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165화 (165/634)

165.

여기서는 일단 상대의 의중을 먼저 파악해둬야 할 때였다.

티파니는 스눕-덕을 똑바로 바라보며 가볍게 시치미를 뗐다.

“아직 어린 친구 아닌가요?”

“……그래서?”

“확실히 해두고 싶어서죠. 이게 혹시 자존심 문제인가 해서.”

“그런 것 같나?”

“물론이죠.”

티파니는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에이전시로서 저희가 못할 짓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데요.”

티파니의 생각은 그랬다.

스눕-덕이 지금 문제를 재기한 랩퍼는 아직 그 어디와도 계약을 맺지 않은 프리 신분이었다.

다만 L.A. 출신에다가 이번에 스눕-덕의 레이블에 소속된 한 랩퍼의 노래에 피처링을 했기에 그걸로 지금 걸고넘어지는 거지.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의중을 파악해두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스눕-덕이 대체 무엇을 원하고 여기에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절대로 레슬링 교사를 소개받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업무적 이야기도 잘 진행되고 있던 시점에서 이게 뭔가 싶었던 티파니는 당혹감을 애써 억눌렀다.

스눕-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그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이건 자존심 문제지. 우리 구역에서 일할 계획이 분명했던 애송이를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빼앗아가는 거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 친구에게 계약을 제시한 걸 철회해줘. 그거라면 좀 금이 간 상태에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그런가요?”

“그리고 성의를 보여줬으면 하는데. 금이 간 우정에 대한 대가로서……. 우리 메르시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 거야.”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였다.

마피아의 협상과도 같았다.

아, 스눕-덕은 확실히 크릭스 소속의 갱이었으니 이런 식의 거래도 예상을 해두었어야 했나.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쪽의 행동이 살짝 선을 넘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스눕-덕이 그것을 지적하고 정당한 거래를 요구했다면 티파니는 분명히 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좋게 구는 대신 모든 걸 가져가려고 했다.

양아치의 방식이다.

그러므로 거기에 맞춰주는 건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

티파니 맥센은 사업가였기에.

그녀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해야 할 것은 어떻게든 스눕-덕에게서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한 번 얕보이면 끝까지 그렇게 될 테니까.

“제가 그 멋진 제안을 거절한다면 어떻게 되죠?”

“그간 우리가 쌓아온 우정은 끝나고, 대가를 치러야겠지.”

“무서운데요.”

“난 진심이야.”

스눕-덕의 눈이 빛났다.

“내 영역을 건드리는 건 못 참아.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지.”

“이건 어떨까요?”

티파니는 대안을 제시했다.

“저희가 그 친구를 스눕 당신에게서 정당하게 구매하는 거죠.”

“돈으로?”

“지불 방법은 당신이 정하세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쪽 심기를 거스르려고 한 행동은 아니에요.”

티파니는 부드럽게 웃었다.

“제가 그 친구 랩하는 걸 보고 반했거든요. 그래서 조금 생각을 않고 진행한 감이 있네요.”

사실 신의 요구였으나 그녀는 그런 식으로 스눕-덕의 비위를 살짝 맞춰주었다.

어쨌든 사장은 자신.

선택도 스스로 했으므로, 책임 역시 져야하는 것이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이 친구를 데려갈 이유가 있을까?”

“신생 에이전시인 저희는 아무래도 신인이 필요하거든요.”

티파니 맥센은 바트나 신과 달리 일을 최대한 온건한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렇기에 일단 짜증이 나더라도 일단 넘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듣던 스눕-덕은 천천히 담배를 하나 빼물었다.

“괜찮을까?”

“물론이죠.”

티파니는 새것으로 준비해둔 재떨이를 꺼내 그 앞에 두었다.

천천히 불을 붙인 스눕-덕은 길게 연기를 삼킨 뒤 내뱉으며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그 친구도 영입했다면서.”

“누구요?”

“릴 베인.”

남부 출신의 신인 랩퍼.

그 외에도 티파니의 신생 에이전시는 주로 신인이나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음악가들과 계약을 맺으려 하고 있었다.

그 대부분이 신의 선택이었지만, 스눕-덕이 보기에는 다소 의아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었다.

뿐만 아니라 서부의 랩퍼까지 손을 뻗어 살짝 화가 났는데.

티파니의 부드러운 언변과 함께 니코틴이 충전되자 그는 자신이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일단, 사과를 하지.”

“아니에요. 제가 생각해도 충분히 화가 나실 법 했는걸요.”

티파니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그렇게 거짓말을 했다.

“……대가에 관해서는 나도 최대한 맞춰보겠어.”

“예, 하지만 그 일이 서류로 남지 않았으면 하는군요.”

“그래야만 에이전시로서 신용이 쌓이기 때문인가?”

“그런 셈이죠.”

너스레를 떤 티파니는 그대로 스눕-덕과 가볍게 악수를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가볍게 잡담을 나누었다.

“그나저나 그 친구, 아직 부족한 편인데 어디에 반한 거야?”

“미래를 봤다고 해야 할까요.”

“랩 네임도 이상해. 차라리 낙타로 하던가 라마가 뭐야. 라마가.”

낄낄 웃은 스눕-덕은 그대로 티파니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자신의 마음을 굳혔다.

아무리 그래도 첸드릭 라마라니.

너무 이상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그는 정말로 모르고 있었다.

그 첸드릭 라마는 5년도 지나지 않아 미국 힙합계를 그야말로 씹어 먹을 정도로 성장했으니까.

* * *

티파니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경기가 끝난 뒤, 캠핑 버스를 통해서 이동하던 중이었다.

[죽는 줄 알았어요.]

“……무슨 일 있었어?”

그렇게 우는 소리를 낸 그녀는 나에게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낱낱이 털어놓기 시작했다.

“스눕이?”

[예, 그거 달래서 돌려보내느라 정말 죽는 줄 알았다고요.]

“고생 많았겠네.”

[……그럼 뽀뽀해줘.]

“뭐?”

[빨리.]

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오튼과 러셀은 한창 게임에 빠져 있어, 나는 ‘에이씨.’ 하며 핸드폰에 대고 그런 시늉을 했다.

“……이제 됐나?”

[응, 힘이 나는데.]

킥킥거리며 웃는 티파니.

제기랄.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다.

[어쨌든, 첸드릭 라마 그 친구와의 계약은 이제 좀 더 적극적으로 진행해볼 생각이에요.]

“그거 다행이군.”

[릴 베인은 계약을 마쳤고 스컬렉스 그 친구나, 아니면 그때 말했던 영국 밴드 있잖아요?]

“콜트 플레이?”

[예, 그쪽의 미국 진출을 돕기로 했어요. 음, 그리고 또…….]

“이델은 어떤데?”

[영국 가수라고 하셨죠?]

“그래, 여성인데.”

[찾아보니까 없던데.]

“그래?”

아직 데뷔하지 않았던가.

이쪽은 그렇게까지 기억이 완벽하지 않아서 틀렸구나 싶었다.

조금 전 티파니가 언급한 가수들은 모두 몇 년 안에 미국 내에서 그야말로 초대박을 쳤다.

릴 베인, 스컬렉스, 첸드릭 라마, 콜트 플레이, 이델, 브루노 마르스, 리아나, 제이 제시, 아리나 그란데, 크리스 브라움까지.

나는 전생에 여행에 여행을 거듭하며 들었던 수많은 노래를 부른 가수들을 기억해냈고.

그 리스트를 모조리 티파니에게 보내 계약을 부탁했다.

물론, 거기에서 현재에도 엄청난 슈퍼스타인 비용세 같은 인물은 모조리 빼버렸다.

우리는 당장은 아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스타가 될 이들과 계약을 진행해야만 했다.

미래를 위해서 지금 액플이라는 회사에 투자한 것과 똑같았다.

그렇게 가수를 키워내고 회사의 가치를 단숨에 올려 바트 맥센에게 대항할 수 있는 패를 만든다.

그게 우리의 계획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이 개입할 여지가 비교적 적은 ‘배우’들은 티파니에게 완전히 일임했다.

음악은 사람들이 선택해서 듣지만 배우는 그럴 여지가 적어 대박을 노리는 것이 힘들거든.

[어떻게 할까요?]

“일단 계약이 되는 것만 진행해줘. 내가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있는데 뭔가 잘못 했나봐.”

[……지금 ‘어디서 들었다’는 희미한 기억을 바탕으로 이들과 계약을 진행하는 것은 아니죠?]

“아니 뭐, 노래를 듣고 가능성이 꽤나 있어보여서 제안한 거지.”

[다행히 이번에 계약한 프로듀서들도 샘플을 들어보고는 상품성을 기대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지?”

나는 씨익 웃었다.

우리 회사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프로듀서들을 통해 음악적으로 아티스트들을 도울 예정이었다.

거기에서 또 계약을 맺은 것이, 내가 선수로 은퇴하고 프로듀서로 일할 때 알게 된 이들이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이번 사업의 성공을 위해 내가 알고 있던 전생의 지식을 총동원했다.

현재 바트 맥센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5,537만 4천 주 가량.

자산으로 환산했을 때 약 20억 달러. 주식 전체 비율로 따졌을 때는 60퍼센트가 넘는 수치.

거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그만한 돈이 필요한 법이었다.

‘나와 티파니가 보유하고 있는 총 자산을 다 합쳐봤자 천만 달러를 넘을까 말까 한데.’

바트는 보유한 주식으로만 20억 달러니까……. 그야말로 구역질이 나올 정도의 격차였다.

하지만 분명히, 사업이 제대로 전개되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쫓아갈 수 있는 수치가 아닐까.

[그럼, 앞으로 계약이 진행되는 대로 계속 연락을 줄게요.]

“부탁할게.”

[저야말로.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에이전시 이름 듣더니 스눕이 막 웃던데요.]

“왜?”

[속내를 뻔히 들켜서?]

“…….”

Star&Talent Agency.

줄여서 S&T 에이전시.

[SIN&Tiffany인 거, 사람들이 절대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했어?”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이 에이전시가 우리를 대변한다고 생각해, 네이밍 자체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티파니와 농담 몇 마디를 주고받은 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고는 뒤로 돌아섰다.

‘일단은 나도 스눕-덕하고 이야기를 해두는 게 좋겠군.’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잠시 굳어졌다.

“…….”

“이열~.”

“결혼은 언제 할 거야?”

“언제부터 들었냐.”

“쪽쪽부터. 야, 대단한데. 아무리 서로 좋아해도 전화기에 대고 그런다고? 이여얼~~.”

오튼의 놀림에 나는 망설임 없이 옆에 있던 아령을 집어 들었다.

러셀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녀석의 머리가 움푹 들어갔을 것이다.

* * *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내 다음 스케줄이 스눕-덕과의 뮤직 비디오 촬영이었다.

준비된 스튜디오에 도착하자 벽과 천장, 바닥에 온통 새하얀 벽지를 바른 것이 꽤 눈에 띄었다.

‘이런 느낌이었군.’

흑백으로 된 영상의 대비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배경을 하얀색으로 사용했다고 들었다.

거기에 출연자들도 옷을 흑백으로 입어 특유의 분위기를 살렸지.

그 아이디어를 이번 생에는 내가 제시한 것이 되었고.

‘따라서 뮤직 비디오에 출연하는 게 이상한 그림은 아니긴 한데.’

지난번의 일 때문인지 스눕-덕을 만나는 게 좀 신경이 쓰였다.

그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

약간 의식하며 만난 스눕-덕은 뜻밖에도 이전의 일을 무시하지도, 불쾌함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쿨하게 인정했다.

“내가 실수를 좀 했군.”

“아뇨, 저희야말로.”

“티파니의 이야기를 들으니 알겠더군. 이건 비즈니스야. 굳이 강한 면을 드러낼 이유는 없지.”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그가 이내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쪽이 대가를 지불하는 만큼 나 역시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도와주도록 하지.”

“그래주신다면야 우리 사이의 ‘거래’로서 성사가 되겠죠.”

나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사실, 방금까지는 우리가 스눕-덕의 억지를 들어준 것이었지만. 이로서 나름대로 거래의 구색을 갖추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그는 음악계에 큰 인맥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우리 쪽 아티스트들이 외부로 나가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스눕-덕도 아직 자신과 계약조차 하지 않은 신인을 내주면서 이득을 챙길 수 있다면 좋은 거래라고 생각하는 듯하고 말이다.

‘문제는 그 꼬마가 5년 안에 엄청난 거물로 성장한다는 거지만.’

그런 진심을 감춘 채 나는 다시금 그와의 우정을 공고히 했다.

적어도 첸드릭 라마가 뜨기 전까지는 이 관계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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