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나의 아버지.
올해로 51세.
누구도 그 이름을 쉬이 말할 수 없는 한국의 모 특수 부대 출신.
태극무공훈장 수훈자.
무장 공비 소탕, 베트남 전戰 참전 등의 경력을 가지고 계시며.
전역복에는 뱀과 칼로 장식된 해골 문양과 함께 ‘심판은 하느님께 맡기고 모조리 죽여라.’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게 특징이었다.
거기다 군복 어깨에 대한민국 해병이라고 적혀 있어 해병대 출신이냐고 조심스럽게 여쭈었더니만.
‘그놈들은 겁쟁이야.’
위장용이란다.
세상에 어떤 인간이 해병대를 겁쟁이 취급하는 건가 싶었다.
어쨌든.
전역 후, 연고도 없는 한국을 버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오신 아버지는 엄마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전생에는 몰랐던 반전으로, 애가 들어서서 결혼을 하셨단다.
그 애가 나고.
당신의 표현에 의하면 아버지는 나를 보고 처음으로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느끼셨다고 한다.
엄마는 나라가 가난했던 시절 미국으로 입양된 아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입양 가족은 엄마를 완전히 노예 취급을 했다고 한다.
단순히 정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그리고 농장의 노동력을 늘리기 위해 입양한 동양인 꼬마.
그 취급이 정상일 리가 없었다.
부모라는 작자들은 어렸던 엄마를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사육사가 동물을 가르치듯이 매일 소리를 지르면서 때렸고. 그 때문에 엄마는 영어를 하지 못한다.
배웠던 것마저 그나마도 잊어버렸다.
지옥 같은 삶이었을 거다.
말은 통하지 않고. 공포에 질린 채 매일 욕을 들었던 시간.
그랬던 엄마는 우연히 만난 한인 목사에게 구원을 받았다고 했다.
그가 도와준 덕분에 집에서 나올 수 있었고, 한인 사회에 섞여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살아가게 되었다.
엄마는 그것이 정말 하느님이 도와서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만약 한인 목사님이 안 계셨다면 혼자서라도 도망쳤을 것이고.
거리에서 죽거나, 범죄에 이용되어서 붙잡혔을 거라고 말했다.
그렇게 한인 사회에서 섞여 살며 점점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던 무렵에 만난 사람이 아버지였다.
‘뭔가 항상 긴장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거야. 키도 엄청 크고 말도 없고 무뚝뚝해서.’
그렇게 먼저 다가간 것은 엄마.
가족이 없었던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믿으며 가족이 되었고.
엄마도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의 존재로 인해 자신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느끼셨다는 모양이다.
그전까지는 노예였으니까.
나는 그런 두 분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미국인으로서 자랐다.
물론 한인 사회에 소속되었지만 나이를 먹은 후에는 바깥으로 나가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오히려 나는 한인 쪽 사람들보다 그 밖의 사람들과 많이 알았지만.
이따금씩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다. 함께 피자를 먹으며 프로레슬링을 보았던 옛날의 친구들.
그들과 달리 나는 프로레슬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직접 했고.
집에서 나왔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부모님께는 죄송한 기분밖에 없어.”
티파니에게 일련의 설명을 마치고, 나는 시선을 피한 채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서 덧붙였다.
물론, 이건 전생의 내가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몰랐다.
부모님은 두 분 다 병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아직도 병상에 계셨던 두 분을 머릿속에 기억했다.
작아진 아버지.
코에 연결된 호스.
고요함.
작은 숨소리.
심장박동기가 들려주는 심장 소리가 삐- 삐- 이어지다 멈췄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했다.
“다른 집 자식들처럼 아버지 일하시는 거 물려받고 하면 지금보다는 덜 걱정을 끼쳤을 텐데.”
“……그렇군요.”
“하지만 그랬다면 꿈은 언제까지고 날 기다리고 있었겠지. 당신 역시도 만나지 못했을 테고.”
나는 쓰게 웃어 보였다.
모든 걸 가질 수는 없다.
안타깝지만 나는 현재 바쁘게 꿈을 좇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바로 그때, 내 이야기를 들은 티파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뭔가 부럽네요.”
“우리 가족이?”
“예, 저희 가족은 반대로 언제나 함께 하고 있었지만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거든요.”
“……그런가.”
“쇼에서 아버지에게 패륜을 저지르는 역할을 맡아봤었죠.”
“인베이전 각본 때 말이지.”
“예, 그때 확실히 느꼈어요. 우리는 가족이 아니라 그걸 이용해서 돈을 버는 것뿐이구나, 하고.”
티파니는 악녀를 연기했고, 침공이 실패한 뒤에 회사를 나왔다.
관객들은 그녀의 실패를 보고는 ‘창부’라고 부르며 모욕했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의 티파니에게 있어 그것은 큰 상처였으리라.
거기에 비테레로의 일까지 겹쳐서 못해먹겠다고 느낀 거겠지.
“아들의 꿈을 응원해주는 부모님이 계신 게 정말로 부러워요.”
“그거야 뭐, 성공했으니까 그렇지. 처음에는 야반도주였다고.”
“후후, 그러면 이번 일로 가족끼리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겠네요.”
“그게, 좀 문젠데.”
“응?”
“과연 부모님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나오려고 하실까?”
“물어보는 게 어떨까요?”
“음.”
“뭐가 걱정인데요?”
“아니, 캐릭터가 독특하니까.”
“……하긴.”
우리는 두 분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다가, 이내 전화를 걸었다.
스피커폰을 켜두고.
신호가 간 뒤, 반대쪽에서 얼마 후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어, 준호니?]
“어, 지금 통화 괜찮아?”
[지금 교회 예배 보고 돌아가는 길인데, 무슨 일이니?]
“내가 제안을 하나 받았는데.”
우리는 곧바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엄마가 즉답을 해왔다.
[아마 안 될 텐데?]
“응?”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국말로 대화를 하고 있어 알아듣지 못한 티파니가 갸웃거렸다.
[네 아빠 바꿔줄게.]
“어? 아니, 왜…….”
[준호냐.]
“예, 아버지.”
[그 티파니라는 애랑 좀 와라.]
“예?”
[그전에 탔던 비싼 차에 대해서 좀 설명을 듣고 싶다.]
아.
그러고 보니 그때 스눕-덕의 생일 파티에 참여한 뒤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곧장 나왔지.
[그리고 방송 출연이라고?]
“예, 예. 그런데요.”
[난 지금 TV에 나갈 수 없다.]
“뭐, 범죄라도 저질렀어요?”
[그건 아니고. L.A. 폭동 사태 이후로 박 씨랑 CIA의 요주 인물 리스트에 올라가서.]
“어, 그렇다면 어쩔 수 없…….”
바로 그때.
전화기 너머에서 두 분이 소곤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티파니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잠시 후.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고?]
“그, 그런데요.”
[방법이 하나 있는데, 일단 혹시나 해서 묻자면 그 티파니란 애도 함께 출연할 예정이냐?]
“…….”
어지간히도 좋으신 모양이군.
허탈해져 웃은 나는 그때까지도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티파니를 바라보았다.
* * *
일단 진행을 해보기로 해서 방송국 쪽에 연락한 우리는 일단 아버지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렸다.
쾌활한 목소리의 PD는 그런 내 말을 듣고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방송 출연 지양 권고 리스트가 있기는 하죠. 하지만 중범죄자나 사회 불안 조장 등의 이유가 아니면 선정되지 않을 텐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웃은 PD가 리스트를 조사하고 오더니 목소리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어, 확실히 있으시네요. 거기다 CIA에서 리스트를 올려놨어요.]
그게 무슨 말인가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이 걸작이었다.
[미국 사회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요주의 인물로 여겨져 CIA에서 감시를 하고 있다는 거죠.]
“출연은 힘들까요?”
[그렇기 때문에 흥미가 생기네요. 그런 살아있는 진짜 캐릭터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는 먹히는 법이거든요.]
남들과 같지만 좀 특별한 인간.
그런 이유로 PD는 일단 아버지와 좀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일이 정해졌고 우리는 곧장 촬영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내가 할 일은 간단했다.
그쪽에서 던져주는 기획서와 일 처리를 보고 받으며 계속해서 버닝콩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이었다.
러셀과 나의 대립은 약간 소강된 상태로 천천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대신해 전면으로 올라온 것이 바로 바티스타와 다른 레볼루션 멤버들 간의 신경전이었다.
바티스타는 정정당당하게 헌터와 맞서고 싶어 했지만 다른 멤버들은 그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선역인 헌터가 바티스타를 이해해주었고 두 사람은 압도적인 반응을 쌓아올려 나갔다.
거기에서 러셀이 어그로를 끌며 악역으로서 이미지를 구축하고.
순항을 이어나가며 6월 말.
모든 준비를 끝마친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L.A.의 한인 타운.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
방송국에서 나온 촬영 팀이 예정했던 대로 집안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에 집안에서 찍을 촬영 분은 사실 방송의 2화에서 쓰일 내용이었다.
이후에 내가 다음 쇼를 위해 이동할 때 촬영을 해서 그걸 1화의 분량으로서 사용하는 거고.
촬영 직전.
PD는 나와 티파니, 부모님을 모아놓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다, 다들 오늘 컨디션은 어떠신가요?”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나와 티파니 역시도 이런 사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해 어안이 벙벙해져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음.”
고개를 끄덕이시는 아버지.
아니, 가면의 사내.
어디서 구했는지 프로레슬러들이나 쓸 법한 가면을 쓴 아버지는 정말이지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아버지가 ‘괜찮을 거다.’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군.
가면을 쓰고 방송을 찍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신 모양이지.
“어머~ 물론 최고죠!”
그 옆의 엄마는 이런 아버지의 기행에 적응했는지 마냥 웃었다.
티파니와 나를 훈훈한 눈으로 바라보는 게 어쩐지 부담스럽다.
일단 짚고 넘어가야겠지.
“저기, 아버지.”
“뭐냐.”
“가면은 왜 쓰고 계신 거죠.”
“‘그쪽’으로 아는 친구가 가면을 쓰면 나가도 좋다고 허락해주더군. PD님한테도 연락이 갔을 텐데.”
“아, 설마 그 국장…….”
“친구요.”
“네, 넵. 친구.”
그 국장이 CIA국장은 아니겠지.
나는 황당한 기분을 느끼다 이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어쨌든 뭐, 엄마도 좋아하는 것 같고 아버지도 나름대로 이 상황을 즐기고 계신 것 같으니까.
부모님과 시간을 보낸다는 기분으로 쉬다가 이동하면 되겠지.
바로 그때, 엄마가 의욕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PD님!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일단, 인터뷰를 빼면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해주시면 됩니다.”
방송은 이미 성공해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똑같은 구성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어떤 상황을 보여주고, 그 반응을 인터뷰 형식으로 보여주는 식.
예를 들자면 아버지가 장작을 패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가정하자.
장작을 쫙! 쫙! 패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화면이 전환되며 내 인터뷰가 이어지는 것이었다.
[정말 엄청난 힘이었어요. 저도 선수로서 나름대로 단련을 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버지한테는 지금도 도저히 못 이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일상과 그에 따른 반응을 보여주며 계속해서 이어지는 게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묘미였다.
“음, 정말 그래도 될까요?”
“네, 아들하고 며칠 편하게 지내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PD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조금 놀라면서도 안심한 듯 보이시는 두 분.
이렇게 진행되는 것을 알고 있던 나와 티파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맞았다.
어차피 두 분은 전문적인 연기자도 아니었으므로 카메라 앞에 두면 오히려 얼어붙을 수 있었다.
방송의 주체는 나.
티파니가 조연.
부모님은 게스트 정도.
그러므로 방송의 모든 각본은 우리가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상황을 전한 PD가 부모님을 평소처럼 지내라면서 돌려보냈고.
나와 티파니는 PD와 본격적으로 각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단 2화의 컨셉은 아시죠?”
“물론이죠. 격렬한 경기를 치루고 난 뒤의 일상이잖아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슈퍼스타! 하지만 집에서는 아들!”
PD가 흥분해 소리쳤다.
“그리고 사내연애!”
“열심히 해볼게요. 방송에 나가본 지 좀 되서 괜찮을까 싶지만.”
티파니가 내용과는 달리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일단 멋지게 쇼를 끝마친 신 선수가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것부터 들어가서…….”
“부모님 뵙고 난 다음에 나가서 식료품 사오는 거죠?”
“예, 그렇게 포인트만 통과해주신다면 나머지는 신 선수께 맡기겠습니다.”
“열심히 해보죠.”
나는 빙긋 웃었다.
관객 반응이 없다는 점만 빼면 프로레슬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단 각본은 있다.
하지만 중요한 포인트를 만들어가는 것은 완전히 나의 자유.
그런 의미에서 이 방송은 내게 잘 맞는 옷인 셈이었다.
그렇게 각본에 대한 이야기까지 모두 끝난 뒤, 티파니는 PD 및 촬영 팀과 함께 바깥으로 나갔다.
그들은 원활한 촬영을 위해 집 앞에 주차된 방송국 차량에서 촬영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집안 곳곳에 놓인 관찰용 카메라들이 우리를 비추고 있는 상태.
‘후우.’
나는 심호흡을 했다.
어떻게 보면 지금 내게 맡겨진 일은 총 두 가지인 셈이었다.
하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촬영. 다른 하나는 동시에 부모님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
하지만 가능할까.
‘일단 아버지는 가급적 바깥으로 모시고 나가지 않는 게 좋겠군.’
저런 가면을 쓰고 있다면 백 퍼센트 경찰에 붙잡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