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케인 브랜든 맥센.
티파니와는 무려 여덟 살 차이가 나는 친오빠로, 그 역시 WWF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었다.
처음 데뷔한 것은 18세. 다시 말해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이었다.
그때 케인이 회사에서 맡은 역할은 경기의 감초인 심판이었다.
동시에 물류 관련 일을 하면서 백 스테이지에서 경험을 쌓았고.
락콜드의 시대가 시작된 이후로는 회사에 케인 맥센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해 큰 활약을 펼쳤다.
자기 아버지와 대립하기도 하고, 선수들과 경기를 뛰기도 하고.
그런 그의 가장 독특한 점이라면 ‘겁이 없다’라는 부분일 것이다.
무려 13미터 아래로 추락하는 범프를 수행하는 건, 웬만한 선수들도 하지 못할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그는 했고, 그를 통해 팬들에게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아버지와는 대립하기도, 손을 잡기도 하면서 선역과 악역을 오가는 캐릭터로 큰 사랑을 받았고.
회사를 떠나기 직전에는 자신을 따르는 선수들을 규합해 WWF를 침공한다는 일명, ‘인베이전 각본’을 수행했다.
하지만 커리어는 거기까지.
이후로 케인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회사를 나갔다.
시기적으로 봤을 때는 에디 비테레로가 사망한 직후였다.
그리고 몇 년 간 연기처럼 사라져서, 여동생인 티파니도 최근에야 그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중국 쪽에서 사업을 하셨다고요.”
“뭐, 투자 정도지. 아무리 그래도 집을 나간 인간이 아버지한테 손을 계속 벌리는 건 좀 그래서.”
“……아버지는 그래도 매번 오라버니의 이야기를 전해주셨죠.”
“‘오라버니’라. 나이를 먹고도 그걸 계속 쓰기엔 그렇지 않아?”
“입에 붙어서.”
또한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티파니는 어렸을 적 무척 케인을 따랐다. 일이 바쁜 부모님 대신 그녀를 돌봐준 것이 바로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케인을 보고도 전혀 반가운 기분이 들지 않았다.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그렇기에 무언가 의도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럼에도 직접적으로 묻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이 아버지와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가족조차 적으로 인식하고 마는 자신의 심리가 말이다.
티파니는 애써 웃으며 물었다.
“중국은 어떠셨어요?”
“뭐, 처음 갔을 때 전갈을 먹었던 것만 빼면 나름 괜찮았어.”
“어, 음.”
티파니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저번에 먹어본 어머니의 청국장을 통해서 나름대로 동양권 문화에 이해하려고 하는 중이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전갈을 먹는다는 것은 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도 만나는 사람이 그쪽(?)이라서 크게 반응하지는 못했지만.
거기에 피식 웃은 케인이 진실을 털어놓았다.
“그게 외국인들에게 장난치는 용도라는 걸 그때는 몰랐었지.”
“그, 그래요?”
“응. ……아, 맞아. 너 선물로 주려고 중국 드레스 하나 사왔어.”
“예?”
“입으면 애인이 좋아할걸. 허리까지 옆으로 쫙 터서 말이야.”
“아니, 그 사람 미국인인데.”
“그쪽 사람이잖아?”
케인이 너스레를 떨었다.
거기에 티파니로서는 또 자연히 기분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많이 좋아하는 사람인 만큼, 자신의 남자가 기분 나빠할 일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여자로서 당연한 심리였다.
단정한 눈썹을 크게 찌푸린 티파니를 보고 케인이 말을 돌렸다.
“뭐 어쨌든, 넌 어땠어?”
“적당히 지냈죠.”
“요새 일한다면서. 어리던 네가 이렇게까지 성장할 줄이야.”
“그렇게 되었네요.”
“트라우마 때문이야? 에디 비테레로와 같은 사람은 다시는 만들지 않겠다는 바로 그런 건가?”
“…….”
“그래도 돌아왔구나. 그래,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어째, 서죠?”
“넌 아버지와 닮았으니까.”
티파니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우리 모두가 그래. 혈연의 지옥 같은 점이 뭔지 알아? 내가 가장 혐오하는 부분을 똑같이 물려받는 거야. 그게…… 가장 역겹지.”
“오라버니도?”
“내가 입양아가 아니라면 그렇겠지. 입양아였으면 좋겠지만”
농담을 중얼거린 케인은 이윽고 자신의 앞에 놓여 있던 맥주 한 잔을 단숨에 비워냈다.
“푸하.”
“호쾌하시네요.”
“8월 이후로 내가 랙다운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을 예정이야.”
갑자기 본론을 꺼내는 케인.
“이걸 듣고 싶었던 거지?”
“……예, 고맙네요.”
“그럼, 나중에 보자고.”
느긋하게 일어선 케인은 그대로 다시 군중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왠지 모르게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더 그렇게 되는 기분이었다.
“…….”
이게 가족이란 걸까.
잠시 망설이던 티파니는 이윽고 담배 한 대를 더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자 감정이 다시 차분해졌다. 티파니는 타들어가는 연기 냄새를 맡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케인이 돌아왔다.
‘아버지의 사주겠지.’
그렇기에 티파니가 사내에서 가지고 있던 영향력이 단숨에 사라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링을 떠났던 케인이 바트의 부탁을 받고는 다시 돌아왔으니까.
영향력이 사라지는 건 당연히 감수할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케인의 등장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간단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하나.
‘일단은 이번 일을 최대한 완벽하게 성사시키는 거야.’
티파니는 마음을 다잡았다.
* * *
그렇게 회의가 끝났다.
우리는 7월을 목표로 다시금 대립을 이어나갈 것을 결의했다.
‘나쁘지는 않지.’
사실, 우리 정도의 초대형 대립이라면 페이퍼뷰 세 개쯤은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었다.
대립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완급 조절이 필수적이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일단 출연 시간을 나눌 예정이었다.
어차피 대립은 여섯 명이 함께 진행했으므로 어려울 건 없었다.
누구 하나가 빠진다 하더라도 적당히 채워나갈 수 있을 테니까.
그 디테일의 초안은 일단 믿음직한 작가진에게 맡겨두고.
나는 뉴욕으로 이동했다.
티파니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래서 일단 나는 딱히 일이 없어 날 따라온 두 사람에게 그런 제안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니 오튼이 흥분했다.
“뭐, 너 따위가?!”
“……그래, 내가.”
이 자식은 이래서 욕을 먹는다.
“아니,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면 엄청 잘나가는 연예인들이나 하는 거 아니야? 힐튼 자매던가.”
“내가 그건가 본데.”
“에이.”
“…….”
“네가 아무리 영화 한 편 잘 찍었어도 그 정도는 아니지~.”
“화보도 찍었고.”
옆에 있던 러셀까지 거들었다.
“뮤직 비디오에도 나왔지만!”
하지만 오튼은 스스로 내가 해낸 일을 말해놓고도, 인정하지 못한 채 계속 ‘왜?’라고 되물었다.
길게 한숨을 내쉰 러셀이 이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데.”
“말해봐.”
“네가 그쪽으로 활동하는 이유가 혹시 바트 맥센 때문이야?”
“처음에는 그랬는데.”
이제는 아니다.
딱히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이쪽 일에 대해 나름대로 즐거움과 향상심을 느끼게 되었다.
지난 날, 센트럴 파크에서 만났던 미셸 리와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준 긍정적인 영향이었다.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며 유명해지고 싶었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프로레슬링 업계의 아이콘이 되고 싶지만.”
“……어려운 길이로군.”
“하지만 어쩌겠어. 타고난 것을 저주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거기에 나는 한 번의 기회를 더 받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니 넘칠 정도로 감사를 느꼈다.
거기다 골이 어렵다는 건 그만큼 열매가 달콤하다는 것이니까.
인종의 용광로를 표방하면서도 그 안에 동양인은 포함되지 않는 미국 사회에서 나의 성공.
아니, 정상 등극.
프로레슬러 출신으로 미국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 더 팍처럼.
나는 거기에 더해 프로레슬러로서 최고가 되고 싶었다.
“뭐 그러니까, 바트가 뭐라고 해도 날 너무 감싸거나 하지는 마. 괜히 그러다 너희만 밉보일라.”
“그건 널 위해서가 아니야.”
러셀이 눈썹을 찡그렸다.
“너를 무시한다는 건, 너를 목표로 해서 나아가고 있는 나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거든.”
“……제기랄.”
낯부끄러운 소리를 또 한다.
하지만 러셀은 그렇게 진지한 만큼 정말로 좋은 녀석이었다.
바로 그때, 옆에 있던 오튼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도 한마디 거들었는데.”
정말 좋은 녀석이다.
“저기, 얘들아?”
러셀은.
* * *
사무실에 도착하자 미묘한 냄새가 순간 코를 슥 간질였다.
티파니가 곁으로 다가오자 그 냄새가 좀 더 심해졌다. 나는 입을 여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다.
“다들 어디 있어요?”
“운동 좀 하겠다는데.”
“오튼이?”
피식 웃는 티파니.
“러셀이 억지로 데려갔어.”
하지만 이어진 내 말을 듣고는 ‘아~.’ 하고 곧장 납득했다.
티파니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노란색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일단 그쪽에서 기획서를 가져왔더라고요. 확인 좀 해봐요.”
“…….”
“응?”
잠시 바라보던 나는 티파니의 팔을 낚아채 바로 앞으로 당겼다.
“시, 신……?”
“오늘 피웠어?”
“예?”
“담배, 피웠냐고.”
“어. 음.”
티파니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허공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그녀의 손가락 냄새를 맡았다.
“확실하네.”
“끄, 끊을게요. 싫다면.”
“아니, 그건 됐고.”
오히려 이걸로 인해 티파니에게 뭔가 문제가 있었음을 짐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귀신같다니까.”
뾰로통해 중얼거린 티파니가 이윽고 살짝 발뒤꿈치를 들었다.
민트향이 나는 입맞춤.
“……아직 낮이잖아?”
“입에서는 안 나죠? 냄새.”
“아주 좋은 냄새가 나던데.”
“당연하지. 내가 냄새 지우려고 얼마나 이를 열심히 닦았는데.”
“그래서, 왜 피웠어?”
티파니는 큰 스트레스를 받을 때 진정시키고자 담배를 피웠다.
말인즉슨 딱히 자주 피우지는 않아 이렇게 낮부터 냄새가 남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케인을 만났어요.”
“케인? 케인 맥센?”
“예, 돌아왔더군요.”
티파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잠시 그녀를 자리에 앉게 한 뒤, 침착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갑작스러운 귀환.
그로 인해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티파니가 회사에서 가지고 있던 영향력은 모조리 후계자라는 입장에서 오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당신은 회사를 나왔지.”
“그런 상황에서 케인이 돌아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네요.”
“거기다 랙다운을 전담한다고?”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있겠지만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아요.”
폴 헤이건을 대신해서.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나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래, 좋아.
이 정도는 해줘야 재미있지.
나의 행보를 방해하기 위해 전생에는 10년 후에나 회사로 돌아오는 케인 맥센을 데려온다라.
멋진 발상이었다.
바트 맥센이 근래 들어 왜 그렇게 날 빨아줬는지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어차피 섬머 수플렉스 이후로 날 전담할 것은 케인이 될 테니까.
“저기, 괜찮아요?”
바로 그때, 티파니가 계속해서 웃고 있는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케인이 랙다운을 맡았단 걸 알게 되니까 헤이건을 괜히 GCW 총괄로 데려온 건가 싶어졌어요.”
“그렇게 생각해?”
“예, 만약 헤이건이 그대로 랙다운에 남아있었다면…….”
“잘렸겠지.”
나는 단언했다.
바트는 헤이건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자유 계약으로 풀어줬다가 다른 단체에서 능력을 발휘할까 걱정이었겠지.
하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확실히 말해 WWF에 적이 될 프로레슬링 단체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냥 폴 헤이건을 잘라버렸을 그림이 뻔히 그려졌다.
“오히려 우리가 살린 거지.”
“그런가요?”
“본인도 즐거워하지 않아? GCW에는 멋진 선수들이 많을 텐데.”
“그건…… 그렇죠.”
티파니의 표정이 좀 풀어졌다.
“꽤나 성장했어요. 아예 남부에서는 메인 쇼와 비교해도 크게 꿇리지 않을 정도의 인기죠.”
“그거 멋진데.”
“다 제 사업 수완 덕이라고요.”
“그래, 당신이 최고야.”
싱긋 웃은 나는 티파니의 기분이 좀 풀어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방금까지의 그녀에게서 느껴졌던 딱딱함이 많이 사라졌다.
슬슬 본론으로 넘어갈까.
서류를 확인한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음을 느꼈다.
“이거 말이야. 당신과 대화를 나눈 뒤에 나온 기획서야?”
“아마도요. 만나기 전에 우려하는 바를 조금 이야기했거든.”
그 때문인지 기획서에는 처음 의도를 들었을 때 느껴졌던 걱정거리가 대부분 수정된 상태였다.
거기다 내가 원한다면 각본에도 참여할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
내가 그만큼 이미지가 상승하고 있는 셀럽이라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네.”
“어떤 거요?”
“……부모님.”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