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162화 (162/634)

162.

“티파니라고?”

바트가 되물었다.

내 말을 이해했으면서 그런 식으로 시치미를 떼려는 셈이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군.”

“그렇습니까? 저는 꽤나 현실성 있는 이야기를 한다고 느끼는데.”

“어떤 의미에서?”

“전에 했던 이야기의 연장이죠. 만약 티파니에게 성공이라는 욕망이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난 가르치듯 이야기했다.

“그러면 그게 다른 곳에서 충족될 가능성을 시험해보자는 거죠.”

“자네는 그 아이의 신념을 믿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보스는 그렇게 느끼지 않잖습니까. 그러니까 당신에게는 이게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거죠.”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정말로 티파니가 당신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어디 한번 외부 사업에서 크게 돈을 벌도록 해보자 이겁니다.”

“……그게 성공할 거란 보장은?”

“제가 있잖습니까.”

“하, 이제는 그 오만함이 웃기지도 않는군.”

“남이 오만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자신감을 어디다 씁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바트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내가 최악의 적수로서 경계하는 건 이제 자네야. 티파니가 아니라.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나?”

“어……. 히틀러, 후세인과 제가 한 방에 있고 보스한테 총알이 세 발 든 권총이 있다면 저한테 세 발을 모두 쏠 거란 말이죠?”

“바로 그거지.”

바트가 씨익 웃었다.

“날 그딴 식으로 속여 넘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말게.”

“…….”

“티파니를 치워버린다고? 아니지. 오히려 지금 내게 가장 매력적일 제안은 자네가 영화계로 떠나서 영영 돌아오지 않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니까요.”

거기다 난 떠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허락하고 싶지가 않다는 거지. 성공해 후광을 등에 업고 돌아와서 내 등에 칼을 꽂으려는 그림이 뻔히 보여서 말이야.”

“당신이 한 발자국 물러난다면 우리는 서로 이길 수 있습니다.”

“아니, 나는 자네를 반드시 내 발 밑에 무릎 꿇리고 말 거야.”

바트가 차갑게 이야기했다.

“그러니 어디 한번 해보게. 나 역시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을 생각은 없으니 말이야.”

“…….”

“아, 그리고 이거.”

활짝 웃어 보인 바트가 다 먹은 팝콘 상자를 나에게 내밀었다.

아니, 정확히는 팝콘만 먹었고.

초코 볼은 완전히 남았다.

“나는 초코 볼을 싫어해서. 자네가 좀 먹어주지 않겠나?”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이런 게 사람들 앞에서 밝힐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 않나.”

“……?”

“내 기호이지만, 이걸 확실하게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인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나는 그만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그래 뭐.

자신과 색깔이 다른 초코 볼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차라리 노란 캐러멜일 때 그런 이야기를 하던가.’

어차피 같은 유색인종이란 걸까.

바트가 가진 편협함이 느껴져 나는 한동안 통 속의 초코 볼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 * *

LA의 공연장 겸 술집.

밴드의 반응은 처참했다.

키유우우웅.

그 의도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음악과 미지근한 맥주, 토사물이 찌든 냄새에 티파니 맥센은 참지 못하고 담배를 하나 물었다.

불을 붙여 역겨운 냄새를 중화시키고 있자니 무대 위의 보컬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난 널 죽일 거야. 그게 나의 사랑이야. 우리 삶이 방황이야. 다함께 죽는 거야. 망가지는 거야.]

우엑, 재수.

그 의도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듣자하니 얼터너티브 록하고 비슷한 계통 같기는 한데.

‘니르바나’ 같은 위대한 밴드의 카피 캣조차 되지 못하는 웬 이모(Emo) 키드들처럼 느껴졌다.

대부분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그냥 술에 취했거나 술값이 싸서 자리에 앉아있을 뿐.

그런 와중 샤넬의 흰색 바지 정장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티파니의 모습은 정말 이질적이었다.

현재 연주를 하고 있는 밴드의 멤버들도 그런 그녀의 모습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다.

쫙 빼입은 옷.

스타일리시한 모습.

분명히 어딘가 뮤직 레코드에서 나온 인물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에 이 쓰레기 같은 동네에서 벗어나 성공하기 위해, 그들은 최선의 연주를 했다.

그리고 그게 최악이 되었다.

온갖 악기들이 자기가 주목을 받고자 나서 하모니가 깨졌다.

미지근한 맥주도 최악이라서 티파니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갔다.

어차피 그녀가 명함을 건네주려는 것은 한 사람 뿐인데 말이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작은 공연장에서 노래를 하고 있는 친구들은 최악이었다.

[널 사랑의 포로로 만들어! 우리 함께 세계로 도망쳐! 힘을 써!]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고.

[나의 삶을 해쳐줘! 너만이 날 구원할 수 있어! 내 머리에 쏴!]

문법도 엉망진창이었다.

몇몇 ‘빠순이’들이 무대 옆에서 비명을 질러대고 있을 뿐. 아무도 거기에 반응해주지 않았다.

“후우.”

한숨을 내쉰 티파니는 과연 명함을 줘도 괜찮을까 고민했다.

신에게 배웠듯, 그녀는 매사 일을 처리할 때 그의 말을 전폭적으로 신용하지 않았다.

자신 역시도 충분히 생각을 하고 과연 이게 맞을 것인가 생각하고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액플에 투자를 하자는 말을 들었을 때도, CEO와 만나보고 생각을 들은 뒤 투자를 결정했다.

그때는 확실히 이 사람은 비전이 있구나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은 영 아니었다.

아직 10대로 보이는 꼬마들은 무대에서 술을 마시고 허세를 부리며 고성방가를 벌여댔다.

자리에서 일어난 티파니는 바 카운터로 가서 한 잔 더 주문했다.

“맥주?”

“……가장 독한 걸로.”

그렇게 해서 받은 술을 홀짝거리며 자리로 돌아오자니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워어-우에에우어아아앗-!]

무대 아래로 내려온 보컬이 그녀의 테이블 앞에서 마음껏 목청을 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망사로 된 티셔츠를 입고 지저분하게 기른 금발에 어떻게든 퇴폐미를 과시해보려는 그 모습.

티파니가 보기에는 완전히 꼬맹이의 발악으로 느껴졌으나.

빠순이들과 자신의 작은 사회 안에서 그는 거의 타천사와 같은 이미지인 것 같았다.

“…….”

거기다 보컬은 티파니가 자리에 앉자 그 손을 반쯤 억지로 가져가 세레나데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의 이해자! 선구자! 삶의 희망이자 서큐버스여어어우우어!]

“…….”

서큐버스고 나발이고.

빠순이들이 보내는 증오가 느껴졌으나,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기타와 베이스까지 내려와 아예 무대 앞을 점거해버리고 말았다.

‘상황 참 거지같네.’

티파니는 술을 물처럼 마셨다.

하지만 개중에도 한 명만큼은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키보드를 치고 있는 소년.

마이크가 앞에 있는 걸로 봐서 노래 역시도 하는 것 같았다.

그가 바로 신이 계약을 진행하자고 말한 사람 중 하나였다.

소니 존 루어.

알아보니 무척 기구했다.

현재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는 점은 티파니와 같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을 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이었다.

‘따돌림이려나.’

어디까지나 예상이었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티파니는 신의 선택이 다소 의아하게 느껴졌다.

무명 중의 무명.

세상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저 소년을 신이 바로 점찍는다고?

거기다 웃기는 건, 바로 저 친구가 현재 신이 사용하고 있는 입장 음악을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소니 존 루어.

A.K.A. 스컬렉스.

그 노래는 완성도가 높아,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서 GCW의 음향 팀장에게 물어봤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답변은 둘이서 공동으로 작업한 노래라는 것.

거기다 메인으로 올라가면서 한 번 더 수정을 거쳐 신의 테마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원본이 궁금해져 찾아서 들었더니 그건 영 알기 어려워서 티파니는 약간의 망설임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피어오르는 흥미도 있기는 했다.

분명히 제대로 된 음악의 베이스가 있기 때문에 그런 멋진 곡이 완성된 것이기는 했으니까.

따라서 부르기 좋은 그 멜로디는 분명 스컬렉스가 만들어서 보낸 원곡에도 남아있었다.

독한 술을 양껏 비워낸 티파니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함을 쥐고 있는 그녀를 보고 소년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하지만 티파니는 그들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무대 위로 올라가 원래 계획대로 행동했다.

“……?”

“연락 줘요.”

긴 검은 머리의 소년은 자신의 앞에 내밀어진 명함을 보고는 안색이 창백하게 물들었다.

그러더니 이내, 키보드를 놔두고 무대 위에서 도망치고 말았다.

“…….”

어안이 벙벙해져 뒤를 돌아본 티파니는 생각했다.

대체 뭐하는 놈이지?

* * *

미국에는 흑인이 수박과 치킨을 좋아한다는 편견이 존재했다.

동부의 왕이라 불리는 랩퍼, 제이지(Jay-G)는 훗날 발매할 노래, ‘Story Of O.Z.’에서 퍼포먼스에 이와 같은 편견을 사용했다.

수박을 우물우물 씹고는 씨를 투투툭, 뱉는 것이었다.

그건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런 해석도 존재했다.

수박은 지구고.

붉은 피를 가진 게 사람이다.

하지만 너희들은 검은 수박씨처럼 흑인들을 뱉어내지 않느냐.

그게 바로 미국 사회에 그가 던지는 메시지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뭐, 물론 그건 너무 나간 해석이라는 평이 중론이었지만.

어쨌거나 당시 한창 실패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던 나는 거기에 큰 감명을 받는 동시에 깊은 고독을 느껴야만 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은 저렇게 우리를 대변해줄 사람도 없구나.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당시에 나는 뉴튜브에 올라온 그 영상을 보며 엉엉 울음을 터뜨렸었다.

한인들이 미국에서 뭉치는 이유도 어쩌면 거기에 있는 셈이었다.

우리는 대변자가 없으니까.

우리는 이방인이었다.

“…….”

문득 그때의 기억이 좀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병원비로 집까지 팔았던 나는 시체 썩은 내와 총알 자국이 난 모텔 방에서 한참을 울었다.

누구에게 구해달라고 소리를 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내 삶에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질 때까지 자포자기한 채 살았었다.

‘그랬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난 절절히 깨닫고 있었다.

자신을 구원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이어야만 한다.

때문에 나는 찾아온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민자들의 국가.

인종의 용광로.

하지만 실상은 차별의 나라.

그곳에서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성공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맡겨둔 모든 일이 생각처럼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계약을 추진하라고 부탁하고 얼마 후, 티파니에게 전화가 왔다.

[도망쳤어요.]

“뭐?”

[명함을 주려고 했더니 도망쳤어요. 집에 찾아가봤더니 부모님이 샷건을 들고 미국은 스스로를 보호할 권리가 있는 국가라던데.]

“…….”

[그래서 일단 밴드 리더한테 명함을 줬더니 밤에 전화가 와서 지금 뭐 입고 있냐면서…….]

“그 개새끼 이름이 뭔데.”

[어머, 질투해주는 거야? 신경 쓰지 마세요. 이런 거 처리해주는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해뒀으니까.]

“뭘 처리해?”

[그런 게 있어요. 아마 내일쯤이면 울면서 ‘누나, 제가 잘못했어요.’라고 전화가 오겠죠.]

“…….”

어떤 사람들인지 대충 짐작이 갔지만 더 묻지 않는 게 낫겠군.

[어쨌든 명함 쪽으로 연락 받기는 힘들 거 같아서 GCW랑 일할 때 쓴 메일로 제의 보냈어요.]

“그럼 답변이 오겠지.”

[예, 답변 오면 다시 연락드릴 게요. ……어라, 바로 왔는데.]

“그래? 바로 진행해줘.”

[알겠, 어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니, 얼굴을 절대 보지 않고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는 조건이라면 어떻게든 해보겠다는데.]

“…….”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저런 친구가 대체 어떻게 밴드에서 키보드를 치는 거고.

거기에 5년쯤 뒤에는 대체 어떻게 수만 명이 모인 공연장에서 디제잉을 하는 걸까 싶었다.

[그리고 스눕-덕에게서 일 하나 같이 하자고 연락이 왔어요.]

“스눕이?”

[예, 자기 이번에 만들 뮤직 비디오에 출연해달라고 하던데.]

“……일 복이 터졌군.”

[그러게요. 일단은 버닝콩 스케줄부터 소화해야 하죠?]

“응, 이제 출발해야지.”

나는 슬슬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말했다.

일단은 또 일주일간 준비한 각본을 멋지게 소화할 때였다.

러셀의 턴 힐과 레볼루션 가입.

그리고 오늘은 그들에 맞서 나와 헌터가 연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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