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185화 (185/634)

185.

바로 그게 악역에게는 필요했다.

자유로움.

선역과 악역.

선역은 고전적 가치를 쫓는다.

나라고 해도 선역이 되면서 되도록 반칙의 사용을 많이 줄였다.

그들의 세계에서 프로레슬링은 신성한 것이었다. 벨트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얻어야만 적법하다고 믿는 자들이 바로 선역이었다.

악역은 달랐다.

그들은 부킹 상 팬들에게 비난을 받도록 만들어진다. 하지만 명확히 말해 그들은 다른 것뿐이었다.

프로레슬링은 모든 게 허용되는 남자의 세계를 표현했다. 반칙도 심판이 보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물론 여기가 정말로 공정한 경쟁이 아니기에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드라마적 장치이기는 했다.

그렇기에 그런 룰을 교묘하게 사용하려는 이들이 있고 거기에 공감하는 극소수에게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주류 가치에는 반하는 남자들. 그렇기에 악역.

악역으로서의 내가 없으면 러셀 하트는 결국 대체 어떤 선수인가.

그는 왜 야유를 받아야 하는가.

그 답이 나왔다.

그리고 녀석은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완벽하게 그것을 표현했다.

보안 요원의 허리에서 벨트를 빼앗아든 녀석이 내 등을 후려쳤다.

쫘악-!

“끄흑?!”

강렬한 통증에 내가 무릎을 꿇자 녀석은 사람들의 야유를 받기에 최적의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내 다리를 짓밟았다.

“크아아악!!”

나는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러자 주변의 사람들이 러셀을 향해서 야유를 보냈다.

지금 있는 곳은 경기장 로비.

러셀은 나의 오른쪽 다리만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있었다. 그 저열한 의도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관객들도 명확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집요하게 무릎을 노리는 걸 보고는 더 큰 야유를 보냈다.

나는 러셀의 공격에 계속해서 당해주면서 그 ‘질투심’을 느꼈다.

그래.

밝히기 꼴사나운 감정.

러셀의 내면에 있는 가장 역겹고 더러운 감정은 바로 그것이었다.

초조함에 섞여 나와 정신을 차려보니 그를 옭아매고 있던 욕망.

네가 무너졌으면 좋겠다.

오늘 경기에서 지더라도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으면 좋겠다.

그런 감정을 담아, 멀리서 달려온 러셀이 일어서려던 내 무릎을 힘차게 걷어찼다.

타격 시점에 맞춰 바닥을 짚고 밀어낸 나는 멋지게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며 떨어졌다.

“크윽……!”

대리석으로 된 바닥에서 낙법을 치자니 충격이 그대로 들어왔다.

등과 어깨가 계속 욱신거렸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로비의 사람들과 우리를 찍고 있는 카메라로 계속해서 움직일 수 있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동했다.

절뚝거리며 일어난 나는 러셀을 피해 경기장 건설용 자재가 쌓여 있는 장소를 향해서 이동했다.

쇠 파이프와 각종 상자, 텅 빈 락커가 쌓여 있는 바로 그곳.

돌진해오는 러셀을 피하며 밀어낸 나는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러셀이 자재들 사이에 충돌했다.

콰앙-!

까강! 까가가강!

쇠 파이프가 부딪히며 우리의 위로 떨어졌다. 팔을 들어 머리를 보호한 나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숨을 몰아쉬었다.

위험천만한 스팟.

경기장 안에서 관객들이 보내는 함성이 벽을 통해서 들려왔다.

그걸 들으면 정말 벌떡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큰일이었다.

“1!”

동시에 쓰러진 우리를 보고 심판이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2, 3, 4, 5.

그때를 기점으로 나는 쇠 파이프를 밀어내며 천천히 빠져나왔다.

“좋아!”

“일어났어!”

가까이서 지켜보던 행운아들이 나를 향해서 힘찬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문제는 러셀이었다.

7을 센 시점.

나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 락커에 깔렸던 녀석이 터미네이터처럼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후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숨을 크게 몰아쉰 나는 그대로 다시 녀석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공격이 이어졌다.

우리는 이번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백 스테이지로 들어갔다.

아예 방송용 자재들이 즐비하게 깔린 그곳에서 우리는 손에 잡히는 물건은 무엇이든 다 사용했다.

환기구를 향해 러셀을 내던졌다.

쿠웅!

거기에 녀석이 부딪히자 거대한 환기구가 움푹 들어갔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무릎을 꿇었다.

정말로 아프다.

딱히 무릎에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어쨌건 정말 아팠다.

그럼에도 나는 카운트를 하는 심판의 공격에 맞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뒤를 이어.

까앙-!

힘차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나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등을 걷어차여 바닥을 한 바퀴 구르며 쓰러지려는 순간.

“?!”

알 수 없는 충격이 뒤를 따랐다.

그와 함께 머리가 새하얗게 물드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자 시야가 붉게 물든 것이 느껴졌다.

“…….”

나를 뒤에서 습격했던 닉 플레어의 눈이 휘둥그레 뜨인 채였다.

원래는 이 시점에서 그가 날 계속 공격해야만 맞는 순서인데.

“신!”

가까이 달려온 심판이 주머니에서 지혈 테이프를 꺼내들었다.

뭐지?

내가 피를 흘린다고?

의아해 몸을 일으켜 세우려던 나는 중심을 잃고 다시 쓰러졌다.

어라.

바닥에 뭔가가 고여 있다.

내 피였다.

* * *

티파니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방송을 보는 중.

문제가 생겼다.

신의 이마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찢어졌고 그곳으로 예정에는 없던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Uooooooooooohhh!!]

탄식을 내뱉는 관객들.

[심각한 부상으로 보입니다.]

[상처가 심각한데요! 경기가 이대로 끝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정에 없던 사태에 당황하며 상황을 설명하는 해설자들.

“안 돼…….”

티파니는 신음을 흘렸다.

지금 그녀는 두 가지 입장에서 이 사태를 절망적으로 받아들였다.

하나는 신의 연인으로서, 그가 이렇게 위험천만한 행동을 하는 것이 정말로 보기 힘들었다.

알고는 있다.

프로레슬러는 언제고 안전한 일만 할 수 없다는 건.

보아왔다.

지금껏 알고 지냈던 수많은 친구들이 위험천만한 짓으로 다치고 쓰러지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신은 달랐다.

마음 깊이 두고 있는 사람이 부상을 입자 다 때려치우고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신의 꿈을 생각하자면 이건 절대로 멈춰서는 안 될 경기였다.

경기가 이런 식으로 끝나선 안 된다. 그랬다간 신의 커리어에 치명적인 오점이 생기고 만다.

그렇기에 눈썹을 찡그린 티파니느 이어 신에게 기도를 했다.

제발 경기가…….

계속 이어지기를.

* * *

신, 신.

누군가 날 불렀다.

눈을 뜨자 의료팀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해요!”

뭐?

“이건 할 수 없어요! 끝내요!”

그 정도로 심각한 부상인가?

나는 이마를 매만졌다.

피가 듬뿍 묻어나왔다.

몸이 식빵이었다면 딸기 잼이 아주 곳곳에 발리게 된 셈이었다.

“심판!”

의료 팀원이 내 이마를 짚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옆에 있는 심판은 가만히 날 보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신 선수.”

“일단 광고로 돌려.”

“했습니다.”

“잘했어. 나중에 뽀뽀해주지.”

가벼운 농담을 건넨 나는 이어 카메라가 러셀과 나를 번갈아서 비추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플레어에게 춤을 추라고 해요.”

“예?”

“그리고 이마에 침 박고 붕대 감아. 소독은 거르고.”

“아니……!”

“어서.”

나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그걸 먼저 들은 건 플레어였다.

그의 잘못은 아니다.

내가 잘못된 위치로 구르면서 생긴 일이었다. 플레어는 그렇기에 내 의사를 무엇보다 중시했다.

“Woooooooooooo!”

허공을 향해 소리친 그가 내 상처를 ‘예정대로’의 일로 만들었다.

발을 구르며 특유의 스텝을 밟았다. 카메라 맨이 그것을 비췄다.

좋아.

남은 건 너다.

닥터.

너만 선택하면 된다.

날 여기서 멈추게 하지 마라.

난 멈출 수 없다.

그런 의지를 담아 바라보았다.

“제기랄. 소송 걸지 마세요.”

결국 닥터가 구급상자에서 의료용 스테이플러를 꺼내들었다.

“좀 아플 겁니다.”

“괜찮아. 터프하니까.”

아니, 괜찮지 않았다.

상처가 손으로 억지로 접히고 그 위에 침이 여러 발 박혔다. 나는 최대한 행복한 상상을 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환호를 보내며, 티파니가 날 사랑한다고 말하고.

바트가 나에게 사과하며, 부모님이 날 자랑스럽게 여기시는.

월드 챔피언이 된 나를.

그렇게 상처가 억지로 봉합되었고, 거즈와 테이프가 마구 붙었다.

광고가 끝났고 플레어는 마구 애드립을 치며 아예 자신이 경기의 일원인 양 쇼를 빼앗았다.

나는 심판에게 말을 전했다.

“담배 좀 구해와.”

“예?”

“연출에 필요해.”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현기증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금 플레어에게서 쇼를 빼앗기 위해서 몸을 움직였다.

“Woooooooooo! 남자가 되려면 진짜 남자를 쓰러뜨려야지!”

“바로 여기에 있다.”

카메라 사이로 끼어들었다.

[Eyyyeeeeeeeeeaaahhhh!!]

완벽한 부활.

이마에 붕대를 감은 나는 플레어를 쓰러뜨리고 올라타 마구잡이로 두들겨 패대기 시작했다.

마치 그의 반칙으로 난 상처를 되갚아주듯이. 그렇게 마음껏 패고 난 뒤 그에게 전달했다.

“러셀하고 부딪혀서 시간 끌어요.”

그리고 일으켜 세운 뒤, 플레어를 일어서던 러셀에게 던졌다.

다시금 부딪힌 두 사람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나는 비틀거렸다.

‘제기랄.’

이거 꽤 필요하겠는데.

몇 가지 스팟을 줄이자.

마지막은 남기고.

중간 과정은 생략하고.

연출로 위기를 해쳐나가자.

그렇게 생각하며 서있던 나는 심판이 담배를 구해오는 걸 발견했다. 그게 지금의 내 무기였다.

‘여유’가 있음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이보다 좋은 게 없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전생과 달리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마침 여기에 있군.

그렇다는 연기를 하며 카메라의 사각에서 담배를 건네받은 나는 곧바로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걸 쓰러진 러셀과 플레어를 향해 걷어찼다.

까강, 까가가강!

쇠 파이프가 요란한 소리를 냈고 그 틈을 타 나는 이야기했다.

“천천히 세요.”

고개를 끄덕인 심판이 러셀의 앞으로 이동해 카운트를 셌다.

“1!”

카메라가 조금 떨어졌다.

나는 자재가 든 상자에 털썩 걸터앉아 담배를 물고 기다렸다.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피어오르는 연기.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숨을 몰아쉬는 나.

쓰러진 러셀.

나는 그렇게 기다렸다.

녀석이 최대한 아슬아슬한 순간에 일어서주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러셀은 정말로 이런 점에서는 믿음직한 동료였다.

좋아, 침착하자.

원활히 해낼 수 있다.

나는 아직 움직일 수 있다.

담배 연기를 맡으며 나는 그렇게 신체를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그런 장면이 그저 TV로 보기에는 신이 여유를 부리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말이다.

8 카운트가 거의 20초 가까이 늘어지면서 세어졌다.

그리고 그때쯤 러셀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카운트가 뚝 멈췄다.

녀석이 천천히 일어섰다.

그와 함께 들린 쇠 파이프들이 천천히 바닥에 떨어졌다.

까강, 깡, 까가가강……!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숨을 몰아쉬는 러셀과.

반대편에서 부상을 입었음에도 여유를 가장하고 있는 나.

관객들은 그런 우리의 싸움을 분명 숨도 못 쉬고 지켜보겠지.

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현기증이 아직 좀 남아있는 상태였지만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그리고 달려든 러셀은 곧바로 내 이마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것은 한없이 연출에 가까웠다.

“……!”

하지만 방금 부상을 입은 이마에는 너무도 가혹한 처사였다.

그래도.

만약 나였다고 하더라도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여기에 주먹을 날렸겠지만.

나는 그저 주먹이 그 위를 살짝 스치는 것임에도 눈앞이 번쩍 뜨이는 통증을 맛보며 계속 싸워댔다.

러셀이 주도권을 쥐었다.

녀석이 날 등 쪽으로 해서 최대한 안전하게 반대로 내던졌다.

쿠웅-!

락커룸으로 빠져나왔다.

온갖 선수들이 우리 경기의 관객이 되어주기 위해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개중에서도 환호를 빼앗아갈 만한, 예를 들자면 바티스타 같은 선수들은 빠진 상태였지만.

나는 설령 바티스타가 있더라도 모두가 우리에게 집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몰입감이 쩔어줬다.

그도 그럴 것이, 저 뒤에서 몰래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오튼의 표정이 거의 울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우린 멈추지 않았다.

아직 마지막이 남아 있었다.

이 경기의 가장 큰 스팟이.

하지만 과연 이 상태로 가능할까?

그에 대한 내 답은 간단했다.

‘물론 해야지.’

슈퍼 멋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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