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그렇게 영화가 시작 첫 주부터 대박을 치기 시작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축하를 보냈다.
일단 가깝게는 같은 프로레슬링 업계에 속한 사람들이 그랬다.
현재 한창 WWF 유니버스 챔피언으로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시나가 가장 먼저 전화를 주었다.
[신~. 영화 죽여주던데?]
“고맙다. 넌 좀 어때?”
[말도 마. 요새 스케줄이 너무 바빠서 잘 시간조차 없어.]
“그게 메인 챔피언의 숙명이지.”
그래도 시나는 타고 난 강철 체력과 의지를 바탕으로 10년 넘게 그 위치를 유지했다.
어쨌든, 그처럼 바쁜 와중에도 내 영화를 봐주고 이렇게 전화를 해준 것이 좀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신. 넌 영화에서 무슨 역할로 나왔던 거야?]
“……내가 직쏘였어.”
[……!!!]
시나는 큰 충격에 빠진 듯했다.
이거, 예기치 못하게 영화의 두 번째 반전이 생긴 것 같았다.
그래도 그건 그만큼 내가 연기를 괜찮게 해냈다는 증거였다.
실제로 사람들은 영화에 너무 몰입해 ‘네가 직쏘인 줄 몰랐다.’거나, 내게서 직접 듣고는 시나처럼 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특히나 내가 전에 자문을 구했던 WWF의 프로레슬러, 카인은 그게 오히려 좋다고 이야기했다.
[영화에서 네가 어떤 역할로 나오는지 숨겼기 때문에 다들 연기력을 볼 수 있었던 거지.]
같은 B급 영화에 살인마 역할로 출연하기는 했지만, 우리 두 사람이 맞은 결과는 무척 달랐다.
카인은 WWF의 괴물로 출연했고, 이미지가 거기서 굳어졌지만.
영화의 흥행과 별개로 나는 조용히 연기자로서 가능성이 있다는 이미지 역시 쌓은 셈이었다.
스포츠의 인기가 높은 미국에서 선수들이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 왜, 농구 황제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마이키 조던이 애니메이션 캐릭터들과 함께 ‘스페이스 잭’이라는 영화에 나왔듯이 말이다.
그들이 출연하는 영화는 보통 선수의 이름값에 기대어 한탕을 노리고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정반대였다.
그런 사실을 정확히 알아차린 건 바로 현재 헐리우드에서 배우로 활동 중인 더 팍이었다.
그는 나를 축하해주면서 동시에 꽤나 의미심장한 질문을 해왔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해맑았다.
[영화 봤어! 멋지던데?!]
“감사합니다. 팍.”
[첫 번째 단추를 잘 꿰었군. 앞으로 커리어가 꽤 기대되는데. 선수 생활은 계속할 생각인가?]
“물론이죠. 현재 제게 있어 영화는 어디까지나 이름값을 높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니까요.”
[영화가 울겠군.]
“영화도 정말 매력적인 컨텐츠라고 생각하지만, 전 이미 프로레슬링에게 반했으니까요.”
나는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결국, 내가 이렇게 영화를 찍고 계속 외부 활동을 하는 이유는 모두 프로레슬링을 위함이었다.
나 자신이 충분히 상품성이 있는 남자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영화에서 날 보고 동질감을 느낀 사람들이 프로레슬링에도 흥미를 가졌으면 해서였다.
결국 내가 가진 매력을 최대한 보여줄 수 있는 게 그거니까.
[하하하, 어쨌든 정말 축하해. 관계자들도 꽤나 다시 보게 된 모양이야. 저번에 봤던 키무라가 네 연락처를 다급히 물어보던데.]
“……으, 으음.”
나는 남자를 채찍으로 때리는 것을 좋아한다던 키무라의 성향을 떠올리고 잠시 신음했다.
“아니, 그런데. 제가 영화에서 그렇게 멋진 연기력을 보여줬다고는 딱히 생각하지 않는데요.”
[스포츠 선수로서 그 정도면 괜찮게 한 편이지.]
“배우로서는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래.]
팍도 동의를 했다.
영화에서 내가 보여준 연기력은 사실 별거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이 정도로 호평과 관심을 받을 내용은 아니었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간단했다.
“……제게 화제성이 있는 거군요.”
[핫한 카드지.]
팍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 카드의 신선함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는 알 수 없는 거지. 그러니까 다음 계약에서 최대한 많이 당겨오도록 해.]
“……슬슬 외부 활동용 매니지라도 하나 계약하는 게 좋을까요.”
[그게 좋겠지. 소개해줄까? 내가 지금 있는 곳이 꽤 괜찮은데.]
“생각해보겠습니다.”
[하하하! 역시 좀 신기하다니까. 보통 내가 이런 제안을 하면 다들 좋다면서 넙죽 받아들이는데.]
“…….”
[뭔가 생각하는 게 있나?]
팍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했다.
“고민 중입니다.”
[그래, 만약에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연락해달라고.]
그렇게 팍과의 통화를 끝낸 나는 잠시 자리에 앉아 생각했다.
‘확실히 맞는 이야기군.’
지금 ‘신’이라는 배우는 헬 쏘우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꽤나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현재 배우로서의 내 몸값은 명확히 측정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헬 쏘우로 나오는 수익의 5퍼센트. 그게 내가 맺은 계약이었다.
전생의 헬 쏘우 수익을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75만 달러 정도.
헐리우드의 초특급 배우들에 비하면 별것 아닌 액수였으나 그렇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다음 영화가 중요했다.
최대한 몸값을 높이고, 좋은 영화를 선택해 헬 쏘우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야만 했다.
더 팍은 영화계로 넘어갈 당시 블록버스터의 주연 배우로서 550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지만.
그건 영화가 큰 자본이 들어간 데다 팍이 WWF에서 아이콘 급의 메가 스타여서 가능한 액수였다.
그 스타 파워는 확실했다.
잘생기고 호감형인 외모와 근육질의 몸매. 그는 제2의 루돌프 슈워제네거가 될 재목으로 평가 받으며 당시 엄청나게 떴다.
하지만 이후로는 똑같은 액션 영화만 찍으며 커리어가 살짝 하향세에 접어들었다.
그것을 현재는 슈워제네거의 전략처럼 ‘가족 영화’를 찍는다는 방식으로 극복하고 있는 상태.
하지만 나는 전혀 달랐다.
그때 당시의 더 팍처럼 압도적인 티켓 파워는 내게 없었다.
거기다 아직은 내가 팍처럼 헐리우드 액션 영화에 주연으로 나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왜냐고?
재키-창처럼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동양인이 블록버스터 무비의 주인공으로 미국을 대표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겠군.’
미국인의 대표로 나서 아무 생각 없이 총을 쏴서 거기에 맞는 모든 외국인을 죽이는 주인공.
그런 개새끼를 내가 할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일일 것 같았다.
물론 지금 당장은 그보다 영화 쪽 커리어를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 것인지를 정해야겠지만.
나는 곧바로 미국 서부에 있을 티파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이어지고, 레몬처럼 상큼한 목소리가 대답을 해왔다.
[응, 왜요?]
“일 이야기 들어온 거 없어?”
[아, 안 그래도 회사 쪽으로 문의가 몇 개 들어온 모양이라서 그걸 곧바로 제 쪽으로 돌렸죠.]
역시 멋진 일 처리였다.
회사, 다시 말해 내가 현재 소속된 WWF에 문의가 들어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이게 바트 선으로 넘어가면 괜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가 있다는 점이었다.
참 까다로운 인간이다.
자기가 만든 회사에 나처럼 재능 있는 선수가 계속 있기를 원하면서, 일정 선을 넘어 통제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은 싫어한다.
그렇다.
결국 내가 영화 쪽에서 커리어를 쌓는 것은, 이러나저러나 바트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었다.
프로레슬링 쪽은 이미 충분히 잘 나가고 있다. 그리고 바트가 느끼기에는 앞으로도 그럴 터였다.
그러므로 티파니가 중간에 보고가 올라가는 것을 일단 막은 것은 무척이나 멋진 행동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바트에게 제안을 하자고.”
[……어떤 제안이요?]
“당신이 나서서 매니지먼트 회사를 하나 차리는 거야. 이제 본격적으로 헐리우드와 M-TV에 도전장을 던져보자고.”
[흐음, 저는 지금 GCW 총괄을 맡고 있어서 괜찮을까 싶은데.]
“그게 어때서?”
[아버지라면 일 하나에만 집중하지 뭘 또 벌리느냐면서 그걸 핑계로 거절할 것 같거든요.]
“그쪽 관련해서 또 바트 맥센의 입맛에 맞춘 인재를 한 명 더 추천하면 되지 않겠어?”
[누구요?]
“폴 헤이건.”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것이라면 분명 바트도 매력적인 제안이라고 여길 터였다.
* * *
바트는 영화를 보지 않는다.
아니, 그뿐이랴.
그 노인네는 프로레슬링 이외의 컨텐츠를 전혀 즐기지 않는다.
오직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인형 놀이를 즐기고, 일을 계속 하는 일종의 정신이상자였다.
그런 바트를 설득하기 위해 나는 일단 극장표를 두 장 구했다.
그리고 초대했다.
‘영화나 보시죠.’
그 말에 바트는 거절하지 않고 순순히 내 초대에 응했다.
말인즉슨, 그가 이번 일련의 사건을 프로레슬링과 관련되어 있다고 느낀다는 이야기였다.
미주리 주州의 캔자스시티.
일부러 신경을 써서 조조 영화에 시 외곽의 영화관을 골랐건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헬 쏘우의 인기는 엄청나서 영화관은 벌써부터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고소한 팝콘 냄새가 참을 수 없어서, 캐러멜 팝콘을 사고 그 위에 초코볼을 한가득 뿌렸다.
그리고 도착한 바트 맥센에게 나는 팝콘을 건넸다.
“오셨군요.”
“……이건 뭐지?”
“저 대신 드셔주세요.”
난 못 먹는다.
다소 심기가 불편한 듯 보였던 바트는 그 말을 듣고 더 불편해하며 팝콘 상자를 낚아채갔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를 보았다.
티켓을 확인하던 직원이 날 알아보고는 비명을 지르려고 했다는 점만 빼면 무난하게 흘러갔다.
[꺄아아아악!!]
[제기랄! 이런 빌어먹을!!]
유혈이 낭자하는 상황에서도 바트는 묵묵히 팝콘을 씹어댔다.
‘대동맥을 콱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인간이로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몇 번 봤는지 모를 헬 쏘우를 감상했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이 나왔다.
[게임은 끝났어!!]
쾅-하고 문이 닫히며 이내 영화의 스탭 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침묵을 지키는 바트.
그 손가락이 팝콘 기름으로 범벅인 것을 보고 있자니, 사람들이 상영관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청소부가 들어와 청소를 시작했고 우리는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간을 보고 있었다.
나는 바트가 처음 꺼내는 말에서 의중을 짚어낼 생각이었다.
그 역시도 그럴 터였다.
하지만 이건 애초에 나에게 너무나도 유리한 게임이었다.
나는 전생을 포함해 지금 수십 년째 이 인간을 보고 있으니까.
그러니 알고 있다.
“저, 손님. 죄송하지만 다음 상영 시간 준비 때문에…….”
이 인간이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거란 사실을 말이다.
“10분만 늦추게.”
“예?”
“상영기에 문제가 생겼을 거야. ……내 말이 맞겠지?”
바트가 지폐 다발을 꺼내들었다.
그것을 건네자 직원은 환한 미소와 함께 뒤로 물러갔다.
자본주의 사회를 실감하자니 바트가 다리를 쭈욱 뻗었다.
그리고 바로 앞의 의자에 턱, 걸치고는 날 돌아보았다.
“추가 시간이 생겼군.”
“그러게요.”
“할 말 없나?”
“멋지죠? 이거 짬 내서 촬영하느라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다 가짜잖나.”
“우리도 가짜에요.”
“아니, 우리가 흘리는 피는 진짜지. 얼굴을 때리는 것도 진짜고. 150kg짜리 거구들이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도 모두가 진짜야.”
바트가 씨익 웃었다.
“단지 관객들은 그런 과정이 필터링된 것을 보고 있을 뿐.”
“재미있는 이야기군요.”
결국 링 위에서의 싸움과 모든 이야기는, 링 뒤에서 일어나는 일을 재구성한 것이라는 말인가.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자네와 나도 그렇지. 언젠가 링 위에서 한번 붙어야 할 텐데.”
“노인을 패는 취미는 없는데요.”
“날 왜 부른 거지?”
갑자기 이야기가 돌았다.
바트는 나를 정면으로 노려보면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이게 그의 방식이었다.
괜히 돌려가면서 분위기 잡는 게 아니라, 치졸할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
그렇기에 나는 그 반대로 행동해 그가 홧김에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열 받게 한 것이었다.
“티파니가 매니지먼트 회사를 하나 차리는 것은 어떨까요?”
“왜, 자네에게 필요해서?”
“그것도 그렇고. 기왕이면 그걸 돈이 될 만한 사업으로 발전시키면 좋잖아요?”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니 바트는 우리의 예상과 똑같은 대답을 들려주었다.
“GCW는 어쩌고.”
“폴 헤이건.”
나는 짧게 대답했다.
바트의 눈이 크게 뜨였다.
분명히 현재 백스테이지 내에서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폴은 바트에게 꽤나 눈엣가시로 여겨졌다.
하지만 티파니가 빠지면서 그걸 메꿀 명목으로 폴 헤이건을 GCW 총괄로 이적시킨다면?
바트도 좋고.
나는 더 좋다.
“그렇게 되면 가장 꼴 보기 싫은 두 사람이 당신 눈에서 사라지는 것 아닙니까? 앞으로도 재미있게 병정놀이할 수 있겠죠.”
“두 명이라고……?”
“예, 두 명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람은 폴 헤이건.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티파니 맥센이죠.”
그 말까지 들은 바트의 눈에 활기가 맴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