이 일그러지며 이게 어찌되려나 싶었었는데.
‘훨씬 낫군.’
이로써 모두가 승리했다.
또 다들 궁금해할 터였다.
축출된 헌터는 어떻게 될 것인가.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신은 어떤 식으로 행동할 것인가.
그리고 레볼루션은 앞으로 어떤 패악질을 부리고 다닐 것인가.
이게 바로 쇼였다.
흥미로운 화젯거리를 던지면서 사람들이 계속 궁금하게 만드는 것.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오늘 쇼는 거의 최고 중의 최고였다.
정작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는 나도 다음 주가 기대되어서 참을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새로운 경기복.
그리고 새로운 1년.
나는 계속 위로 올라간다.
* * *
그처럼 전생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일이 한 가지 더 존재했다.
바로 헬 쏘우였다.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매체 등에서 보이는 관심 자체가 전생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높았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현재 한창 이름값을 높이고 있는 내가 출연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스눕-덕이 시사회에 참가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2005년의 미국의 연예계에서 가장 핫한 남자 중 하나였다.
발표한 신곡도 잘 나가고, 모두가 그 행보를 주목하던 시점.
그랬던 그가 작은 영화의 시사회에 나온다고 하자 기자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모두 내가 설계한 대로였다.
작은 시사회장은 삽시간에 기자들로 가득 찼고, 그것을 본 제임스 관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이건 대체…….”
“이 인원이 모두 상영관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인데요.”
배우들도 긴장한 눈치였다.
헐리우드 자본도 들어가지 않은 작은 영화에 이처럼 많은 관심이 쏠리자 다들 놀란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촬영하는 동안 내내 나를 젠틀하게 대해준 조댕이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이게 좋은 건지 아닌지 모르겠군. 이렇게 되면 영화에는 아무런 관심이 안 쏠리는 게 아닐까?”
분위기가 약간 침울해졌다.
물론, 그 말이 맞았다.
이곳에 온 기자들은 영화가 아니라 스눕-덕과 나의 관계를 취재하기 위해 온 것에 가까웠다.
“그거면 충분하죠.”
“……응?”
“좋은 감독과 각본, 멋진 배우들과 촬영팀까지 해서 굉장한 영화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나는 싱긋 웃었다.
“우리 영화를 보고 나면 기자들은 저와 스눕 같은 건 안중에도 없을 겁니다. 대신 영화만을 기억하겠죠.”
나는 확신에 차 말했다.
결과물을 보고서 확신했다.
이 영화는 분명히 전생과 같이 엄청난 히트를 치게 될 터였다.
오히려 이번 시사회에서 큰 관심을 받아 개봉 초기에 상영관 확보를 더 많이 할 수도 있겠지.
내 말에 살짝 얼이 빠져 있던 배우들이 이내 피식 웃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군.”
희망을 바라는 희미한 대답.
그게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호러 영화는 특유의 테이스트로 인해 로맨스나 액션 블록버스터 같은 대중적인 장르는 아니었다.
마니아층이 많기 때문에 저예산으로 제작해서 치고 빠지기 쉽다고 여겨지는 것이 보통이지.
하지만 헬 쏘우는 그런 인식을 넘어섰다.
충격적인 반전과 철학을 가진 살인마, 트랩의 섬세한 묘사.
거기다 점점 목을 죄여오는 스릴러적인 전개까지 더해, 그야말로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분명히 잘될 겁니다.”
그렇게 관계자들을 독려한 나는 뒤를 이어 시사회장 안으로 들어오는 한 사내를 맞이했다.
바로 스눕-덕이었다.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었고, 플래시가 연달아 터졌다. 나는 제임스 관과 함께 그에게 다가갔다.
스눕-덕이 미소를 지었다.
“꽤나 몰려들었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친구’잖아?”
“그렇죠.”
악수를 나눈 나는 어깨를 움츠린 채 서있던 제임스를 소개했다.
“저희 감독님이십니다.”
“영화 잘 보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제이지라고 부르면 되요.”
“호오, 우리 쪽에도 제이지라는 사람이 하나 있기는 한데.”
뉴욕의 왕이라고 불리는 랩퍼를 입에 담는 스눕-덕.
그렇게 간단히 인사를 나누자 기자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스눕, 신과의 관계에 대해서 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두 분이 언제부터 서로를 알게 되신 건가요?”
역시나 기자들은 나와 스눕의 관계에 더 관심이 많았다.
영화는 이런 인터뷰를 위한 좋은 핑계로 여겨진 것이지.
하지만 여기에서 스눕은 재치 있게 그들의 질문을 거절했다.
“질문은 시사회가 끝난 다음에 하자고. 다들 그것 때문에 여기 온 게 아니었어?”
“그, 그건…….”
“난 먼저 들어가지.”
스눕-덕은 기자들을 무시하고 그대로 상영관으로 들어섰다.
얼이 빠져 있던 기자들은 여기까지 와서 인터뷰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따라 들어왔다.
시사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가볍게 무대 인사가 이어진 뒤, 시사회가 시작되었다.
자리가 없어 계단에 앉거나 뒤쪽에 서있는 기자들도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스눕의 바로 옆자리에 앉은 나는 내가 출연한 버전의 헬 쏘우를 보기 시작했다.
어딘지 모를 지하실.
욕조에 빠져 깨어나는 남자.
어두운 조명이 켜지고.
반대편에 다른 남자가 있다.
발목에는 쇠사슬이 묶였고.
두 사람의 손에는 각각 녹음기와 권총이 있다.
중간에는 시체가 있다.
여기에서 마지막까지 반전을 감추기 위해, 전생과는 달리 감독이 몇 가지 연출을 더 가미했다.
일단 바닥의 시체가 옷을 입고 특수 분장을 해 절대 나인 것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바꾸었다.
거기다 카메라의 각도를 절묘하게 비틀고 시체를 자리에 앉은 채 쓰러지도록 바꿔 키를 속였다.
내가 영화상에서 목소리를 낼 때도 변조를 심하게 해서 누군지 알아차릴 수 없게 바꾸었다.
거기에 매체에 나갈 출연자 명단에도 나는 카메오로 출연한다고 써서 반전을 최대한 감췄다.
관람객들은 바닥에 구겨져(?) 있는 시체가 나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병원 씬에서도 그랬다.
그 씬에서 직쏘는 침대의 환자 중 하나로 지나가듯이 등장했다.
나는 거기에서 전신 화상을 입고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은 환자로서 촬영을 끝마쳤다.
돼지 가면을 쓰고 나올 때도 다른 배우들이 굽이 높은 신발을 신어서 키 차이를 크게 줄였다.
마지막 반전을 생각해 그런 디테일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은 감독의 능력이 십분 발휘되었다.
독창적인 트랩이나 중간에 나오는 인형까지 더해 영화의 모든 게 사람들의 뇌리에 새겨졌다.
[제발……! 제발 그만둬!!]
[꺄아아아아악!!]
비명과 유혈이 낭자했다.
직쏘인 것처럼 나왔던 남자 간호사가 사실은 희생자였던 사실이 밝혀지고 반전이 드러났다.
내가 일어섰다.
영화 초반, 조댕의 환자로 나왔던 전신 화상을 입은 남자.
조댕은 그를 포기했고,
나는 얼굴에 붙인 살점을 떼며 일그러진 얼굴을 보여주었다.
특수 분장이었다.
모두가 숨을 삼켰다.
[이제야 좀 삶이 느껴지나?]
비참한 과거를 겪은 끝에 전신 화상을 입고 맛이 간 미치광이.
[게임은 끝났어!]
[안 돼애애애애애애애애!!]
희생자의 비명과 동시에 쾅! 하고 문이 닫히며 영화가 끝났다.
상영관 안은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이내 사람들이 하나둘씩 영화에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스눕-덕 역시도 영화를 보고는 큰 감명을 받은 듯했다.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땠어요?”
“……정말 놀랍군. 특히나 마지막 반전이 무척이나 훌륭했어.”
“그렇죠?”
“특히 살인마의 연기가 훌륭하더군. 광기에 빠진 눈빛과 발언에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어.”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넌 어디 나온 거야?”
“…………예?”
“영화 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제가 살인마였는데요.”
그 말을 들은 스눕-덕이 슬그머니 내게서 몸을 뺐다.
……전신 화상이 이와 같은 문제를 야기하게 될 줄은 또 몰랐군.
* * *
엠바고 기간이 끝난 뒤, 영화에 대한 온갖 기사들이 쏟아졌다.
예상대로 극찬이 이어졌다.
트랩과 살인마.
완벽한 구성.
마지막 결말까지.
거기에 추가로 내가 맡은 직쏘에 대한 연기도 호평이 이어졌다.
그다지 연기력이 드러날 만한 배역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직쏘를 맡은 배우의 얼굴을 감춘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필자가 가지고 있던 편견이 깨졌다.]
얼굴을 분장으로 감춰 내가 직쏘란 걸 조금 늦게 알아차리는 게 좋은 연출로 여겨진 모양이었다.
미국에서 스포츠 선수가 연기를 하는 건 아예 없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매체의 대부분은 어쨌든 혹평을 내리는데.
나의 경우에는 얼굴을 가리고 나와 오히려 그 편견을 피할 수 있었다.
스눕-덕이 시사회에 왔다는 사실은 다들 까맣게 잊고 영화에 대한 기사만이 연일 쏟아졌다.
[연기력 자체만으로는 첫 영화에 출연했던 더 팍보다 위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키에 잘생긴 얼굴, 조각 같은 몸을 타고난 그가 맡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배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걸 해냈다.]
모두가 극찬을 했다.
개중에서도 평론가 딱지가 붙은 양반들은 영화를 단순히 고문 포르노라면서 매도하기도 했으나.
대중들은 단순히 영화가 재미있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었다.
그렇게 전생과 달리 엄청난 주목 속에서 시작한 헬 쏘우는 초기 상영관을 두 배 넘게 확보했고.
며칠 뒤에는 거기에서 다섯 배가 넘어가, 그야말로 심상치 않은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제임스 관은 그것만으로도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좋아했지만, 사실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앞으로 이 영화는 내게 있어 큰 수익원이자, 연기력이 있음을 증명하는 포트폴리오로 쓰일 것이다.
모두가 노력해준 끝에 훌륭한 결과물을 손에 넣은 나는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