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우리는 일단, 비몽사몽한 상태의 오튼을 깨워 침대로 데려갔다.
그 위에 눕게 하고, 나는 일단 상황을 충분히 설명했다.
“기술 좀 걸려줘봐.”
딴에는 친절한 설명이다.
“……뭔가 불길한데.”
눈썹을 찡그린 오튼이 이내 될 대로 되라는 듯 자리에 뻗었다.
일단 나는 기술을 걸 때 방해가 될 수 있는 이불과 베개를 치워 침대 아래쪽에 깔아두었다.
혹시 몰라 녀석들이 밑으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걸 방지하기 위해 내가 침대 아래에서 지켜볼 것이지만.
그래도 정말 혹시나 위험할 수도 있으므로 여러 가지 안전을 확인한 뒤 시연(?)에 들어갔다.
차가 일직선 고속도로를 당분간 계속해서 달릴 계획인가.
오튼에게 중간까지 계속 설명을 하면서 천천히 기술을 건다던가.
“일단 오튼, 다리를 샤프 슈터 쓸 때 모양으로 엮을게.”
“마음대로 해.”
“샤프 슈터와 동형기야?”
“진화형이라고 할 수 있겠지.”
러셀이 싱긋 웃었다.
“난 샤프 슈터를 좋아하거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뭐, 솔직히 말해 서브미션이 프로레슬링이 가진 현실감을 떨어뜨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왜냐면 일반적인 상황에서 서브미션이 걸리면 1초 만에 광속으로 탭 아웃을 치니 말이다.
관절을 꺾고 조이는 서브미션의 고통을 버텨내는 건 어디까지나 쇼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효과는 대단했다.
일단 선수들이 실제로 쉬어갈 수 있는 타이밍이기도 했으며.
탭 아웃을 칠까 말까로 관객들에게 쫄깃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렇기에 서브미션에서는 그 상징성이나 실재성이 꽤나 중요한 요소로서 평가를 받았다.
어떤 선수의 어떤 기술이냐.
그리고 정말로 아파 보이느냐.
전자의 의미로 봤을 때 북미 프로레슬링 업계에 대표적인 서브미션은 크게 세 가지일 것이다.
닉 플레어의 피겨 포 레그 락.
그렉 하트의 샤프 슈터.
거트 엔젤의 앵클 락.
피겨 포 레그 락은 상대의 무릎을 무자비하게 꺾는 기술이고.
그렉 하트의 샤프 슈터는 등과 무릎을 동시에 박살 냈으며.
마지막으로 거트 엔젤의 앵클 락은 발목을 세차게 꺾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샤프 슈터는 ‘액션성’이 좀 부족하지.”
“그래?”
러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전하는 사람과 자세, 캐나다인과 그렉 하트, 하트 패밀리의 성명절기라는 이미지 때문이지.”
사실 가만히 스쿼트 자세로 앉아 상대방의 탭을 기다리는 샤프 슈터는 어딘가 좀 심심했다.
“피겨 포는 이런 식이잖아?”
나는 자리에 누워 닉 플레어처럼 기술을 거는 자세를 취했다.
상대의 다리를 아라비아 숫자 ‘4’처럼 자기 다리에 끼운 상태에서 그대로 누워버리는 기술.
“여기에서 닉은 상반신이 자유로우니까 바닥을 때리거나 허리를 들고 조이거나 하면서 여러 가지 액션을 주잖아?”
“그렇지.”
“그리고 앵클 락도 똑같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앵클 락은 보다 간단했다.
그냥 엎드린 상대의 한쪽 발목을 잡고 들어 꺾는 것이었다.
“상대가 비명 지르고 도망치려고 할 때마다 몸 비틀면서 액션 보여주고. 정말 끝내려고 할 때는 누워서 상대 다리에 아예 매미처럼 달라붙고. 보여줄 게 많지.”
하지만 샤프 슈터는 아니었다.
“다리를 엮고 돌려서 상대를 엎드리게 만든 다음에 꺾는다.”
“보스턴 크랩하고 비슷하지.”
보스턴 크랩은 샤프 슈터와 달리 상대의 두 다리를 양쪽 옆구리에 끼우고 돌리는 기술이었다.
그렇기에 사실 봤을 때 엄청나게 멋진 기술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 기술이 먹히기 위해서는 상대의 고통을 필요로 해.”
“……무슨 말인지 알겠어.”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인즉슨, 그렇게 액션을 보여주기 힘든 기술들은 상대를 무자비하게 대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사실, 샤프 슈터만이 유일하게 다른 부분이 하나 있어.”
“응……?”
“바로 그렉만이 보여줄 수 있는 스킬인데, 연계성과 스피드야.”
“아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신. 좋다 싫다 하나만 하라고.”
“……이게 대화의 완급이라는 거야. 오튼아.”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허공에 대고 에어 샤프 슈터를 해보였다.
“보통 선수는 이렇게~ 해서 되게 느긋하게 기술을 걸지?”
“하지만 삼촌은 재빠르지.”
기술 시전에 2초도 걸리지 않는다. 상대가 빠르게 눈치를 까고 허리를 빨리 돌려줄수록 더.
바로 그게 포인트였다.
“그리고 어떤 자세에 있어도 바로 샤프 슈터로 연결해내지.”
그런 디테일이 샤프 슈터라는 기술을 특별하게 만든 것이었다.
문제는 그렉이 샤프 슈터를 너무 특별하게 만들어서, 이후 후배들이 구린 자세로 기술을 쓰는 악영향이 남았지만 말이다.
대표적으로 더 팍의 샤프 슈터는 너무 구린내가 심해서 똥-슈터라는 별명으로 무척 유명했다.
스쿼트 자세로 앉은 게 마치 변기통 위에 앉아 똥을 싸갈기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보였다.
“요는 이거야. 샤프 슈터는 정말로 쓰기 어려운 기술이지만. 그만큼 멋질 수 있는 기술이지.”
“디테일이란 거군.”
“그게 그렇게 중요해?”
“당연하지. 오튼.”
나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 디테일로 인해서 선수의 이름이 역사에 남는 거야.”
“나는 그냥 적당히 연봉 받으면서 주식에 투자하고 싶어.”
“…….”
저런 오튼이 전생에는 우리 중에서 가장 잘 나갔던 선수라니.
어쩐지 슬퍼지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러셀이 날 불렀다.
“신.”
“엉. 왜.”
“그러고 보니 너, 요새 빨라졌지.”
“…….”
귀신 같은 녀석.
나는 살짝 차갑게 물든 러셀의 눈동자를 보고는 쓰게 웃었다.
“뭐, WWF 전속 트레이너들 만날 때마다 연습하는 거 도와달라고 하고 있지.”
그리고 그걸 통해서 샤프 슈터를 내 걸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확실히 해두자.
단순히 ‘할 줄 안다’는 것만으로는 프로 선수가 될 수 없었다.
기술을 체득하고 까마득한 수련 끝에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프로 선수였다.
황당하다는 듯 내 얼굴을 바라보던 러셀이 시선을 피하고는 기술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분명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는 나에게 순간적으로 강한 호승심을 느낀 것이겠지.
하지만 그걸 숨기면서 앓지도 않고 동료로서 멋진 녀석이었다.
우리는 서로 협력하는 동시에 경쟁을 하고 있는 관계였으니까.
이게 딱 좋았다.
“나 졸린데. 빨리 하자.”
오튼은 멍청이고.
“일단, 샤프 슈터는 상대를 완전히 돌아눕게 하는 기술이잖아?”
“그렇지.”
“나는 반만 돌게 할 거야.”
“…….”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러셀은 자신이 새로 개발한 기술이라고 말했지만, 이건 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지금 러셀이 말한 ‘반만 돌게 한다.’는 포인트는 내 친구인 애덤, 링 네임 엣지가 선수 시절에 개발한 스타일이었다.
엣지케이터.
저걸로 여럿 골로 보냈지.
지금 생애에는 러셀이 먼저 개발한 게 되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러셀은 단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말을 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러셀이 슬그머니 발을 뻗어 오튼의 머리 쪽으로 가져다댔다.
“상대 목을 밟는 거야.”
“진심이냐.”
“물론, 살살해야지. 하지만 보이는 잔혹함에 비해서 의외로 그다지 강하지는 않은 기술이야.”
“오튼, 어때.”
“죽을 것 같아.”
“그래? 트레이너는 위험하게 꺾이진 않아서 괜찮다고 했는데.”
“엄살이잖아. 엄살.”
나는 침대를 한 바퀴 돌려 오튼의 몸이 꺾인 부분을 확인했다.
확실히.
붙잡는 쪽의 무릎이 원래 기술보다 강하게 꺾이기는 했지만.
머리를 발로 밟는다고 해도 몸의 중심을 잘만 잡으면 그다지 힘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응, 괜찮은데.”
“그러면 다행이고.”
꽈악.
“야, 야야야, 진짜 아파!”
“물론 이렇게 힘을 주면 정말로 아픈 기술이 될 수도 있어.”
“확실히 머리와 다리를 고정하면서 허리를 세게 꺾을 수도 있군. 이런 방법도 매력적인데.”
나는 팔에 힘을 주어 당기는 러셀의 모습을 보며 기술이 들어가는 걸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끄아아아아아아악!!”
그런데 교보재가 불량인가. 왜 비명을 지르고 있는 거지.
그런 구린 농담을 생각한 나는 이어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렷다.
“이 기술을 잘만 활용한다면 우리 경기에서 괜찮게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
“응, 네가 날 속이는 거지.”
“어떻게?”
“샤프 슈터 매치라고 했으나,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는 거야.”
“그래도 될까?”
“멋진 반전이잖아. 킹 오브 하트가 되기에 적절하다고. 러셀.”
나는 씨익 웃어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 샤프 슈터가 아니지. 보고 있는 자의 심장을 찌르는 하트 슈터인 셈이야.”
“……멋진데.”
러셀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우리는 곧바로 레슬링 업계에 새로 태어난 아이, 하트 슈터의 데뷔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 * *
5월의 페이퍼뷰, 기가 백 래시.
나와 러셀의 경기는 쇼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오프닝 매치였다.
회사 측에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곧바로 경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거의 보고를 올리자마자 결안이 나서 나는 확실히 바트가 날 가만히 놔두고 있음을 느꼈다.
‘뭐, 편해서 좋기는 하지만.’
월드 챔피언이라는 최후의 성채만을 지킬 생각인 걸까.
그럴수록 나는 성 바깥의 민중들을 규합할 테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처럼 경기에 대한 준비는 스무스하게 이루어졌다.
중간에 슬쩍 물어본 선수나 직원들도 모두가 러셀의 새로운 기술에 좋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기는 건 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경기에서 러셀의 신기술이 아직 미완성임을 강하게 어필할 생각이었다.
‘이게 최선이겠지.’
그래야만 사람들이 계속해서 우리의 경기를 기대해줄 터였다.
그 최종 종착지에서는 러셀이 악역으로서 자리를 잡아야겠지.
잔혹하고 무자비한.
그야말로 킹 오브 하트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걸물.
오늘 페이퍼뷰는 거기까지 다다르기 위한 전초전인 셈이었다.
나는 그것을 되새기며 기가 백 래시가 시작되는 걸 지켜보았다.
투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화려하게 터져 오르는 폭죽.
“자자, 깔끔하게 가자고!”
메인 프로듀서의 외침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5만의 관객들이 벌써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가 시작되는 것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느긋하게 고릴라 포지션 앞에 서서 차례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니 러셀이 다가왔다.
“멋진데.”
내 모습을 본 녀석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 역시도 녀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어울려.”
우리는 지금 새로 선보일 경기복을 갖춰 입은 상태였다.
나는 롱 팬츠에 가죽 재킷.
러셀은 화려한 가운에 드로어즈 스타일의 경기복.
우리의 이런 모습은 관객들에게 분명히 잘 먹힐 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매치 카드가 나옵니다!]
해설자의 외침과 함께 러셀과 내가 대결을 위해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 흘러나왔다.
[Yeeeeeeaaaaaahhhhh!!]
내가 나올 때는 환호가.
[Boooooooooooooo-!]
러셀이 나올 때는 야유가 이어졌다. 프로모 영상만 봐도 사람들은 우리에게 큰 관심을 가졌다.
샤프 슈터의 사용권을 건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경기.
렐처가 슬쩍 뿌려둔, 우리에게 유리한 가짜 뉴스가 퍼져나가 관객들은 벌써부터 난리였다.
“긴장되는데.”
“난 널 믿어. 신.”
“……낯간지럽게 왜 그래.”
“널 이기고 말겠어.”
눈썹을 찡그리며 돌아본 나는 그 말이 뜻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러셀은 나를 이기고 싶어 했다.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관객들의 반응을 좀 더 크게 얻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걸 솔직하게 표현하는 녀석이라서 좋은 거기는 한데.’
낯간지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잘 해보자고. 파트너.”
씨익 웃은 나는 그대로 러셀의 어깨를 툭 때렸다.
고개를 끄덕인 녀석이 이어 먼저 경기장으로 입장했다.
[Booooooooooooo-!!]
녀석은 그야말로 현재 버닝콩에서 가장 야유를 받는 선수였다.
나를 배신했고, 그 이유가 참으로 가당찮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모두 우리가 의도한 대로였다. 러셀도 야유를 받음에 기뻐하고 있을 터였다.
카메라를 보는 녀석의 시선은 분명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마치 ‘어때?’라고 도발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아직 부족했다.
그 야유의 절반은 순전히 사람들이 사랑하는 선수인 날 공격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었다.
“신, 나가시면 됩니다!”
그렇게 생각한 직후, 직원의 신호와 함께 나는 커튼을 걷어내고 경기장으로 나갔다.
찬가와 함께 쏟아지는 것은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챈트.
[Yeeeeeeeeeeeaaaaaahhh!!]
환호.
그리고 허밍.
[oh~! oh~!! ooooooohhh~!]
완전히 난리법석인 상황.
벨트를 어깨에 짊어진 나는 그대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등 뒤로 터져 오른 화려한 폭죽이 허공에 흩날렸고, 나는 링 위의 러셀을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엄청난 반응에 녀석은 정말로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웃으며 생각했다.
‘어디 한번 가져가보라고.’
그럴 수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