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샤토 어쩌고저쩌고.
내가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프랑스에 ‘5대 샤토’라고 불리는 명품 와인 시리즈가 있다 정도.
그리고 가격을 들었을 때는 상상 이상으로 비싸서 깜짝 놀랐지만.
한 모금 마시자 그 가격이 납득될 정도로 멋진 맛이 느껴졌다.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호오.”
“괜찮죠?”
그런 내 얼굴을 보고 킥킥 웃은 티파니가 글라스 안에 든 와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빛깔도 예쁘고 바디감도 좋고,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친구죠.”
“그래도 너무 마시지는 마.”
그런 내 말에 잠시 대답을 않고 있던 티파니가 이어 으르렁댔다.
“당신이 무슨 상관이에요?”
연기였다.
방금까지는 좋은 와인을 맛본 김에 서로 잠깐 각본과는 상관없이 편하게 대화를 나눴던 거고.
이제 다시 ‘일’을 해야겠지.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좋을 대로 해. 또 술에 취해서 출입 금지라도 당하자고.”
“……그 얘기가 왜 갑자기 나와요?”
“상기시켜준 것뿐이야.”
“이런 식으로 나올 거예요?”
“내가 뭐?”
“적당히 해요.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이렇게 지내고 싶어요?”
“하아.”
다시금 한숨.
“그래, 식사나 즐기자고.”
그렇게 이야기한 나는 입을 다물고 와인을 홀짝거리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 대한 염증을 표현하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티파니가 윙크를 했다.
“…….”
아, 뿜을 뻔했네.
자꾸 이렇게 장난치면 편집하는 게 힘들어서 한소리 듣게 된다.
‘이제 일을 해야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아예 시선을 피하고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아마 지금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이따 인터뷰를 따겠지.
[싸우기 싫었어요. 티파니의 말마따나 서로 오랜만에 만났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어요?]
그래서 침묵했다.
[하지만 문제는 에피타이저가 나오면서 생기기 시작했죠.]
그 말로 궁금증을 유발해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지 않도록 유도하며, 자연스럽게 광고 타임.
그리고 에피타이저가 나왔다.
굴 요리.
굴이란 이름만 들어도 침이 꼴깍 넘어가고 환장하는 나였으나, 현재는 싫은 척을 해야만 했다.
때문에 눈썹을 살짝 찡그리고 있자니 테이블을 세팅한 웨이터가 우리 앞에 서서 설명을 시작했다.
“특제 소스로 산뜻하게 향과 맛을 낸 굴 세비체입니다.”
친절한 설명과 함께 나를 힐끔 돌아본 웨이터가 표정이 좋지 않은 걸 감지하고는 말을 이었다.
“손님, 괜찮으시다면 다른 에피타이저를 준비해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떤 요리죠?”
“새우와 관자가 들어간 훈제 연어 샐러드입니다.”
“그럼 그쪽으로.”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웨이터가 내 앞에서 접시를 들고 물러났다. 그것을 본 티파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 굴 요리가 유명해요.”
“난 연어가 낫겠어.”
“설마 못 먹어요?”
싸움은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한 번 미워 보이는 놈 계속해서 밉다고, 티파니는 굴 요리를 마다하는 내게 계속 핀잔을 주었다.
“어쩜, 남자가 굴도 못 먹어요?”
“못 먹는 건 아니야. 그냥 오늘은 딱히 먹고 싶지 않은 거지.”
“지금 시위하는 거예요?”
“또 무슨 소리야.”
티파니의 연기는 완벽했다.
쓸데없이 집착하고 의심하는데다 거기에 더해 질투와 허영심까지.
이 쇼의 티파니는 자극적인 재미를 주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자신과는 다른 캐릭터를 연기했다.
물론, 이런 모습은 시청자들에게는 어마어마하게 욕을 먹겠지.
하지만 티파니는 그런 사소한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중요한 건 시청률.
그리고 내 이미지.
어차피 근본이 사업가이기에 자신은 이미지가 얼마든지 망가져도 상관없는 위치에 있다면서.
하지만 협의 하에 만들어졌어도 이 각본이 과연 괜찮나 싶었다.
정말로 티파니를 바트가 그랬던 것처럼 ‘쌍년’으로 묘사하는 게 지금까지처럼 옳은 생각일까.
그리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 낡았어.’
자극적인 거라면 내 쪽에서도 좀 움직이는 게 맞지 않나 싶었다.
지금 내밀고 있는 거칠고 섹시한 남자의 이미지를 좀 살리면서.
동시에 티파니를 완전한 악역으로 돌리지 않는 느낌으로.
요리가 계속해서 나왔다.
그리고 다툼은 계속되었다.
입을 다물고 있다가도 건수만 생겼다하면 말다툼이 이어졌다.
그 절정.
“이럴 거면 대체 왜 왔어!”
티파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직후.
콰앙!
나는 테이블 위에 있던 접시를 주먹으로 힘차게 내리쳤다.
모두가 깜짝 놀랐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티파니부터 시작해서 자리에 있던 연기자들과 웨이터, 모든 이들이 굳어졌다.
하지만 나는 PD를 슬쩍 돌아보면서 이것이 어디까지나 연기라는 사실을 확실히 전해주었다.
잠시 굳어져 있던 티파니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나는 그것이 연기라고 믿었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감정을 잡고 폭발한 다음의 대사를 쳐나갔다.
바로 한숨이었다.
“하아.”
짜증이 나는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경기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뉴욕까지 왔더니 애들처럼 말다툼이나 하고 있는 상황.
쯧, 쯧.
혀를 차는 소리에 고개를 든 나는 티파니가 눈짓으로 내 손에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피가 흐르고 있다.
아니 근데, 저렇게 감정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그걸 캐치해내?
하지만 덕분에 수월하게 각본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바로 이 시점에서 티파니의 짜증을 피해 화장실에 다녀와야만 했으니까.
“……미안. 잠깐 씻고 올게.”
그것이 순간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서 했다는 행동인 것처럼.
냅킨으로 피가 흐르는 손을 감싸며 일어선 나는 그대로 자리를 빠져나와서 화장실로 향했다.
* * *
올해 19세인 페니 스완은 네브래스카의 한 촌구석 출신이었다.
사람보다 소가 더 많이 사는 동네에 살던 그녀는 고등학교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돈을 모았다.
연기에 대한 꿈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젖이나 짜는 미래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졸업 후 친구 한 명과 함께 뉴욕으로 건너온 그녀는 곧바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내내 접시닦이 일을 하며 버틴 끝에 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캐스팅되었다.
오늘 페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신의 팬이란 역할로 대략 10초 정도 출연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반드시 뭔가를 얻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로 신의 마음이었다.
그 저의는 이러했다.
“그 남자, 지금 꽤나 잘 나가고 있던 것 같은데. 내 미모로 꼬셔두면 앞으로의 커리어가 쉽게 풀리지 않겠어?”
“페니……. 신은 실제로 티파니 맥센과 사귀는 사이라던데.”
그렇게 말한 건 페니와 함께 네브래스카에서 상경한 에이미였다.
연예 매니지먼트 회사의 직원으로 근무했지만, 오늘은 자신이 추천한 페니와 함께 신의 팬 역할을 맡을 예정이었다.
팬이 한 명이면 이상하다는 PD의 갑작스러운 요청 때문이었다.
“뭐 어때. 빼앗으면 되지.”
“페, 페니.”
그녀는 지금 친구가 얼마나 허황된 소리를 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못했다. 그것이 두 사람 간의 관계가 오래도록 이어져온 비결이었다.
“걱정 마. 에이미. 내 미모에 넘어오지 않을 남자는 없으니까.”
“아니, 그 미모가…….”
분명 페니 역시 네브래스카의 촌구석에 있는 작은 고등학교에서 치어리더 캡틴을 맡을 수준은 됐지만.
티파니 맥센은 차원이 달랐다.
연예계의 가수와 배우들이 어떻게든 벤치마킹하려고 노력하는 화려한 밸리 걸 스타일.
그녀는 실제로 밸리 걸 그 자체였다.
엄청난 부자 집안에 미모의 금발 여성.
하지만 밸리 걸의 부정적인 이미지인 멍청함과는 거리가 먼, 교양과 사업적 수완까지 갖춘 인물.
‘그런 사기캐가 어디 있어?’
때문에 에이미는 그녀와 신이 만난다고 했을 때 좀 놀랐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런 여자는 헐리우드의 백인 배우와 염문을 뿌리는 것이 정상인데.
그 짧은 생각은, 반대편에서 나타난 남자를 보고 바뀌었다.
“어.”
“…….”
두 사람의 몸이 굳어졌다.
신을 ‘꼬셔보겠다’고 말한 페니, 왜 티파니가 동양인 남자와 만나는 걸까 싶었던 에이미.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신.
188cm의 키에 100kg에 가까운 근육질의 체형. 그리고 약간 퇴폐미가 느껴지는 이국적인 페이스.
거기에 냅킨으로 감싼 손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핫한 상황까지.
상처 입은 남자는 여성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법이었다.
더군다나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아할수록 더더욱.
그를 본 순간 두 사람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준비를 해야 하는데 넋을 놓고 말았다.
“…….”
그사이 신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네브래스카 출신의 페니와 에이미는 그때까지도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다 못한 촬영팀 직원이 다가가 귓속말을 건넸다.
“두 분, 준비해주세요.”
“아, 넵!”
당황해 소리치는 페니.
오디오에 잡힐 정도로 큰 소리에 에이미는 당황해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이내 머릿속으로 신의 야성적인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아직 촌티를 벗지 못한 페니가 그 옆에 서있는 광경이 도저히 상상되지가 않았다.
“좋아…….”
때문에 에이미는 전의를 불태우는 페니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 *
다행히 심하게 찢어지진 않았다.
평소 자주 있는 일이라 물로 대충 씻어낸 나는 그대로 뒤를 따라 들어오는 직원을 발견했다.
“괜찮으세요?”
“아, 넵.”
“일단 소독부터 하죠.”
그 말에 따라 상처를 소독하고 연고를 바른 뒤 붕대를 감았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자 피가 붕대로 스며 나오는 것이 보였다.
직원이 당황하며 말했다.
“가만히 두셔야 해요.”
“이따가 쓸지도 모르니까요?”
“예?”
“냅킨으로 대충 감아둔 상처에서 피가 안 나는 것도 이상하니까요.”
“……정말 모두 연기였군요.”
“그럼 뭐겠어요.”
“어, 저희 쪽 사람들 반 이상은 신 선수가 정말로 화가 났다고 생각하고 있는걸요.”
“티파니가 우는 것도 합쳐서?”
“그, 그것도 서로 미리 얘기해둔 거였어요?”
“그건 아니고 적당히 맞추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죠.”
“허어.”
경악하는 직원.
아무래도 우리 업계의 장점이 이들이 보기에는 놀라운 모양이다.
“그런데 왜 굳이…….”
“그냥, 너무 티파니를 악역으로 묘사하면 촌스럽지 않나 해서요.”
“화, 확실히. 신 선수가 화를 내는 게 뭔가 더 자극적이네요.”
“고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그대로 감정을 잡은 뒤 화장실을 나왔다.
그러자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조그마한 여자애 두 명이 다가왔다.
“꺄악! 신 선수!”
“…….”
와, 연기 못하네. 얘.
“사인 좀 해주세요!”
“부, 부탁드립니다.”
그 뒤의 여자애는 얼굴이 빨개진 게 정말로 내게 반한 연기를 잘 수행하는 것 같아서 좀 나았다.
“아, 예.”
일단 팬들의 앞이라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에게 사인을 해줬다.
그나저나.
뒤쪽의 수수한 애는 정말 연기를 잘한다. 아예 나하고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네.
이제 이 두 여자애가 나에게 과하게 달라붙으며 티파니에게 오해받는 상황을 연출할 예정이었다.
그것을 본 그녀는 화를 내면서 가버리고 내가 잡아서 겨우겨우 달래는 게 원래의 각본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더 자극적인 방향으로 바뀌었고, 여기에서 티파니가 어떻게 나올지가 또 궁금해졌다.
“저기, 저기. 시인. 밥 먹고 나면 뭐해요? 저희하고 놀래요?”
“아, 일행이 있어서.”
“오늘 밤새 놀아도 되는데에.”
금발의 여자애가 내 팔뚝에 팔짱을 끼고는 계속 말을 걸어왔다.
그나저나 연기가 좀 이상한데.
아까 PD가 둘 중 하나는 아마추어라고 하더니 그게 얘인가?
다른 애는 가만히 내 얼굴만 빤히 보면서 자신의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노골적으로 가슴을 붙여 와서 좀 당황스러운 기분이다.
바로 그때였다.
날 따라온 티파니가 복도 반대편에서 지금 이 상황을 목격했다.
나는 잠시 굳어졌다.
기대가 되기도 했고, 반대로 왠지 모를 불안감이 일기도 했다.
과연 내가 테이블을 내리치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억울해한 그녀가 여기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
나를 한 번 슥 보고는.
바로 옆에 달라붙어있는 여자애를 죽일 듯 바라보는 티파니.
잠시 굳어져 있던 여자애가 이어 슬그머니 팔을 빼고 물러났다.
그리고 다가온 티파니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손을 번쩍 들더니 내 뺨을 시원하게 후려갈겼다.
쫘악!
슈퍼 킥을 찰 때보다 훨씬 더 강렬한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 * *
레스토랑에서의 촬영이 끝난 뒤.
PD는 근처 호텔의 싸구려 방에 앉아 카메라 감독, 작가와 함께 촬영 분량을 확인하고 있었다.
신의 뺨을 힘차게 후려친 티파니는 차마 방송에는 절대로 내보낼 수 없는 갖은 욕을 내뱉었다.
그간의 이미지를 확 뒤집는 쌍욕에 PD는 내용을 보면서 자동으로 필터가 씌워지는 걸 느꼈다.
[이런 (삐이-)끼가 사람이 걱정 되서 따라왔더니! (삐이-)발 놈아! 여자면 누구나 좋다는 거지! 너 같은 놈은 (삐이-)를 (삐이-)해서 타코로 만들어 먹어야 돼!]
그렇게 실컷 욕을 내뱉은 티파니는 그대로 카메라를 벗어났다.
카메라 감독이 4번 카메라로 화면을 돌리자 신으로부터 도망치는 티파니의 모습이 계속 나왔다.
“이거 진짜 걸작인데.”
작가가 맥주를 홀짝거리며 티파니의 그런 행동을 칭찬했다.
“여기에서 울었으면 로맨스가 되고 욕을 하면 코미디가 되거든.”
“그런데 티파니는 상황을 순식간에 코미디로 비틀었고 신이 그거를 단숨에 알아차렸지.”
“둘이 아주 잘 맞아.”
모두가 납득했다.
곧바로 그 뒤를 따라간 신은 4번 카메라에서 티파니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것을 기다렸다.
둘이 신호를 주고받았다.
마치 찰리 채플린 무비 같았다.
“이 부분은 그냥 보기만 해도 어떻게 해야 편집으로 살릴 수 있을지가 보여서 참 좋단 말이야.”
PD는 다시금 감탄을 했다.
티파니가 중지를 날리고 엘리베이터에 탔고, 신이 뒤늦게 쫓아가 그 문을 쾅쾅! 두드렸다.
[제기랄!]
한숨을 내쉰 그가 나비넥타이를 풀고 재킷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옆의 비상구를 타고 내려갔다.
“여기는 카메라를 설치해두지 않아서 나중에 따로 촬영을 했지?”
“그래, 계단 내려가는 거.”
근육질의 몸매가 드러나는 것이 정말 황홀할 정도로 멋졌다.
만날 때부터 삐걱거린 두 사람.
원래 각본대로라면 티파니를 나쁜 여자로 보여주면서 신이 일과 사랑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지만.
“드라마가 되었군.”
“로맨틱 코미디.”
누구든 환장할 설정.
그 뒤는 더 가관이었다.
엘리베이터로 1층까지 내려간 티파니가 갑자기 하이힐을 벗더니 카펫 위에 대고 쿵쿵 내리쳤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것과 하이힐을 손보는 행동 간에 유예를 둬서 편집점까지 고려해주었으나.
그와는 별개로 처음에는 다들 그런 티파니의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답은 간단했다.
티파니는 하이힐이 부러지는 걸로 이 추격전을 끝내려는 속셈이었다.
“아니, 이런 아이디어를 대체 어떻게 실시간으로 생각하냐고!”
하이힐의 굽이 꺾여 넘어지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일부러 이러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이 1층으로 내려오자 두 사람은 카메라를 앞에 두고 대화를 몇 마디 나누었다.
[넘어지면 바로 나와서 받아요.]
[오케이, 멋지겠는데.]
이건 솔직히 누가 보더라도 ‘연출이겠다’ 싶을 정도의 상황이다.
하지만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그런 교묘한 줄타기가 중요했다.
연출처럼 보이더라도 ‘에이,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넘어가게 하는 것. 그게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리고 이건 정확히 ‘에이~.’ 하면서 넘어가게 만드는 연출이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 티파니가 부러지기 직전의 하이힐을 신고 또각거리며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신이 1층 비상구를 열고 나온 순간, 힐 굽이 부러졌다.
[꺄악?!]
넘어지는 티파니를 향해 힘차게 달려들어 몸으로 받아내는 신.
로비 앞에 넘어진 커플.
“캬아.”
“미쳤군. 미쳤어.”
“이거 우리가 각본 안 짜줘도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인데.”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카메라 감독은 맥주를 꼴깍거린 뒤 행복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저 둘 때문에 우리가 맥주나 마시면서 쉴 수 있게 된 거지.”
그 말이 맞았다.
일차적으로는 신. 그리고 오늘은 티파니까지.
두 사람의 활약으로 인해 프로그램 편집이 예상보다 빨리 끝날 것 같았다.
방영은 바로 이번 주말.
그 결과가 기다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