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166화 (166/634)

166.

“그래?”

바트 맥센은 눈썹을 치켜떴다.

“그 녀석이 딴따라 놈의 뮤직 비디오에 출연했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이후로는 어떤가?”

“딱히 공식 스케줄은 없는 것 같고 뉴욕에서 아가씨와 시간을 보내셨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티파니와?”

“예, 맨해튼의 미드타운에 에이전시 사무실이 있는 모양이더군요.”

“못 보는 사이 허세만 늘었군. 거기는 맥더날드가 다른 곳보다 가격을 더 비싸게 받을 정돈데.”

“확실히, 신생 에이전시가 빌리기에는 너무 비싼 곳이죠.”

“이 회사의 이름값을 과용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런 감각이 떨어지는 건가.”

바트 맥센은 눈썹을 찡그렸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딸이라면 몰라도 그 개자식이 그걸 그대로 둘 리가 없었다.

바트 맥센은 알 수 있었다.

그 젊은 놈은 보통내기가 아니다. 어디서 배워온 건지는 몰라도 인생을 한 번 더 살기라도 하는 듯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맨해튼에 회사를 설립하는 걸 알았다면 그냥 놔두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지.

그 이유가 뭘까?

페이퍼 컴퍼니?

뭘 위해서?

놈들의 행동은 예상하고 있다.

WWF는 어디까지나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그렇기에 영향력이라는 요소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선수 스스로의 이름 값.

거기에 그 뒤를 봐주는 사람이 가진 힘까지도.

따라서 그들이 헐리우드에서 힘을 쌓고 돌아오리라고 예상했고, 그에 대한 대비도 해두었다.

그러는 한편,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입이 무겁고 오래 알아온 친구에게 주문을 한 것인데.

“……가수를 영입한다고?”

“그렇습니다.”

“그것도 신인이나 현재로서 아예 데뷔하지 않은 인물들만.”

“예, 빅 네임을 영입한 정황은 현재로서는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대체 왜지.”

“네?”

“그런 머저리 같은 선택을 할 이유가 어디 있느냔 말이야.”

마치 은행에서 돈을 빌려 복권을 사는 것과 같은 짓이었다.

“거기에 액플의 CEO를 만났다고?”

“그, 그렇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셨다는 모양입니다.”

“왜?”

“…….”

침묵하는 부하.

바트 맥센은 입술을 까드득, 깨물었다.

의문이 연이어 뒤섞이며 혼돈이 되었다. 바트 맥센이 가장 싫어하는 상황이었다.

‘그냥 바보짓을 했다.’로 넘기기에는 석연찮은 상황이었다.

왜냐면 그가 알고 있는 ‘신’은 단 한 번도 그런 짓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모두 그랬었다.

그 어떤 짓을 하더라도 얄미운 뱀 새끼처럼 이득을 챙겨갔다.

‘대체 뭐지.’

고민에 빠져 있던 그때, 바트의 심각한 표정을 읽어낸 부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그리고 말입니다.”

“뭔가.”

“두 분이 계시는데 아이가 하나 꼭 사이에 껴있었다고…….”

“?”

“어, 여기 사진이 있습니다.”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 바트는 부하가 내미는 사진을 확인했다.

뉴욕 시내로 보이는 어딘가.

걸어가고 있는 신과 티파니의 사이에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있는 작은 꼬마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쳤다.

아니 설마, 자기가 생각했던 그게 아니라 다른 공격이었나?

“정보원의 말에 의하면 열 살 정도 되어 보인다고 하더군요.”

“???”

십 년이나 계획한 공격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아이’라는 말과 다정해 보이는 사진 속의 세 사람을 확인한 바트 맥센은 완전히 패닉에 빠져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손주?

벌써?

왜?

혼란에 빠진 그의 귓속으로 바깥의 소리가 하나 파고들었다.

[네가 메르시구나!]

[신하고 티파니가 네 이야기를 해줬어. 만나서 반갑구나.]

“뭐, 무슨…….”

덜덜 떨리는 바트의 턱.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설마, 설마.’ 하면서 문을 열고 나갔다.

좌우를 휙, 휙.

그리고 그는 멀지 않은 곳에 서있는 신과 티파니를 발견했다.

그 앞에는 1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검은 피부의 여자애가 하나.

그로서 퍼즐이 맞춰져 바트는 그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입양이었던 거냐!!”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 시몬스와 부커-리. 그리고 소녀의 뒤에 서있던 신과 티파니까지.

모두가 황당한 얼굴로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하고 있는 바트를 돌아보았다.

* * *

도대체 바트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다.

갑자기 방문을 열고 나와서는 ‘입양이었던 거냐!’라고 하다니.

그래서 드디어 이 노인네에게 치매가 왔구나! 싶어서 손 안 대고 코푸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고.

바트는 뭐 뀐 놈이 성낸다고 경기 준비나 하라며 소리를 버럭 지르더니 다시 방 안에 틀어박혀버리고 말았다.

단지 메르시를 경기장으로 데려와 프로레슬러들을 만나게 해주고 있던 우리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나는 그가 한 말이 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의외로 애들을 좋아하는지, 시몬스는 조그마한 메르시를 데려가 계속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덕분에 머릿속을 스치는 수많은 가능성을 조합해낸 나는 티파니를 불러 그에 관해 이야기했다.

답은 간단했다.

“……바트가 우리 두 사람을 감시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예?”

“너무 나간 이야기인가?”

“아, 아니. 확실히 그럴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근거가 있는 말이에요, 그거?”

나는 그녀에게 설명했다.

바트는 이렇게 말했었다.

입양‘이었던’ 거냐, 라고.

“갑자기 당신과 내가 아이를 데려왔다고 해서 그걸 우리 아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잖아?”

“그, 그렇죠.”

“그렇게 생각할 만한 근거가 있었기 때문에 메르시를 보자마자 입양이라고 생각한 거고.”

“당신과 저, 메르시가 뉴욕에 있는 걸 봤다는 말일까요?”

“그렇지 않을까.”

“세상에.”

티파니는 날 경악해 보았다.

“무슨 탐정이에요? 사람이 어떻게 거기까지 읽어내지.”

“글쎄다.”

너무 바트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순간 깨달은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니 티파니는 이어 웃음을 터뜨렸다.

“아버지가 지금 저희 사업에 관해 보면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괜히 허세 부리면서 맨해튼에 사무실 차렸다고 욕하려나.”

“그러겠지.”

“일단 알고만 있으면 되겠죠?”

“그래, 딱히 우리한테 해코지를 하려는 것만 아니면…….”

“그나저나 좀 웃긴데요.”

“왜?”

“아버지가 저렇게 놀란 건 처음 봐서요. 그렇게 충격적인가?”

“자기가 할아버지가 되서?”

“그렇겠네요. 의외로 아버지의 약점을 하나 알게 되었군요.”

“응?”

“손주를 하나 만들어다 안겨주면 은퇴한 마피아 보스처럼 정원이나 일구며 사는 게 아닐까?”

“……네?”

“어때요. 오늘부터.”

티파니는 반쯤 장난스럽게 웃으며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하지만 나머지 반은 진심이 느껴져 나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꼈다.

…………어쨌든.

오늘 우리가 메르시를 경기장에 데려온 이유는 어디까지나 스눕-덕과의 관계를 위함이었다.

‘우리가 건네는 친우로서 나름의 표식인 셈이지.’

스눕-덕은 조카인 메르시를 무척이나 아꼈고, 저 소녀가 프로레슬러가 된 이후에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정도로 각별했다.

그렇기에 메르시가 프로레슬러로서의 꿈을 이어가는 이상, 우리는 스눕-덕 측과 계속 좋은 관계를 맺어갈 수 있을 터였다.

미국 음악계에서 그가 가지는 힘은 막대해, 어쨌거나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거기에 생각치도 못한 바트 맥센의 약점도 알게 되었다. ……아니, 이게 과연 약점인가 싶었지만.

‘자기 딸은 딸로도 안 보면서.’

손주는 다르다는 것인가?

아니지.

티파니가 그냥 착한 딸이었다면 바트도 애정을 보였을 것이다.

만약 티파니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가졌다고 하면 축복을 해주겠지.

하지만 티파니는 아버지의 뜻대로 살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눈치 따위 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선택했다.

‘그게 나고.’

바트가 가진 프로레슬링과 이 세상에 대한 관념을 부수기 위해서 죽음으로부터 돌아온 남자.

그래도.

바트가 순간 정말 당황한 것을 본 티파니는 어딘가 기뻐 보였다.

자신을 딸로서 대하지 않았던 바트가 ‘손주’로 인해 잠시 아버지 같은 모습을 비췄기 때문이리라.

거기에서 나는 깨달았다.

‘역시 결혼은 바트로부터 인정을 받은 다음에 하는 것이 맞겠어.’

티파니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나는 어렴풋이 느꼈다.

그녀는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바트가 자신을 딸이 아닌 도구나 적으로 대할 때마다 언제나 내 옆에서 담배를 피웠다.

어찌 보면 회귀한 후 역사가 변하며 내가 겪게 만든 일이었다.

그러므로 적어도 결혼만큼은 세상 모든 사람의 축복 속에서 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남자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

나에게 날아와준 여자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 책임감이었다.

‘지금도 불가능한 건 아닌데.’

그냥 우리가 포기하고 바트의 밑으로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그는 중국 쪽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장남, 케인 맥센에게는 무한한 애정을 보였으니 말이다.

‘케인은 바트와 뜻이 같거든.’

그는 프로레슬링 쪽 일을 할 때도 아버지와 죽이 척척 맞았다.

티파니가 그냥 적당히 착한 딸로서 군다면 바트 역시도 케인처럼 애정을 주고 이끌어 주리라.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티파니는 선수들에게 가해지는 아버지의 갑질을 보며 자랐다.

거기에 대해 큰 혐오감을 느꼈고 그걸 없애려는 꿈을 가졌다.

‘따라서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욕심 많게도, 우리는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를 위해서는 일단 오늘 할 일부터 제대로 해야겠지만 말이다.

오늘 우리의 여섯 명의 대립은 쇼에서 거의 50퍼센트 가까운 지분을 차지할 예정이었다.

백스테이지와 링을 오가며 준비된 세그먼트만 일곱 개가 넘었다.

그만큼 반응이 좋다는 뜻이었다.

이건 단순한 대립이 아니었다.

러셀 vs 신.

헌터 vs 신.

헌터 vs 레볼루션.

헌터&신 vs 레볼루션.

거기에 이후에는 바티스타까지 개성을 드러내며 우리 여섯의 대립은 더욱 확장될 예정이었다.

내 생각은 간단했다.

‘이중에는 네가 분명 기대하면서 볼 대립이 하나쯤은 있겠지.’

만약 러셀과 내 선악이 뒤바뀐 대립을 보고도 ‘또 하냐? 지겹다.’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더라도.

레볼루션이 더해져 이 대립이 풍부하게 느껴진다는 이야기였다.

‘아마 이번에 하고 나면 이미지가 소모가 심해서 한동안 녀석과의 대립은 좀 자중해야겠지만.’

그런 만큼, 이번 대립에서 모든 것을 뽑아내고 싶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옆에서 대기를 하던 러셀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너와 나는 역시 파트너보단 대립할 때 가장 빛나는 것 같아.”

“그러게 말이다.”

“윌리가 또 싫어하려나.”

“그럴 리가 있겠냐. 이제 한숨 쉬면서 그러려니 하겠지.”

“하긴, 우리는 솔직히 파트너보다 싸웠던 적이 더 많지 않아?”

“그런, 가?”

“처음에 싸우고.”

두 번째, 파트너 되고.

세 번째, 싸우고.

네 번째, 싸우고.

“……불쌍한 윌리.”

“이게 다 네 잘못이잖아.”

“누구, 나?”

황당해 되묻자 러셀이 나를 진지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악역이었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넌 언제나 내 위에 있지.”

“…….”

“이런 감정을 느낀 건 처음이야. 기술도, 말도, 그 외 모든 게 나보다 위인 인간은 처음 봤거든.”

투지를 드러내는 러셀.

프로레슬링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은 모조리 짜고 치는 쇼의 어디에 경쟁이 있냐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링과 백스테이지에서 항상 치열하게 경쟁했다.

러셀은 지금의 각본에서 명백하게 기회를 받고 있는 선수였다.

팬들의 반응.

수뇌부의 인정.

상대 선수까지.

프로레슬러가 경쟁해야 하는 건 이들 모두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승패가 정해지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러셀이 내게 호승심을 보이고 있는 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스스로 말하기 부끄러웠지만 나는 확실하게 녀석의 위였으니까.

단지 러셀은 내 영향을 받아 그걸 좋게 각본으로 풀어냈을 뿐.

그런 의미에서 녀석은 정말로 좋은 동료이자 라이벌이었고,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럼 어디 해보자고.”

싱긋 웃은 나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러셀과 나는 ‘우리가 왜 대립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나갈 예정이었다.

반응은 분명 죽여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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