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168화 (168/634)

168.

경기의 종반부.

상황이 혼란으로 치달았다.

서로에게 크로스 카운터를 날린 헌터와 오튼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 직후, 관객석 쪽으로 나간 러셀과 나는 계단을 내려가며 예정했던 대로 싸움을 시작했다.

계단의 좌우로는 길게 관객석이 뻗어 있었다. 소란에 돌아본 팬들이 우리를 발견하곤 열광했다.

“우오오오! 신!!”

“러셀을 죽여버려!”

“신!! 나 좀 봐주세요!”

반응은 장난이 아니었다.

WWF 슈퍼스타를 코앞에서 본 관객들은 팔을 뻗어 어떻게든 나와 러셀을 만지고자 했다.

관객석에 들어가면 으레 있는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관객석에서 빠져나오면서까지 우리를 가로막는 이들은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둔 상태에서 러셀과의 연기를 이어나갔다.

“크헉?!”

관객들과 극도로 가까이서 하는 동작인 만큼 우리는 거의 실제로 주먹을 주고받았다.

내가 턱을 갈길 때마다 러셀의 몸이 실제로 크게 휘청거렸다.

러셀 역시도 지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 소강상태에 빠진 경기를 혼란으로 밀어붙이며 위치로 이동했다.

바리게이트를 넘어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게 되자 나는 곧바로 러셀의 얼굴에 슈퍼 킥을 갈겼다.

쫘악-!

러셀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숨을 몰아쉬며 돌아선 내게 그대로 바티스타가 돌진해왔다.

단순한 태클이었으나 나는 러셀과의 싸움으로 지친 상태였다.

등 뒤에는 바리게이트.

내 몸은 바티스타의 어깨에 꿰뚫린 채 바리게이트에 처박혔다.

투콰앙!

미리 나사를 풀어둔 바리게이트가 박살이 나고, 나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깜짝 놀라는 관객들.

내 위에 쓰러져 있던 바티스타는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나는 그 귀에 대고 속삭였다.

“게이브.”

“……알겠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바티스타는 동시에 짐승처럼 포효했다.

관객들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바티스타는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플레어가 움직이고 있었다.

철제의자를 링 아래에서 빼든 그가 심판이 쓰러져 있는 사이 오튼에게 그것을 건네주었다.

당연하다는 듯 이어지는 레볼루션의 반칙에 야유가 쏟아졌다.

[Booooooooooooo-!]

오튼이 의자를 받아들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헌터 역시도 비틀거리며 로프를 잡고 일어났다.

그리고 오튼이 의자를 머리 위로 높게 들어 올린 순간.

[Uooooooooooooohhhh!]

관객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순식간에 링 위로 올라간 바티스타가 오튼의 의자를 빼앗았다.

황당해 돌아보는 오튼과 의자를 던지며 몰아붙이는 바티스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내용은 제대로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엄청난 반응이었다.

함께 헌터를 배신했지만 바티스타는 여기에서 자신이 확실히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걸 드러냈다.

그 이유가 어찌되었건, 사람들은 정당한 행동을 한 바티스타에게 엄청난 반응을 보여주었다.

계속 실랑이를 벌이는 오튼과 바티스타. 링 아래에 있는 플레어는 무척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사이, 트리플H가 방심하고 있는 오튼을 기습했다.

어깨를 잡고 오튼을 돌려세운 헌터가 그대로 발길질을 했다.

허리를 숙인 오튼의 머리가 그대로 헌터의 가랑이 사이로 들어갔고, 팔을 엮인 채 붙잡혔다.

페디그리.

그 직전. 헌터의 얼굴이 황당하다는 듯 바티스타를 바라보았다.

각본에 의거해 지은 표정이었지만 아마 실제로도 그럴 것이었다.

분명 바티스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경기 후 백스테이지로 돌아온 플레어는 잔뜩 신이 나서 스텝을 밟으며 내 승리를 선언해주었다.

* * *

그 후.

나는 헌터의 ‘부탁’을 받아 잠시 락커룸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십 년 넘게 선수 생활을 해왔지만 그는 도무지 지금의 사태를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게 문제였다.

현역 시절의 헌터는 객관적인 시야가 현저하게 부족했다.

그래서 선수로서 바티스타가 가진 잠재성을 알아보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정도까지 좋은 반응이 나올 것인가.’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에 가깝다고 할까.

확실히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오늘 바티스타에게 쏟아진 환호는 정말로 엄청났죠.”

“……그러게 말이다.”

“바트도 놀랐어요. 바티스타를 볼 때의 눈이 완전 변했던데요.”

“원래부터 좋아하는 유형의 선수니까.”

“당연한 거긴 한데.”

“그게 좀 의문이군.”

헌터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차라리 이게 나았다.

이전처럼 허세를 부렸더라면 굉장히 이야기하기 불편했을 텐데.

이렇게 나를 인정하고 솔직하게 지금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건 무척이나 좋은 징조였다.

“바티스타는 딱히 푸시를 받은 적은 없을 텐데 말이야.”

“레볼루션의 일원이라는 것 자체가 신인으로서는 어마어마한 푸시였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신인 수준에서의 이야기지.”

헌터가 의미를 명확히 잡았다.

“바티스타는 나이가 많아. 그래서 나도, 회사도 딱히 기대는 않고 오튼에게 푸시를 주었는데.”

“그것도 틀린 선택은 아니죠. 오튼은 저, 시나, 러셀과 함께 장래가 유망한 신인이니까요.”

“한때는 오튼을 선역으로 한번 밀어보자는 이야기도 있었지.”

“예, 그랬죠.”

“그건 어떻게 생각하나?”

“음, 오튼은 천성이 더러워서 선역은 절대 할 수 없을걸요.”

하더라도 악역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악으로 부킹이 되어야지.

“……현실의 이미지를 통해서 역할이 정해져야 한다는 건가.”

“정확히는 그 일면을 역할에 맞춰 표현해야죠. 저도 악역일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걸 나쁜 쪽으로 표현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바티스타는 대체 어떤 면이 그렇게 보인 거지?”

“그야 충실성이죠.”

나는 싱긋 웃었다.

바티스타는 그런 이미지였다.

레볼루션에서 가장 거칠고 궂은일만을 도맡아서 하는 남자.

그럼에도 돌아오는 건 적었다.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레볼루션에 소속된 것 자체가 신인으로서는 유례없을 푸시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달랐다.

헌터와 플레어라는 거물, 그리고 젊은 오튼에 비하자면 그의 역할은 극히 한정되어있을 뿐이었다.

레볼루션의 적들을 쳐부수고, 헌터에게 승리를 안겨다주는.

일종의 행동대장.

“그리고 젊은 강자.”

“……젊어?”

“선수로서 이미지가 그렇다는 거죠. 바티스타는 데뷔한 지 분명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기에 눈에 띄지는 않았고 활약할 기회는 적었지만, 그건 단지 아직 터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반응은 천천히 쌓여왔다.

“바티스타에게서 사람들이 호감을 느낀 건, 어떤 것에 대한 충실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

“그게 얼마 전까지는 레볼루션이었던 거고. 오늘 경기에서도 사람들이 그걸 느껴서 반응이 터져 나온 거죠.”

멋진 캐릭터였다.

“남은 건 그걸 표현하는 거죠. 거친 인생을 살아왔던 나를 헌터가 구해줬는데 어쩌고저쩌고.”

“그건 본인하고 이야기를 해야겠군.”

“그렇죠. 그렇다면 다음.”

“응?”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바티스타는 자신을 거둬준 트리플H를 배신하게 되었는가.”

“그건…….”

“어렵지는 않아요. 충실성을 넘어선 욕망. 남들과는 다른 욕망을 느꼈다는 식으로 가면 되죠.”

“으음.”

헌터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이미 그에 대한 답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바티스타가 헌터를 배신하는 길을 선택한 이유.

그건 바로.

“강자와 싸우고 싶다.”

“……?”

“트리플H라는 강자와 싸워 나라는 남자를 증명하고 싶다.”

그렇기에 의자를 써서 비겁하게 이기려는 오튼을 제지했다.

“그리고 당신은 그런 바티스타의 감정을 알고 그에게 말하는 겁니다.”

‘내가 짐승을 키웠군.’

그리고 두 사람이 페이퍼뷰에서 대결해서 바티스타가 이기고, 트리플H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이 정도 내용이면 좋겠죠.”

“……굉장하군.”

헌터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프로레슬링의 각본은 결국 자신이 상대보다 더 낫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수컷의 싸움이었다.

“그 역할, 내가 하고 싶을 정도야.”

“아뇨, 여기에서 당신은 왕으로서 혁명을 일으키려는 바티스타의 도전을 받아줘야겠죠.”

“‘선역 왕’으로서 말이지.”

“그렇죠. 날 넘어서보라며 탑 독으로서 어필하는 겁니다.”

“정말 멋져! 이거라면 분명히 사람들이…… 아니, 바트조차도 좋아할 거야. 어쩜 이렇게……!”

흥분해 소리치던 헌터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헛기침을 했다.

“크흠, 어떻게 이런, 괜찮은 각본을 떠올린 것인지 모르겠군.”

“좀 더 좋아해도 되요.”

“그, 그렇게 좋진 않아.”

“얼씨구.”

“……그래서, 8월까지 페이퍼뷰에서는 어떻게 대결할 거냐?”

“그건 뭐.”

8월의 섬머 수플렉스까지 남은 페이퍼뷰의 숫자는 하나였다.

5월과 6월이었지만, 개중 6월은 랙다운 온리 페이퍼뷰라서 우리는 출전하지 않는다.

“5월에는 오튼과 싱글 매치를 가져서 당신이 이기고 난 뒤 바티스타를 도발하는 것으로 하죠.”

“그리고?”

“섬머 수플렉스까지 저희가 격주로 나오면서 계속해서 대립을 진행해야죠. 그리고 당신이 져주면서 대립을 마무리하는 거고.”

“……그렇다면 바티스타가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갈라지겠군.”

“잘될 겁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세간에서 오늘 우리 각본에 대한 호평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에서 예상과는 다른 일이 한 가지 발생했다.

* * *

가장 먼저 우리에 대해 호평한 것은 물론, 격투기 전반에 대해 다루는 뉴스레터의 기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난번에 좀 헛소리를 했던 것과는 달리 지금 상황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새로운 시대가 오려는 것 같군.]

[그래, 맞아. 이전까지의 슈퍼스타들은 모두가 태도 불량 시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자들이지.]

그들은 예시를 들었다.

트리플H.

캐스켓-테이커.

거트 엔젤.

부커-리.

실버백.

카인.

[하지만 이제 슬슬 신인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단 말이야.]

잭 하디.

신.

숀 시나.

러셀 하트.

랜스 오튼.

레이 미스테리우스.

게이브 바티스타.

그렇게 예시를 들자니 다른 기자 하나가 반발을 했다.

[레이가? 레이는 이미 멕시코 레슬링의 아이콘이라고. 그런 레이가 신인으로 세워진다니…….]

[WWF에서는 그렇다는 거야. 지금 랙다운 쪽에서 시나 다음 가는 인기를 자랑하는 게 레이지.]

[음, 그건 확실히 그러네 ……어떻게 보자면 온전히 신의 예정대로 가고 있지는 않은 건가.]

[무슨 소리야?]

[그가 이미지를 부킹하려던 네 명 있잖아. 라이징 스타 안에 모두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러셀의 이미지를 과연 잘 살려줄 수 있을까 싶어서.]

[하긴, 이게 그쪽이 예상한 대로인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히 지금 가장 뜬 건 바티스타야.]

[그 누가 생각했겠어! 바티스타라니! 헌터 쪽 사람이잖아? 솔직히 신이 가장 불편해할 픽인데.]

[실제로 내가 거래를 하고 있는 관계자에 따르자면, 이 각본에 신이 꽤나 불만을 표했다는군.]

“…….”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캠핑 버스 안.

소파 반대편에 누워 반쯤 졸고 있던 오튼이 나를 돌아보았다.

“너 언제 그랬냐.”

“……안 그랬거든.”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이건 확실히 오보였다.

정보를 새어나가게 하고 있는 관계자나 아니면 뉴스레터 측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뭐, 이걸 가지고 문제 삼는 것도 어딘가 좀 아니기는 한데.’

저들의 헛소리에 대응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저널리즘’이라는 탈을 쓰고, ‘관심’을 얻고 싶어 하는 게 저들이 원하는 바였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내가 공식으로 반박하면 ‘조심해서 보도하겠다.’라면서 완전히 나를 바보 취급하겠지.

자신이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인간은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연출을 잘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건 좀 심했다.

‘어떻게 할까.’

뉴스레터의 기자들이 바티스타를 칭찬하는 헛소리를 들으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때, 러셀이 물어왔다.

“뭔가 할 생각이야?”

“글쎄.”

“할 것 같은데.”

“고민 중이야.”

“그 내부자를 잡는 건 어때.”

“야, 그걸 어떻게 찾아?”

오튼이 피식 웃었다.

“현장팀 수백 명 중에서 내통자 한 명을 대체 어떻게 찾아?”

“힘들까?”

“그래! 바보짓이지. 완전히 바늘 사장에서 모래 찾는 짓이야.”

“반대다. 반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야. 해야만 하는 문제지.”

“그래서…….”

“알아내서 족칠 거다.”

나는 사악하게 웃었다.

감히 가짜 뉴스로 내 이미지를 깎아내려고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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