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
경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신과 러셀이 주먹을 한 방씩 주고받을 때마다 관객들은 두 사람에게 각기 반대되는 챈트를 보냈다.
[Yeah!]
[Boo!]
[Yeah!]
[Boo!]
그것을 백 스테이지에서 지켜보고 있던 시나는 빙긋 웃어 보였다.
방금 그 슈퍼 킥 한 방으로 기세를 가져온 신은 무릎을 최대한 쓰지 않으며 러셀과 싸워나갔다.
러셀은 방심한 상태에서 맞았던 슈퍼 킥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고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
두 사람은 완벽했다.
신은 계속해서 다리를 절었고 러셀은 반대로 머리를 흔들어대며 슈퍼 킥에 대한 셀링을 해나갔다.
경기를 보고 있는 ‘두 사람’의 입장에서 정말로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개중에서도 좀 더 경기에 몰입하는 건 두 사람과 직접 여행을 다니고 있는 오튼 쪽이었다.
“문제 생긴 거 아니야?”
“글쎄.”
시나는 피식 웃었다.
……사실 오튼은 GCW 시절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나와 그다지 살갑게 구는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질문을 던진 이유는, 바로 시나가 신처럼 ‘뭔가 알았다는 듯’ 건방진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생각해? 경기.”
“지금까지는 완벽하네. 두 사람의 장점을 살리고 이전과 다른 재미를 관객들에게 주고 있어.”
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보디빌더 출신으로 레슬링 기술이 부족한 시나로서는 따라가기가 어려운 영역이었다.
러셀도 러셀이지만.
신은 언제나 멋진 ‘링 사이콜로지’로 관객들을 뒤흔들어놓았다.
정말로 부러울 정도였다.
신은 굉장히 간단한 기술만으로도 관객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링 위에서의 심리학Psychology에 굉장히 능통하다는 말이었다.
경기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
두 사람은 지친 기색을 내보였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안정적인 상태로 경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각종 슬램과 수플렉스 기술을 이어갈 때마다 서로 맞아떨어지는 합이 굉장히 안정적이었다.
콰앙!
스냅 수플렉스로 러셀을 넘긴 신이 보조기를 찬 무릎을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런 고통을 이겨내고 러셀에게 다가간 그가 자리에 누운 채 한 가지 기술을 걸었다.
샤프 슈터.
[끄하압-!]
자리에서 일어서며 동시에 완성되는 기술. 그것을 본 순간 시나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저런 식으로 잇지?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터였다.
자리에 누운 상태에서 다리를 얽고 몸을 돌린 뒤 그대로 들어올려서 샤프 슈터로 이어버리다니.
아주 멋진 서프라이즈였다.
[끄하아아아아악!!]
[러셀, 그만두시겠습니까?]
그 앞에 다가간 심판이 마이크를 들고 물어보았다.
기본적으로 항복을 한다는 건 서브 미션 매치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에게 고통을 줘서 항복을 받아내는 서브미션과 달리, 아이 큇 매치는 상대방을 공포에 질리게 해서 항복을 받아낼 수도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었다.
러셀이 소리쳤다.
[엿이나 먹어!!]
악에 찬 목소리.
그 뒤를 이어 기술이 풀렸다.
카메라가 어? 하고 놀라 돌아보는 러셀의 얼굴을 비춰주었다.
무릎을 움켜쥔 채 어딘가 망가진 사람처럼 덜덜 떨고 있는 신.
그것을 본 러셀이 사악하게 웃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개새끼.”
오튼이 말했다.
두 사람의 싸움은 중반부에 접어들어 링 밖에서 계속 이어졌다.
러셀이 신의 몸을 붙잡고 바리케이드 쪽으로 힘차게 내던졌다.
콰앙!
부딪혀 쓰러진 신은 숨을 헐떡거리며 다가오는 러셀의 다리를 붙잡고 앞으로 구르며 넘어뜨렸다.
관객들이 선역의 부활에 다시금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도 돌아왔다. 거기에 보답하듯 신은 러셀을 다시금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힘을 쓰는 데 축이 되는 무릎이 망가진 채라 레슬링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주먹다짐에 가까웠지만.
그럼에도 한 번 기세를 타게 된 신은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나갔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시나는 ‘아이 큇’이라는 이름이 주는 상징성에서 한 가지를 떠올렸다.
‘신이 이기긴 어렵겠군.’
그런 시나의 생각처럼 해설자들도 문제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이 큇 매치는 상대의 항복을 입으로 직접 들어야만 끝납니다!]
[서브미션으로 끝내는 게 일반적이긴 합니다만……. 무릎이 저래서야 신이 샤프 슈터를 더 사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반면 러셀은 신의 무릎을 공격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죠!]
[예, 하트 슈터. 6월 페이퍼 뷰에서는 실패했던 그 기술을 얼마나 발전시켜 왔을까. 궁금하군요.]
해설자들이 지금 두 사람의 경기에 내재된 스토리를 쉽게 설명해주었고, 시나는 혀를 내둘렀다.
이런 수준의 스토리를 경기를 통해서 보여줄 수 있다는 건 자신은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과연 신은 여기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할 것인가.
그리고 러셀은 어떻게 맞설까.
그에 대한 해답은, 신이 링 아래에서 도구 하나를 꺼내 들며 전개되기 시작했다.
‘뭐지?’
시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미리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해설자들이 바로 답을 말했다.
[절연 테이프입니다!]
[저걸로 뭘 하려는 거죠?]
신은 자신의 공격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러셀의 팔에 절연 테이프를 감아 묶었다.
러셀 역시도 저항을 했지만 신이 주먹을 쥐고 몇 대 후려치자 다시금 조용해졌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대를 하며 바라보는 사람들.
뒤를 이어 신은 러셀의 양 발목에도 똑같이 테이프를 휘감았다.
팔다리를 봉쇄당한 상태에서 링 위로 올라간 러셀.
위기의 상황.
아직 링에 올라가기 전이었던 신을 플레어가 공격했다.
[Booooooooooooo-!]
어마어마한 야유가 쏟아졌다.
시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살아 있는 전설, 플레어가 야유를 받을 정도라니. 신은 얼마나 대단한 팬-페이보릿이란 말인가.
[크억?!]
고통으로 쓰러지는 신.
두 사람의 싸움이 한동안 이어졌다. 반칙패가 없는 경기라 심판은 그런 상황을 어이가 없어 바라보기만 할 뿐 말리지는 못했다.
신의 무릎을 집요하게 노려 대미지를 누적시키던 플레어가 이윽고 공격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런 상황을 마냥 좋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그사이, 러셀이 힘으로 절연 테이프를 풀어냈기 때문이었다.
신이 생각했던 공격은 이어지지 못했고, 이번에는 반대로 회복한 러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콰앙-!
러셀의 특기인 저먼 수플렉스를 맞고 나가떨어지는 신.
누가 보더라도 한계인 상황.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일어났다. 그것을 보고 있는 관객들은 압도되어 말을 잇지 못했다.
덤벼, 덤벼.
입으로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신이 주먹을 쥐었다. 상처를 입었어도 그는 끝까지 맹수였다.
거기에 분노한 러셀의 맹공이 이어졌다.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관객의 모습이 카메라에 비춰졌다.
그래도 신은 꿋꿋이 일어났다.
[신, 그만두시겠습니까?!]
보다 못한 심판이 권유하듯 몇 번이고 물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계속해서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러셀의 비겁한 행동이 극에 달했다.
그는 쓰러진 신의 팔과 다리에 반대로 절연 테이프를 감았다.
그리고 탑 로프로 올라가 심판에게 마이크를 받고 소리쳤다.
[그만두겠다고 말해!!]
[Booooooooooooooo……!!]
[너에게 승산은 없어! 신! 그 상태로는 굴러서 피하지도 못하겠지! 이대로 죽고 싶지 않으면 말해!]
모두가 신을 돌아보았다.
링 위에 무방비하게 쓰러져 숨을 몰아쉬던 그가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이를 빠득 깨문 러셀의 몸이 전방으로 힘차게 도약했다.
슈팅스타 프레스.
러셀이 쓸 때는, 크레센트.
시나는 왠지 모르게 두 사람이 링 위에서 그 기술의 사용을 결정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러자 지금 이 순간의 풍경이 다르게 보였다.
심장이 욱신거렸다.
그때 링 위에서 꿈을 키웠던 두 사람이, 오늘 쇼에서 그야말로 최고의 반응을 얻고 있었으니까.
어쩐지 시간이 느리게 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SIN!]
사람들은 신을 응원했고.
[Booooooooooooooooo……!]
러셀에게는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모두 헛되이.
투콰앙-!
러셀의 몸이 팔다리가 묶인 채 누워 있는 신에게 내리꽂혔다.
그 충격에 링 위에 있던 심판의 몸이 살짝 링에서 떠오를 정도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 충격이 쉬이 상상이 갈 정도의 일격.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부상을 입은 다리를 억지로 엮은 러셀이 힘차게 옆으로 틀었다.
[크아아아아아악!!]
[신, 그만두시겠습니까?]
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며 통증을 참아냈다.
그러자 다음 순간, 러셀이 주먹을 들어 보조기가 채워져 있는 신의 무릎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크으윽……!]
고통에 몸부림치는 신.
하트 슈터에 의해 그 허리와 다리가 기괴한 방향으로 비틀렸다.
하지만 신은 절대 그만두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버텨내며 서브미션을 벗어나려고 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나는 대체 어디까지 버틸 생각인 건지 싶어 눈앞이 깜깜해지는 걸 느꼈다.
그 긴장감에 숨이 막혀왔다.
사실, 상황만 놓고 보자면 금방이라도 ‘아이 큇’을 외쳐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포기하겠다.
하지만 신은 절대로, 죽어도 그 말을 외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승리의 여신은 러셀의 머리채를 억지로 붙잡은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하트 슈터는 일반 샤프 슈터에서 더 진화해 온몸을 활처럼 꺾어버리는 잔혹한 기술로 탄생했다.
기술의 높은 시전 난이도는 그간의 연습을 통해서 극복해냈다.
빠져나갈 길은 없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신이 자신의 머리를 짓밟고 있는 러셀의 다리를 붙잡으려고 들었다.
저곳이 약점인가?
하지만 아니었다.
쿵-쿵쿵!!
러셀이 신의 팔을 마구잡이로 짓밟아댔다. 잔혹한 행동에 지켜보던 모든 이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보다 못한 심판이 소리쳤다.
[신, 그만두겠나?!]
[……!]
신은 허리가 위험한 각도로 꺾인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버텨냈다.
하지만 그 눈이 서서히 감겼다.
아.
‘빌어먹을.’
시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최고의 결말이었다.
어쩌면 오늘 쇼에서 가장 뇌리에 남는 순간이 될 것처럼 느껴졌다.
[신, 신?]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당황하던 심판이 이윽고 신의 손을 들어 올리며 의식이 남아있는지 확인을 시작했다.
하지만 심판이 손을 놓자 신의 팔은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두 번째.
이번에도 힘없이 떨어지는 손.
그리고 마지막.
심판이 잠깐 뜸을 들였고.
신의 손은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털썩 떨어지고 말았다.
거기에서 결국 보다 못한 심판이 경기의 종료를 선언했다.
땡땡땡!!
키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링 벨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승자인 러셀 하트의 테마 음악이 경기장 전체를 울리기 시작했다.
“하…….”
“……끝났네.”
시나와 오튼,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한 뒤, 잠시 어안이 벙벙해져 입을 다물었다.
신과 러셀 하트의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매치는, 그렇게 러셀의 K.O.로 끝났다.
정말 어디 하나 모자란 것이 없는 완벽한 경기 구성이었다.
[Boooooooooooooooooo-!!]
사악하게 웃으며 벨트를 든 러셀은 지금 이 순간 경기장의 그 누구보다도 증오를 받는 존재였다.
심판이 기절한 신의 팔다리에서 절연 테이프를 풀어주고는 상태가 괜찮은지 확인했다.
하지만 신은 끝까지 일어나지 못했고, 러셀과 플레어가 그 앞에서 신나게 세리모니를 펼쳐보였다.
바로 그때였다.
“어?”
“이런.”
바리케이드 바로 앞에 있던 뚱뚱한 백인 남성 하나가 러셀을 향해 들고 있던 팝콘 통을 던졌다.
그게 러셀의 머리에 정통으로 맞았다.
원래 쇼에서 링 위로 무언가를 던지는 건 곧바로 퇴장 조치가 내려질 정도로 엄격한 사항이었다.
하지만 그걸 기점으로 민심(?)이 폭발해 모두가 러셀에게 각종 물건들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소다가 든 음료수 병부터 시작해서, 경기장에 반입된 온갖 물건들이 링 위로 날아들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시나는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최고의 패배로군.”
그리고 최고의 경기였다.
사람들이 챔피언의 패배에 이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보이는 건 2000년 이후에 들어 처음으로 있는 일이었다.
아마 지금쯤 고릴라 포지션에 있을 바트 맥센도 사태를 수습하고자 난리를 피우고 있겠지.
하지만 한번 그렇게 벌어진 민심은 수습하기 힘들 것 같았고.
러셀은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벨트를 들어 올리며 사람들의 야유를 즐기고 있었다.
“어, 이제 어쩌지? 저러다 폭동이라도 일어나는 거 아니야?”
“일단 한 가지는 확실해.”
오튼의 질문에 시나는 가벼운 농담을 건네며 곧이어 다가올 부담감을 이겨내려고 노력했다.
다음 경기는 링을 치운 뒤에나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