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레슬링의 신-186화 (186/634)

186.

경기는 계속 이어졌다.

“크윽……!”

나는 집요하게 이마를 노리는 러셀의 공격을 견뎌내고 있었다.

앉아있는 내 뒤에 선 녀석이 이마를 세차게 팔꿈치로 긁어냈다.

[Boooooooooooooooo-!]

부상 부위를 비겁하게 노리는 공격에 관객들이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사실,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찢어진 이마의 감각이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몸 전체에 아예 감각이 사라졌다. 덕분에 나는 계속해서 싸우는 게 가능했다.

숨을 몰아쉬며 일어나 러셀의 이마를 향해 힘차게 주먹을 날렸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주먹이 날아가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

충격과 통증이 심해 과도할 정도의 엔돌핀이 분비되고 있었다.

그것이 통증을 지워내는 한편 몸의 감각 또한 앗아간 것이었다.

‘이 상태로 과연 마지막 스팟까지 제대로 이어나갈 수 있을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당연히 가능했다.

이 짓을 수십 년 해왔으니까.

인디 시절에도 이보다 더 미친 짓을 하면서 내내 굴렀던 나다.

몸의 감각이 없더라도 마지막 스팟은 충분히 수행할 수 있었다.

수십 년간 해온 일이니까.

“허억, 헉…….”

“후우…….”

러셀과 난 서로를 마주보았다.

이미 상대가 한계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몇 번이고 쓰러졌으며 9 카운트에서 일어난 것도 많았다.

하지만 결국 10 카운트까지는 다다르지 못했다. 러셀은 오기로 버텨내며 악바리처럼 날 물어뜯었다.

내 무릎을 작살내고.

상처를 들쑤셔댔으며.

오늘 밤, 내가 성히 나갈 수 없도록 필사적으로 덤비고 있었다.

그러므로 마지막 스팟에서 가장 강한 범프를 수행해야만 했다.

이 끈질긴 개자식이 도저히 일어설 수 없도록 강력한 기술을.

뒤엉킨 우리는 입장로를 통해 다시 관객들의 앞으로 나왔다.

[Yeeeeeaaaahhhhh!]

쏟아지는 환호.

지쳐 쓰러지기 직전.

러셀과 내가 서로를 공격할 때마다 경기에 대한 몰입으로 열광적인 반응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해두자.

그것은 내가 경기 중간에 보여준 배드-애스한 퍼포먼스 덕이다.

쓰러진 러셀의 앞에서 이마에 붕대를 휘감은 채 ‘이 새끼를 어떻게 조지나.’ 하고 여유를 부린 게 사람들에게 제대로 먹혀서였다.

러셀도 그것을 느낄 터.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사람들이 이름을 외칠 때마다 녀석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주먹에 힘이 빠져갔다.

나는 버럭 소리쳤다.

“뭐하는 거야!!”

“……!”

“덤벼! 죽일 각오로 덤비라고!”

퍼억-!

알싸한 통증.

씨익 웃은 나는 넘어가는 척하며 사람들의 반응을 끌어냈다.

그리고 동시에 다리를 들어 러셀의 안면에 슈퍼 킥을 먹였다.

쫘악-!

진짜로 걷어찼다.

동시에 쓰러진 나는 멍하니 조명을 올려다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1!”

카운트를 시작하는 심판.

더블 K.O.

경기의 마지막 스팟으로 이어나가기 전, 우리는 그렇게 잠시 숨을 고르며 시간을 가졌다.

2, 3, 4, 5, 6, 7…….

사람들이 점점 이 경기가 더블 K.O.로 끝나지 않나 침묵하며 카운트를 지켜보던 순간.

나는 한쪽 다리를 들었다 놓으며 동시에 벌떡 일어섰다.

[Yeeeeeeeaaaaaahhhhh!!]

환호가 쏟아졌다.

5만 명의 빛이 날 바라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채 웃은 나는 그대로 러셀을 향해서 다가갔다.

“신, 뭐하는 거야!”

“이걸로 끝나면 섭섭하지.”

미리 정해두었던 대로 심판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던 러셀을 일으켜 세웠다.

녀석이 날 바라보았다.

눈으로 ‘해라.’라는 의사를 전해왔다. 그것을 믿은 나는 녀석을 입장로 옆의 구조물로 데리고 갔다.

장식용으로 쌓아둔 테이블.

하지만 그건 모두 메인이벤트의 이 스팟을 위한 물건이었다.

이것과 바닥에 숨겨둔 쿠션이 완충제가 되어 나의 추락을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막아줄 것이다.

그 위에 러셀을 눕힌 나는 바로 뒤쪽에 있는 철골 구조물을 사다리처럼 올라가기 시작했다.

“잠깐! 신! 너무 위험해!!”

심판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보안 요원으로 가장한 닥터들도 나와서 분위기를 살려주었다.

거기에 관객들.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Yes!]

수많은 관객들.

이들은 나의 죽음을 바라는가?

나의 고통을 바라는가?

아니다.

날 믿고 있는 거다.

내가 이 자폭에 가까운 스팟으로 러셀을 완전히 끝장낼 것임을. 그리고 일어서 승리를 자축할 것을.

나는 더 위로 올라갔다.

관객들의 미칠 듯한 환호에 철골이 이리저리 흔들릴 정도였다.

더 위로.

꼭대기까지.

해서 돌아보자 5미터 위.

3단 로프 위에서 링으로 떨어지는 건 2미터 정도.

3단 로프 위에서 아나운서 테이블 쪽으로 떨어지는 건 3미터.

거기에서 2미터를 더 올라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고 몸이 하지 말아달라고 내게 빌었다.

하지만 난 한다.

분명 슈퍼 멋질 테니까.

역사에 우리가 남을 테니까.

“후우.”

성호를 그은 나는.

러셀을 향해 몸을 던졌다.

* * *

[아, 아아아아아아아아!!]

티파니는 시선을 돌렸다.

프로레슬링을 시청하면서 처음으로 겪는 일이었다. 그녀는 도저히 이 장면을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소리가 들려왔다.

신의 추락.

콰직, 콰지지지직!

무너지는 테이블.

[Waaaaaaaaaaaaaaaaghhh!!]

미쳐 날뛰는 관객들.

[5미터 아래로 신이 몸을 던졌습니다! 러셀은 도망치지 못했고 그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았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한 방입니다!]

해설자들이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5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는 100kg의 무게를 받아내면 인간은 반드시 죽게 되어있다.

그렇기에 이건 상대를 공격하는 척하면서 옆으로 떨어져 자기 자신을 박살 내는 기술이었다.

“제기랄…….”

손이 덜덜 떨렸다.

담배를 입에 문 티파니는 위경련을 느끼며 경기를 계속 보았다.

이제는 의무감뿐이었다.

쓰러진 두 사람.

[1!!]

심판이 카운트를 시작했다.

쓰러진 신의 이마에서 다시금 피가 흘러나왔다. 방금 공격으로 다시금 출혈이 일어난 것이었다.

카메라는 대자로 뻗은 두 사람을 비췄다. 숫자가 천천히 세어졌다.

그리고 8 카운트.

서서히 일어나는 신.

[Yeeeeeeeeeeeaaaaaahhhh!!]

관객들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거기에 잠시 멈춘 심판은 신이 일어서자 남은 카운트를 셌다.

[10!!]

땡땡땡!!

그와 함께 흘러나오는 테마.

신은 숨을 몰아쉬며 반쯤 억지로 버티고 서있었다. 그 이마를 살피기 위해 닥터가 천천히 다가갔다.

싱긋 웃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고, 신은 붕대를 풀어냈다. 너무 많은 출혈에 화면이 흑백으로 변했다.

심의 규정을 준수하기 위한 고육지책. 하지만 이전부터 신은 그런 한계를 일찌감치 넘고 있었다.

자신의 손으로 피투성이가 된 붕대를 풀어낸 그가 손을 들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정말로 멋진 그림일, 터였다.

테마가 연주되는 가운데 결국 승자로 우뚝 선 것은 신이었다.

“이 바보가…….”

그 모습을 본 티파니는 손을 떨면서도 어쩔 수 없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멋지긴 했으니까.

* * *

그 뒤로 기억이 없었다.

아니, 있기는 하지만 희미했다.

분명히 누군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의무실로 옮겨진 나는 응급 처치를 받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제 쉬어도 된다는 사실에 몸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정신이 살짝 아득한 저편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마취제를 맞고.

제대로 된 봉합을 하고.

정신을 차리자 어둠 속.

“…….”

병원 안이었다.

잠깐 입원을 한 모양이다.

뭔가 싶어 주변을 살핀 나는 옆에 거무스름한 무언가가 엎드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랜스 오튼이었다.

“야, 야.”

“어, 어어, 어…….”

흔들어 깨우자 오튼은 침을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일어났구나! 선생……!”

깜짝 놀라 달려 나가려는 녀석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 멍청이는 지금 오밤중에 뭘 심각한 것도 아닌데 이래.

“조용히 하고. 어떻게 됐어?”

“너, 너너, 너, 괜찮아?”

“별것도 아니야. ……아니, 애초에 뭐에 긁혔던 거야?”

“러셀한테 네가 휘두르면서 구부러졌던 파이프 관 있잖아? 그 중간 부분이 날카롭게 되면서.”

“운도 더럽군.”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그 위로 내가 힘차게 구르면서 이마가 완전히 찢어지고 만 것이었다.

“스무 바늘 정도 꿰맸어. 선생이 너 그러고도 경기 뛰었다는 거 알고는 미친놈이라면서 욕하던데.”

“일이니까 해야지.”

“대체 왜 그렇게…….”

“재밌잖아.”

나는 씨익 웃어 보였다.

환상적인 밤을 또 보냈다.

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미친 듯이 반응을 해주는 건, 아무나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래서 내가 프로레슬링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거다. 몸은 좀 아팠지만 그래도 마냥 좋았다.

“그러고 보니 러셀은?”

“어, 러셀…….”

“그 녀석은 좀 어때.”

“너보단 괜찮아서 적당히 치료하고 마는 정도지만……. 너희 사이 정말로 괜찮은 거냐?”

“어디 있는데?”

“어? 아니, 그 녀석도 쉬어야 하니까 앞에 캠핑 버스 주차해두고 안에서 자라고 했거든. 간병인은 내가 하면 충분하니까.”

“잠깐 보고 올게.”

“어? 야, 야 정말……!”

“안 싸워.”

일부러 오튼을 좀 더 놀리기 위해 무뚝뚝하게 말한 나는 그대로 침대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몸에 꽉 끼는 환자복.

제기랄. 팬티까지 벗겨졌는데 과연 누가 옷을 갈아입힌 것일까.

나는 걱정하며 이내 따라오는 오튼과 함께 병실을 나섰다.

다행히 경비는 순찰 중인지 몰래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가는 길에 핸드폰을 확인하자 티파니로부터의 연락은 없었다.

그 대신 문자가 하나.

[멋졌어.]

시나로부터 온 것이었다.

“…….”

녀석은 현재 랙다운에서 전생과 똑같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녀석에게 이걸로 한 방 먹인 것이었다면, 정말 좋겠는데.

피식 웃은 나는 그대로 불이 켜져 있는 캠핑 버스에 도착했다.

* * *

안절부절못하는 오튼에게는 적당히 둘러대고, 러셀과 나는 잠시 주차장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러셀 역시 만신창이였다.

내가 어찌나 갈겨댔는지 눈에는 커다란 멍이 들었고 목은 빨갛게 달아올라서 많이 아파 보였다.

그걸 살피며 잠시 침묵을 즐기던 와중, 러셀이 입을 열었다.

“저 녀석은 왜 저래?”

그는 버스 앞에서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 오튼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가 진짜 싸운 줄 아나 봐.”

“아니었어?”

“응?”

“난 널 정말로 미워했는데.”

“그래?”

내가 피식 웃으며 물었지만.

“넌 나보다 더 나으니까.”

러셀의 표정은 진지했다.

“……하트 던전에서 10살부터. 홈스쿨링을 하면서 프로레슬러가 되기 위한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

녀석은 그렇게 자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내게 털어놓았다.

단순히 ‘각본’이 될 수 있겠다며 넘기는 게 아니라 자신의 밑바닥을 완전히 드러내 보인 것이었다.

“널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동양인이 프로레슬링이라니 많이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었어.”

“이해해.”

“하지만 넌 매번 날 열 받게 만들었지. 기믹을 도와주었고, 경기에서도 항상 날 배려해줬지.”

“그게 열 받을 일인가?”

“당연하지.”

러셀이 단언했다.

“난 최고가 되고 싶으니까.”

그럼에도 매번 신은 위에서 자신을 이끌어주었다.

그렇게, 눈엣가시처럼 굴었다.

이해가 가는 이야기였다.

나도 안다.

상대방이 자신과 같은 위치에 서있지 않다면 친구가 될 수 없다.

이게 남자들의 방식이었다.

“GCW 챔피언 때도 그렇고, 여기 올라와서도. 왜 넌 항상 날 비참하게 만드는 건지 모르겠어.”

“그걸 표현했군.”

“……그래.”

러셀이 날 돌아보았다.

아직 감정이 남아있는지 녀석은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았다.

“이래놓고 네가 랙다운으로 가버리면 난 대체 뭐가 되는 거지?”

“…….”

“또 네가 넘겨준 모멘텀을 바탕으로 해나가라는 건가? 그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알아?”

“알고 있지.”

“네가…….”

“알아, 러셀. 믿어줘.”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사실, 전생의 난 러셀 같은 위치에 이르러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뭔가를 받을 수 있는 입장조차 아니었다.

그냥 웃기게 얻어맞으며, 남의 강함을 어필하는 도구로서 쓰였을 뿐.

하지만 그렇기에 러셀이 느끼는 비참한 기분을 알 것 같았다.

남자라면 응당 스스로 주도적이라는 기분을 느껴야만 하니까.

그게 아니면 무너진다.

공부, 일, 사랑, 관계, 모든 게.

자신을 인정받지 못하고 남들에게 기대기만 해서는 계속해서 버텨나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난 차갑게 말했다.

“네가 나에게 어떤 열등감을 느끼는지 모르진 않아.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지 싶은데.”

“하, 그렇군.”

러셀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웃어 보였다. 그러더니 이내 길게 숨을 내뱉고 지금 감정을 말했다.

“……고맙다.”

그런 내 말이 기뻤던 모양이다.

우리는 친구지만, 아니, 도리어 친구이기 때문에 서로 경쟁이라는 라인에 함께 서있는 사이였다.

경쟁에 있어 동정은 도발이다.

“오늘은 좀 어땠어?”

“아 뭐, 나쁘진 않았어.”

사실 죽여줬지만.

나는 러셀이 좀 더 힘을 내줬으면 해서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녀석은 확실히 전보다 나아졌고, 앞으로도 더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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