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169화 (169/634)

169.

뉴스레터의 기자들이 날 음해하려는 이유는 딱히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내가 대내외적으로 주가가 크게 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화의 유례없을 초대박과 그로 인해 얻게 된 부가적인 수익들.

거기다 나는 지금껏 프로레슬러로서의 이미지도 무척 좋았다.

업계 관계자들이 나에 대해 하는 이야기는 호평밖에 없었다.

나는 마치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완벽한 커리어를 쌓아왔다.

‘실제로 그렇기는 하지만.’

동양인이라는 한계를 넘어 업계의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남자.

그것이 지금의 나였다.

하지만 위로 올라가고 내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수록 그에 따른 반응 역시 많아지기 마련.

내가 인기를 끌면 끌수록 깎아내려서 관심을 모으려는 놈들 역시도 많아진다는 이야기였다.

뉴스레터의 기자들처럼 말이다.

놈들은 지금 한창 업계 팬들의 흥밋거리인 나를 도마 위에 놓아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자 했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로서는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었지만 그게 나와 관련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나에게 피해가 온다면, 또한 그게 아무 근거 없는 헛소리라면.

바로 잡아야만 했다.

“열 받잖아?”

예상보다 조금 일찍 다음 도시에 도착한 나는 협력자가 되어줄 수 있는 선수들을 긁어모았다.

정말 믿을 수 있는 친구들.

러셀 하트와 랜스 오튼.

“……뭐가 말이냐.”

그리고 상황을 아직 전해 듣지 못한 채 내게 온 부커-리까지.

우리 세 사람은 캠핑 버스에 모여 앉아 작당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부커에게 지금 상황을 설명한 뒤, 곧바로 의견을 물었다.

그가 깔깔 웃었다.

“너 바보냐? 그 많은 WWF 임직원 중에서 뉴스레터 쪽에 정보를 빼돌리는 놈을 찾겠다고?”

“넵.”

“일단 거기에서 반에 반에 반으로 후보를 줄이면 참가해주마.”

“정말요?”

나는 손을 들었다.

“좋아요. 손가락 한 번 튕길 때마다 후보를 반으로 줄이죠.”

“뭐?”

“일단 본사 쪽은 뺍니다.”

“어째서……?”

“이번 주 실버백이랑 크리스 젠코의 각본, 기억하십니까?”

“그래, 분명히 젠코가 실버백한테 얻어터지는 각본이었지.”

“그게 원래는 젠코가 좀 더 실버백을 놀리는 각본이었던 건 기억하십니까?”

“그래, 그런데 실버백이 이 일을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화를 냈지.”

“그래서 바트에게 억지를 부려서 각본이 구리게 변한 거고요.”

그리고 뉴스레터에선 그런 각본의 변화를 정확하게 짚어냈다.

따악-!

“여기서 반이 사라집니다.”

“……하긴, 그런 각본의 변화를 아는 것은 분명 현장팀이겠지.”

“예, 이건 본사 쪽에는 알려지지도 않은 일이죠. 사후보고 식으로 저희가 각본을 올렸으니까.”

따악-!

“뭐, 또?”

“관계자는 제작팀입니다.”

“그건…….”

“당연하죠. 시설팀은 처음 며칠만 뚝딱거리고, 그 이후로는 경기장에 교대로 상주하니까요.”

거기다 그들은 대부분 거친 인간들이라 시설팀과는 서로 소 닭 보듯이 하는 관계였다.

“물리적으로 한 인간이 사내의 모든 정보를 얻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 말인즉슨, 좀 소문을 들을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시설팀이다?”

“거기에 시큐리티팀까지 포함됩니다. 그리고…….”

“설마 또 줄일 거냐?”

따악-!

이걸로 세 번.

내가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반절씩 사라진 후보군은 이제 따져보면 스무 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작가진은 아닐 겁니다.”

“그건 또 무슨 이유냐?”

“각본을 예측하는 게 디테일하지 못해요.”

“그래서?”

“부커, 만약 가짜 뉴스를 만들어낸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글, 쎄.”

“사실에 기반을 두어야죠. 하지만 제가 바티스타를 질투했다는 건 영 근거가 없는 소리에요.”

차라리 나였다면 각본을 만들며 트리플H와의 관계를 끊을 걸 요구했다던가, 그런 식으로 갔으리라.

“하지만 내가 바티스타를 견제하려고 한다는 건 완전히 현실과는 정반대의 일이잖아요?”

“정확히 말하자면 네가 질투를 한다는 이야기기는 했는데.”

“이대로 두면 다음 주에 내가 치졸한 정치꾼이 되어있을 거야. 트리플H처럼 말이지.”

부커가 부커처럼 껄껄 웃었다.

그 특유의 웃음소리는 절대 어떤 선수도 따라갈 수 없었다.

“와, 이거 완전 미친놈이군! 명탐정 드라마에 나가도 되겠어!”

“그리고 남는 건 시설팀 내의 조명, 음향, 영상 쪽 팀원 중 하난데. 개중에서 뉴스레터 내용에 내부 사정이 없는 날, 우연히 휴가를 갔던 친구를 찾으면 되겠죠.”

“허어.”

“흠.”

“신…….”

세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우연히 지난번 내용이 기억났는데, 러셀이 절 뒤통수 친 다음 주 내용이 정확히 내부 사정 폭로가 없는 날이었습니다.”

“어라?”

오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그래?”

“그날, 나 알아.”

“뭘?”

“그날 휴가 간 음향 쪽 친구한테 L.A. 쪽 음향 매장에서 CD 하나만 사다달라고 했거든.”

“……누군데.”

오튼 이 자식이 쓸모가 있다니.

“루이스 라미레즈야.”

“안내해.”

나는 지체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여기에서 부커와 친구들에게 휴가를 간 사람들에 대해서 조사를 해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 * *

사실, 뉴스레터 쪽에서 이런 가짜 뉴스들을 쏟아내도 WWF에서는 굳이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그런 어그로조차 홍보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내 입장은 달랐다.

나는 그 타깃이 된 만큼 명확하게 이 일을 바로 잡아야 했다.

그리하여, 나와 부커, 오튼과 러셀은 경기장 안을 뚜벅뚜벅 걸어 곧바로 목표에게로 향했다.

음향기기를 점검하고 있던 루이스 라미레즈는 얼굴만 보자면 멕시코 계통처럼 보였다.

그는 내가 잠깐 대화를 요청하자 즐거운 얼굴로 나왔다.

“신, 무슨 일이에요?”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그런 상황에서 부커와 내 친구들이 해줄 역할은 간단했다.

내 뒤에 떡대처럼 서서 라미레즈의 심문(?)을 돕는 것이었다.

“뉴스레터 기자들과 연락을 하고 싶어.”

“네, 네? 그걸 왜 저에게…….”

“너잖아? 내부 정보원.”

“도,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그래?”

나는 라미레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잘 들어. 라미레즈.”

여기서는 좀 협박(?)을 통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야만 할 때였다.

“네가 시치미를 뗀다면 렐처의 전화번호를 들을 수는 없겠지.”

“아니, 정말로……!”

“하지만 그거와 별개로, 난 이제부터 네가 경기장에서 화장실에 갈 때마다 못 가게 막을 거야.”

라미레즈가 경악했다.

“네가 똥통에 들어갈 때마다 밖에서 난리를 피울 거야. 구린내를 지우려고 물도 뿌려대겠지.”

“그, 그게 무슨…….”

“네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야. 잘 기억해두는 게 좋아.”

나는 손가락을 세 개 펼쳤다.

검지와 중지, 그리고 약지.

검지를 접었다.

“우산을 사거나.”

“히, 히익!”

“기저귀를 사거나.”

약지를 접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중지를 세운 나는 그것을 라미레즈의 앞에서 까닥 까닥 흔들었다.

“아니면 솔직하게 불고 내가 너에게 자행할 끔찍한 괴롭힘으로부터 벗어나던가 말이야.”

라미레즈는 몸을 떨었다.

이러고 싶진 않았으나.

모든 프로레슬러가 잘 훈련된 격투기 선수만큼은 강하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은 일반인보다 훨씬 강한 축에 속했다.

그렇기에 몇몇 질 나쁜 프로레슬러들이 벌이는 괴롭힘은 이런 직원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바트도 ‘그조차 버티거나 반항하지 못하는 놈은 우리 회사에 필요 없다.’라면서 놔두었고 말이다.

“어떻게 할래? 비밀을 지키고 정보원으로 벌어들이는 용돈을 계속 받을래? 그렇게 되면 나는 한 달 안에 널 회사에서 나가거나 죽고 싶어지게 만들 수 있는데.”

나는 최대한 그 말을 잔혹하게 하며 라미레즈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되면 용돈도 끊기겠지.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는 바보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중지를 접지 않고, 계속해서 그의 눈앞에서 살랑살랑 흔들었다.

완전히 악당 그 자체.

나는 대체로 친절한 인간이기는 했지만, 절대로 무시를 당하고 가만히 있거나 쉽게 얕보이는 성격이 아니었다.

“지금 좀 화가 나있거든. 그리고 추론을 해봤는데, 내 생각에는 정말로 너밖에 없더라고.”

“무, 무슨 근거로?”

“그게 왜 필요해?”

“내, 내내내, 내가 아니니까! 갑자기 와서 이게 무슨 짓이야!”

“그럼 별수 없군.”

나는 라미레즈의 어깨를 툭 쳤다.

“좋아. 내일부터 기저귀를 챙겨오는 것으로 하지.”

거기가 끝이었다.

“아, 알았어! 알았다고!”

황급히 대답한 라미레즈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연락하게 해주면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거지?”

“내가 바티스타를 질투하던가 하는 헛소리를 당신이 한 게 아니라면 말이야. 라미레즈.”

“그, 건…….”

내가 노려보자 라미레즈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내가 아니야!”

“정말로?”

“정말이라고!”

“믿겠어.”

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리고 라미레즈의 어깨에 슬며시 손을 얹었다.

“이해해줘서 고맙군. 힘든 선택이었다는 걸 알아.”

“사람을 협…….”

“그럴 필요가 있었어.”

“…….”

“이해하지?”

“그, 그래.”

그걸로 완전히 기가 죽었다.

이제 라미레즈는 일이 끝난 뒤 호텔로 돌아가 나에 관해서 분통을 터뜨리며 술을 먹겠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결국 ‘그래, 그럴 만했지.’하고 생각할 터였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저항할 수단이 없는 그에게는 서로 좋게 끝내자는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길이 없을 터였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라미레즈의 상처를 봉합한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D.R이라고 저장된 번호.

전화를 걸자 익숙한 목소리가 하나 흘러나왔다.

[라미레즈, 연락은 이쪽에서 먼저 하겠다고…….]

“거래를 제안하고 싶은데.”

[…….]

침묵이 돌아왔다.

자, 여기서는 다시 한 번 냉정하게 이야기를 진행할 때였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는 다른 동료들이 함께였다.

그렇기에 나는, 여기서는 조금 계속 화가 난 척을 하기로 했다.

그래야 이들이 내가 렐처와의 관계가 더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걸 상상하지 못할 테니까.

렐처는 단숨에 상대가 누군지 알아차린 것 같았다. 거기에서 나는 곧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당신 쪽에 좋은 소재거리를 하나 던져줄 테니까 이쪽이 시키는 대로 나에 대한 말을 정정해.”

[……신이냐?]

“아니, 나는 당신을 유혹하기 위해서 찾아온 악마 같은 거야.”

[뭘 원하지?]

“말했잖아. 정정이라고. 그리고 저널리즘에 대한 알량한 자존심.”

왜냐면 내 거래를 승낙할 경우, 렐처는 정말 자존심도 없는 인간이라는 게 증명되니까.

[링 위에서와 같군.]

“그래, 링 위에서와 같지.”

나는 씨익 웃어 보였다.

“이번 일로 좀 짜증이 났거든. 렐처. 이 몸이 바티스타가 떴다고 해서 그걸 질투할 것 같아?”

[그러지 않았나?]

“물론이지. 애초에 그 아이디어는 내가 낸 거야. 바티스타는 내가 만들어낸 괴물 같은 거라고.”

나는 마구 짜증을 부렸다.

내가 왜 그런단 말인가?

이 업계는 결국 모두가 이길 수 있는 사회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팬이 정하는 시스템이었다.

바티스타가 미래의 슈퍼스타로서 떠오른다고 해서 도리어 내 가치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 때문에 시장 파이가 더 커져서 모두가 이득이지.

거기에 나는 확실히 각본을 하나로 엮어서 나 역시도 이미지를 챙겨갈 수 있게 해놨다.

[좋아. 거래를 받아들이지. 그 전에, 라미레즈와의 거래는 끝났다고 이야기 좀 해주겠나?]

“썅, 기생충처럼 회사 기밀 뽑아다가 빌어먹고 사는 놈이 무슨 마피아 보스처럼 이야기를 해.”

어차피 무서울 것 없는 인간이라 나는 거리끼지 않고 말했다.

어차피 이 시대의 핸드폰에는 녹음 기능도 없어서 괜찮았다.

“일단 내가 화가 났다는 소리는 다음 방송에서 바로 정정해.”

[……그렇게 하지.]

“그리고 이건 내가 알고 있는 회사 내부의 정보인데 말이야.”

나는 작게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들은 렐처가 이내 머뭇거리다 되물었다.

[그게 진심인가?]

“그래, 자극적이지?”

[아니, 하지만 대체 그럴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그건 내가 정하는 거고. 당신은 그저 보도만 해주면 돼.”

[일단, 다시 답을 주겠다.]

“그것도 라미레즈 핸드폰으로 할 거면서 무슨 연락을 끊는다니 뭐니 허세를 부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렐처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고 고개를 든 나는 황당해 서있는 세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다.

개중에도 백미는 러셀이었다.

“지, 진심이냐?”

“그럼, 진심이지.”

이로서 우리 각본도 바티스타만큼이나 대박을 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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